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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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진한
감문국
신라에 복속

甘文國

1 개요

원삼국시대에 있었던 소국.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에 있었다.

2 국호

중국 측 기록인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서는 비슷한 이름인 변진감로국(甘路國)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변진은 변한진한을 구분하기 위해 앞에 일괄적으로 붙인 이름이고, 감문국=감로국이라는 건 이미 조선 후기 정약용 때부터 정설로 여겨졌다. 감문국을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활용했던 일본인 역사학자 이마니시 류(今西龍, 1875~1931)조차도 감로국이 감문국이라는 견해에는 동의하고 있다. 이 문서는 감로국으로도 들어올 수 있다.

3 역사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조분 이사금 2년(231) 때 장군 석우로를 대장군으로 한 신라군이 감문국을 복속시켰다.

동국여지승람에서는 조선 전기까지 김천에 감문국 시절의 궁전 터와 국왕 김효왕릉(金孝王陵) 및 장부인(獐夫人)의 묘로 전하는 장릉이 있었다고 한다.

김효왕릉은 김천시 감문면에 존재하고 있다. 일제시대 때 도굴을 당했다고 하며 그 뒤에는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직접 가보면 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있는 언덕으로 보이는데 상당히 보존상태가 좋지 않다.

장릉은 개령면 서부리 사자사터 뒷 구릉에 있다. 문제는 능의 정상부를 현재 포도밭으로 개간해버렸다는 것이다.

감문국 시절의 궁궐 터는 개령면 동부리에 위치한다. 현재 그 위에 주택가들이 들어서 있고 감문국 궁전의 주춧돌이라고 전해지는 돌 하나만이 주택가 사이에 놓여져 있다.

개령면 동부리에는 동부연당이라고 불리는 연못이 하나 있는데 이 연못이 감문국의 궁궐연못이었다고 한다.

현재 개령면 뒷산인 감문산에는 감문국의 성이었던 감문산성이 남아있다. 토성이며 군창지, 봉화대터 등이 남아있다.

개령면 광천리에는 빗내마을이 있다. 이 빗내마을에서는 현재 빗내농악이 전수되고 있는데, 구전되기로는 감문국의 군악이라고 전해지며 빗내마을의 동제는 감문국의 나랏제사가 이어져내려오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개령면 신룡리에는 감문국의 공주에 관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현재 모광주유소가 들어서있는 애인고개 또는 앵고개라 부르는 지명의 유래에 관한 것으로 감문국의 공주와 신라 총각이 사랑에 빠져 매일 이곳에서 만났는데 이를 눈치챈 집안에서 반대하자 공주가 궁에서 도망쳐 이곳에서 총각을 기다리다 굶어죽었다는 것으로 이후 이 곳을 애인고개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