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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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월드컵 국가대표팀 붕대투혼 전설 계보
이임생(1998)→황선홍(2002)→최진철(2006)

이름이임생 (李林生 / Lee Lim-Saeng)
생년월일1971년 11월 18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인천광역시 강화군
182cm
포지션수비수
학력부평동중-부평고-고려대
소속팀유공 코끼리/부천 SK (1994~2002)
부산 아이콘스 (2003)
스태프 경력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3~2005 / 트레이너)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6~2009 / 코치)
홈 유나이티드[1] (2010~2014 / 감독)
선전 FC (2015~ / 감독)
국가대표25경기
1998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김현석
FW
샤샤
MF
고종수
MF
유상철
MF
백승철
MF
안정환
MF
정정수
DF
안익수
DF
마시엘
DF
이임생
GK
김병지
2000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최용수
FW
김도훈
MF
안드레
MF
신태용
MF
전경준
MF
데니스
DF
강철
DF
이임생
DF
김현수
DF
마시엘
GK
신의손

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인. 인천광역시 강화군 출신이다.

2 선수시절 경력

2.1 프로 입단전

고려대학교 2학년이던 1991년 남북단일팀에 발탁되어, 포르투갈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월드컵에 출전하였다. 팀은 조별리그에서 포르투갈[2]에게 1:0 패배를 당하였으나 아르헨티나를 1:0으로 꺾고 8강에 올랐다.[3]그리고 8강전에서 브라질에게 1:5로 관광당하고 돌아왔다 아르헨티나전에서 이임생은 아르헨티나의 에이스였던 에스나이더를 대놓고 가격해서 쓰러뜨린 다음에 축구화로 사뿐히 즈려밟아서 바로 퇴장당했다. 이후 FIFA로부터 '2년간 프로 경기 출전금지'란 중징계를 당했지만, 이임생은 대학생으로 아마추어 신분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피해도 없었다.

2.2 클럽

1994년 유공 코끼리에 입단하며 프로생활을 시작하였다. 유공 코끼리가 부천 유공, 부천 SK로 이름을 바꾸는 동안에도 계속 팀을 지키면서 프로 생활의 대부분을 보냈다. 부천의 리그컵 3회 우승(1994, 1996, 2000년)과 K리그 2회 준우승(1994, 2000)을 이루는데 기여하였다. 부천에서 9시즌 동안 146경기에 출장해 8골을 기록하였다. 1998년과 2000년에는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이후 2003년 부산 아이콘스로 이적하여 25경기에 출장하였고, 시즌 종료 후 선수생활을 마감하였다.

2002년 7월 안양 LG 치타스의 경기 중 이영표 선수와 갈등이 있었다.# 경기 중 이영표가 거친 플레이를 하자 후배주제에 건방지다며 달려들어 밀친다음 후려치고 언성을 높였다. 이영표는 이내 90도로 고개 숙여 사과하며 마무리지었다. 사실 진짜 황당한건 심판과 중계진의 태도였다. 심판은 경기중에 상대 선수를 대놓고 가격했음에도 퇴장은 고사하고 카드 한장 안주고 그냥 넘겼고 중계진은 새까만 후배가 선배에게 저러면 안된다며 이임생의 손찌검이 당연하다는 듯한 뉘앙스의 멘트를 쏟아냈다.

2002 멤버들의 위상이 말 그대로 하늘을 찌르고 있던 시점이었는데다 심판의 조치도 적절치 못해 오랫동안 체육계 똥군기의 상징쯤으로 여겨져 비난도 많이 받았고 이임생하면 프랑스 월드컵 붕대투혼이 아니라 이 사건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많다.

2.3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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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0월 21일 아랍에미리트전에서 국가대표로 데뷔하였다. 이후 1998년 프랑스 월드컵, 2000년 아시안컵 등에 출전하였다. 특히, 프랑스 월드컵 조별예선 3차전인 벨기에전에서 머리에 부상을 입었지만, 붕대 투혼을 불사르며 큰 인상을 남겼다. 이때는 다들 알다시피 거스 히딩크의 네덜란드전에서 5:0으로 참패해 차범근 감독까지 경질당한 상황에서 마지막 젖먹는 힘까지 짜내며 잔뜩 구겨진 국가적 자존심을 설욕하기 위해 죽어라 뛰었던 경기이다. 저 붕대 투혼을 보여준 이유는 동료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것이라 생각될 수도 있으나 실은 이미 앞서 부상으로 3명씩이나 교체되어서 교체 카드가 없어서... 이때 그는 피가 철철 흐르는데도 의료진에게 "괜찮다. 빨리 해라..."라고 했다고 카더라. 특히 이 경기 후반전의 김태영, 유상철, 이임생이 차례로 몸을 던지는 육탄 수비몸빵축구는 도저히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이걸 생각했다면 정말 큰 실례이다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명 장면. 결국 후반전에 유상철이 동점 골을 넣으며 벨기에전은 무승부로 끝냈다. 여담이지만 위의 사진은 당시 애국가의 한 장면에 나오기도 했다고 카더라.

3 지도자 생활

은퇴이후 2003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트레이너직을 맡으며 스태프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2006년 수원의 코치로 부임하여 2009년까지 활동하였다. 2010년 싱가포르 S리그의 홈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부임후 2011년과 2013년 리그에서는 준우승을 거두고, 싱가포르컵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2014년 12월 21일 인천 유나이티드의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나 사흘 뒤인 24일 감독을 맡지 않겠다고 밝혔다. 김봉길 전 감독의 해임 경위를 뒤늦게 알고는 이렇게 들어가는 것이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폭탄선언' 이임생 "인천 감독 안 맡는다" 이후 2015년 4월 선전 FC의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1. 싱가포르 S리그 소속팀
  2. 1989, 1991 청소년 월드컵을 2연패한 당시 포르투칼 청소년팀이 바로 루이스 피구가 이끌던 황금 세대로 이후 포르투갈 축구의 전성기를 이끈다.
  3. 참고로 이당시 청소년 대회는 16개팀이 출전하여 예선전 후 바로 8강 토너먼트로 올라가는 형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