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천면

김천시의 읍면동
아포읍
조마면감천면대항면어모면구성면
감문면봉산면개령면농소면남면
지례면부항면대덕면증산면
법정동[1]
자산동감호동용두동모암동성내동
평화남산동평화동남산동
양금동황금동양천동
대신동신음동대광동응명동교동삼락동
문당동
대곡동부곡동다수동백옥동
지좌동지좌동덕곡동
율곡동율곡동
녹색 칸은 관할 행정동명이다.


甘川面 / Gamcheon-M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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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아름다운(...) 감천면사무소

감천면
甘川面 / Gamcheon-Myeon
국가대한민국
광역자치단체경상북도
기초자치단체김천시
인구2,233명
(2015년 12월 주민등록인구)
면적27.51㎢
하위 법정리5
법정동 코드4715039000
면사무소 소재지광기리
감천면사무소 홈페이지

1 개요

김천시의 동쪽, 동지역 중심으로 남쪽에 위치한 면. 동으로 농소면, 서,남으로 조마면 북으로 김천시 황금동, 지좌동과 접한다.

2 역사

조선시대까지는 성주목에 속한 신곡면이라는 곳이였다. 그러다 1906년에 신곡면이 김산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에 총독령에 의하여 행정구역 통합에 따라 고가대면의 양천동, 금송동(현재 금송리). 전동은 광기동(현재 광기리)으로, 지좌동(군내면 마좌산리)과 조마남면의 신평리 등을 개편 통합하여 감천면을 신설하고 그 관내에 편입했다.

1928년에 감천면 지좌동은 김천특별면에 편입했고, 1983년에는 양천동이 김천시에 편입되어 지금의 모양이 되었다.

3 관할 리

5개의 법정리를 두고 있다,

지명법정동 코드비고
용호리4715039021
무안리4715039022
도평리4715039023
광기리4715039024면사무소, 감천초등학교 소재
금송리4715039025

4 교통

4.1 도로교통

고속도로는 관내를 통과하지 않으며, 59번 국도가 관내를 관통하며, 관내 주요 교통로가 된다. 59번 국도를 통하여 지좌동방면으로 이동이 가능하며 가야산, 멀리는 고령군까지 이동이 가능하다.

3번 국도가 노선이 변하여, 양천동에서 율곡동으로 향하는 새 도로가 생겼는데, 이 도로가 관내 북쪽 끄트머리를 통과하며, 59번 국도와 연결되어 율곡동, 농소면, 남면일대로의 교통이 편리해졌다.

4.2 철도

관내에 철도가 없다.
가장 가까운 역은 김천(구미)역김천역으로 무궁화호, 새마을호등의 열차를 이용하려면 김천역으로, KTX를 이용하려면 김천(구미)역을 이용하여야 한다.

4.3 버스

시외교통은 김천공용버스터미널에서 이용하여야 한다. 감천면을 통과하는 모든 버스가 김천공용버스터미널로 향하기 때문에 터미널로 이동하여 시외교통을 이용하면 된다.
시내교통으로는 김천시지역답게 김천버스소속의 버스들을 이용할 수 있다. 전형적인 농어촌지역으로 많은 버스가 다니지는 않는다. 김천공용버스터미널에서 각 마을행 버스의 시간표를 보고 이용하여야 한다.
감천면을 통과하는 버스노선은 다음과 같다.

감천면을 경유하는 일반(입석)버스 노선
노선번호기점주요 경유지종점기타사항
72김천공용버스터미널아랫장터, 감천대방왕복 7회
72-1김천공용버스터미널→ 아랫장터 → 상송 → 내동 → 감천 →무안동왕복 1회
터미널 방면 평일 중앙중까지 운행
← (영남대로경유) ← 중앙중 ← 김천역김천공용버스터미널 ← 아랫장터 ← 상송 ← 내동 ← 감천 ←
72-3김천공용버스터미널아랫장터, 감천, 대방사기점왕복 1회
감천면을 경유하는 좌석버스 노선
노선번호기점주요 경유지종점기타사항
772김천공용버스터미널감천대방왕복 2회
772-2김천공용버스터미널상송, 내동, 감천, 무안동대방왕복 3회
772-3김천공용버스터미널상송, 감천, 대방사기점왕복 3회

5 관내 자연 부락

5.1 용호리

  • 목골. 복룡(伏龍)
조선시대에 경주최씨가 입향하였는네 용이 엎드려 있는 지형이라고 마을 이름을 복륭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 연화. 화심.매화(梅花)
조선시대에 김녕김씨가 입주하여 마을을 형성하고 마을 부근에 많은 매화가 만발하여 절경을 이룬 곳이라고 매화리라 부르게 되었다.
  • 선바우.입암(立岩)
옛날 마을 앞에 높이 2m, 둘레 3m의 큰 바위가 있었다. 조선시대에 남평인 문응서가 약목에서 이주해 와서 부락을 만들고 입암이라 하였다. 그 후 병자년 수해 때 바위가 넘어지자 마을에 흉사가 잦았다. 이에 마을사람들은 다시 시멘트로 바위를 세웠다.
  • 복 호(伏虎)
조선시대에 성주인 이수정이 고령에서 이거하여 마을 뒷산의 모양이 호랑이가 엎드린 형세라고하여 복호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 굼뜸. 하평(下平)
마을 밑에 위치한다 하여 하평이라고 부른다. 면 소재지로부터 8km 떨어진 조마면과 인접 한 부락으로 누에고치를 많이 생산했으나 지금은 고등소채를 경작하고 있다.

5.2 무안리

  • 재실마. 외이. 외안(外安)
1765년 해주인 오태원이 성주 가천에서 이주하여 편히 살 수 있는 곳이며 가천의 밖에 있는 마을이란 뜻에서 외안이라고 불렀다. 40여가구 중 오씨. 최씨가 많으며 특산물로 사과를 많이 생산하고 있다.
  • 터골. 기산(箕山)
조선시대에 경주최씨가 대대로 산 곳으로 뒷산 형국이 기모양으로 생겼다고 하여 기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사과가 많이 생산되고 있다.
  • 삼거리(三巨里)
광복 후에 형성된 마을로서 난민 정착사업으로 하천부지개발을 위해 생긴 부락이며 세갈래길이 있는 지점이란 뜻에서 삼거리가 되었다. 마을 주변은 사과나무밭으로 둘러 싸여 있다.
  • 섭반어. 무릉(武陵)
1939년 동래인 정한필이 칠곡에서 이주하여 이곳이 무릉도원과 같이 살기 좋은 마을이라고 무릉이라 부르게 되었다.
  • 새실마. 재실마. 신안(新安)
조선시대 말엽에 전주이씨가 이곳에서 편히 살 수 있는 새 터전을 마련했다고 하여 신안이라 했으며, 그 뒤 해주오씨가 이곳에 재실을 세웠기에 일명 재실이라고 부른다.
  • 통샘말. 통정(桶井)
외안 동쪽에 있는 마을로 통샘이 있었다고 통정이라고 부른다. 이 샘에서 솟아 나오는 물을 마시면 장수를 한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현재 3가구가 살고 있으며 논농사에 의존하고 있다.
  • 큰골. 대동(大洞)
조선시대에 군위사람 방광로란 사람이 성주 용암에서 이주하여 마을이 크다고 대동이라 하였다. 40가구 중 손씨. 송씨가 많이 살며 과수원이 많다.

5.3 도평리

  • 소룡골. 시영골. 소룡(沼龍)
이 마을이 형성되기 전 이곳에 소가 있었다. 이 소에서 용이 등천하였다는 전설이 있어 소룡골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이곳에 이언의가 병자호란때 출전했다가 전사했는데 그의 말이 혼자서 되돌아 왔으나 먹지 않고 주인의 뒤를 따라 굶어 죽었고 그 말의 의마비가 있다.
  • 평산리(平山里)
1490년대 죽산인 박수간이 칠곡현감을 지내다가 그만 두고 이곳에 입주하였는데 넓은 들판을 앞에 둔 산록이라 하여 평산리라 하였다.
  • 후평(厚坪)
경주인 최하일이 섬천 삼계에서 입주하여 1560년 진사에 오르자 평산리보다 더 두터운 곳이라 하여 후평이라고 하였다.
  • 도고리. 도촌(道村)
병자년 수해로 인하여 마을이 매몰되고 산을 피해 도로변에 마을을 이전시킴에 따라 도촌이라 불리어졌다. 10여 가구가 사는데 김씨가 많다.

5.4 광기리

  • 기 동(基洞)
조선시대에 성주이씨들이 이곳에 이주하여 주변의 지형이 소쿠리에 밀개로 끌어 담는 모양이라 마을의 자리로서는 기본이 된다고 기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 더푸리. 접화리(蝶花里)
옛날에 남녀가 부모의 눈을 속여 정을 통한다는 곳으로, 나비가 꽃을 찾는 곳이라하여 접화리라 부르게 되었으며 더푸리란 말은 정사를 뜻함이다. 현재 감천면사무소와 감천파출소. 감천농협. 감천초등학교. 감천우체국이 이곳에 있다.
  • 둥디이. 큰동네. 등당(登堂)
뒷산에서 마을을 내려다 보면 등을 달아 놓은 모양과 같다고 등당이라 부르게 되었다. 40여 가구가 살며 주로 이씨가 많다.
  • 뒷골. 광암(光岩)
마을 입구에 큰 바위가 있다. 옛날에는 그 바위가 빛을 냈다는 전설이 있어 광암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특산물로 사과와 포도가 많이 재배되고 있다.
  • 안마을. 내동(內洞)
1864년 밀양인 박세웅이란 사람이 선산 해평에서 이주하여 고을 안이라고 안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 10가구가 살고 있으며 주산물은 사과이다.
  • 전동(田洞)
본 면소재지 접화리에서 북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옛날부터 밭이 많았다고 전동이라고 부른다. 27가구 중 최씨가 주로 살며 과수원이 많다.
  • 배다리. 사촌(沙村) [1]
옛날 감천을 나룻배로 건너 다닐 때 이곳에서 배를 탔다고 하여 배다리라고도 한다. 현재 세 가구가 살며 모두 상점을 하고 있다. 또한 모래가 많이 쌓여 사촌으로도 부른다.

5.5 금송리

  • 원동(院洞)
임진왜란 때 벽진인 이약동의 손자 홍명이 낙향하여 사미정을 세우고 여생을 보내다가 그 후 김산군수 조송평이 사미정을 헐고 그 자리에 경렴서원을 건립하여 회암주자를 중심으로 하고 김종직. 최선문. 김약동. 조위. 김시창 등 향토 출신 오현을 배향하다가, 그 후 김천시 자산으로 이전하였다. 이 서원지로 인하여 원동이라고 부른다.
  • 대방리(大方里)
면 소재지로부터 북쪽으로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하여 1907년 벽진인 이유무가 입주하여 대방리라 하게 되었으며, 총 10여 가구에 벽진이씨들이 많이 사는데 사과가 많이 생산되고 있다.
  • 이아리(爾雅里). 이화리
1821년 밀양인 박세근이 입주하고 이아리가 이화리로 변했다 한다. 청백리 유악명의 묘가 있었다 하나 찾을 길이 없다.
  • 송 곡(松谷)
조선 세조 때 기계인 유익명이 입주하여 솔밭에서 무술을 닦은 곳이라 송곡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 후 피란처라 하여 재산이 많은 석선달과 배선달이 난을 피하기 위하여 이곳에 살았으며, 생활이 넉넉하지 못한 사람들이 시중을 들기 위하여 몰려들어 마을이 번성해지자 이 마을의 윗동네를 상송. 아랫동네를 하송이라 부르게 되었다.

6 기타

  • 김천시에서 가장 작은 면이다. 바로 옆 조마면의 1/3수준.
  • 원래 성주군에 속했던 지역이여서 그런지, 지역 특산물로 참외가 많이 생산된다.
  • 감천이라는 지명을 검색하면 거~의다 감천문화마을이 있는 부산광역시 사하구 감천동이 나온다(...). 당연하지만 그 마을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단, 한자는 같다. (甘川)
  1. 지좌동에 완전히 같은 뜻을 가진 동명의 배다리라는 자연부락이 있다. 이름만 같은 뿐 다른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