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읍

김천시의 읍면동
아포읍
조마면감천면대항면어모면구성면
감문면봉산면개령면농소면남면
지례면부항면대덕면증산면
법정동[1]
자산동감호동용두동모암동성내동
평화남산동평화동남산동
양금동황금동양천동
대신동신음동대광동응명동교동삼락동
문당동
대곡동부곡동다수동백옥동
지좌동지좌동덕곡동
율곡동율곡동
녹색 칸은 관할 행정동명이다.


牙浦邑 / Apo-e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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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내 대신역에 세워진 시비. 여객영업은 종료되었고 이 시비가 손님을 맞고 있다.

아포읍
牙浦邑 / Apo-eup
국가대한민국
광역자치단체경상북도
기초자치단체김천시
인구8,469명
(2014년 6월 주민등록인구)
면적53.47㎢
하위 법정리10
법정동 코드4715025000
읍사무소 소재지국사리
아포읍사무소 홈페이지

1 개요

김천시의 동쪽에 위치한 읍. 동으로 구미시 동지역, 북으로 구미시 고아읍, 서로 김천시 개령면, 남으로 김천시 남면과 접한다.

2 역사

읍 이름의 유래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삼한시대 아포에서 반란이 일어나서 감문국[1]에서 토벌에 나섰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 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던 유서 깊은 지역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개령현 아포면으로 존속 되었던 지역이며, 1914년 김천군 동면과 통합하여 김천군 아포면이 되었다.

이후 김천읍이 김천시로 승격 되면서 금릉군 아포면이 되었다가, 1995년 도농 통합당시 김천시와 금릉군이 다시 합쳐짐에 따라 읍으로 승격됨과 동시에 김천시 아포읍이 되었다.

3 관할 리

10개의 법정리를 두고 있다,

지명법정동 코드비고
인리4715039021아포 농공단지, 아포 119 안전센터 소재
의리4715039022
예리4715039023
지리4715039024
대신리4715039025대신초등학교 소재
봉산리4715039025
제석리4715039025
국사리4715039025읍사무소, 아포초등학교,
경북과학기술고등학교 소재
송천리4715039025
대성리4715039025

4 교통

4.1 도로교통

관내를 514번 지방도916번 지방도가 관통하며, 두 도로가 국사리에서 교차한다.

514번 지방도김천시관내에서 차량통행이 적지 않은 도로이다. 시내 주요도로나 대도시 간선도로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김천시와 가장 왕래가 많은 구미시지역 그것도 시내 중심부 지역으로 가는 길목이기 때문에 교통량이 적지 않다. 덕곡동에서 4번 국도와 분기한 514번 지방도는 아포읍을 정확하게 관통해서 구미시 봉곡동으로 이어지며 길게는 구미시 인동, 칠곡군 가산면까지 이어지는 아포읍의 중추도로라 할 수 있는 도로이다. 즉 김천시 중심부에서 구미시 중심부를 이어주는 도로라는 말. 김천시 일대에서는 국도만큼이나 중요한 도로인 셈이다.

916번 지방도는 국사리에서 514번 지방도와 분기되는데 분기되는 국사리 삼거리가 바로 916번 지방도의 기점이다. 916번 지방도는 김천을 출발해서 안동시까지 이어지며, 아포읍 입장에서 이 도로는 구미시 선산읍 지역으로 가는 길목이 된다. 선산읍이라고 하면 별거 아닌거 같지만, 구미시의 옛 명칭은 선산군으로, 선산읍은 옛 구미지역의 중심지역이였으며, 아포읍 주요 인접지역중 하나이다.

그외 관내를 통과하는 국도는 없다. 하지만 고속도로는 두개나 통과 하는데 경부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가 아포읍 관내를 관통한다. 안타깝게도 관내 나들목은 없다. 가장 가까운 나들목은 동김천IC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할 수 있으며, 구미IC도 많이 멀지 않다. 중부내륙고속도로선산IC도 많이 멀지 않으며, 남면에 위치한 남김천IC도 멀지는 않지만 가는 길이 좋지는 않다.

관내에 김천 분기점이 위치해 있으며 경부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가 분기한다. 중부내륙고속도로 김천 분기점에서 상주터널까지는 지방 중소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상습 정체구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관내 나들목이 없는 점이 안습....

경부고속도로상에 유사시 사용될 수 있는 아포활주로[2] 가 있었으나 현재는 활주로에서 폐지 되었다.

4.2 철도

경부선 철도가 관내를 관통한다. 관내에 2개의 역이 있나 두개 역 모두 영업열차의 여객영업은 하지 않는다. 아포역은 가끔씩 여행사 단체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임시열차가 정차하나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승차가 불가능하다.

두개의 역이 여객영업을 하지 않으므로 가까운구미역이나 김천(구미)역을 이용해야 한다. 두 역 모두 거리가 크게 멀지는 않으며, 버스도 자주 다니는 편. 무궁화호, 새마을호등의 열차를 이용하려면 구미역으로, KTX를 이용하려면 김천(구미)역을 이용하는게 좋다. 김천역도 있지만, 아포에서는 구미역이 훨씬 가깝다.[3]

4.3 버스

시외교통은 가까운 구미종합버스터미널이나, 김천공용버스터미널에서 이용하여야 한다. 김천시관내이지만, 지리적 특성상 구미종합버스터미널이 훨신 가까우므로, 이용하기 좋다.
시내교통은 김천시관내의 유일한 읍인데도 불구하고, 김천시 소속의 버스는 일절 다니지 않고, 옆 동네인 구미시관내 버스만 통과한다.
아포읍을 통과하는 버스노선은 다음과 같다.

아포읍을 경유하는 버스노선
노선번호기점주요 경유지종점구분운수회사명
174선산고아, 아포구미역일반(입석)일선교통, 구미버스
174-1선산고아, 서당, 횡산, 아포구미역일반(입석)일선교통, 구미버스
51김천공용버스터미널아포, 의동, 구미역금호공대일반(입석)일선교통, 구미버스
51-1김천공용버스터미널아포, 구미역금호공대일반(입석)일선교통, 구미버스
52김천공용버스터미널아포선산일반(입석)일선교통, 구미버스
52-1김천공용버스터미널아포, 김천구미역선산일반(입석)일선교통, 구미버스
53김천공용버스터미널아포, 구미역구미종합버스터미널좌석일선교통, 구미버스
53-1김천공용버스터미널아포농공단지, 구미역구미종합버스터미널일반(입석)일선교통, 구미버스
55김천공용버스터미널아포, 구미역, 1공단석적일반(입석)일선교통, 구미버스
57김천공용버스터미널아포, 구미역금호공대일반(입석)일선교통, 구미버스
553김천공용버스터미널김천구미역, 아포, 구미역구미종합버스터미널좌석일선교통, 구미버스
555김천공용버스터미널김천구미역, 아포, 구미역석적좌석일선교통, 구미버스
555-1김천공용버스터미널아포, 구미역구미종합버스터미널좌석일선교통, 구미버스
557김천공용버스터미널아포, 구미역금호공대좌석일선교통, 구미버스
5000김천공용버스터미널김천구미역, 아포, 구미역구미종합버스터미널리무진일선교통, 구미버스
5100김천공용버스터미널김천구미역, 아포, 구미역, 구미종합버스터미널, 공단본부황상리무진일선교통, 구미버스
5200김천공용버스터미널김천구미역, 아포, 구미역, 구미종합버스터미널, 금오공대4공단리무진일선교통, 구미버스

5 관할리 및 자연부락

본 내용은 아포읍 주민센터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5.1 인리

  • 살꼬지. 미곶. 미환
약 600년 전 김천가라는 사람이 살 자리를 이곳에 정하였는데 해마다 흉년이 들어 식량이 없고, 쌀이라곤 실에 꿰어 놓을 정도로 귀하다고 하여 이 마을 이름을 살꼬지. 미곶. 미환이라고 부른게 되었다 한다.
  • 문곡(文谷). 연실(蓮室)
약 1700년 전 화순최씨가 원래 인근 야동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이주하여 서당을 차려 문곡이라 불렀고 또 마을 옆에 연못이 있어서 해마다 연꽃이 만발하여 그 열매가 볼만하므로 마을 이름을 연실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 볼밋골. 야동(冶洞)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창녕성씨. 화순최씨. 밀양박씨가 마을을 개척하였는데, 마을 뒷산이 불무처럼 생겼다 하여 불밋골 또는 야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1970년대부터 인삼 재배에 성공하여 이 마을의 소득을 높이고 있다.
표준말로는 풀무라 하는바 불과 물을 줄여서 불무 혹은 풀무로 굳어진 형태이다.
  • 연모산. 연지(蓮地)
약 1700년 전 화순최씨가 이주하여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마을 앞에는 연못이 있고, 주위는 구릉산지로 둘러싸여 있는데 연못과 산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라 하여 연모산 또는 연지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 봉명
약 1700년 전 인동장씨 9대조가 이곳에 정착할 때, 뒷산 불상곡에서 봉황새가 울었다 하여 마을 이름을 봉명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5.2 의리

  • 신촌(新村)
약 300년 전 곽씨가 이곳에 처음 정착할 당시는 3집이 살고 있었는데, 한 집 단위로 한 마을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 후 3집을 합하여 새로운 마을이란 의미로 신촌이라 칭하였다. 1979년도에 자립 마을이 되었으며, 아포면 우수 새마을로 지정되었다.
  • 공쌍(公雙)
약 300년 전 중국에서 온 장씨와 곽씨 두 씨족이 이곳에 정착하여 살았는데, 과거를 보아 장씨. 곽씨 두 분이 모두 급제하였다 하여 마을 이름을 공쌍이라 불렀다 한다.
1979년도에 자립 마을이 되었으며, 아포면 우수 새마을로 지정되었다.

5.3 예리

  • 구암(龜岩)
옛날 이곳에 거북 등처럼 생긴 바위가 있었다 하여 마을 이름을 구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또 식수가 나지 않아서 고생을 하고 있는 터에 지나가는 대사가 가리키는 곳을 파니, 식수가 많이 났다고 한다. 그 전에는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면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거북을 더러는 거미 혹은 거무라고 이르는 바 도처에 굼뜸이 있던 당시의 지형을 보면 거북이와의 관련을 짐잡할 수 있다. 이는 거북신앙을 드러냄이라 하여 좋을 것이다.
  • 마릇절. 지사(旨寺)
옛날 이곳을 지나가던 대사가 손가락으로 가리키어 절을 짓게 했다 하여 이 마을을 지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 명례골. 예동(禮洞)
옛날에 청주한씨. 동래정씨가 살았는데, 서당이란 마을에서 배운 서생들이 예의에 밝아졌다 고 하여 이 마을 이름을 명례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 서당 (書當)
약 500년 전 이곳에 서원이 있었으므로, 마을 이름을 서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때 개령현에 속해 있을 때, 개령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원촌이라 불러 온 적도 있다 고 하며, 이곳에 옥터도 있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마을 뒷산에는 낮에는 연기로써 밤에는 횃불로써 정보를 전달해 왔다는 봉수대가 있었다고 한다.

5.4 지리

  • 고삽. 보섭. 보신(甫新). 송변(松邊)
조선 숙종 때 김해김씨 김우인이 김산 하로로부터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보평들 앞의 새마을이란 뜻으로 보신이라 불렀다 한다. 그 후 영조 때 예천박씨가 선산 연흥으로부터 들 어와 또 다른 마을을 이루고, 마을 밖에 송림이 울창하다 하여 송변이라 불렀다 한다. 점차 마을이 커지면서 보신과 송변이 한 마을이 되자 합쳐서 지동이라 불렀으며 고삽으로도 통용되고 있다. 고삽이란 말은 전에 보섭이란 명칭의 발음이 바뀌어진 것이라고 한다.
  • 양 산(梁山)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전에 밀양박씨가 이주하여 마을을 개척하였고, 또 약 200년전엔 벽씨가 이주해 왔는데, 벽씨 문중에는 효자들이 많이 나와 효성을 기리는 의미에서 동리 어귀에 벽씨의 효자비가 세워져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글자가 마멸된 형체만 산기슭에 묻혀 있다.
현재 이 마을에는 31가구에 150여명이 살고 있다.
  • 강정골. 강호
마을 앞에 큰 호수가 있었고 뒤로 감천이 흐른다 하여 강정골이라 불렀는데 소리가 변하여 강정골 또는 강호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감천을 사이에 두고 배시내 마을과 접하고 있는데 겨울철에 설치하는 나무다리 가교가 이 마을에서 김천과 선산으로 통하는 유일한 교통로였다고 한다.

5.5 대신리

  • 함골. 대동(大洞)
조선 말엽 개령군 동면에 속해 있었으며 개령초등학교 뒷산은 굶주린 호랑이가 개를 잡아 먹으려고 움추린 형상이며, 현재의 대신 2동 앞산은 개가 앉아 있는 형상인데, 개를 잡아 먹으려는 범을 잡기 위하여 함정을 파놓았다 하여 이 마을을 함골이라고 불렀다. 그 후에 현재의 대신 1동을 대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 역전(驛前)
함골. 대동에 속해 오다가 일제 때에 경부선 철도가 개설되자 마을이 분리되었는데, 역이 있기 때문에 역전동이라고 불렀으나, 1920년에 대신 2동으로 나누어졌다.
  • 시내이. 동신(東新)
파평윤씨가 신행이란 곳에서 처음 마을을 개척하여 살아왔으나 주민들의 성품이 사납고 알력이 심하여 부락터가 거세다고 현재의 마을로 이주하여 새 부락의 마을이름을 동신이라고 불렀다. 시내이란 말은 파평윤씨가 현재의 마을로 이주한 후에도 예전에 살았던 곳의 지명인 신행이를 그대로 따와서 계속 사용해 왔는데, 신행이의 발음이 바뀌어서 시내이로 되었다고 한다. 대신이라는 말도 대동과 신행이의 각 머리 글자를 따와서 대신이라고 했으며, 마을이 생긴지는 약 400년 쯤 되었다.

5.6 봉산리

  • 말바우. 마암(馬岩)
손씨 2가구가 약 200년 전에 이 마을을 개척하였고, 마을 뒤에 큰 바위가 있는데 그 생김새가 말을 닮았다 하여 말바우. 마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원창벌의 머리 마을이며 경부 철로가 바로 이 마을 옆을 지나고 있다.
우리의 지명 가운데에는 말과 걸림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기원적으로 우리민족이 말을 타던 기마민족인 데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말을 거룩한 짐승으로 보아 말이 있는 곳에는 지도자가 있었던 것으로 표상하였다.
  • 까치골. 작동(鵲洞)
약 300년 전에 신씨와 조씨가 이 마을을 개척하면서 마을 뒷산이 까치가 앉아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고 하여 까치골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 개령현 동면사무소가 있었던 마을이며 지금은 작동이라 부르고 있다.
  • 새터. 새마을
1936년 병자년 수해로 인하여 작동에서 살던 김경술이 이곳에 이주하여 처음 정착하였으며 2년 후 김해김씨가 이주하면서 새터. 새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1960년대 말 경부고속도로 공사로 인근 주민들이 편입 이주하여 마을이 더욱 번성하게 되었으며, 사과. 포도 등 과수 재배가 성하다.
  • 초산동(草山洞)
1969년 경부고속도로가 개설되면서 철거된 작동 주민 나채성 외 5가구가 이곳에 이주하였으며, 주위에 풀이 많아 이름을 초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 취락동(聚落洞)
작동 주민 19가구가 경부고속도로 접도구역내의 불량 건물로 지적되어, 정부의 지원을 받아 1977년에 이전 건축한 마을인데, 취락동이라 이름지었다.
  • 덕 계(德溪)
마을의 개척 역사는 확실하지 않으나 마을 앞을 흐르는 냇물이 논농사를 주로 하는 이 마을의 수원이 되었던 바 이 마을을 덕되게 하는 내라 하여 덕계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감천을 옆에 끼고 있는 이 마을 앞의 원청벌은 김천에서 쌀 생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덕계의 덕(德)은 본디 크다는 뜻으로 큰 내 혹은 큰 개울이라는 의미로 보면 된다.

5.7 제석리

  • 동촌(東村)
약 400년 전 반남박씨가 성주에서 이주하여 이곳에 정착하고 약 50여 가구가 돌성을 쌓아 성문을 두고 살았는데, 동편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동촌이라 불렀다고 한다. 한편 박씨네가 살았다 하여 박샘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오고미. 오금리(烏金里). 남촌(南村)
약 400년 전 진주에서 정씨가 이주하여 정착할 당시에 마을 뒷산에 금까마귀가 앉았다 하여 오금리라고 불렀다 한다.
  • 진등
옛날에 이곳이 긴 비탈진 고개였다 하여 마을 이름을 진등이라 불렀다 한다. 1979년 경부고속도로 변의 주택 정비 계획에 따라 제석동의 24가구를 이주하게 하여 마을을 형성하게 하였다.

5.8 국사리

  • 애기. 아야(阿也)
원래 마을의 위치는 현재의 마을 등 넘어 독골이란 곳에 있었는데, 수재로 폐동되고, 약 300 여년 전에 현재의 마을의 부자인 서씨 댁에 신득남이란 사람이 머슴살이를 하다가 그 집 사위가 되어 팔 형제를 두었고 신득남의 후손 팔 형제가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 칠산(七山)
전하는 말에 의하면, 마을 주위에 앞산. 뒷산. 당산. 안산. 비석등. 아랫진등. 웃진등 7개의 조그만한 산들이 있는데, 이 7개의 산들에 둘러싸여 있는 마을이기 때문에 칠산이라고 부르 게 되었다 한다.

5.9 송천리

  • 숭산(崇山)
분지 마을로 주위가 산이 많고 지형이 웅장하고 거룩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숭산이라 고 불렀다 한다. 옛날 김첨지란 장수가 이 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마을 오리밖의 도둑을 보고 활을 쏘아 적중시켰다 한다. 현재 김첨지 후손의 자취로선 몇 기의 고분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을 뿐, 그 외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지금부터 약 400년 전에 경기도 이천에서 홍석양이란 선비가 이주해 왔고, 또 약 300년전엔 강릉유씨와 선산김씨가 이주하여 이 마을을 개척하였다.
  • 쇠내. 금천(金川)
원래 마을 이름은 쇠내였는데 왜 쇠내라 하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1914년 행정구역 변경 때 금천으로 바뀌었다. 이 마을의 뒷산으로 통하는 산길 소로는 대못 낚시꾼과 대성동 주민들의 유일한 교통로이기도 한다. 김정호 선생의 지리서를 보면 쇠 - 새의 대응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로 보면 새로난 냇물이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 웃송내. 상송(上松)
상송천의 천자를 줄여서 보통 상송이라고 부르며, 웃송내라고도 한다. 원래 송천동이란 명칭은 상송과 금천의 이름을 따서 송천동이라 했다 하며, 마을 뒷산의 능선이 구릉으로 되어 있는데 선산군과의 경계이며, 송내 고개는 아포 지역에서 옛 선산장과 안계장으로 통하는 최단의 교통로로 알려져 있다.
  • 아랫송내. 하송(下松)
아랫송내는 아랫마을 송내라는 뜻으로 천자가 줄어서 하송이 되었다 한다. 그리고 웃송내. 상송과 아랫송내. 하송을 합쳐서 송내. 송천이라 부르고 있다.
  • 금계(金鷄)
마을 뒷산의 지형이 마치 닭이 알을 품고 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금계라 불렀다 한다. 마을 앞이 개방되어 있으면 폐동이 된다는 설이 있으므로 약 300년 전 마을 앞 개인 소유의 땅을 동네 주민들이 공동으로 매입하고, 그곳에 송림을 조성하여 개방됨을 막았는데, 현재에도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다 한다.
  • 대지(大池)
마을 앞에 한지란 큰 못이 있는데, 큰 못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동네 이름을 대지라고 불렀 다 한다. 대지. 한못은 아포읍 중심지에 위치하며, 원래 택지로서 국사봉. 효자봉의 정기를 이어 받은 명당자리라 한다.(전설참조)

5.10 대성리

  • 윗회성. 상회성. 회성(會聖). 효성. 서회성
약 380년 전 임진란 당시 죽산김씨. 밀양박씨. 대망강씨 등이 피란와서 정착하여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산수가 좋고 일기가 온화하여 주위에서 많은 선비가 모여 수련하고, 성인의 왕래가 많으므로 회성이라 칭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 대진. 대증(大增)
약 370년 경 난을 피하기 위해 밀양박씨가 이주하여 마을을 개척하였고, 마을 앞에 큰 내 가 있으며, 그 곳에 나루터가 있었다고 하여 대진이라 불렀다 한다.
  • 새터. 신기
약 50년 전 밀양박씨가 온천동이라는 곳에서 이주하여 새마을을 개척하여 새터. 신기라고 부르게 되었다. 대성못 공사로 인하여 수몰지역이 된 마을 사람들이 일부 이 곳으로 이주하여 살고 있다.
  • 자거랏. 자거래. 신기
마을 주변에 자갈이 많다고 하여 처음에는 자갈터라고 불리어져 내려오다가 나중에는 자거랏으로 칭하여지게 되었다. 1950년대에 대성못 개발 공사로 인하여 수몰지구로 변하여 현재 못이 되고 말았다.

6 기타

  • 김천시에 있는 유일합 읍이지만, 생활권은 거의 구미생활권으로 볼 수 있다. 김천시의 중심지보다 구미시의 중심지가 훨씬 가까우며, 하다 못해 김천시청보다 구미시청이 훨씬 가깝다. 향후 아포지역이 개발된다면 구미와 연담화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 김천시 소속 대한교통버스는 이곳에서 영업을 하지 않는다. 아포읍을 통과하는 버스는 모두 일선교통 이나 구미버스소속의 버스이다. 하지만 구미 시 경계를 넘으면 칼같이 추가요금을.....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도시인 아이언포지를 줄여 이곳의 이름으로 많이들 부른다. 김천 지역 출신와우저들은 흠칫 흠칫 한다고...
  1. 김천시 감문면지역의 유래가 된 나라로 제주에 탐라국이 있었던 것 처럼 삼한시대 이전에는 감문국이라는 독립적인 국가가 있었다고 한다.
  2.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세류동과 경기도 화성시 병점동을 잇는 1번 국도상의 활주로와 비슷한 용도로 계획된 도로이다.
  3. 보통 서울, 대전등 상행선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김천역이 유리하며, 대구, 부산 등 하행선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구미역이 더 유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