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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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泳耉 1939년 10월 18일 ~

1 개요

대한민국의 변호사, 정치인, 관료이다.

1939년 강원도 정선군에서 태어났다. 체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배원으로 근무하다가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이후 군법무관으로 복무하였고 판사를 역임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강원도 영월군-평창군-정선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심명보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3년 민주한국당 정책심의회 부의장에 임명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한국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이후 민주화추진협의회에 가입하여 이돈명, 황인철, 홍성우, 조영래 등과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였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김영삼, 김대중 양 김씨의 후보 단일화를 촉구하였다.

양김 단일화에 실패하고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자 1988년 예춘호, 조순형 등과 한겨레민주당을 창당하였다. 1989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을 창설하고 초대 회장이 되었다. 그리고 민주정의당 김명섭 국회의원의 당선 무효로 치러진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을 재보궐선거에 범민주대책위원회의 추천으로 범 재야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하자 꼬마민주당에 입당하였다. 1991년 부총재를 역임하였다. 그러나 꼬마민주당이 평화민주당의 후신 신민주연합당과 합당하여 민주당이 출범할 때 따라가지 않았다.

노무현 정권 때인 2003년부터 2005년까지 국가정보원을 역임하였다.

2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1981제11대 국회의원 선거 (강원도 영월군-평창군-정선군)민주한국당-당선[1]
1985제12대 국회의원 선거 (강원도 영월군-평창군-정선군)민주한국당-낙선
19891989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을)무소속-낙선
  1. 민주정의당 심명보 후보와 동반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