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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芮春浩
1927년 2월 7일 ~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호는 목촌(牧邨)이다.

1927년 경상남도 부산부에서 태어났다.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63년 민주공화당 발기인으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이후 친 김종필계에 속하였다. 그 해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직할시 영도구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1969년 권오병 문교부장관 해임 건의안을 통과시킨 4.8 항명으로 의원총회에서 양순직, 박종태, 정태성, 김달수 의원과 함께 제명되었다. 이어서 3선 개헌 당시 김종필 계보로 당 사무총장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박종태, 양순직, 정구영 등과 함께 이를 반대했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신민당 김상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야인으로 있었다. 그러다가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부산직할시 중구-영도구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79년 6월 신민당에서 김영삼 총재 체제가 출범하자 한병채, 오세응, 박찬, 손주항, 이상민, 김현규 등과 신민당에 입당하였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신군부에 의하여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되어 고문당하고 옥고를 치뤘다. 1984년부터 재야를 대표하여 민주화추진협의회 부의장을 맡아 민주화운동에 힘썼다.

하지만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대중이 불출마 약속을 뒤엎고 독자적으로 평화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자 조순형, 유인태와 함께 한겨레민주당을 창당하였다. 그리고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 부산직할시 영도구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통일민주당 김정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정계에서 은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