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항목 : 김천시/행정
김천시의 읍면동 | ||||||
읍 | 아포읍 | |||||
면 | 조마면 | 감천면 | 대항면 | 어모면 | 구성면 | |
감문면 | 봉산면 | 개령면 | 농소면 | 남면 | ||
지례면 | 부항면 | 대덕면 | 증산면 | |||
법정동[1] | ||||||
자산동 | 감호동 | 용두동 | 모암동 | 성내동 | ||
평화남산동 | 평화동 | 남산동 | ||||
양금동 | 황금동 | 양천동 | ||||
대신동 | 신음동 | 대광동 | 응명동 | 교동 | 삼락동 | |
문당동 | ||||||
대곡동 | 부곡동 | 다수동 | 백옥동 | |||
지좌동 | 지좌동 | 덕곡동 | ||||
율곡동 | 율곡동 | |||||
녹색 칸은 관할 행정동명이다. |
조마지역 특산물 감자. 김천지역에서 감자는 강원도가 아니라 이곳 조마로 통한다. |
助馬面 / Joma-Myeon
조마면 助馬面 / Joma-Myeon | |
국가 | 대한민국 |
광역자치단체 | 경상북도 |
기초자치단체 | 김천시 |
인구 | 2,551명 (2014년 11월 주민등록인구) |
면적 | 70.93㎢ |
하위 법정리 | 7리 |
면사무소 소재지 | 강곡리 |
조마면사무소 홈페이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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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
김천시의 남동쪽에 위치한 면. 동으로 성주군 벽진면, 서로 김천시 구성면, 지례면, 남으로 성주군 금수면, 북으로 김천시 감천면, 김천시 동지역과 접한다.
2 역사
기원전 졸마(卒麻) 또는 주조마국(走漕馬國)으로 기록에 남아 있었던 유서깊은 곳이다.
742∼756년에 신라시대는 상주목 개령군에 속한 조마부곡으로 오랫동안 개령군 소속이였으며 1781년에 김산군 조마남면(助馬南面)으로적힌 기록이 있다.
1914년 김산군 조마남면, 김산군 남천면 2개면을 합면하여 김천군 조마면으로 개칭하였다.
1948년 8월 13일에 김천읍의 김천시 승격으로 금릉군 조마면으로 개칭하였다가 1995년 김천시의 도농통합당시 김천시 조마면이 되었다.
3 관할 리
7개의 법정리를 두고 있다,
지명 | 법정동 코드 | 비고 |
신안리 | 4715040021 | |
장암리 | 4715040022 | |
강곡리 | 4715040023 | 면사무소, 조마초등학교 소재 |
신곡리 | 4715040024 | |
삼산리 | 4715040025 | |
신왕리 | 4715040026 | 실질 월경지 |
대방리 | 4715040027 | 실질 월경지 |
신왕리와 대방리는 지리적으로 특이점을 가진다. 실제적으로 월경지는 아니지만, 관내 다른 리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면을 통해서 가야 한다. 나머지 면은 903번 지방도로 연결되고, 신왕리, 대방리는 59번 국도를 통해 연결 되는데 두 도로간 연결도로가 관내에 없다. 그러므로 두 지역은 사실상의 월경지가 된다. 조마면의 특이한 점.
4 교통
4.1 도로교통
고속도로는 관내를 통과하지 않으며 59번 국도, 903번 지방도가 관내를 통과한다. 그런데... 관내에 두 도로가 교차하는 곳은 전혀 없으며, 이면도로 등으로 간접적으로도 만나는 곳도 없다. 두 곳을 왕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감천면과 양천동을 통과해야 한다. 조마면사무소를 비롯한 대부분의 기관들은 903번 지방도상에 위치하는데, 그래서 신왕리일대와 대방리 일대, 삼산리 일대가 실질적월경지가 된다.
4.2 철도
관내에 철도가 없다.
가장 가까운 역은 김천(구미)역과 김천역으로 무궁화호, 새마을호등의 열차를 이용하려면 김천역으로, KTX를 이용하려면 김천(구미)역을 이용하여야 한다.
4.3 버스
시외교통은 김천공용버스터미널에서 이용하여야 한다. 조마면에서 출발하는 모든 버스가 김천공용버스터미널로 향하기 때문에 터미널로 이동하여 시외교통을 이용하면 된다.
시내교통으로는 김천시지역답게 대한교통소속의 버스들을 이용할 수 있다. 전형적인 농어촌지역으로 많은 버스가 다니지는 않는다. 김천공용버스터미널에서 각 마을행 버스의 시간표를 보고 이용하여야 한다.
조마면을 통과하는 버스노선은 다음과 같다.
조마면을 경유하는 일반(입석)버스 노선 | ||||
노선번호 | 기점 | 주요 경유지 | 종점 | 기타사항 |
72-3 | 김천공용버스터미널 | 아랫장터, 감천, 대방 | 사기점[1] | 왕복 1회 |
82 | 김천공용버스터미널 | 황금동, 조마, 강곡, 중말 | 울곡 | 왕복 2회 |
82-1 | 김천공용버스터미널 | 황금동, 조마 | 강곡 | 왕복 2회 |
82-2 | 김천공용버스터미널 | → 황금동 → 조마 → | 강곡 | 왕복 1회 터미널 방면 엉거실 경유 |
← 황금동 ← 조마 ← 엉거실 ← | ||||
82-3 | 김천공용버스터미널 | 황금동, 조마, 강곡 | 중말 | 왕복 1회 |
82-4 | 김천공용버스터미널 | → 황금동 → 조마 → 강곡 → 중말 → | 울곡 | 왕복 1회 터미널 방면 강곡동네 내부 경유 터미널 방면 평일 중앙중까지 운행 |
← (영남대로경유) ← 중앙중 ← 김천역 ← 김천공용버스터미널 ← 황금동 ← 조마 ← 강곡 ← 중말 ← | ||||
조마면을 경유하는 좌석버스 노선 | ||||
772-3 | 김천공용버스터미널 | 상송, 감천, 대방 | 사기점 | 왕복 3회 |
882 | 김천공용버스터미널 | 황금동, 조마, 강곡, 중말 | 울곡 | 왕복 2회 1회 이전리 경유 |
882-3 | 김천공용버스터미널 | 황금동, 조마, 강곡 | 대방 | 왕복 1회 |
5 관할리 및 자연 부락
5.1 신안리
- 죽정. 죽전(竹田)
- 1879년경 성산배씨 상유의 후손이 안새래. 내신에서 농토를 따라 분가하게 되었는데 죽림이 우거진 곳에다 마을을 형성시키면 절개 굳은 자손들이 출생한다고 하여 대밭이 많은 이곳에 마을을 이루어 마을이름을 죽정(竹汀). 죽전이라 칭하게 되었다.
- 중동(中洞)
- 옛날에는 구미(九尾)라 불리었는데 병자년 수해로 부락이 유실되고 지금의 마을위치로 이주하였다. 이곳은 새래라는 마을의 가운데 있다고 중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 안새래. 내신하. 내신(內新)
- 1658년경 성산배씨 금겸이 이 마을을 개척하여 만덕동이라 하였는데, 1758년경 화순최씨와 함께 한 마을에 살게 되면서 밧새래의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안새래. 내신하. 내신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 밧새래. 외신하. 외신(外新)
- 조선선조 때 화순최씨 세영이 서울서 낙향하여 고향에 돌아왔다고 하여 마을이름을 신하라고 하였으며, 마을이 안새래의 바깥쪽에 위치하고 있다 하여 밧새래라고 부르며 외신하. 외신이라고도 한다.
- 안 서(安棲)
- 화순인 최중홍의 9대손인 하대가 효행이 지극하여 어버지가 별세하자 묘아래에 초막을 지어 놓고 3년 동안이나 복상하였으나 모친의 정을 잊지 못해 1801년에는 묘소 가까운 곳에 집터를 마련하여 정착하면서 조상이 편안히 사시도록 한다는 뜻에서 마을이름을 안서라고 이름하게 되었다 한다.
- 서낭댕이. 성황당. 지동(只洞)
- 조선 정조 때부터 생긴 고개라 이 마을에 있어 행인들이 왕래하면서 돌이나 동전을 던져 행로의 무사함을 비는 서낭당이 있다 하여 마을이름을 서낭댕이. 성황당이라 불렀다 한다.
- 새터. 신기(新基)
- 이 마을은 병자년 수해 이후 새로 생긴 마을이라고 새터. 신기라 이름지었다. 마을 창건 당시 성산배씨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으나 현재는 화순최씨. 성산배씨와 기타 성이 40여 가구로 되어 있으며, 특산물로는 자두와 포도를 많이 생산하고 있다.
5.2 장암리
- 웃장바우. 상장(上壯)
- 상장과 하장의 경계지점에 3층 바위가 있다. 이 바위를 장바우라 하고 위쪽에 있는 마을이기 때문에 웃장바우. 상장이라 하게 되었다.
- 아랫장바우. 하장(下壯)
- 본래 김산군 조마면으로서 큰 바위가 있어서 장바우라 하였다. 이 삼층 바위를 중심으로 아래쪽에 이 마을이 위치하여 하장이라고 하며, 현재 안동권씨. 강양이씨. 선산김씨가 주로 살고 있는 마을로 특산물로는 감자 재배를 많이 하고 있다.
- 새말. 도암(道岩)
- 1521년 정일이라는 선비가 이 마을을 개척하여 자기의 호를 따서 도암이라 했으며 새로 생긴 마을이라고 새말이라고도 부른다. 특산물로 감자와 파를 많이 생산하고 있다. 정일(鄭鎰)부부의 정려각이 있다.
- 예 동(禮洞)
- 군정묵이란 사람이 하장마을에 살다가 이주해서 새터를 잡을 때에 동방예의지국의 예자와 동자를 따서 마을이름을 예동이라고 이름지었다 한다.
- 점말. 점동(店洞)
- 옛날부터 이 마을에서 옹기를 구웠다고 점말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광복 후로는 질그릇 굽는 일이 없어졌으며, 지금은 그 자취만 남아 있다.
5.3 강곡리
- 금다이. 검단이. 구곡(九曲)
- 조선기대에 김해김씨가 김천에서 이곳까지 아홉구비를 돌아 들어와 자리 잡은 곳이라 하여 구곡이라고 칭하였다. 지금은 김해김씨들이 거의 떠나고 선산 김씨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특산물로서는 자두와 감자가 있다. 검단 혹은 금다이란 지명은 폭넓게 분포되어 있다. 방위로는 물의 북쪽을 이르며 검단(檢丹)은 검은색(玄)으로 거북이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여기 아홉구비도 기실은 거북구(龜)를 원의미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 엉거실. 월곡(月谷)
- 병자년 수해로 인하여 상장에서 살고 있던 선산김씨들이 이주하여 마을을 이루게 되었으며 17가구에 선산김씨. 안동권씨. 달성서씨들이 살고 있으며, 마을 동쪽에서 달이 뜨면 달빛이 정겹게 비친다고 이 마을 이름을 월곡이라고 한다.
- 강바대. 강평(江坪)
- 마을 뒤와 옆으로 감천지류가 흐르고 있으며 기름진 땅이 들을 이루고 있어 강평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속칭 강바대라고도 부른다.
5.4 신곡리
- 나부리(羅浮里)
- 벌 소리가 들리는 마을 또는 벌이 떠 있는 마을이라고 나부리라 불렀다 한다. 20여 가구에 김해김씨. 문화유씨. 순천박씨. 밀양박씨. 달성서씨. 나주최씨 등 여러 성씨가 모여 살고 있으며 특산물로는 양잠을 주로 하고 있다.
- 마아리(馬牙里)
- 마을 뒷산의 지형이 말모양으로 생겼으며, 마을은 말의 어금니 위치에 있다고 마을이름을 마아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 미실. 미곡동(迷谷洞)
- 농가 호수 20여 가구로 선산 김씨. 의성 김씨. 벽씨. 이씨. 순천 박씨. 밀양 박씨 등 여러 성씨가 살고 있으며, 마을 유래는 알 수 없다.
- 쇠점골. 시점골. 철수동(鐵水洞)
- 감천의 쇠를 파와서 이 마을 뒷산 밑에서 쇠를 만들 때 쇳물이 흘렀다고 하여 마을이름을 철수동이라고 부르며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 중말. 중리(中里)
- 신곡동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하여 중말. 중리라고 부른다. 현재 20여 가구로 밀양박씨. 순천박씨. 진양강씨. 파평윤씨 등 여러 성씨가 살고 있으며, 특산물로서는 양잠이라 한다.
- 새수골. 쇄수. 신석(新石)
- 순천박씨가 500여년 전에 이 고을로 이주하여 살고 있었으며 마을 뒷편에 꼬불꼬불한 쇄수곡이 있어서 새수골. 쇄수라고 했다. 지금은 신석이라고도 부른다.
- 백화동(百花洞)
- 이세간이 이 마을에 살면서 효성이 지극하였으므로 효자동이라 하다가 그 후손들이 조상의 덕을 꽃으로 밝히고자 해마다 꽃을 심어 온갖 꽃이 핀다고 이 마을이름을 백화동이라고 지었다.
5.5 삼산리
- 누피. 누산(樓山)
- 이 마을은 옛날에 늪이 있어서 누피라고 불렀다. 또 산마루가 높아 다락과 같다고 누산이라 했는데 오늘날 유산이라고 부른다.
- 삼정. 삼정지(三亭池)
- 이 마을에는 세 개의 정자와 못이 있어서 삼정. 삼정지라고 부르며, 농가 호수 40여 가구, 남평문씨. 영양천씨 등 여러 성씨가 마을을 이루고 있으며 특산물로서는 참외와 오이를 많이 생산하고 있다.
5.6 신왕리
- 물앙실. 수왕(水旺)
- 의성김씨가 이주하여 정착한 후에 이 마을은 물이 왕성해야 김씨 성이 번성한다는 풍수설에 따라 마을이름을 물앙실. 수왕이라 했다.
- 박니. 박리(朴里)
- 약 300년 전에 김해김씨가 먼저 이주해 살았으며 동명을 박리라고도 썼다 하며 마을의 지형이 궁형 또는 바가지형이라고 하는데서 박리라고 부르게 된 것 같다.
- 용바우. 용암(龍岩)
- 마을 옆에 용머리를 닮은 바위가 있어 용바우. 용암이라고 했으며, 그 바위 아래 깊은 소가 있었는데 그 속에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다.
- 송 정(松亭)
- 약 300년 전 진주강씨가 터를 잡았다 하며 동명을 한수골. 송신이라고 부른 일이 있었다고 하나 그 이름을 아는 이는 거의 없고, 약 300년 전부터 이 마을 어귀에 소나무와 정자가 있 어서 송정이라 칭한다.
- 곱또리. 하신기. 하신계(하신계)
- 약 200년전에 밀양박씨가 처음 자리를 잡았으며 그 후 70년이 지나 김해김씨가 들어오고 90년 쯤 전에 성주이씨가 이 마을에 들어왔는데, 그 당시는 동명을 곱또리라고 불렀다. 일제시대에 하신계라고 불렀는데 수해로 전에 있던 하천이 없어지고 동리 앞에 새로운 하천이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곱똘이란 냇물이 곱돌아 흐름을 이른다. 흔히 곡강(曲江)이라 이르는 바 그 대표적인 경우가 하회요, 영양과 포항의 곡강이다. 곡강의 속칭으로는 굽은갱이라 함을 보더라도 그리 짐작할 수 있다.
5.7 대방리
- 사기점. 사점(砂店)
- 약 200년 전에 김해김씨가 벽진에서 살다가 생활고로 인하여 살티재 만당에 와서 살았는데 화적떼가 무서워서 지금의 마을 자리로 옮겨와서 살았으며, 옛날에 사기그릇을 구워서 팔았다고 해서 사기점. 사점이라고 이름을 붙여졌다고 한다.
- 물배이. 수방(水方)
- 물방골이란 계곡의 이름을 따서 물배이. 수방이라고 부르며, 200여년 전에 오씨가 자리 잡았다고 하나 그 후 김씨와 조씨가 살아 왔다.
- 버드실. 유촌(柳村)
- 이 마을은 유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일설에는 버드나 무가 많은 곳에 자리잡은 마을이라 버드실. 유촌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 두둘개. 옥계(玉溪)
- 두둘개라는 이름은 마을 뒤쪽의 두둑 위에 들이 펼쳐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고, 옥계란 마을 앞을 흐르는 계곡의 물이 옥같이 맑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 여우내. 성궁(省弓)
- 마을 앞을 흐르는 냇물이 연중 마르지 않아 농사를 잘 지울 수 있어서 마치 필요할 때 내리는 비와 같다고 여우내라고 했으며, 성궁이란 이름은 옛날 이 마을에 무사들이 활을 쏘는 곳이 있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 뱃거마. 가곡(柯谷)
- 성궁 마을의 바깥 쪽에 있다고 뱃거마라고 하고, 가죽나무가 있었던 곳에 마을이 생겼다 하여 가곡이라고 한다.
- 대 평(大坪)
- 성궁에 살던 사람들이 들을 따라 이주하여 새 동리를 만들었으며, 밀양박씨가 많이 살고 있다. 이 마을 주변에 넓고 기름진 들이 있어 대평이라 부른다.
6 기타
- 김천시의 대표적인 특산물로 포도와 자두를 들 수 있는데, 이와는 별개로 조마지역에서는 감자가 많이 재배되며 품질도 우수하다. 김천 지역에서는 강원도가 아니라 조마가 감자로 통할 정도.
- ↑ 조마면사무소 근처를 지나지는 않는데, 사기점종점이 위치한 곳이 대방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