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NA 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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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초기, 전형적인 80년대 후반~90년대 초 일본 비주얼계 밴드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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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기, 많이 얌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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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형님들 다시오셨다!

1 개요

가나가와현 출신의 일본 락 밴드. 주 활동시기는 1989년~2000년.[1] X JAPAN 산하(?)의 엑스터시 레코드 출신으로 메이저 데뷔 후 유니버설 레코드와 계약했다.

본래 이름은 LUNACY(광기)였는데, 메이저 데뷔 때 YoshikiHide의 조언에 따라 '달의 여신의 바다' 라는 의미인 LUNA SEA로 개명하였다.

고교생 시절 제이(J. 베이스)와 이노란(INORAN. 리듬기타)이 결성했던 LUNACY 가 전신으로, 이후 다른 학교에 다니던 真矢(신야. 드럼)와 스기조(SUGIZO. 리드기타)가 합세. 인디즈로 활동을 시작 후 그룹 슬로터의 보컬이던 류이치(RYUICHI)가 가입하여 현재의 라인업이 완성되었다.

2 특징

초기 스타일은 흑복락의 원형이라 할 수 있을 만큼 고딕적이고 음침했었다. 간단한 예로 90년대 후반이나 2000년대 초반에 그들의 인디 시절이나 초기 라이브 영상을 영상회에 틀 경우 그들을 늦게 접한 '빠순이'들이 아연실색했다는 것은 흑역사 아닌 흑역사로 남아있다... 특히 보컬인 카와무라 류이치가 거물그룹인 원 DEAD END의 모리(통칭 킹 모리)의 스타일을 상당히 많이 참조했기에 그런 듯.

기타리프나 배킹은 동시대 영국밴드들처럼 크런치한 성향이 강했지만, 베이스나 드럼의 리듬섹션은 오히려 하드락에 가까운 스타일이다. 때문인지 보컬 역시 초기에는 다소 내지르는 스타일이었다. 라이브 실력이 좋은 것으로 유명하지만, 의외로 보컬이 삑사리가 안 나는 대신 자신이 쓴 가사를 까먹는 실수가 종종 있었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한 번은 어느 버라이어티에 출연했을 때 보컬을 제외한 멤버들이 "라이브 때 최소한 류이치보다는 가사를 안 까먹을 자신 있다."라고 말했을 정도...

그렇지만 워낙에 스테이지에 서면 카리스마가 쩔었고, 라이브시 멤버들의 활동성이 전성기 시절 건즈 앤 로지스 찜쪄 먹는지라 자세히 듣지 않으면 인지하기 어렵다.[2] 또한, 스피디한 곡들도 많아 여타의 비주얼 락 밴드들에 비해 남성팬도 많았던 편이다.

애니송은 단 한 곡도 부르지 않았지만 최근 엔드라이드의 오프닝곡을 불렀다.

3 멤버 소개

3.1 보컬 : 류이치(RYUICHI)

본명 카와무라 류이치 Kawamura Ryuichi 河村隆一
1970.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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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후덕해지셨다. 근데 목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이제는 본명인 카와무라 류이치로 더 유명한 일본의 전설적인 대보컬.

인디즈 시절에는 RAYLA 명의로 활동했다. 이 때부터 EDEN 앨범(1993년)에 이르기까지는 꽤나 보컬 스타일 + 작사 스타일이 사이코틱해서, SHINE 이후에 알게 된 이들에게 있어서는 미지의 영역.[3] 첫번째 메이져 앨범 투어 비디오인 IMAGE OR REAL 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참고로 LUNA SEA 에서 작사는 대부분 RYUICHI 가 했지만, 크래딧 상으로는 작사와 작곡 모두 LUNA SEA 로 표기.

이후 서서히 팝적인 성향을 띄게 되고 97년 휴지기 이후 이런 성향이 두드러진다. 휴지기의 솔로앨범은 밴드 음악과는 괴리감이 생길 정도여서 밴드 멤버인 J에게조차 대차게 까일 정도. 그러나 류이치의 보컬 실력은 절대로 얕볼 수 없는 것이 종막 이후 류이치의 소원은 "마이크와 스피커가 없는 공연장에서 라이브를 하고 싶다." 라는 내용이였는데 실제로 이루어 진 바 있다. 심지어 DVD 까지 발매된 어느 공연에서는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동안 70곡(앵콜 포함 71곡)을 부르면서 팬들 사이에서 별명이 '강철성대'로 불리기도 하였다.

솔로 1집 LOVE 가 278만장으로 역대 남자솔로 단일 음반 판매율 1위를 찍는 정점의 기염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종막 후에도 이노란과는 꽤 친했는지 이노란과 함께 Tourbillon 이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줄곧 함께 활동을 해왔다.

흑역사로 시종일관 밴드 내에서 '워스트 드레서' 로 꼽히며 패션 키워드는 배바지와 회사원(...)[4] 최근에 뮤지컬 은하영웅전설 자유행성동맹편에서 양 웬리로 캐스팅되었다. 류이치 본인이 은영전의 팬이라는 듯.

가사를 잘 까먹고 실수를 많이 하는 편인데,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LUNA SEA의 작사 대다수를 류이치가 소화했기 때문에 자신이 뭘 만들었는지 헷갈릴 수도 있다. 게다가 초반의 스타일과 후반 스타일을 다르게 작사했기 때문에 헷갈림 정도가 아마 더 올라갔을지도(...)

솔로활동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카와무라 류이치 항목을 참조.

3.2 리드 기타, 바이올린 : 스기조(SUGIZO)

본명 스기하라 유네 Sugihara Yuune 杉原 有音
1969.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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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 중 유일하게 69년생[5]. LUNA SEA 활동시절 '빠' 만큼 '까' 도 많았으며 그건 지금도 여전하다(...) 초반 ESP의 호라이즌 모델을 기반으로 한 기종과 Purple Rain 시절 Prince 가 사용한 기타를 카피한 모델을 시그니쳐로 사용. MOTHER 앨범 투어 도중 하이엔드 브랜드인 Zematis 를 참고한 모델인 Eclipse 시리즈를 출시하여 공전의 히트[6]를 기록했다. 음악적으로는 영국의 뉴웨이브 계열 밴드 JAPAN 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며, 어렸을 적 클래식 교육을 받아 바이올린도 연주한다. 종막 직전 J와 다툼이 있었다는 얘기도 있다[7].

종막 후의 솔로 활동엔 그나마 히트했던 SOUNDTRACK[8] 앨범[9] 말고는 딱히 특출난 성적을 낸 앨범은 없는 편[10]. 대신 앨범 내에서 자신의 메인인 기타와 바이올린은 물론이고, 베이스와 키보드까지 직접 연주하여 녹음을 하는 것으로 악기 포지션적인 이해도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신 거기에 반비례한 악기 테크닉과 비교하면 신은 공평했다

공연시 화려한 퍼포먼스와 패션센스로도 유명하며 흥이 나면 애드립 연주도 기깔나게 하고 인간관계도 락커 치고는 꽤 좋은등 겉모습과는 달리 의외로 견실한 타입이지반 옥에 티로 라이브시 잔실수가 파타와 형님 아우 할 정도로 많다.

슬하에 딸이 있는데 이름이 루나이다. 첫 결혼 후 이혼한 전처와의 사이에서의 딸.

3.3 리듬 기타 : 이노란(INORAN)

이노우에 키요노부 Inoue Kiyonobu 井上清信
1970.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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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씨에서 간지를 담당. 2011년 사진이다!

중학시절 야구시합 중 주자로 나가 있던 이노우에 본인에게 붙인 친구들의 별명인 '이노, 뛰어!(이노, run)' 가 별명으로 굳어져 이를 활동 당시 이름으로 활용한 케이스이다. 멤버들 중 가장 외모가 뛰어나다. 고참 록밴드 D'ERLANGER 의 기타리스트 Ichiro(본명은 타키가와 이치로. 데란저 시절엔 CIPHER라는 예명)의 팬으로 유명하며, 특히 뱀가죽을 두른 시그니쳐 모델 ILP-3 는 외형상 숫제 Ichiro 시그니쳐의 카피에 가까운 수준. 초기 몽환적인 아르페지오 및 클린톤 배킹으로 유명했으나 현재는 크런치한 스타일을 더 선호하는 듯. 왼손잡이 이지만, 오른손잡이용 기타를 쓴다.[11] 본래 다른 멤버들과 함께 ESP 에서 엔도스먼트를 받았지만, 펜더 커스텀샵과의 엔도스먼트 계약으로, 현재는 이노란 재즈마스터를 사용.

종막 이후 솔로앨범 4장, Oblivion Dust 출신의 Ken 과 함께한 Fake? 에서 4장, LUNA SEA 멤버인 RYUICHI, 외부에서 영입한 Hayama 와 함께한 트리오 Tourbillion 에서 1장을 발매하는 등 왕성한 솔로활동 중이며, 그외 93년 J 와 함께 MxAxSxS 라는 유닛으로 hide와 활동한 바 있다. 1997년 발표한, 트립 합앰비언트를 본격적으로 시도한 솔로앨범 '想' 의 경우엔 공동 프로듀서인 DJ Krush 와의 시너지로 굉장한 퀄리티를 자랑하지만 퀄리티와 정반대로 판매량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숨겨진 명반으로 재평가받은 후 초판 앨범은 프리미엄이 붙은 탓에 말 그대로 레어 아이템이다. 다행히 2011년 재판이 발매되었으니 해당 앨범을 구하고 싶은 팬은 이 쪽을 구입하자.

2008년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참가, 마지막날인 7월 27일 공연을 했다. 당시 인기였던 하드파이와 시간대가 겹쳐 관객은 많지 않았으나 한국말도 몇 마디 준비해오고 '다시 오고 싶다'는 접대성 멘트를 날리며 살짝 웃음을 보이기도 해 당시 관람한 팬들을 설레게 했으나 다시 오지는 않았다. 솔로 곡뿐만 아니라 'Gravity'를 공연해주었다. 당시 통역을 맡은 지인의 말에 의하면 무대에서의 무표정한 모습과는 달리 의외로 굉장히 잘 웃는 소탈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의외로 OLDCODEX의 2집 앨범 CONTRACT SILVER의 리드 싱글 'HEAVEN'의 작곡과 프로듀싱을 맡은 이력이 있다. 콘서트에도 등장해 연주를 선보인 적도 있다.

2015년 8월 26일에 발매된 솔로 앨범 Beautiful Now에는 한국의 보이그룹 BTOB 멤버 3명(이민혁, 정일훈, 프니엘)이 랩 피처링으로 참가했다.[12] 그러나 전작인 미니앨범 Somewhere를 끝으로 한국 음원 회사에서 다운로드 제공을 하지 않고 있다

3.4 베이스 : 제이(J)

본명 오노세 준 Onose Jun 小野瀬潤
197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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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스타 오(노)세준

멤버들 중 최장신. 전체적으로 피킹 위주의 질주감 있고 공격적인 플레이를 선호하며, 작곡한 곡들도 업템포 위주다(TIME IS DEAD, JESUS, ROSIER, IN FUTURE, HURT, STORM 등). 스기조와 함께 일본문화 2차 개방 후 한국에 라이센스 음반을 발매한 전적이 있다. 대신 시기가 시기인지라 hyde 1집이나 B'z 의 미니 앨범처럼 영어버전으로 발매되었다.

실질적으로 밴드 내에서 음악적으로 키를 잡아나가는 메인스트림이었던 듯 하지만, 이와 관련해 SUGIZO 와 상당한 불화가 있었던 듯 하다. 시그니쳐에 써있는 문구인 Wake Up! Motherfucker!! 라는 문구로 볼 때 꽤나 불량스러워 보이지만,전혀 그렇지 않고 꽤 성실하다. [13] INORAN 과 더불어 고교동창 및 원년멤버.[14] 서태지의 솔로 3집 7th Issue 에 베이스 세션으로 참여한 적 있다.[15]

3.5 드럼 : 신야(真矢)

본명 야마다 신야 Yamada Shinya 山田真矢
1970.01.13~

드러머의 후덕함은 숙명

SUGIZO 와 함께 고교시절 피노키오라는 밴드에서 활동. 부모님이 일본 전통극 '노' 에서 활약했으며, 특별히 밴드 내에서 창작에 참여한 것으로 보이진 않지만, 대인관계가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한성깔하는 것으로 알려진 밴드의 멤버들은 물론 B'z 나 Loudness, Himuro Kyosuke, Marty Friedman 등과도 친분이 있다. 특이사항으로 멤버 중 가장 빨리 결혼했으며 배우자는 모닝구 무스메 출신의 이시구로 아야[16].

초반엔 날렵한 꽃미남이었지만 97년 이후 체중이 급격히 불어 쇼프로그램 출연시 '야쿠자 중간보스'나 '악덕 매니저' 등으로 불리는 수모(..)를 당하기도 하였다. 마누라가 너무 좋아서 해주는 밥이 너무 맛있더라(...)하는 이유였다고 한다. 드러머들 중에서 힘있는 드러밍을 위해 일부러 살을 찌우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신야는 마누라 사랑이 먼저였는지, 드러밍을 위한 것이 먼저였는지 미스터리하다.

스타일은 전형적인 파워 드러밍. 칼같은 박자감에 선이 굵직한 드러밍이 일품이다. 사후에도 드러밍의 상징으로 계속 언급되는 히구치 무네타카가 생전에 가르친 드러머 중 한명이고 이를 소화해낸 드러머이니 그 실력은 보증되었다고 할 수 있다. 웬만한 라이브 때마다 한번씩은 드럼솔로를 하는데 수준이 꽤나 높다. 현재는 가끔 버라이어티나 타 아티스트의 백밴드를 봐주거나 솔로 및 프로듀싱에 전념하고 있다.

4 주요 활동사항

4.1 2000년도까지

일본 락 그룹으로서는 최초로 아시안 투어를 성공시켰고 1999년 도쿄 빅 사이트 주차장 특설무대에서 가진 캐퍼시티 라이브로 단일 공연 최대관객수 기록인 10만명 운집이라는 기록을 보유했었다. 이후 GLAY가 같은 해 마쿠하리 멧세 주차장 특설무대에서 가진 글레이 엑스포 '99에서 20만명 운집으로 깨기 전까지 최고 기록이였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에 Breathe를 삽입(Voiceless 버전)했으며 007 the world is not enough의 엔딩테마를 부르기도 했다.(일본 로컬라이징판만. Sweetest coma again) 또한, 영화 Another heaven complex에 Gravity(end of the world 버전)를 삽입시켰다.

중요한 공연 때마다 큰 사고가 나곤 해서 폭풍을 몰고 다니는 밴드라고도 불리웠었다. 특히 10주년 기념 라이브는 진짜 폭풍이 나서 공연을 앞두고 세트가 박살났는데도 J의 강경한 주장을 통하여 공연을 강행하여 라이브 비디오와 다큐멘터리 비디오가 나왔었고, 현재는 두개의 비디오가 DVD로 발매되었다. 이 영상에 보면 세트가 폭풍에 박살이 나는 장면이 들어있다(...). 참고로 이 공연이 1999년 6월까지 일본 단일공연 최대 관객수를 동원한 그 공연이다. 당시 공연을 2일 연장하여 멤버들을 동원하면서 열심히 세트 복구에 나섰지만, 세트와 함께 음향장비도 상당수 박살나 뒷쪽 관중들의 경우 거의 웅웅거리는 소리밖엔 듣지 못했다고 한다.

96년~98년 동안 명실상부 일본정상의 락그룹이면서도 자기들 마음대로 무기한 휴식에 들어가는 바람에 글레이, 라르크 앙 시엘 등이 크게 인기를 얻게 되는 계기를 제공했다. 더불어 이러한 성향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은 기획사에서 밀었던 밴드 Shazna가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것은 흑역사. 이 때쯤부터 멤버들 사이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는 설도 있다. 더불어 98년 재결성 때부터 갑자기 음악적인 성향이 바뀌면서 판매량이 줄어들었는데 이것이 결정적인 영향이라는 추측도 있다. 하지만 SHAZNA는 메이져 2집에 와서 거의 외주 작곡가의 곡으로 앨범을 채워넣는 등 뭔가 어긋난 모습을 보여주더니 아~ 망했어요로 거의 잊혀졌다. 덧붙여 SHAZNA의 보컬 IZAM은 솔로 싱글에 Sugizo의 A PRAYER를 리메이크한다던가 프로듀서가 Ryuichi라든가 하는 식으로 사이는 좋은 듯.

여러모로 전설이 많은 그룹이지만 팬층이 거의 매니아층이라 공연 관람자수는 많아도 앨범 판매량은 시원찮다. 정규 앨범가운데 밀리언셀러가 하나도 없고, 싱글 모음집만 120만장을 기록했다. 일례로 보컬인 카와무라 류이치의 경우엔 자신의 솔로앨범이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는 기현상이 일어날 정도

4.2 종막

결국 방향성에 대한 견해차이[17]로 2000년 12월 '종막'공연부터 실질적 해체인 무기한 휴식에 들어갔다.
2000년 11월에 정말로 모든 것을 마무리 짓는 느낌의 맥시 싱글, LOVE SONG을 발매하고 홍콩 공연을 하다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면서 홍콩에서의 종막을 선언하였다. 이후 시간이 흘러 2007년 '하룻밤 한계 부활 라이브' 이후 2009년 5월 멤버인 스기조가 hide의 후임 기타리스트로 X JAPAN에 가입했다. 이런 고로 재결성은 요원한 상태였지만……

지난 2007년 12월 25일에 'one night dejavu'라는 이름으로 팬서비스차원에서 하룻 밤 한정 부활 콘서트를 열기도 하였다. NHK에서 그 영상을 방영하기도 하였고, 이후 발매된 DVD가 판매량 1위를 기록한데 이어 Blu-Ray 영상도 발매가 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2008년 기존 앨범들의 리마스터판 앨범과 각종 장르의 아티스트(abingdon boys school, DJ KOO -구준엽 아님- 등)들이 참가한 트리뷰트 앨범이 발매되었다. 트리뷰트 앨범의 퀄리티에 관해서는 이견이 많으나, 츠치야 마사미, DJ KOO(TRF) 등 네임밸류있는 아티스트가 많아서 팬이라면 구입해볼 가치는 있다. 트리뷰트앨범이란 게 늘 그렇듯 독특한 재해석이 많아서 그냥 옛 루나시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좀 별로일 수도 있다. 일본 락그룹의 리마스터나 트리뷰트앨범은 좀 드물다. 99년 X japan의 기타리스트 히데 사망 1주기 추모앨범, 초창기 비쥬얼락 그룹인 BUCK-TICK의 트리뷰트 앨범 정도.

4.3 REBOOT

이후 LUNA SEA가 재결성될 수도 있다는 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단 멤버 4인이 재결합을 찬성하는 가운데 리드기타인 SUGIZO만이 재결합을 반대했다고 한다. SUGIZO가 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대중적인 음악보다 좀더 실험적인 음악과 연주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언론접촉이 적어서 그런 인상이 있는 듯 하며, 그는 신생 X-JAPAN에 참여 및 Juno reactor에 가입하여 나름대로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18] 참고로 SUGIZO는 "LUNA SEA의 재결성은 1억엔을 준다면 생각해 보겠다."라는 발언을 한 바가 있어[19] 팬들 사이에서도 비판이 오갔을 뿐만 아니라 여러 다른 곳에서도 비판 세례를 받은 바 있다.

그러던 중 2010년 4월 즈음에 Luna Sea의 홈페이지에 REBOOT라는 문구가 나오는 알 수 없는 개편이 이루어지면서 일본 야후에서는 실시간검색어 3위를 하기도 하였으며, 국내 팬들도 매우 술렁거리는 엄청나게 큰 사건이 일어났다. 아니나다를까, 오랜 시간이 지난 뒤인 8월 초에는 그달 말 홍콩에서 기자회견을 열 것이라는 홈페이지 공지사항글이 올랐다. 이로서 팬들의 관심이 더욱 기대되는 가운데 기자회견에서는 Luna Sea 멤버 전원이 참석하여 재결성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재결성 기자회견에서는 그동안 감추어져 있었던 신곡 발표와 월드투어 일정까지 발표하면서 팬들에게 상당히 큰 충격을 주었으나, 일부에서는 'X JAPAN 따라잡기' 라는 소리가 꽤 컸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스기조는 "해외 각국에서도 공연에 관한 오퍼(요청)이 들어오고 있으므로 다른 나라에서의 공연도 성사될 수 있을 것."이라는 발언으로 인하여 내한공연도 성사될 수 있을 것이라는 한국 팬들의 추측만이 조심스럽게 오가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재결성의 원인이 무엇인가라는 게 문제인데, 사실상 결정적인 원인은 '돈' 이라고 볼 수 있겠다. 멤버들이 각자 솔로활동을 하면서도 돈을 벌고는 있지만, 인기가 예전보다 못하며 그로 인하여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는 의견이 있다. 실제로 2007년 One Night Dejavu 의 결정적인 원인도 위와 같이 '돈' 이라는 의견이 상당히 많다.
아무튼 결론은 재결성 확정.


4.4 그 이후

2010년, 밴드의 재결성 및 20주년을 기념하여 REBOOT라는 이름 하에 월드 투어를 개최하였으며,
고베에서의 카운트다운 콘서트, REBOOT 투어의 대미를 장식하는 연말 도쿄 돔 공연 개최.
(도쿄 돔 3일째 공연에서는 인디즈 시절 밴드명이기도 했던 LUNACY라는 타이틀을 걸고 무료로 흑복한정 GIG 개최!)

2011년, 3월 16일에는 밴드의 인디즈 데뷔 앨범이자 첫 앨범인 LUNA SEA의 셀프커버 앨범 발매. 인디즈 앨범과 비교하며 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
토호쿠 대지진 복구를 지원하기 위해 사이타마에서 LUNA SEA For JAPAN -A Promise to The Brave- 공연을 개최, 성공적으로 마침.
또한, 종막 전 마지막 싱글인 LOVE SONG 이후 11년만의 신곡이자 밴드 최초의 디지털 싱글 PROMISE가 발매되었다.
수익금은 전액 토호쿠 대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기부하였다고 한다.
(제작 중이던 신곡들 중 가장 긍정적인 기운을 품고 있어서 선정되었다고 함)

2012년, 3월 21일, 22분의 러닝타임을 지닌 신곡 THE ONE -crash to create-을 발매했다.
12월 12일, 밴드 역사 상 최초의 양면싱글 The End of the Dream / Rouge가 발매되었다. 이는 그 당시 진행된 라이브 투어의 제목이기도 하다.
2012-2013 The End of the Dream[20]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침. 8월에 싱글 Thoughts, 11월에는 LUNA SEA로써는 첫 일본어 제목의 싱글 乱이 발매되었고...
무려 종막 이후 13년만에 8번째 정규 앨범 A WILL이 발매되었다!

2014년, 결성 25주년을 기념하여 25주년 기념 베스트 앨범 THE ONE, 2번째 라이브 앨범 NEVER SOLD OUT 2를 발매하였다.

2016년 2분기 방영 애니메이션인 엔드라이드의 오프닝곡을 부른다고 한다.

4.5 LUNATIC FEST.

2015년 6월 27~28일 루나씨를 메인 호스트로 하여, LUNATIC FEST.라는 록 페스티벌마쿠하리 멧세에서 개최하였다. 캐치프레이즈는 '광기어린 기적의 페스(狂おしき奇跡のフェス。)'. 사람들은 기대 반 우려 반이었으나, 옛 인맥인 요시키와는 달리 장르 상관없이 다양한 아티스트들을 초청하여 호평을 받았다. 출연진은 LUNA SEA, X-JAPAN, 디르 앙 그레이, coldrain, Fear, and Loathing in Las Vegas, 9mm Parabellum Bullet, 링토시테시구레, D'ERLANGER, BUCK-TICK, DEAD END, MUCC, LADIES ROOM, minus(-)[21], KA.F.KA[22] 등 올드락에서 부터 하드코어까지 본격적인 록 페스티벌 라인업을 선보였다.섬머소닉 라인업 아닙니다특히 오프닝밴드 출연진에 당당히 LUNACY[23]를 내걸로 인디즈 시절의 곡들을 연주하는 등 팬들 및 대중들에게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또한 참가 밴드 중 일부의 무대에 루나씨 멤버가 한 명씩 난입하기도 했다. 9mm의 무대에 J, 데란제의 무대에는 이노란 등 그 밴드와 특별히 연이 있는 멤버가 즉석 콜라보레이션을 선보였다.

이 페스를 니코니코 동화에서 이틀 연속으로 생방송했다. MC는 야마다 히사시[24]와 오쿠하마 레이라[25]. 저작권 문제로 공연 모습을 직접 담지는 못하고[26], 대기실 근처에 별도의 스튜디오를 마련해 참가자들을 인터뷰하거나[27] 현장 MC를 파견해 각종 부스를 살펴보고 관객을 만나 즉석 인터뷰를 하는 형식을 취했다. 현장에 가지 못한 팬들에게는 이 인터뷰가 또 별미였는데, 참가자들의 예능감과 기행(...)과 폭로(...)가 버무려져 색다른 재미를 선보였다.
몇 가지만 꼽아 보자면 AION의 멤버가 J가 로디 시절에 신발 벗고 운전했다며 그 때는 결벽증 있는 줄 알았다고 폭로하지 않나, SIAM SHADE의 준지는 예전에 신야가 한여름 차안에서 가리비 먹으면서 자기에게도 권하는 바람에 가리비에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하질 않나, 요시키는 시청자들에게 화면을 X로 도배해서 니코동을 함락시키라지 않나, 시청자들이 인터뷰하러 온 뮤지션들에게 뒷벽 패널에 사인[28]해달라고 ペンペンペン(펜펜펜) 하다가 벅틱이 등장하자 갑자기 공손해져서 お筆を...(붓을 들어 주소서) 하지를 않나 이건 출연자의 기행이 아닌데?
그러나 압권은 LADIES ROOM의 죠지. 술먹고 꽐라가 된 채 난입해서 검열삭제죠지라는 별명에 걸맞은 섹드립으로 야마다 MC를 당황케 한 것도 모자라, 첫날 참가자들이 모두 모인 무대에서 마이크를 빼앗고 난동(?)을 부리다 발가락 골절상까지 입었다. 그리고 요시키는 저게 뭐하는 짓이냐고 노발대발했다 그야말로 광기 결국 니코동에 한해서 주최자를 제치고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다음엔 죠지페스 열자는 댓글이 화룡점정 엑스 재팬의 공연에도 난입해서 X(곡 제목)의 처음부터 끝까지 라이브를 했다(...)
나이토메아의 요미가 이 날 일반 관객으로서 회장 안을 배회하다 현장 탐방을 하던 오쿠하마와 마주쳤다. 그것도 펜더 부스에서 이노란 등신대 패널과 사진 찍고 나서(...) 오쿠하마와 니코동 스탭을 발견하고 먼저 말을 걸었다(...)

5 대표곡

LUNA SEA : TIME IS DEAD, BLUE TRANSPARENCY, PRECIOUS...
IMAGE : Déjàvu, WISH
EDEN : BELIEVE, IN MY DREAM (WITH SHIVER), JESUS
MOTHER : ROSIER, TRUE BLUE, MOTHER [29]
STYLE : DESIRE, END OF SORROW, IN SILENCE
SHINE : STORM, SHINE, I for You
LUNACY : gravity, TONIGHT, Sweetest Coma Again [30]
A WILL : The End of the Dream, Rouge, Thoughts, 乱 (RAN)

6 정규앨범 목록

LUNA SEA - 91년 인디즈 레벨 엑스터시 레코드 발매.
-수록곡-

  • FATE
  • TIME IS DEAD - J가 고교시절 만든 곡 'Sexual perversion'을 어레인지해서 완성시킨 곡.
  • SANDY TIME - 공연에서 할 때는 기타솔로를 5분씩 늘려서 스기조의 단독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곤 한다.
  • BRANCH ROAD
  • SHADE - 라르크 앙 시엘이 커버하기도 했다.
  • BLUE TRANSPARENCY~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 류이치가 무라카미 류의 열렬한 애독자이다. 그리고 스기조가 피크없이 손가락만으로 연주하는 걸 볼 수 있는 드문 곡이다.
  • THE SLAIN - 뒷 트랙인 CHESS와 이어지는 곡.
  • CHESS - 팬들 사이에서 최악의 곡으로 꼽는 곡이기는 하나, LUNA SEA 의 곡들 중 가장 빠른 템포의 곡에 속한다.
  • MOON - LUNA SEA의 대표곡 가운데 하나. 인디 앨범에서 미완성된 곡을 수록하였고, 이후 앨범 IMAGE 에서 완성된 곡을 수록하였다.
  • PRECIOUS... - 일명 '라이브 트랙' 이라고 불리면서 라이브 때마다 항상 불리던 트랙이다.

인디 시절이라 평단자료는 찾아보기 힘들고, 녹음 상태도 상당히 구린 편이다. 감상하고자 한다면 08년에 발매된 리마스터링 앨범을 찾아보도록 하자. (2011년에 리레코딩한 셀프커버 앨범이 발매 되었다.)

IMAGE - 1992년
EDEN - 1993년
MOTHER - 1994년
STYLE - 1996년
SHINE - 1998년
LUNACY - 2000년
A WILL - 2013년

  1. 엑스터시 레코드 출신이라는 점 등으로 X JAPAN의 후속 밴드로 취급되기도 하나 사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결성 및 활동한 밴드이다.
  2. 심지어 종막 공연 당시 Into the Sun의 솔로 중간에 1번줄이 끊기는 대형사고가 발생한 적도 있지만, 공연 영상을 보지 않으면 알기 어려울 정도다
  3. 당시 스타일은 Dead End 의 보컬인 King Morrie 를 많이 참조한 것으로 보이며 초기 라르크 앙 시엘의 hyde 역시 그의 영향을 받은 듯 하다.
  4. 이러한 경향은 종막 이후에도 지속되어 히데 10주기 공연에서도 '거지패션' 을 선보여 또다시 대차게 까인다(...).
  5. 드러머인 신야는 '빠른 70' 으로 J-INORAN 처럼 동창
  6. 우리나라 밴드 eve의 1집 부클릿과 '너 그럴 때면'의 뮤직비디오에서 이 모델 중 하나인 S-1 ~Brilliant mixed media~를 볼 수 있다
  7. 정확하진 않지만 종막 후에도 J의 앨범에 디스했다는 얘기도 있다.
  8. 동명의 영화의 O.S.T 앨범이기도 하다. 참고로 이 영화에서 스기조는 영화배우 시바사키 코우와 함께 주연배우로 연기를 하기도 했다. 그의 연기력에 대해선 묻지 말자
  9. 한국에서도 발매된 스기조의 유일한 앨범이다. 대신 2차개방 후에 들어온 앨범인지라 일본어 가사가 들어간 보컬곡은 모조리 잘린 채 연주앨범으로만 발매가 되었다.
  10. 그래도 앨범은 완전 망하지는 않은지 SOUNDTRACK의 경우는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의 기타와 바이올린 연주 때문에 수록곡인 Synchronicity가 방송에서 가끔 배경음 등으로 심심찮게 쓰이는 경우가 많다.
  11. 오노세가 이노란에게 "왼손잡이가 오른손잡이용 기타를 치니 그렇지!!!" 라고 한적이 있다고 한다. 덧붙여 이때나 지금이나 왼손용 기타 및 베이스(특히)는 오른손용보다 최소 1.5배 비싸고 공급도 적은데다, 수요가 많지않아 대다수의 왼손잡이들은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이상 처음부터 오른손용으로 배우게 된다. 다만 케이온의 여파인지 겉멋으로 왼손 베이스 등을 잡는 경우가 많이 생겼다
  12. 단 프니엘은 작사에도 참여
  13. THE DICE IS CAST!(제이가 낸 책)이나 성장과정을 본다면 건실한 청년이다. 2002-3년때까지 불량스럽고 양아치st가 절정이었다ㅋㅋㅋㅋ
  14. 덕분에 동인녀들은 '제노란'이라는 이름으로 커플링을 꽤 엮음.
  15. 루나씨의 팬이기도 했던 서태지팬이 그의 솔로 공연을 관람하러 갔다가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에 한국이라고 대답하자 "한국! 한국에 서태지라는 친구가 있지. 좋은 녀석이야. 음악적으로는 세계 최고다."라고 추켜세운 에피소드도 있다.
  16. 그 덕분인지 그녀는 모닝구 무스메 졸업 멤버들 중 츠지 노조미와 함께 성공한 멤버(...)로 평가받는다.
  17. LUNACY 이후 앨범 판매량 급감이 해체의 원인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MOTHER앨범 이후 70~90만장 수준을 유지하던 것이 LUNACY에서는 EDEN 수준인 30만장 즈음으로 퇴보
  18. 특히 딸의 이름이 "루나"였기 때문에 스기조가 마냥 루나 씨를 싫어하진 않았을 거다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은 오히려 J와 다투고 난 뒤의 갈등이 덜 해소되어 재결성에 망설이고 있었다는 설을 더 내세우고 있다.
  19. 인터뷰 내용을 정확하게 말하자면, '1억엔 정도되는 큰 돈이라면 생각해 볼까? 하지만 돈 때문에 그러는건 역시 좀 아니잖아..'라는 내용인데...
  20. 일부 슬레들은 너희들의 꿈은 끝났어. 우린 이제 다시 종막이야 라고 예상하고 불안에 휩싸였다는 후문이 있다-_-
  21. Soft Ballet 출신의 모리오카 켄과 후지이 마키가 결성한 유닛이다.
  22. 츠치야 마사미를 중심으로 한 프로젝트 밴드. minus(-)의 모리오카도 소속되어 있다.
  23. 인디즈 시절 사용하던 그 이름이다.
  24. 니코동의 보이는 라디오 프로그램인 니코라지(니코니코 라디오)의 진행자. 류이치와 이노란도 2015년 하반기에 솔로 앨범 홍보차 출연했었다.
  25. 미국계 혼혈 탤런트. 록 음악 애호가인 점을 살려, 가끔 니코동에서 록 뮤지션의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한다. J가 2015년에 낸 솔로앨범 eternal flame의 발매 기념 인터뷰도 이 사람이 담당함.
  26. 둘째날 폐막공연 첫 곡만 겨우 방송했다. 나머지는 후지TV 계열의 위성채널에서 편집 방송.
  27. 린토시테시구레를 제외한 모든 밴드에서 최소 한 명씩은 인터뷰를 했다. LADIES ROOM의 인터뷰에 류이치, AION의 인터뷰에 J 등 일부 고참 밴드의 인터뷰에 루나시 멤버가 함께하기도 했다.
  28. 나중에 시청자 경품으로 증정됐다. 다만 어쩌다 보니 방송이 끝날 때까지 스기조와 이노란의 사인을 받지 못했는데, 다 끝나고 제대로 받았는지는 미지수.
  29. 여담이지만 MOTHER는 녹음 중 스탭이 가사를 듣고 울음을 터뜨렸다는 일화가 있다.
  30. 영화 007 어나더데이의 일본판 주제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