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면(김천)

김천시의 읍면동
아포읍
조마면감천면대항면어모면구성면
감문면봉산면개령면농소면남면
지례면부항면대덕면증산면
법정동[1]
자산동감호동용두동모암동성내동
평화남산동평화동남산동
양금동황금동양천동
대신동신음동대광동응명동교동삼락동
문당동
대곡동부곡동다수동백옥동
지좌동지좌동덕곡동
율곡동율곡동
녹색 칸은 관할 행정동명이다.


大德面 / Daedeok-myeo
GC032P2434_l.jpg

대덕면사무소 및 대덕면보건지소

대덕면
大德面 / Daedeok-myeon
국가대한민국
광역자치단체경상북도
기초자치단체김천시
인구2,465명
(2014년 12월 주민등록인구)
면적98.38㎢
하위 법정리12
법정동 코드4715044000
면사무소 소재지관기리
대덕면사무소 홈페이지

1 개요

김천시 남쪽에 위치한 면. 동으로 증산면과 접하고, 서로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과 접하며, 남으로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고제면과 접하고, 북으로 부항면, 지례면과 접한다.

2 역사

과거에는 지례에 포함되던 지역으로서, 대덕면으로의 역사는 길지 않은 편이다.

조선시대에는 지례현 남면이였다. 189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일대가 지례군 상남면, 하남면, 외남면으로 분리되었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세개면이 다시 합쳐져 대덕면이 되었으며, 당시 지례군이 김천군에 흡수되었으므로, 김천군 대덕면이 되었다. 대덕면이라는 이름은 전라북도와 경계를 이루는 관내 대덕산에서 따온 이름이다.

1949년 김천읍이 김천시로 승격되어 금릉군과 분리되면서 금릉군 대덕면이 되었으며, 1995년 금릉군김천시가 도농통합을 실시하게 됨에 따라 김천시 대덕면이 되었다.

3 관할 리

12개의 법정리를 두고 있다.

지명법정동 코드비고
연화리4715044021경상북도 학생 야영장 소재
덕산리4715044022
외감리4715044023
내감리4715044024
가례리4715044025
조룡리4715044026
추량리4715044027
<#C0FF3E>관기리4715044028대덕초등학교, 대덕중학교
면사무소 소재
화전리4715044029
문의리4715044030
대리4715044031감천발원지 소재
중산리4715044032

4 교통

4.1 도로교통

국도 2개선이 교차되는 나름 교통의 요지 되시겠다. 김천시 중심 시가지 지역에서 가장 많이 떨어져 있는 지역중 하나인데, 단순히 멀뿐, 도로교통이 나쁘지는 않다.

3번 국도가 관내를 남북으로 관통한다. 북으로 김천시 시가지 중심지역으로 이동하거나, 지례면, 구성면일대로 이동할 수 있으며 남으로 거창군으로 이동 가능하다. 김천시 시가지나 거창군 중심인 거창읍지역이나 비슷하게 걸리는데, 거창읍이 조금 더 가깝다.(...) 관내 웬만한 지역에서 주요 교통로로 이용하는 도로이다.

30번 국도가 관내를 동서로 관통하며, 관기리에서 3번 국도와 교차한다. 국도가 교차하는 덕분에 관기리 일대에 면사무소, 초등학교, 중학교 등이 모여 있으며 작은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다. 이곳에 김천시거창군을 왕래하는 시외버스도 정차한다. 두 국도가 사거리로 교차하는게 아니고, 관기리에 관기삼거리에서 일단 3번 국도와 중첩되서 북으로 가다 다른 삼거리에서 다시 분기하는 식. 두 국도가 중첩되는 구간에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다.
서쪽으로는 무주군방면으로 이동이 가능하며, 동쪽으로는 증산면, 성주군을 통과해 대구광역시로 이동이 가능하다.

30번 국도가.... 이곳에서 성주군까지 선형이 영 좋지 못한데, 지방도 수준의 선형을 보여주며 이니셜D에 나올법한 헤드핀이 수십개가 있다. 게다가 경사도 급하다. 소백산맥을 넘는 구간이다보니 길이 험한 건 당연하지만... 그러나 반전이 있는데 이 30번 국도대구광역시로 들어가면, 대구광역시에서 가장 중요한 간선도로인 달구벌대로가 된다. 같은 도로가 맞는지 의심스러운 수준.

그외 대리 일대에서 3번 국도와 분기했다가 6Km(...)이동후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강천삼거리에서 다시 3번 국도와 합쳐지는 1099번 지방도도 있는데, 주요교통로까지는 아니고, 길을 끼고 있는 마을에서 이용되는 정도이다. 어짜피 대덕면 대리가 이 도로의 시종착점이며, 관내를 4Km남짓으로 길게 통과하지 않는다.

4.2 철도

관내 철도시설은 전혀 없다. 철도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김천역을 이용하여야 한다. 승용차로 30여 분 이상 소요.

고속철도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김천(구미)역을 이용하면 된다. 역시 승용차로 30여 분 이상 소요. 이곳은 김천시내에서 손꼽히는 철도교통 사각지대로 김천역이든 김천(구미)역이든 시간이 오래 걸린다.지역별로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 30분 이상이지 1시간여로 잡고 이동하여야 한다. 부항면항목에도 똑같이 적혀 있는데, 거기는 길의 선형이 좋지 않아 오래 걸린다고 적혀 있지만, 대덕면에서 김천 시가지 지역은 진짜로 멀다....

4.3 버스

대부분의 시외교통은 김천공용버스터미널에서 이용하여야 한다. 승용차로 30여 분 이상 소요.

관기리에 조그마한 시외버스 정류장이 있다. 이곳에서 거창군방면이나 김천공용버스터미널로 가는 시외버스를 이용할 수 도 있다. 지례면 상부리에 있는 것과 다르게 시내버스 정류장과 비슷하게 생긴 진짜 정류장이다.

시내 중심부에서 매우 먼 관계로 시내교통편이 많지는 않다.

특이사항으로 전라북도 무주군의 농어촌버스가 경유한다. 이 버스는 전라북도 진안군소속 버스. 진안군 소속 버스가 김천시 관내를 다닌다고는 많이들 생각 못할 것이다. 대다수의 김천시민은 진안군이 어디있는지도 잘 모르기 때문에....[1]

대덕면을 경유하는 일반(입석)버스 노선
노선번호기점주요 경유지종점기타사항
<|2><#D3D3D3><:>85-4<|2>김천공용버스터미널→ 황금동 → 중앙고 → 구성 → 지례 → 조룡2리 → 대덕 →<|2>예서마을<|2>왕복 1회
터미널 방면 조룡2리 미경유
← 황금동 ← 중앙고 ← 구성 ← 지례 ← 대덕 ←
<|2><#D3D3D3><:>92<|2>지례→ 속수 → 대덕 → 황황 → 황정 → 증산 → 청암산(장뜰) →<|2>수도리<|2>왕복 1회
지례 방면 대덕만 경유
← 대덕 ←
<|2><#D3D3D3><:>93지례→ 대덕 → 청암산(장뜰) →<|2>수도리<|2>왕복 1회
수도리 방면 지례에서 출발
수도리 방면 대덕,청암사만 경유
김천공용버스터미널← 황금동 ← 중앙고 ← 구성 ← 지례 ← 속수 ← 대덕 ← 황황 ← 황정 ← 증산 ← 청암산(장뜰) ←
대덕면을 경유하는 좌석버스 노선
노선번호기점주요 경유지종점기타사항
884-4김천공용버스터미널황금동, 중앙고등학교, 구성, 지례, 대덕, 연화감주왕복 3회
885-5김천공용버스터미널황금동, 중앙고등학교, 구성, 지례, 대덕, 대동예서마을왕복 6회
885-8김천공용버스터미널황금동, 중앙고등학교, 구성, 지례, 대덕, 청암사(장뜰), 증산장전왕복 1회
<#D3D3D3><:>885-9김천공용버스터미널황금동, 중앙고등학교, 구성, 지례, 대덕, 연화, 덕산무풍[*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왕복 3회
터미널 방면 막차 연화 미경유
886김천공용버스터미널황금동, 중앙고등학교, 구성, 지례, 속수, 대덕, 청암사(장뜰), 증산영천[2]왕복 2회
대덕면을 경유하는 전라북도 무주군(버스회사 진안군) 소속 버스
노선번호기점주요 경유지종점기타사항운수회사명
농어촌대덕무풍무주터미널농어촌버스무진장여객

5 관내 자연부락

본 내용은 대덕면사무소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5.1 연화리

  • 여내실 · 연화실 · 연화(蓮花)
연화 북서쪽으로 약 1km 떨어져 있고, 대봉산 밑에 자리잡고 있다. 임진왜란 때 어느 왕자의 장수를 빌기 위하여 태를 대봉산에 묻었다. 왕 자의 태와 관련지어 마을 이름을 소태실이라고 하였다 한다.
  • 소태실 · 소태(小台) · 소대
새실 바깥쪽에 위치한 마을이라고 해서 바깥새실이라고 했다 하며, 이곳도 전국에서 유명한 포도 단지로 품질이 좋은 포도가 많이 생산되고 있다.

5.2 덕산리

  • 덕산(德山)
본래 지례부 상남면의 지역으로서 대덕산 밑이 되므로 덕산이라 하였다. 46가구 거주에 김녕김씨가 많고 벼농사 외 에 포도 재배를 하고 있다.
  • 옴배미 · 주티 · 주치(走峙)
덕산 남쪽 약 1km 거리에 위치한 마을로 주치령 밑이 되므로 마을 이름을 주티 · 주치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5.3 외감리

  • 외감 · 아랫감주
감주 골짜기의 제일 바깥에 위치하기 때문에 아랫감주 · 외감이라 하였다. 임진왜란 때 밀양 박씨 · 경주이씨 · 김녕김씨가 피란차 이곳에 와서 정착하였다.
  • 절골
옛날 이마을 뒷산인 대덕산 기슭에 큰절이 있었는데 그 절 밑에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절골이라 불리어 왔다고 한다. 벼농사를 주로 하고 있다.

5.4 내감리

  • 내감 · 웃감주
감주 골짜기의 4개의 부락 (내감 · 외감 · 중감 · 절골) 중에서 가장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웃감주 또는 내 감이라고 했다.
  • 진터 · 중감
감주 골짜기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하여 중감이라 했는데, 임진왜란 때 공장군과 박장군이 이곳에서 진을 친 사실이 있다 하여 진터라고도 한다.

5.5 가례리

  • 가례
원래의 가례 마을은 없어졌고, 현재의 가례 마을은 조선시대에 이주한 마을이다. 마을 모양이 가래같이 길게 생겼다 고 하여 가례라고 불려졌다고 한다.
  • 덕봉(德峰)
가례 마을 동쪽에 있는 덕봉산 서쪽 산기슭에 있는 마을로서 산의 이름을 따서 덕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석정(石亭)
가례 북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입구에 큰 느티나무가 있고 그 옆으로 큰 돌들이 산재해 있어 마을 이름을 석정이라 했으며, 옛날에는 이곳에 정자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여름철이면 휴식처로 이용되고있다.
  • 천동(泉洞)
가례 북쪽에 있는 마을로 이 골짜기에는 작은 샘이 있어서 천동이라고 하며 한 가구만이 살고 모두 타처로 이주하였다.

5.6 조룡리

  • 조룡골 · 원조룡 · 조룡(釣龍)
이 마을이 있는 골짜기에 용구라는 맑은 연못이 있어 용이 살았다고 하며, 용을 낚은 곳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조룡 이라 부르게 되었다. 1914년 쌍괴리·양지리·조현리·봉곡리를 합병하여 조룡리라 하였다. 지금도 못이 있었던 자리에는 작은 웅덩이가 남아 있다.
  • 양지마 · 양지촌(陽地村)
음지말 북쪽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로 양지쪽에 이루어진 마을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음지마 · 음지촌(陰地村)
섬실 중 가장 먼저 이루어진 마을로서 산 밑 응달에 위치하였다 하여 음지마 · 음지촌이라 칭하게 되었다.
  • 새터·신기(新基)
음지마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서 새로 터를 닦아 형성된 마을이라고 하여 새터 · 신기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 새땀 · 신촌(新村)
조룡 남동쪽에 있는 마을로서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해서 새땀 · 신촌이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
  • 웃새재 · 봉곡 · 상새재 · 상조현(上鳥峴)
봉곡사를 중심으로 하여 위쪽에 있다고 하여 윗재새 · 상새재 · 상조현이라 불러왔다고 하며 비봉산 밑에 있다.
본래 새재라 함은 무슨 새와 관련이 있기도 하겠지만 새-사이의 대응으로 보아 특정한 마을과 마을의 사이를 경계 짓는 작은 고개를 이른다. 문경 새재의 경우도 예외는 아 니다.
  • 아랫새재 · 하새재 · 하조현(下鳥峴)
봉곡사를 중심으로 하여 아래쪽에 있다고 하여 아랫새재 · 하새재 · 하조현이라 불러왔다고 한다.

5.7 추량리

  • 가래실 · 추량(秋良) · 주장 · 추장리
면소가 있는 관기리에서 남동쪽으로 약 1k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60여 가구 중 서산정씨와 성산배씨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마을은 정해표라는 사람이 개척하였 는데, 마을의 생김새가 떡가래같이 생겼다 하여 가래실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 솔밭골(松田)
지세필이라는 사람이 개척한 이 마을은 둘레에 소나무숲이 우거져 있다 하여 솔밭골·송전리라 이름지었다. 25가구가 살며 김해김씨가 많다.
  • 주막담 · 백석(白石)
면 소재지인 관기리에서 남동쪽으로 약 1.9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10여 가구 중 충주지씨와 김해김씨가 대부분이 다. 이곳은 대구·성주 등지에서 오는 행상들이 이 마을의 주막집에서 쉬어 갔다 하여 주막담이라고 불러 왔다. 1969년 김선출이 주막 뒤에 큰 바위가 있었기에 백석동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 지푸이 · 황성(黃城)
소가 있는 관기리에서 남동쪽으로 2.3k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15∼16가구 중 주로 충주지씨가 살고 있다. 이 마을은 황성골이라는 골짜 기 아래에 위치하고 있기에 황성골이라 하였으며, 골짜기가 매우 깊기때문에 지푸이라고도 한다. 여기 지푸이가 깊다는 뜻으로 쓰임을 보면 지품천은 곧 깊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는 셈이다.

5.8 관기리

  • 관기 · 관터
관터는 옛날 관기라 하였는데, 조선 선조때 관사와 여관이 있었고 관청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일제시대 관기로 변경되었다.
  • 웃장터 · 상시(上市)
맨 처음 시장이 섰던 곳이며 장의 위쪽이 된다고 웃장터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46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연안이씨·김녕김씨가 많이 살고 있다.
  • 아래장터 · 하시(下市)
장이 서는 곳으로 관기리의 일부로서 그 위치가 아랫쪽에 있다 하여 아랫장터라 부르게 되었다 하며, 86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김해김씨가 많이 살고 있다.
  • 장곡(長谷)
관기에서 남쪽으로 700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옛날 이곳에는 역이 있어 고을원이 여행할 때에 역마를 갈아 탔고 말을 먹였다. 또 마을 뒤 골짜기가 길어 장곡이라 불렀 다 한다.
  • 호미(好美)
마을 뒷산에 마치 미인이 머리를 산발한 것 같은 옥녀봉이 있으며, 마을 모양이 호랑이 꼬리 부분이라 하여 호미(虎尾) 마을이라 불리어 오 다가, 일제 시대에 호미(好美)로 변경 되었다. 또 우주촌이라 하여 아무때나 닭이 울면 마을을 지키는 호랑이가 도망 간다고 지금도 마을에서는 닭을 기르지 않고 있다.

5.9 화전리

  • 꽃밭 · 화전(花田)
면 소재지가 있는 관기리에서 남서쪽으로 약 2km 떨어진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다. 기와집으로 통일된 부촌으로 대학 생이 가장 많은 마을이다. 벼농사를 주로 한다.
  • 넘터골 · 외산(外山) · 늠텃골
면 소재지가 있는 관기리에서 남서쪽으로 약 3.6k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 안산 · 내산(內山)
관기리에서 남서쪽으로 약 3.5km, 새터에서 약 1k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 10여 가구의 마을이다. 장수황씨와 정안 이씨가 주로 살고 있으며, 벼농사를 주업으로 고추와 엽연초 재배를 하고 있다.
  • 새터(新基)
관기리에서 남쪽으로 2.5k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10여 가구 중 장수황씨가 많이 살고 벼농사를 비롯하여 엽연초 재배를 하고 있다.
  • 광신원(光信園)
면 소재지인 관기리에서 약 2.6km 정도, 화전에서 약 600m 거리에 위치한다. 1800년 성산 이씨가 개척하여 오돗골이라 칭하여 오다가 1969 년에 나환자가 입주하여 광신원을 조성하여 양계업을 주업으로 하고 있다.
  • 달매 · 월매(月梅)
면소가 있는 관기리에서 남서쪽으로 약 1k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40여 가구의 각성받이로 이루어진 마을 이다. 은진송씨가 마을을 개척하였는데, 월매 산하에 자리하였다 하여 달매 · 월매라 이름지었다고 전해 오며, 풍수설에 의하면 이 곳은 매화낙지(梅花落地)의 명당자리라 고 한다.
땅 이름의 일반적인 보기를 통하여 보면 달(月·達)이 들어가는 경우에는 '높다. 크다'의 뜻으로 쓰임이 많다. 달매는 달뫼로서 높은 산이란 말이요, 더 나아가서 달-닭-새 로 이어지는 바, 산악숭배 혹은 태양숭배와 무관하지가 않다.
  • 텃골 · 기동(基洞)
면소가 있는 관기리에서 남서쪽으로 약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 40여 가구의 마을이다. 밀양박씨와 다른 각성받이가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 다. 이 마을은 고려 때 화순최씨가 개척하였는데 원래는 텃골이라 하다가 기동으로 개칭하였다 한다.

5.10 문의리

  • 기릿마 · 기림마 · 내촌(內村) · 원문의
문의리의 중심인 임터의 서쪽 1500m의 거리에 있으며 20여 가구가 거주하며, 고랭지 채소 · 포도를 주로 생산하고 있다.
  • 꼭두바우 · 곡암(曲岩)
임기 북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앞에 굽은 바위가 있어서 마을 이름을 곡두바우, 곡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5.11 대리

  • 골담 · 곡촌(曲村) · 외촌(外村)
산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골담이라 했고 거창에서 김천으로 오는 국도 밖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외촌이라 부르기도 한다.
  • 예서목 · 예서(禮西·余西) · 예성동
대덕면에서 거창으로 넘어 가는 고갯마루 오른쪽에 있는 마을이며, 골담 서쪽마을이라 해서 예서라고 한다. 또 옛 성터가 마을 뒷산에 있다 하여 예 성동이라 쓰게 되었다고 한다.
  • 안마 · 댓골 · 대동(台洞) · 내촌 · 죽동(竹洞)
지형이 전대 모양이라서 대동이라고 하였다는 설도 있고, 대나무가 많아서 댓골 혹은 죽동 이라고도 하고, 국도 안 쪽에 위치한다 하여 안마 혹은 내촌이라고도 한다.

5.12 중산리

  • 중산리(中山里)
이곳은 남평문씨 · 서산정씨 · 김해김씨가 주로 사는 60여 가구의 마을이다. 면소가 있는 관기리에서 북동쪽으로 약 3km 정도 떨어진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 뒤 골짜기 중턱에서 맑은 샘물이 솟아나는데 피부병에 효험이 있어 팔도강산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었다고 한다.
  • 다부실 · 다화(多花)
조선 세종 때 송천상이 지례향교의 공자위패를 이곳에 봉안했다.
부자가 많이 나오라는 뜻에서 다부실이라 칭하였고, 1897년에 마을 뒤 산세가 심(心)자 모양이며 마음이 꽃처럼 아름다운 것이 제일이라는 뜻으로 다화라고 개칭하였다 한 다.

6 기타

  • 관내에서 감천이 발원한다. 감천김천시의 주요하천으로써, 서울로 따지면 한강 포지션으로 중요한 하천이다.
  • 관내에 학생 야영장이 있는데, 김천시인근에서는 야영장이라고 했지만 학교 수련회를 하는 곳이다. 김천시관내 초,중학교[3] 학생들은 이곳에서 많이 고통 받았다... 학교 수련회항목의 병크들이 이곳에서도 그대로 자행 되었다.
  1. 무주와 진안은 무진장(茂鎭長)으로 묶이기도 하는 이웃지역이지만, 김천시와 접한 곳은 무주군 뿐이고 대다수의 김천시민들은 무주군은 알아도 진안군은 잘 모른다. 진안군 시민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2.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영천리
  3. 고등학생들은 학업때문인지 수련회를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