히카루 겐지

光源氏(ひかるげんじ)

1 고전문학 겐지모노가타리의 주인공

일본의 고전문학 겐지모노가타리의 주인공이자 코요미의 숨겨진 조상. 키잡계의 영원한 레전드

기리츠보 덴노와 기리츠보 코이 사이에서 태어난 황자. 작품 내에서 끝도 없이 그 미모를 찬양한다. 모친인 기리츠보 코이는 신분에 맞지 않게 덴노의 총애를 한 몸에 받다가 후궁들의 갈굼을 못 이겨 병으로 죽었다. 기리츠보 덴노는 너무나 사랑했던 여인의 아들을 대단히 아꼈지만 이미 동궁이 정해진 데다 그 동궁의 모친인 고키덴 뇨고의 세력이 강대하고, 또 아이의 관상을 본 고려인[1]이 '제왕은 되지 못하겠지만 그보다 더 큰 권세를 가진다'라고 말한 것을 염두에 두고 겐(미나모토)이라는 성을 내려 신적강하하게 했다. 고려인이 '제왕이 되면 나라를 혼란시킨다'고도 예언했다는데, 후의 그의 막장 행각을 보면 덴노가 돼서도 여색에 빠져 나라를 말아먹고도 남지 않았을까.

그 후 기리츠보 덴노는 죽은 코이를 그리워하다 못해 그녀와 꼭 닮고 신분은 더 고귀한 후지츠보 뇨고를 후궁에 들여 아끼는데, 당시 어렸던 겐지를 데려와서 '이 아이의 모친은 당신과 꼭 닮았으니 이 아이를 자신의 아이처럼 아껴주라'고 몇 번이나 언급했다. 그 말을 들은 겐지는 자신의 어머니와 닮았다는 후지츠보에 대한 동경을 키우다 못해 사랑으로 발전. 결국 후지츠보의 시녀를 구워삶아서 접근하여 검열삭제에 성공, 후지츠보는 겐지의 아이를 낳는 막장 크리가 터진다(...) 게다가 이 아이가 다음 대의 동궁으로...

그 밖에도 키잡, 죽은 형의 아내, 미망인, 불륜, 이복형인 덴노가 총애하던 여인 등 온갖 여인을 후렸다. 작품 해설에 의하면 모녀덮밥은 먹지 않고 여승도 건드리지 않았다곤 하지만, 그래도 껄떡대는 것은 여전하기 때문에 눈 뜨고 볼 수 없는 막장크리.

최종적으로는 육조원이라는 거대한 저택에 사계절에 맞는 정원을 꾸미고 자신의 여인들에게 각자 집 한 채씩 내주어서 최고의 하렘을 꾸미고 풍류를 누리며 산다. '자식을 셋 두는데 한 명은 덴노가 되고 한 명은 중궁이 되고 한 명은 태정대신이 된다'(온나산노미야를 아내로 맞은 것도 이 예언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한다)는 예언(위의 고려인의 예언과는 다르다)대로 후지츠보와 내연의 관계로 생긴 아들은 덴노가 되고, 딸은 다음 대 덴노의 비가 되었다. 그리고 장남 유기리가 나중에 태정대신이 된 듯. 그야말로 세상의 권세를 한 몸에 지닌 형국.

그러나 마지막에는 상황인 이복형이 출가를 하면서 떠맡기듯이 셋째 딸 온나산노미야를 겐지에게 주어, 가장 사랑하며 겐지의 정실인 무라사키노우에가 졸지에 첩이 되는 난맥상에 빠지고 만다. 무라사키노우에는 고뇌하다가 병에 걸리고, 겐지가 간호에 전념하던 사이 정처인 온나산노미야를 동경하던 가시와키가 온나산노미야에게 접근해 검열삭제... NTR로 흥한 자 NTR로 망한 꼴이 되고 만다(...) 불륜의 아이를 낳은 온나산노미야는 고민하다가(모노노케의 영향도 있었다고 써있다) 출가하여 여승이 되고, 가시와키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소중한 무라사키노우에도 병사. 결국 허무에 몸부림치며 1년을 쓸쓸히 보내다가 출가를 결심한다는 것이 작품의 결말. 그 후 어떻게 사망했는지는 나오지 않고, 2부는 그의 사후 그의 외손자와 표면적으로 그의 차남으로 되어있는 가오루의 이야기다.

작품 내에서 아무리 겐지를 칭찬하고 추어올리고 찬양해도, 21세기 현대 사회의 한국인이 보기엔 어떻게 해도 막장 ㅂㅅ이라는 문제가 있다(...) 이 소설을 읽어본 누군가가 평한 바에 따르면 겐지가 칭송받는 이유는 '요즘 식으로 따지면 재벌집 남자가 여자들한테 강남에 아파트 한 채씩 다 사준 이야기'라서라고 한다. 천잰데?

80년대에는 그의 이름을 딴 아이돌 그룹 히카루GENJI가 결성되기도 했다.

2001년 '천 년의 사랑 히카루 겐지'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는데, 겐지 역을 다카라즈카 가극단 출신 여배우인 아마미 유키가 맡았다. 뭐 잘 생기긴 잘 생겼으니(...)

2009년에는 '겐지 이야기 천년기'라는 제목으로 애니화되어 히카루 겐지 역을 사쿠라이 타카히로가 열연했다. 명대사는 "그래도 사랑!!!"

1.1 모델

가공의 캐릭터지만 히카루 겐지의 모델이 된 실존인물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일본에서도 의견이 분분한데, 일본 위키피디아를 포함한 일본 웹사이트들의 설명으로는 52대 사가 덴노의 12남이자 정1위좌대신을 지낸 인물인 미나모토노 토오루(源融, 822~895)라는 설이 유력시되는 듯하다.

또 무라사키 시키부가 활약한 무렵의 최고 권력자인 후지와라노 미치나가(藤原道長, 966~1028)가 모델이라는 설도 제법 지지를 받고 있는 모양. 무라사키 시키부로 나카타니 미키가 출연한 2011년 영화 <겐지모노가타리-천 년의 수수께끼>에서는 이 설을 채택하고 있다. 이 사람은 딸 네 명을 덴노와 결혼시켰고, 세 명의 덴노의 외조부가 되어 후지와라가 세도정치의 최전성기를 구축한 인물이다.[2] 또한 그의 시대가 헤이안 귀족 문화의 절정기기도 했다.

이 외에 모델로 거론되는 인물 중 특이한 인물은 아리와라 나리히라(在原業平, 825-880)인데, 그는 5, 7, 5, 7, 7의 정형시인 와카(和歌)를 중심으로 구성된 125개의 단편을 모은 헤이안 시대의 이야기집인 <이세 이야기>(伊勢物語)의 주인공 모델로도 유력시되는 사람이다. 그는 헤이제이 덴노(平城, 774-824)의 손자로, 아버지는 아보(阿保) 친왕이다. 아버지가 구스코(薬子)의 난(810)에 연루되어 규슈(九州) 다자이후(太宰府)에 유배되고, 나리히라는 아리와라(在原) 성을 하사 받아 이후 신하의 신분이 되어 종4위의 중장에 이른다.

그 외 모델로 거론되는 인물은 58대 덴노인 고코(光孝) 덴노 설, 또다른 후지와라가 귀족인 후지와라노 코레치카 설, 54대 닌묘(仁明) 덴노의 아들인 미나모토노 히카루 설 등 9세기에서 11세기에 실존했던 대부분의 덴노, 왕족, 귀족들이 무수히 거론된다. 이 사람들 각각의 개인적 면모가 조금씩 조합돼서 만들어진 캐릭터가 바로 히카루 겐지라고 볼 수도 있다.

2 일본의 남성 아이돌 히카루GENJI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활동했던 일본의 남성 아이돌 그룹.
  1. 작중에서는 고려상인(고려관상가) 이라고 등장
  2. 한국사로 치면 고려시대 경원 이씨의 세도를 구축했고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와 동시대를 산 인물인 이자연(李子淵, 1003~1061)과 이미지가 비슷하다. 이자연은 세 딸을 문종의 왕후로 들였으며 세 고려 왕(순종, 선종, 숙종)의 외조부가 된 인물이다. 손자인 이자겸과 혼동하지 말 것. 물론 이자겸도 딸들을 예종인종의 비로 들이기는 했지만, 딸 넷을 잇달아 덴노와 결혼시키고 세 덴노의 외조부가 되었다는 점이나 가문의 막강한 세도를 구축했다는 점에서는 이자겸보다는 이자연과 훨씬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