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문면

원삼국시대에 존속되었던 소국인 '감문국'에 대해서는 감문국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김천시의 읍면동
아포읍
조마면감천면대항면어모면구성면
감문면봉산면개령면농소면남면
지례면부항면대덕면증산면
법정동[1]
자산동감호동용두동모암동성내동
평화남산동평화동남산동
양금동황금동양천동
대신동신음동대광동응명동교동삼락동
문당동
대곡동부곡동다수동백옥동
지좌동지좌동덕곡동
율곡동율곡동
녹색 칸은 관할 행정동명이다.


甘文面 / Gammun-myeon
main_img.jpg

광덕리의 석조여래불. 예전 감문국의 유적이면 좋겠지만... 통일신라시대 양식이라고 한다. 감문국 대부분은 현 개령면(...)지역이다.

감문면
甘文面 / Gammun-myeon
국가대한민국
광역자치단체경상북도
기초자치단체김천시
인구3,791명
(2015년 12월 주민등록인구)
면적59.41㎢
하위 법정리15
법정동 코드4715041000
면사무소 소재지보광리
감문면사무소 홈페이지

1 개요

김천시 북쪽에 위치한 면. 동으로 구미시 선산읍, 감천을 경계로 아포읍과 접한다. 서로 어모면, 상주시 공성면과 접하며, 남으로 개령면과 접하며, 북으로 구미시 무을면과 접한다.

2 역사

삼한시대에는 문무리 일대를 중심으로 한 문무국이 있었다고 하지만 구전으로만 전해질 뿐 기록이 남아 있지는 않다. 이 일대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건 조선시대의 일로, 조선시대에는 남동부지역이 개령현 곡성면으로, 북동부지역이 개령현 북면으로, 서부지역이 김산군 위량면으로 되어 있어 3개 면으로 되어 있던 곳이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당시 3개면 모두 김천군에 속하게 되었는데, 이당시 북면은 곡성면에 통합되었다.

1934년 곡성면이 위량면과 통합하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감문면이 되었다. 감문면은 삼한시대 이전 있었다고 전해지는 감문국에서 따 온 이름이다. 그런데 정작 감문국은 감문면이 아닌 개령면에 있었다.

1949년 김천읍이 김천시로 승격함에 따라 금릉군소속이 되었으며, 1983년 2월 15일 봉남동[1]과 소재동[2]이 선산군[3] 선산읍에 편입되었다.

1995년 금릉군김천시가 도농통합을 실시함에 따라 김천시 감문면이 되었다.

3 관할 리

15개의 법정리를 두고 있다.

지명법정동 코드비고
보광리4715035021면사무소 소재, 농공단지 소재
금라리4715035022위량초등학교 소재
구야리4715035023
은림리4715035024
도명리4715035025
문무리4715035026
남곡리4715035027
송북리4715035028
금곡리4715035029
삼성리4715035030감문중학교 소재
광덕리4715035031
덕남리4715035032
태촌리4715035033
성촌리4715035034
대양리4715035035

4 교통

4.1 도로교통

관내 동남쪽 끄트머리로 감천을 따라 59번 국도가 관통한다. 이 길은 김천시 신음동이나 용두동, 모암동일대에서 구미시 선산읍을 가는 길로서, 관내 유일한 국도지만 태촌리만 경유하는 데다 너무 끄트머리를 관통하여 관내 주요 교통로로 이용되지는 않는다.
단, 태촌리에서 59번 국도와 분기되는 감문로를 통해 보광리, 삼성리 등 관내 주요지를 이동할 수 있긴 하다.

관내를 913번 지방도997번 지방도가 관통하며, 두 도로가 금라리에서 분기한다. 이 두 지방도가 감문면 일대의 주요 교통로 되시겠다.

913번 지방도는 감문면 일대에서 가장 중요한 길인데, 구야리에서 광덕리까지 관내 남북을 정확히 관통한다. 북으로 구미시 무을면으로 연결되 선산읍, 상주시와 간접연결되며, 남으로는 개령면을 거쳐 대광동에서 59번 국도와 만나 김천시 시내지역으로 이동이 가능한 중요한 도로이다.

997번 지방도는 관내를 동서로 관통하는 도로로서, 이 도로 역시 동으로 개령면을 거쳐 59번 국도와 분기되는 데다가, 서로는 상주시 공성면으로 이동이 가능한 주요 이동로이다.

번호는 지정되지 않았지만 관내 은림로를 통해 어모면으로 이동도 가능하다.

관내 고속도로는 없다. 하지만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기 위해 교동에 위치한 김천IC를 이용하는 것이 멀지 않으며, 구미시 선산읍에 위치한 선산IC를 이용하여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것도 멀지 않다.

4.2 철도

관내 철도교통은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예정.

경부선, 경북선 철도를 이용하려면 평화동에 위치한 김천역으로 이동하여야 하며, 승용차로 약 30분정도 소요된다.

KTX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김천(구미)역을 이용하여야 하며 역시 승용차로 약 15~30여분 소요된다. 동서로 긴 면 특성상 남면이 가까운 곳과 먼 곳의 편차가 좀 있다.

4.3 버스

시외교통은 김천공용버스터미널에서 이용하여야 한다. 승용차로 30분이상 소요.

시내교통은 30번대 버스가 일대를 경유하며, 개령면과 경유버스가 정확히 일치한다. 감문면 일대를 경유하는 버스는 개령면을 거쳐서 올 수밖에 없는 데다가, 개령면일대를 위주로 도는 버스도 종점만큼은 배시내 등 감문면에 위치한다.

감문면을 경유하는 일반(입석)버스 노선
노선번호기점주요 경유지종점기타사항
32김천공용버스터미널김천의료원, 구야, 감문개자왕복 3회
<|2><#D3D3D3><:>32-1<|2>김천공용버스터미널→ 김천의료원 → 구야 → 감문 →<|2>개자<|2>왕복 1회
개자 방면 구야,감문만 경유
← 김천의료원 ← 구야 ← 문무 ← 도명 ← 남곡 ← 감문 ←
<#D3D3D3><:>32-3김천공용버스터미널김천의료원, 구야, 남곡, 도명문무왕복 2회
토,휴일 1회 증회 운행
32-5김천공용버스터미널김천의료원, 구야, 감문, 오성, 금곡송문왕복 1회
<|2><#D3D3D3>32-6<|2>김천공용버스터미널→ 김천의료원 → 구야 → 감문 → 오성 → 금곡 → 송문 →<|2>시술<|2>왕복 1회
터미널 방면 금곡 미경유
← 김천의료원 ← 구야 ← 감문 ← 오성 ← 송문 ←
<|2><#D3D3D3>32-7<|2>김천공용버스터미널→ 김천의료원 → 구야 → 감문 → 대양 → 천동 → 태촌 →<|2>시술<|2>왕복 1회
시술 방면 태촌 경유
← 김천의료원 ← 구야 ← 감문 ← 대양 ← 천동 ←
33-2김천공용버스터미널→ 김천의료원 → 개령 → 빗내 → 배시내 → 감문 → 구야 →감문편도 1회 운행
<|2><#D3D3D3>33-3<|2>김천공용버스터미널→ 김천의료원 → 구야 → 문무 → 도명 → 남곡 →<|2>감문<|2> 왕복 1회
터미널 방면 부거리, 중앙중 경유
토,휴일 운휴
← (영남대로경유) ← 중앙중 ← 자연과학고 ← 부거리 ← 속구미 ← 구야 ← 문무 ← 도명 ← 남곡 ←
38김천공용버스터미널김천의료원, 개령, 빗내, 배시내, 습례선산[4]왕복 4회
38-1김천공용버스터미널김천의료원, 서부리, 개령, 빗내, 배시내, 습례선산왕복 1회
<|2><#D3D3D3>38-4<|2>김천공용버스터미널→ 김천의료원 → 개령 → 빗내 → 배시내 → 습례 →<|2>선산<|2>왕복 1회
터미널 방면 황계동, 남전 경유
← 김천의료원 ← 황계동 ← 남전 ← 개령 ← 빗내 ← 배시내 ← 습례 ←
38-5김천공용버스터미널김천의료원, 황계동, 남전, 개령, 빗내, 배시내, 습례선산왕복 1회
<|2><#D3D3D3>38-6<|2>김천공용버스터미널→ 김천의료원 → 개령 → 빗내 → 시술 → 황새울 → 소재 →<|2>선산<|2>왕복 2회
터미널 방면 황새울,시술만 경유
← 김천의료원 ← 시술 ← 황새울 ←
38-7김천공용버스터미널김천의료원, 황계동, 개령, 빗내, 남전배시내왕복 1회
<|2><#D3D3D3>38-8<|2>김천공용버스터미널→ 김천의료원 → 황계동 → 개령 → 빗내 → 남전 →<|2>배시내<|2> 왕복 1회
터미널 방면 황계동 미경유
← 김천의료원 ← 개령 ← 빗내 ← 남전 ←
39김천공용버스터미널김천의료원, 서부리, 개령, 빗내배시내왕복 1회
<|2><#D3D3D3>39-1<|2>김천공용버스터미널→ 김천의료원 → 구야 → 감문 → 송문 → 금곡 → 감문 →<|2>배시내왕복 1회
터미널 방면 금곡, 송문 미경유
← 김천의료원 ← 구야 ← 감문
감문면을 경유하는 좌석버스 노선
노선번호기점주요 경유지종점기타사항
<|2><#D3D3D3><:>332<|2>김천공용버스터미널구야, 감문<|2>개자<|2>왕복 1회
터미널 방면 중앙중 경유
← (영남대로경유) ← 중앙중 ← 구야 ← 감문 ←
<|2><#D3D3D3><:>332-2<|2>김천공용버스터미널→ 구야 → 문무 →<|2>문무<|2>왕복 1회
터미널 방면 도명,남곡 경유
← 구야 ← 문무 ← 남곡 ← 도명 ←
<#D3D3D3><:><|4> 332-3<|4>김천공용버스터미널→ 구야 → 감문 → 오성 →<|2>송문<|2>왕복 1회
송문 방면 금곡 미경유
← 구야 ← 감문 ← 오성 ← 금곡 ←
→ 구야 → 남곡 → 도명 →<|2>문무<|2>왕복 2회
터미널 방면 구야만 경유
← 구야 ←
<|2><#D3D3D3><:>332-8<|2>김천공용버스터미널→ 구야 → 감문 → 대양 → 천동 →<|2>시술<|2>왕복 1회
터미널 방면 태촌 경유
← 구야 ← 감문 ← 대양 ← 천동 ← 태촌 ←
332-9김천공용버스터미널구야, 감문, 대양, 천동, 담안시술왕복 2회
<|2><#D3D3D3><:>333<|2>김천공용버스터미널→ 구야 → 감문 → 대양 → 천동 → 담안 →<|2>시술<|2>1일1회
터미널 방면 감문, 구야만 경유
← 구야 ← 감문 ←
<|2><#D3D3D3><:>333-1<|2>김천공용버스터미널→ 구야 → 감문 →<|2>시술1일 1회
시술 방면 구야, 감문만 경유
← 구야 ← 감문 ← 대양 ← 천동 ← 담안 ←
<#D3D3D3><:>338김천공용버스터미널김천의료원, 개령, 빗내, 배시내, 습례선산왕복 3회
터미널 방면 첫차 평일만 중앙중까지 운행
<#D3D3D3><:>338-2김천공용버스터미널김천의료원, 서부리, 개령, 빗내, 배시내, 습례선산왕복 1회
선산 방면 황계동, 신룡리 경유
<#D3D3D3><:>338-3김천공용버스터미널김천의료원, 서부리, 개령, 빗내, 배시내, 습례선산왕복 1회
터미널 방면 황계동, 신룡리 경유
<#D3D3D3><:>339-2김천공용버스터미널김천 의료원, 황계동, 남전, 개령, 빗내, 남전, 시술황새울왕복 1회
터미널 방면 남전,황계동 경유

5 관내 자연부락

본 내용은 감문면사무소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5.1 보광리

면사무소가 있는 감문면 행정중심 지역으로 1993년 31,803평의 농공단지가 조성된 지역으로 임진왜간 때 청주에서 한건이란 선비가 피란와서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그 후 1608년 길 가던 해주 오씨 명건이라는 선비가 한건의 딸과 혼인하여 이곳에 정착하여 집성촌을 이루었다.

5.2 금라리

  • 나골. 나가동(羅伽洞)
임진왜란 때 김이환. 김이방 두 형제 선비가 피난차 왔다 이곳에 정착하였으며 개척 당시 숲이 울창하고 수려하여 계곡과 산록에는 갖가지 꽃이 만발하여 금수강산을 이루어 신라와 가야의 명승지로 신라의 라와 가야의 가를 따서 나가동이라 불렀다 한다.

5.3 구야리

  • 구래실. 구야곡(九野谷)
조선 선조 때 남양홍씨가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마을 뒤 구봉산 밑에 아홉가지의 큰 과실 나무가 있었는데 이 마을에 흉년이 들 때마다 과실이 많이 열려 주민들에게 배고품을 잊게 해 주었다고 하여 구래실이라 불리게 되었다.

5.4 은림리

  • 굴미. 군명. 상군(上君)
감문면의 가장 서쪽 끝에 자리한 이 마을은 북쪽에 있는 백운산으로부터 남북으로 뻗은 두 갈래의 산줄기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 선조 때인 1590년경 수원백씨가 처음 마을을 개척하여 군자와 같은 훌륭한 인물이 많이 나오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군명이라 칭했다 하며 또 군명은 은림리의 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하여 상군이라 칭했다한다. 앞서 수원백씨가 정착한 이 마을에 김해김씨의 삼현파 후손이 가선대부 중추부사 동지 김제복이 어모면 남산리으로부터 그의 실제 김제군을 대동 이주하여 200여년을 내려오는 동안 벌족을 이루고 있으며 다른 성씨도 속속 이주하여 오늘날 10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 하군(下君). 하군명
은림리에서 가운데 위치한 마을로 군명의 아래 편에 있다 하여 하군이라 부르고 있으며 이 곳에 여흥민씨가 많이 살고 있으며 1970년대에는 특산물로 왕골이 많이 생산되었다.
  • 사래. 본리
하군의 남쪽에 있는 마을로 처음 마을을 개척한 것은 조선 인조 때 여흥민씨로는 덕망과 학식을 갖춘 선비가 한양에서 내려와 이곳에 은거하면서 마을을 조성하였다 하며 지금도 민씨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다.

5.5 도명리

  • 돌곰이. 고도리. 고도(古道)
신라 선덕왕 때 이 부락의 이웃인 문무국의 세력이 강하여 이에 대비하기 위한 순찰로가 이 마을에 있었으며, 또 마을 입구에 정자나무 40여 그루가 늘어서 있어 조선 때 과거 보러 가던 많은 사람들이 이 정자나무 그늘에서 쉬어 갔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으며, 순찰로. 과거길 등 옛길과 관련이 많아 조선 선조 이후 마을 이름을 고도리라 청했다 하며, 돌곰이라 부르는 들판이 고도리 앞에 있고 인가가 몇 집 있었다 하나 지금은 다 떠나고 마을은 없어졌다

5.6 문무리

  • 여모. 여무. 여산골. 여산(余山)
이곳은 사방이 험한 산으로 둘러 싸여 있고 수풀이 우거진 곳으로 삼한시대 문무국(文武國)이 있었다고 전해 진다. 문무국의 중심 도읍지가 여산(余山)인데 여모. 여무. 여산골 등으로 불러져 왔고 지금은 두 마을(상여. 하여)로 되어 있다. 일단은 문무의 무와 상여의 여를 합하여 여무가 되었다고 볼 수 있으나 기원적으로 보아 어모의 소리가 바뀌어 여무가 된 것으로 상정할 수 있다.

마을 주변에서 지석묘. 석곽묘 등 고분이 산재한다.

5.7 남곡리

  • 남실. 남곡(南谷)
조선 선조 25년 임진왜란 당시 경주정씨 금오라는 사람이 상주 남실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난을 피해와 이 마을에 정착해 살면서 상주 남실의 이름을 따서 남실이라 불리어 오고 있다는 설도 있고, 백운산 남쪽 골짜기가 되므로 남실 또는 남곡이라 불리어졌다고도 한다.

5.8 송북리

  • 송 문(松門)
옛날에는 속문(俗門)이었는데 마을 북쪽 백운산은 신라에 속한 속문산성(俗門山城)이 있는 속문산에서 유래되고 속문이 변하여 송문이 되었다 한다.
  • 성북골
성북 조선 선조 때 이종성이라는 사람이 경북 안동에서 살다가 생활이 곤란하여 이 곳에 이주해 마을을 개척하였다 하며, 성터가 백운산에 있는데 이로써 불려지는 이름이라 한다.

5.9 금곡리

  • 노래. 적하(赤下)
임진왜란 때 파평인 윤완이라는 선비가 서울로 가는 길에 이 고을을 지나다가 혼자 사는 경주김씨의 낭자와 결혼하여 이 마을을 개척하였는데 마을의 남쪽. 서쪽. 북쪽에 산이 높아 해가 일찍 지고 노을이 빨리 오기 때문에 노래라 불리어 온다고 한다.
부곡(釜谷) 조선 선조 때 노씨 한 가구가 마을을 처음 개척하였는데 마을 모양과 지형이 가마솥처럼 생겼다 하여 가매실이라 불렀다 하며, 그 후 박씨. 김씨. 육씨 순으로 이주해 왔으며 현재는 달성서씨. 옥천육씨 등이 살고 있다.

5.10 삼성리

  • 삼봉(三峰)
삼성동에서 중심이 되는 마을로 봉우리가 셋인 삼봉산 아래 있어 삼봉이라 부르게 되었다 하며 처음 장씨가 마을을 개척하였고 그 후 엄씨가 들어와서 주로 장씨. 엄씨가 살았다 하나 지금은 여러 성씨가 모여 살고 있으며, 감문중학교. 감문단위농협. 감문우체국이 이곳에 있다.
  • 오성(午盛)
삼봉에서 서쪽으로 외현천을 따라 약 2km 올라가면 감문초등학교에서 세 갈래 길이 있어 오른쪽 골짜기로 더 들어가면 이 마을인데 뒷산의 모양이 말 같다 하여 오성이라 칭했다 하며, 임진왜란 때 김씨. 박씨. 신씨 등이 피란와서 살게 되었다 하나 지금은 각성이 모여 살며 1914년 행정구역통합에 따라 삼봉과 오성의 삼과 성을 따서 삼성동이 되었다 한다. 이곳에 감문국시대의 금효왕릉이 있다.

5.11 광덕리

  • 개자
가척(加尺) 조선 단종 때 강릉류씨 두 가구가 가척 고개에 정착하여 살면서 가척이라 불렀다 하며, 일설에는 이 고개에 산적이 자주 출몰하여 부녀자를 희롱하고 곡식과 금품을 수탈해가므로 고개를 넘어 현재의 마을로 이주하여 살면서 한치의 땅이라도 더 개척하자는 뜻에서 가척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 숯골. 탄동(炭洞)
고려말 정희언이란 사람이 이곳에 살면서 정씨의 화성이므로 화자를 따고 숯은 땅속에 묻혀 도 부패되지 않으므로, 충절과 효를 마을의 계명으로 삼는다는 뜻에서 탄동이라 불렀다 한다. 숯을 생산한다고 붙일 수도 있고, 숯 - 숫 - 슷 -사이란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 담안. 장내(墻內)
조선 숙종 때 평해황씨 세 가구가 이곳에 정착하여 삼형제가 같이 살면 담을 세가구가 같이 쌓고 대문을 하나로 함께 사용하였다 하여 담안 또는 장내라 한다.

5.12 덕남리

  • 신풍(新豊)
약 200년 전에 근처에 있는 선영을 수호하기 위해 몇 집이 살기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리동의 명칭도 없었기 때문에 지나가던 세 사람의 풍수가 삼풍동이라 하자 하여 삼풍동이라 불리다가, 어느 해 마을에 대풍이 들어 새로이 풍요로운 마을을 이루었다하여 그 때부터 신풍이라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 시술. 실술. 곡송(谷松)
마을 뒤에 광덕산이 있는데 산세가 험하지 않으나 여러갈래의 긴 계곡이 뻗어 있고 산에는 소나무가 무성하다 하여 곡송이라 불러오고 있다 한다.

5.13 태촌리

  • 안마. 태촌(台村)
마을 동쪽에 갈미샘이라는 샘이 있는데 약 200년 전에 이 샘을 중심으로 권씨네 몇 집이 삶의 터전을 마련했는데 당시의 동명은 태성무라 했으나 어느 해 큰 홍수 때문에 세 갈래로 흩어져 살게 되었는데 그 중 가장 안쪽 마을로 들어왔다 하여 안마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 왁사골. 완동(完洞)
옛날 탑산 밑으로 난 통로가 있어서 영남 지방의 상인들이 서울로 왕래하면서 이 길을 통과 하였는데 상인들은 굴레고개에 있는 주막에서 하룻밤 묵으면서 술을 마시고 서로 자기 의견을 주장하면서 이 주막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렇게 밤낮으로 왁자지껄하다 하여 왁사골이라 불렀다 한다.
  • 배시내. 이천(梨川)
낙동강 지류인 감천이 김천에서 이 마을 앞을 지나 선산 쪽으로 흐르고 있는데 이 감천을 따라 배가 이 곳을 출입했다 하여 배시내라 부르게 되었다 하나 지금은 냇물도 줄고 육로가 발달하여 배는 찾아볼 길이 없다. 이곳에는 근래까지 장이 섰었다.

5.14 성촌리

  • 안태성. 북성(北星)
약 200년 전에 보은이씨가 터전을 마련했으며 마을 뒤에 산제당을 모시고 마을의 번영을 기원하면서 오랫동안 살아왔는데 이 산제당이 북극성과 직결된다 하여 마을이름을 북성이라 칭했다 한다.
  • 새터. 바깥태성. 명천(明泉)
약 150년 전에 태촌동의 권씨가 처음 이 곳에 와서 살게 되었는데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새터라 하며 또 마을의 동쪽에 맑은 샘이 있는데 어떤 가뭄에도 샘물이 마르지 않고 전 동민의 식수로 사용했으며 수정같이 맑은 물이 솟는다 하여 명천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 돌모리
명창(命唱) 이 마을의 서쪽에 내가 굽이쳐 흐르고 있는데 큰 비가 내리면 이 곳에 많은 돌이 쌓여 마을이름을 돌모리라 칭했다 하며 또 마을 사람들이 장수한다 하여 명창이라고도 부른다 한다.

5.15 대양리

  • 대이. 대양(大陽)
조선 중종 때 보은군수로 봉직하던 김희직이란 분이 이곳에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는데 뒷산의 모습이 마치 학이 알을 품은 듯하여 10년내에 큰 인물이 태어나 마을이 크게 번성할 것이라 하여 대이라 불렀다고도 하고 옛날 이곳에 대양사(大陽寺)란 절이 있어 이로 연유된 마을이름이기도 하다.
  • 샘골. 새암골. 천동(泉洞)
조선 숙종 때 김옥경이란 선비가 이곳에 개울물이 끊임없이 흘러 마을 앞 뒤 여러곳에 샘을 파보니 수량도 많고 수질이 좋아서 샘골. 새암골이라 불렀다 한다.

6 기타

  • 삼한시대에 감문국이라는 소국까지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옛날 이야기. 지금은 김천 변두리 시골지역일 뿐이다. 그마저도 한가지 함정은 정작 감문국의 위치는 개령면 일대로 보인다는점..... 위의 역사에도 적혀있지만 일대 소국은 문무리에 문무국이 구전으로만 전해질 뿐이다. 그런데 왜 이곳이 감문이라는 이름을 따온지는 미스테리...[6]
  • 관내 감문중학교가 의외로 역사가 깊으며, 출신 동문들은 자랑스럽게 여긴다. 현재 리모델링을 거쳐 무척 특이한 모양의 학교가 완성되었다.
  • 특이하게도 관내 유일한 초등학교가 감문초등학교가 아니고 위량초등학교이다. 1934년까지 존속되었던 위량면의 이름을 딴 학교인데 아직 개명하지 않은 것. 역사도 오래 된 편인데다 학생수도 많지 않아 굳이 개명의 필요성이 없는듯...
  • 태촌리 일대 소규모 시가지인 배시내에 연탄불고기가 유명하다. 김천에서는 알아주는 맛골목이다.
  1. 현재 구미시 선산읍 봉남리
  2. 현재 구미시 선산읍 소재리
  3. 현재 구미시
  4.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5. 부곡동에 같은 이름의 자연부락이 있으나 동명의 다른마을이다.
  6. 삼성리에 감문국의 금효왕릉이 있기는 하며 구전에 따르면 속문산에서 감문국 백성들의 최후항전과 신라군의 학살이 있었다고 전해지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