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얀 다미아노비치

FC 서울 2017 시즌 스쿼드
1 유현 · 2 황현수 · 3 심우연 · 4 김동우 · 5 오스마르 · 6 주세종 · 7 김치우 · 8 이상호 · 9 데얀 · 10 박주영 · 11 윤일록 · 13 고요한 · 14 조찬호 · 15 김원식 · 16 하대성 · 17 신광훈 · 19 심상민 · 20 정인환 · 21 양한빈 · 22 윤승원 · 23 이석현 · 25 전호준 · 26 김주영 · 27 김정환 · 29 황기욱 · 30 김철호 · 31 손무빈 · 32 김한길 · 33 박민규 · 34 마우링요 · 35 임민혁 · 36 박성민 · 38 김근환 · 40 김원균 · 43 윤종규 · 45 신성재 · 55 곽태휘 · 88 이규로
* 이 표는 간소화된 버전입니다. 스쿼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주세요.
* 타 팀으로 임대 간 선수는 제외되었습니다.
* FC 서울 스쿼드에 변동이 있으면 두 틀 모두를 수정해주세요.
FC 서울 No. 9
데얀 다미아노비치[1]
(Dejan Damjanović / Дејан Дамјановић)
생년월일1981년 7월 27일
국적몬테네그로
출신지모스타르
포지션공격수
신체 조건187cm, 81kg
소속 팀FK 신젤리치 베오그라드 (1996~1999)
FK 젤레즈니크 (2000~2003)
FK 라스타 스렘치차 (임대) (2001~2002)
FK 스렘 베오그라드 (임대) (2002~2003)
FK 베자니야 (2003~2006)
FK 라드니치키 베오그라드 (임대) (2004~2005)
알 아흘리 SFC (임대) (2006)
인천 유나이티드 (2007)
FC 서울 (2008~2013)
장쑤 슌톈 (2014)
베이징 궈안 (2014~2015)
FC 서울 (2016~)
국가 대표30경기 8골
2012년 K리그 MVP
이동국(전북 현대 모터스)데얀 다미아노비치(FC 서울)김신욱(울산 현대)
2011~2013년 K리그 득점왕 [2]
유병수(인천 유나이티드)데얀 다미아노비치(FC 서울)산토스(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2년 K리그 팬타스틱 플레이어상
이동국(전북 현대 모터스)데얀 다미아노비치(FC 서울)김신욱(울산 현대)
2010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김은중
FW
데얀
MF
몰리나
MF
윤빛가람
MF
구자철
MF
에닝요
DF
홍정호
DF
아디
DF
사샤
DF
최효진
GK
김용대
2011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이동국
FW
데얀
MF
염기훈
MF
윤빛가람
MF
하대성
MF
에닝요
DF
박원재
DF
곽태휘
DF
조성환
DF
최철순
GK
김영광
2012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이동국
FW
데얀
MF
몰리나
MF
하대성
MF
황진성
MF
이근호
DF
아디
DF
정인환
DF
곽태휘
DF
김창수
GK
김용대
2013 K리그 클래식 베스트 일레븐
FW
김신욱
FW
데얀
MF
고무열
MF
이명주
MF
하대성
MF
레오나르도
DF
아디
DF
김치곤
DF
김원일
DF
이용
GK
김승규
챔피언, 언제나 그렇듯이.[3]

1 개요

몬테네그로 특급
FC 서울의 레전드[4] 이자 2016년 현재까지 K리그 역대 최고의 공격수, 기록 제조기.[5]

몬테네그로축구 선수. 별명은 몬테네그로 특급, 데얀민국. K리그 통산 외국인 선수 최다 득점, 역대 최다 득점 2위에 랭크된 내국인 외국인 선수 통틀어서 K리그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다. K리그 통산 기록은 257경기 154골 38도움.[6] AFC 챔피언스리그 통산 48경기 24골.[7]

2 K리그 입성 이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모스타르 출생이다. 모스타르는 오늘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속해 있는 지방이지만 내전 때문에 세르비아로 피난 가서 그곳 국적을 취득했다.

1996년 FK 신젤리치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해 2000년 FK 젤레즈니크로 이적했다. 임대 생활이 상당히 길고 다채로웠다. 2001년 FK 라스타로 임대 이적하여 21경기에 출전하여 10골을 넣었고, 2002년 다시 FK 스렘으로 임대 이적하였지만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하며 시즌이 끝난 뒤 복귀했다. 2003년 FK 베자니야로 이적하여 활약하였으며 시즌이 끝난 뒤 FK 라드니치키로 임대 이적하였지만 역시 뚜렷한 활약 없이 시즌 종료 후 복귀했다. 2006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프리미어 리그의 알 아흘리 SFC로 임대 이적해 8경기에 출전하여 7골을 넣고 소속팀에 복귀했다.

이 시절을 보면 그야말로 지겹게 해외 및 자국 리그[8]의 여러 팀을 오고갔는데, 이게 실은 세르비아 조폭 보스들이 운영하는 축구단 문제가 컸다고 한다.[9] 그야말로 선수는 개무시하고 조폭 보스인 구단주들이 서로 이해관계가 얽혀있던 타 구단에게 마치 물건 빌려주듯이 선수 단기간 임대를 마음껏 시키면서 임대 이적료(?)를 챙겼다. 그래서 세르비아 많은 선수들이 이런 신세를 견디다 못하고 선수 생활을 때려치웠다고 한다. 하지만 데얀은 꾹 참고 이런 지겨운 연속 임대생활을 버텼다.

3 K리그

3.1 2007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돌아온 데얀에게 소속팀이던 FK 베자니야 구단주가 자유 이적을 허용했다. 이 구단주는 그나마 양심이 있어서, 군소리 없이 묵묵하게 따르던 데얀을 그동안 눈여겨봤는데, 그 구단주가 병이 있어서 시한부 인생이었기에 죽기 전에 자유 이적을 해주고 얼마 못 가 눈을 감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해외에서 제대로 뛰어보자고 했는데, 그만 그동안의 지겨운 임대 경력을 보고 많은 해외 구단에선 눈여겨보지 않아 실업자가 되거나 아니면 임대 전문이라도 다시 해야 할 신세가 될 처지였다.

그러나 2007년 인천 유나이티드K리그의 전설적인 외국인 스트라이커 샤샤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데얀을 영입한다.[10]

구단의 기대에 멋지게 부응한 데얀은 그해 26경기에서 14골 1도움의 기록으로 까보레(18골 8도움), 데닐손(16골)에 이어 득점 랭킹 3위에 올랐다.[11] 이러한 활약은 2007시즌 내내 공격수들의 줄부상으로 빈공에 시달려야 했던 FC 서울의 눈을 사로잡았고 2008년 현금 20억 원+이정열, 김태진 선수 두 명 이렇게 대략 25억 원의 이적료를 인천에 주고 데얀을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3.2 2008년

2008시즌 초반 골을 기록하지 못하며 거품 논란에 시달렸으나, 7월 5일 포항 스틸러스전에서 터뜨린 해트트릭을 시작으로 무시무시한 득점력을 선보이며 시즌 내내 꾸준히 활약했다. 꾸준함과 팀 기여도만 따지면 그 해 득점왕인 성남의 두두보다 우위였다.[12] 이해 기록은 29경기 15골 6도움으로 두두에 이은 득점랭킹 2위로 팀이 챔피언 결정전까지 진출하는 데 크게 기여하며 이운재와 함께 시즌 MVP를 경쟁했다. 하지만 팀이 준우승에 그치며 MVP는 이운재, 베스트 일레븐에서는 에두에게 밀렸다.

3.3 2009년

2009 시즌에도 여전히 물오른 감각을 과시하며 연일 득점포를 가동했고 23경기에서 14골 1도움을 기록하며 2년 연속 득점 순위 2위에 올랐다. 콩라인 리그뿐 아니라 국제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는데 5월 5일 스리위자야 FC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 다섯 번째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터뜨려 팀의 5-1 승리에 공헌하는 등 팀의 8강 진출에 한몫 단단히 했다.

하지만 이후 K리그 시즌 마지막 경기인 전남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 페널티킥 실축 이후 후반 막판 선제골을 넣고 난데 없이 당시 전남 감독이던 박항서 앞에서 유니폼 탈의(골 세레머니 위반 경고 1회) 후 유니폼을 내팽개치는(비신사적인 행위 경고 2회) 뻘짓을 하며 경고 2회를 한 번에 받고 퇴장(...). 이후 이후 서울은 전남에게 동점골을 허용했고 결국 포항 스틸러스에 밀려 리그 3위로 추락한 다음 "하필이면 6위를 찍은 전남과 다시 만나는 바람에" 어그로가 잔뜩 올라있던 전남에게 플옵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끝에 탈락하고 만다. 데얀은 지난 번의 퇴장으로 플레이오프에선 뛰지도 못했고 여러 모로 FC 서울 시절의 흑역사.

2009년 7월 4일 맨유와의 친선 경기에선 2골을 터뜨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관심을 받기도 하였으며, 2009년 11월 세뇰 귀네슈 감독이 팀을 떠나 트라브존스포르 감독으로 취임하자 터키 언론들은 데얀 또한 같이 이적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하였지만 서울에 남는 쪽을 택했다.

3.4 2010년

4월 4일 수원전에서 4만 관중을 앞에 두고 어시스트 해트트릭, 5월 5일 성남전에서는 6만 관중 앞에서 3골을 작렬하며 한 시즌에 득점 해트트릭과 도움 해트트릭을 모두 기록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2010 시즌 K리그 성적은 28경기 13골 7도움(리그컵 포함시 35경기 19골 10도움)으로 10-10클럽에 가입하며 팀의 공격을 진두지휘 했다.

3.5 2011년

2011 시즌에는 한국에 온 이래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공격의 핵으로 자리잡았다. 더불어 이때부터 서울은 데얀 없으면 공격력이 급감되는 팀이 되고 말았다... 시즌 29라운드, 마지막 한 경기를 남겨 놓고 사실상 득점왕 확정. 마지막 30 라운드를 남겨 놓고 경기당 0.8골 기록에 도전했으나 마지막 경남전에서 골을 추가하지 못해 29경기 23골 7도움을 기록, 경기당 0.79골로 득점왕을 차지했다.

같은 팀 몰리나와 더불어 데몰리션(demolition, 파괴) 콤비로 미친 활약을 보였는데. 서울은 한정판으로 데몰리션 스카프까지 만들었다.

2011년까지 K리그 통산 성적(리그컵 포함)은 158경기 90득점 27도움. 부상 등의 변수가 없는 이상 샤샤의 외국인 선수 최다골(104골) 기록은 무난하게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3.6 2012년, 데몰리션의 절정

그러나...
2011년 연말부터 데얀 이적설이 꾸준히 나돌더니, 급기야 중국 광저우 R&F FC가 서울에 440만 달러 오퍼를 넣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서울은 이를 거절했으며 이 과정에서 이적을 원했던 데얀과 불화를 빚는다.

3월 4일 대구 FC와 원정 1라운드 경기에서 느슨한 플레이를 펼치다 전반 22분만에 교체당한다. 최용수 감독은 태업이라며 데얀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이후 자신의 태도에 대해 반성하며 기자회견을 통해 최용수 감독과의 불화가 정리되었음을 확인시켰다.

14라운드, 친정팀인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홈경기에서 하대성이 얻어낸 PK를 성공시키며 K리그 173경기 만에 역대 최단 기간 100득점에 성공했다. 거기다 경기 종료를 앞두고 한 골을 추가하며 101호골 달성. K리그 역대 7위 득점 기록 보유자가 됐다. 1위 이동국과는 20여 골 차이이고 2살 아래인지라 향후 역대 최다골 기록 경신이 기대된다.

그리고 7월 25일. 대전과의 경기에서 시즌 14호골이자 통산 105호골을 기록하며 샤샤가 가지고 있던 K리그 외국인 선수 최다골 기록을 넘어섰다. 이제 데얀의 한 골 한 골이 K리그의 새로운 역사가 되기에 이르른 것이다. 최종 성적은 42경기 31골 4어시스트. 김도훈이 가지고 있던 기존 시즌 최다골(28골) 기록을 경신했으며 K리그 최초로 2년 연속 득점왕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시즌 MVP, 베스트 11, 인기상을 석권하며 공로를 인정받았다.

3.7 2013년, 아챔과 월드컵예선, 그리고 마지막 시즌

11월 28일까지 18골 5도움을 추가해서 통산 140골 36도움을 기록중이다. 19골 6도움을 기록 중인 김신욱에 이어 리그 2위이며 남은 경기에서 역전할지 관심사. 그리고 결국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마지막 라운드에서 골을 넣어 19골로 김신욱과 타이를 이뤘고 36경기 출전한 김신욱에 비해 29경기밖에 출전하지 않아 득점왕을 거머쥐었다. 이로써 데얀은 K리그 최초 3연속 득점왕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을 세우고 시즌이 끝난지 한달이 지난 12월 말부터 데얀과 장수 쑨톈과의 이적설이 불거졌다. 비단 데얀 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인 선수들인 몰리나아디 역시 이적과 은퇴로 팀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루머가 돌았다. 처음에 서울 프런트는 이적 제의가 들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데얀을 이적시킬 생각이 없다고 했으나, 12월 27일에 그간 공로를 인정하여 대승적 차원에서 이적을 허용한다라는 입장을 내 사실상 데얀의 이적을 허용한다고 했다.광저우의 50억 오퍼 거절했을 때랑 말이 다른 것 같지만 그냥 넘어가자

이로써 데얀은 과거 라데의 뒤를 이어 K리그 외국인 선수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5년에 걸친 서울 생활을 정리하게 되었다.

3.8 2014년, 중국 슈퍼 리그

장쑤에서는 전반기 11경기 5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장쑤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여 7월 17일 베이징 궈안으로 이적했다. 이로서 서울 시절 동료였던 하대성과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썩 만족스럽지 못했던 장쑤 시절에 비해 베이징에선 훨씬 안정된 모습으로 팀에 녹아들며 해트 트릭을 기록하고 득점 5위권에 진입하는 등 잘 나가고 있다.

3.9 2015년

베이징 궈안에서 2015시즌 16골을 터뜨리며 득점 3위에 랭크되었지만 팀은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하여 팀의 감독을 경질하고 팀을 리빌딩한다고 한다.이 여파로 본인도 FA가 되었고, 좋은 기억이 있는 K리그 복귀를 원하고 있으며, 몇몇 구단과 접촉 중이라고 한다.

전북 현대서울 이랜드 등이 영입에 관심이 있다고 밝힌 가운데, 12월 9일 데얀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business trip"이라는 글과 함께 서울행 비행기 티켓과 여권 사진을 올려 K리그 팬들의 시선을 주목시켰고 입국날이 되자 친정팀 FC 서울로의 복귀가 임박했다는 기사가 떴다.

그러나 팬들을 간보는(...) 이런 기사도 나오고 있어 아직은 오리무중이며, 외국인 쿼터가 꽉 찬 서울로서는 마우리시오 몰리나의 거취가 선결 문제일 듯하다.

2015년 12월 28일, 서울이 데얀과의 2년 계약을 공식 발표하였다. 몰리나와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데얀을 들여온 셈. 서울 팬들은 환영하면서도 30대 중반에 접어든 나이 때문에 반쯤 도박수라는 의견이 많다. 대체 누가?? 2살 위 이동국을 고려하면 2년간 활약해주는 게 불가능할 건 없지만 에닝요와 루이스의 사례를 볼 때 나이는 결코 무시 못 할 요소다.

3.10 2016년, 다시 FC 서울이다!

등 번호 9번을 배정받았다. 10번을 원했지만 박주영에게 양보한 듯하다. 이로서 데얀은 서울에서 9번, 10번, 11번을 전부 달아보게 되었다.

프리시즌 옌볜 푸더과의 친선 경기에서 첫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였다. 데얀의 로빙 패스를 윤주태가 골로 연결지어, 데얀이 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감바 오사카와의 친선 경기에서는 신진호의 패스를 골로 연결하여 첫 득점을 기록하였다.

이후 주빌로 이와타와의 5번째 연습 경기에서 전반 25분 선제골을 기록하면서 연습 경기 두 번째 골을 넣었다.

2월 23일 ACL 조별리그 1라운드 부리람 유나이티드 원정에서 선발 출장했고 전반 27분 아드리아노의 선제골을 환상적인 패스로 도우며 녹슬지 않은 실력을 보여줬다. 후반 21분에는 반대로 아드리아노의 결정적인 패스를 밀어넣으며 자신도 서울 복귀골을 신고했다. 축구 센스가 여전히 살아있었고 아드리아노와의 콤비 플레이가 잘 맞았기 때문에 팬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일각에서는 데몰리션의 뒤를 잇는 데드리아노라는 조합으로 부르는 중.

3월 1일 ACL 조별리그 2라운드 산프레체 히로시마전에도 선발 출장하였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이타적인 플레이로 4:1 대승에 기여했다.

3월 16일 ACL 조별리그 3라운드 산둥 루넝 원정에서도 선발 출장했고 후반 22분 신진호의 패스를 받아 팀의 세번째골을 넣었다. 후반 26분엔 아드리아노의 골을 도우며 1골 1도움을 올렸다. 팀은 4:1로 이겼다. 선제골을 제외하면 모두 데얀을 거치며 만들어진 골이었기에 고무적이다.

3월 20일 K리그 클래식 2라운드 상주 상무와의 홈 경기에 선발출장해서 시종일관 좋은 모습을 보였다. 훌륭한 키핑력으로 공격의 흐름을 이어주는 등 좋은 모습을 보인 끝에 결국골로 보상받았다.다카하기0.9골

4월 2일 K리그 클래식 3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홈 경기에 선발 출장하였고 전반 12분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페널티킥은 박주영이 성공시켰다.[13] 전반 45분에는 다카하기의 패스를 이어받아 날린 슈팅이 골대를 맞고 나왔다.

4월 16일 K리그 클래식 6라운드 수원 FC와의 홈 경기에 선발 출장하며 서울 유니폼을 입고 200경기 출전을 달성했다. 아디만이 가지고있던 외국인 선수 200경기 출장기록[14]을 달성했고 구단 내에서는 여덟 번째로 많은 출장을 하였다.[15] 후반 11분 신진호의 로빙패스를 이어받아 200경기 출장을 자축하는 팀의 세 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신진호 역시 군 입대를 앞두고 치르는 마지막 경기였기 때문에 아주 뜻깊은 골이었다. 데얀의 쐐기골로 승기를 잡은 후반 20분 최용수 감독은 데얀을 윤주태와 교체하며 체력 안배를 시키는 여유를 보였다.

4월 20일 ACL 조별리그 5라운드 부리람 유나이티드와의 홈 경기에 선발 출장하여 헤딩으로 선제골을 기록했다. 이 날 역시 골뿐만이 아니라 내려와서 연계플레이, 수비가담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등 모범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5월 8일 K리그 클래식 9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와의 홈 경기에 선발 출장하였다. 주장 오스마르와 부주장 유현이 결장해서 데얀이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섰다. 0-2로 끌려가던 후반 28분 환상적인 프리킥 골을 넣으며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평소 프리킥을 차지 않았던 데얀이지만 책임감을 갖고 멋진 집중력으로 성공시켰다. 팀은 데얀의 골에 힘입어 동점을 만들기 위해 맹공을 퍼부었으나 오히려 추가골을 얻어맞으며 1-3로 패배하였다.

5월 25일 ACL 16강 2차전 우라와 레즈와의 경기에 선발 출장하여 1차전 0:1 패배를 원점으로 만드는 선제골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경기 중 몇번의 좋은 찬스를 무산시키기도 하며 팬들의 우려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평소와는 달리 무리한 슈팅을 남발했고 특히 전반 22분에 옆에 오스마르가 완벽히 비었는데 슈팅을 때려서 기회를 무산시켰다. 어쨌든 82분을 소화했고 박용우와 교체되었다.

6월 12일 K리그 클래식 13라운드 수원 FC와의 원정 경기에 선발 출장하여 후반 2분 다카하기의 골을 어시스트했다. 골은 없었지만 경기 내내 동료들을 활용하는 멋진 연계플레이를 펼쳤고 이에 경기 MVP로 선정되었다.

13라운드 활약에 힘입어 K리그 클래식 13라운드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6월 15일 K리그 클래식 14라운드 광주 FC와의 홈 경기에 선발 출장하여 전반 41분에 선제골, 후반 25분 결승골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팀은 데얀의 활약에 힘입어 3-2로 승리했다.

광주전 멀티골 활약으로 K리그 클래식 14라운드 MVP에 선정되었다.

7월 20일 K리그 클래식 21라운드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홈 경기에 선발 출장하여 전반 8분 동점골을 터뜨렸다. 그러나 팀은 2골을 더 허용하며 2-3으로 패배했다.

7월 31일 K리그 클래식 23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와의 홈 경기에 선발 출장하여 후반 31분 쐐기골을 터뜨렸다. 이 날 경기에서 골뿐만 아니라 볼키핑,패스능력등을 마음껏 뽐내며 실력 발휘를 했다.

8월 3일 K리그 클래식 27라운드[16] 성남 FC와의 원정 경기에 선발 출장하여 0-1로 뒤지고있던 후반 28분 윤일록의 환상적인 드리블에 이은 패스를 받아 발만 갖다대며 동점골을 터뜨렸다. 이 골은 K리그 통산 150번째 골로 역대 최단경기(254경기) 150골 기록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후반 80분 김치우의 긴 헤딩 패스를 부드럽게 받아 그대로 집어넣어 팀의 2-1 역전승을 이끌었다.

성남전 멀티골 활약에 힘입어 K리그 클래식 27라운드 베스트11에 선정되었다.

8월 10일 K리그 클래식 24라운드 상주 상무와의 원정 경기에 박주영, 아드리아노와 함께 선발출전했다. 전반 12분 아드리아노가 중앙에서 슬쩍 밀어준 볼을 투터치 이후 가볍게 골키퍼 반대편으로 밀어넣어 선제골을 기록했다. 이후로 경기 내내 몇 차례 좋은 찬스를 만들어냈고 경기 MOM에 선정되었다. 3경기 연속 MOM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다음 경기인)슈퍼매치 많이 와주세요란 멘트를 남겼다.

8월 13일 K리그 클래식 25라운드 수원 삼성과의 홈 경기에 선발 출전해서 전반 26분 윤일록선제골을 어시스트했다.

8월 17일 K리그 클래식 26라운드 전남 드래곤즈와의 원정 경기에 선발 출전해서 전반 26분 김치우의 환상적인 크로스를 헤딩으로 받아넣으며 선제골을 기록했다. 후반 9분에는 윤일록의 패스를 이어받아 아크 정면에서 오른발 슈팅으로 골망을 가르며 멀티골까지 넣었다. 팀은 데얀의 멀티골 활약에 힘입어 4-1 대승을 거두었다.

전남전 멀티골 활약에 힘입어 K리그 클래식 26라운드 MVP에 선정되었다.

8월 24일 ACL 8강 1차전 산둥 루넝과의 홈 경기에 선발 출장하여 전반 18분 박주영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받아넣으며 선제골을 기록했다. 후반 23분에는 수비수를 모두 속인 멋진 힐킥으로 아드리아노의 골을 도왔다. 이 날 경기에서 데얀은 1골 1도움인게 아쉬울 정도로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산둥의 수비수들은 데얀의 볼 소유 능력에 쩔쩔맸고 번번이 압박을 벗겨낸 데얀은 원하는 곳으로 마음껏 패스를 보내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4 국가대표

2008년 10월 15일 레체에서 열린 이탈리아와의 2010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몬테네그로 국가대표팀에 데뷔하였으며, 2009년 6월 6일 라르나카에서 열린 키프로스와의 2010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2골을 터뜨리며 A매치 첫 득점을 올렸다. 그 뒤 2010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출전하여 활약했으나 월드컵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K리그로 이적한 이후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선수 중 하나이다.[17]

그러나 이후 장거리 이동 때문에 경기력이 떨어진다는 판단으로 소속팀 FC 서울에 충실하고 싶다며 국가대표 차출을 거부했는데... 2011년 너무나 환상적인 활약을 이어가다보니 결국 유로 예선에 차출되었고 웨일스와의 예선전에 후반 교체 출장하여 도움을 기록했다.

몬테네그로가 유로 2012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상황이라 플레이오프 결과에 따라 본선에서도 뛸 가능성이 남아 있었고 데얀은 체코와의 1차전에서 선발로 활약하기도 했다. FC 서울은 K리그 6강 플레이오프 기간과 유로 플레이오프 기간이 겹쳐서 곤란한 상황이었지만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 싶은 그의 마음을 이해한 최용수 감독은 선선이 데얀을 보내주었다. 그러나 몬테네그로는 전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본선 진출 실패. 데얀은 결정적인 찬스에서 크로스바를 맞추면서 눈물을 삼켜야 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예선에서는 조커로 활약, 우크라이나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어 국가대표 3호골을 넣었으며 3월 27일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0-1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 후반 조커로 투입되어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고 후반 31분 집념의 동점골까지 넣으며 감독의 기대에 부흥했다. 특히 경기 전 인터뷰에서 "한국 축구의 강함을 알리겠다"라고 말했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버렸다. 본인의 국가대표 4호골이 정말 중요한 경기에서 터졌다. 그 후 9월 7일 폴란드전과 12일 잉글랜드전에서 한골씩 추가했지만 몬테네그로는 우크라이나에게 밀려 사실상 탈락했다.지못미

5 플레이 스타일

가장 큰 장점은 뭐니뭐니 해도 타고난 골잡이이라는 점. 187cm의 장신이지만 본래 포지션은 쉐도우 스트라이커로 포스트 플레이나 드리볼, 전체적인 스피드는 리그 최고의 골잡이라는 명성에 비하면 평범한 편. 하지만 동물적인 움직임과 정확한 위치 선정능력을 가지고 있고 문전 어떤 위치에서든 골로 연결지을수 있는 탁월한 슈팅 능력과 무시무시한 결정력의 소유자이다.

슛 파워가 강한 선수는 아니지만 냉철한 판단력으로 문전에서 절대 흥분하지 않고 침착하게 상대 수비의 움직임, 골키퍼와의 각을 계산하며 완급을 조절하는 모습이 일품.[18] 또한 볼을 잡았을때 순간 스피드는 상당히 뛰어난 편이며 타고난 유연성을 바탕으로한 볼 키핑이 뛰어나다.

수비에도 적극 가담할 정도로 활동량도 많고 팀의 No.1 스트라이커 임에도 이타적인 성격이며 패싱력과 시야도 나쁘지 않아서 어시스트가 꽤 많다. K리그에서 기장 2선 플레이를 잘하는 선수로 데얀이 상대 수비수를 끌어내어 생긴 공간으로 몰리나가 침투해 들어가는게 11~12시즌 서울의 주된 공격루트였다.[19] 기복 없이 항상 꾸준하다는 것도 큰 장점.

단점이 있다면 원톱으로 나설 경우 상대의 거센 압박에 고전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 이 약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11시즌 이후의 슈퍼매치. 마토, 보스나 등 강력한 하드웨어를 바탕으로 거친 압박을 보여주는 수비수들에게 밀려 고전하곤했다.[20] 대신 투톱으로 앞에서 뛰어줄 제대로 된 파트너(정조국)가 있는 경우는 슈퍼매치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6 그외

  • 국가대표에 승선할 정도로 득점력이 있는 선수지만 이상하게도 라이벌인 수원 삼성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2008년과 2011년에는 같은 동유럽 출신인 마토에게 묶여 별 활약이 없었고 마토가 떠나고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했더니, 2012년 첫 라이벌전에서 90분동안 유효슈팅 1번이라는 기록을 남기며 팀의 대 수원전 5연패를 지켜봐야만 했다. 그 밖에 곽희주 선수를 K리그에서 가장 어려운 수비수라고 인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기록을 보면 박주영과 함께 통산 6골로 슈퍼매치 역대 득점 공동 1위에 올라 있다. 거기다 도움 역시 4개로 단독 1위. 슈퍼매치에서 약하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인 셈. 그리고 10시즌까진 수원전에서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11시즌 이후 수원에 부쩍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그를 원톱으로 기용하는 최용수 감독의 전술탓도 있다. 교체 투입된 정조국의 뒤에서 쉐도우 스트라이커로 뛴 12시즌 마지막 슈퍼매치에서는 골을 넣진 못했지만 좋은 기회를 많이 만들었고 팀도 연패에서 벗어났다. 애당초 서울이 슈퍼매치에서 호구잡힌건 윤성효 감독이 부임하고난 뒤였다. 그 전에는 전적이 아주 나쁜 편은 아니었다. 정리하자면 수원을 상대로 그리 못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라이벌전에서 그만큼 골잡이로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정확히 말하자면 수원을 상대로 부진했다기보다는 마토와 곽희주를 상대로 부진했다. 그리고 슈퍼매치에 약하다는 인식은 2008년 양팀이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났을때 1차전에서 부진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1차전 전반전에서 완벽한 일대일 찬스를 두차례나 날려버렸다. 두번 다 역습이었는데 첫번째 장면은 이청용이 오프사이드를 피해 절묘하게 내주었으나 퍼스트터치(트래핑)에 실패해서 이운재의 러시에 가로막혔다. 두번째 장면은 기성용과 스위칭하면서 이운재와 마주했는데 왼발로 슛할 동작에서 왼발로 땅을 차고 앞으로 넘어져버렸다. 그리고 2차전에서는 이렇다 할 기회가 없었다. 만약 1차전에서의 두찬스를 골로 연결시켰다면 팀의 우승은 물론이고 에두에게 넘어간 베스트11과 이운재에게 넘어간 MVP도 데얀의 차지였을 것이다.
다만 2015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베이징 소속으로 조별리그에서 수원 삼성을 만나 홈, 원정 각각 한 골씩을 기록하였다. 덕분에 베이징은 수원 상대로 1승 1무를 기록, 조별예선 1위로 16강에 올랐다.16강에서 전북을 만난 베이징은 한번도 못이기고 8강 진출에 실패했다.
  • 외국인 선수지만 팀에 대한 애착은 누구보다 강한 편이며 동료들과 사이도 좋다. 심지어 팀을 위해 국가대표에도 안 나가는 선수가 데얀이다. 가끔 세르비아 욕도 가르쳐주는 모양.
  • K리그에서 뛰는 동유럽 출신 선수들과 이태원동에서 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모임의 리더격. 전북에서 뛰었던 로브렉과도 종종 통화하며 친하게 지냈고 가까운 인천에서 뛰었던 코로만의 경우 경기 안 할 땐 서로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하고 같이 닭갈비도 먹으러 갔다고. 제파로프가 처음 서울에 올 때 영어를 잘 못하는 그의 적응을 도와준 것도 데얀이다.
  • 인터뷰를 할 때는 세르비아어가 아니라 유창한 실력의 영어로 말한다.
  • 2009년 5월 31일 세르비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슬하에 딸 공주마마 페트라와 아들 세자저하 발샤를 두고 있다.
  • 서울팬들에게 멘탈갑으로 칭송받는 그조차도 트인낭의 마수를 피해갈 수 없었다. 2013년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렸는데 수많은 팬들[21]이 경기장으로 몰려들면서 정작 서울 선수단 버스가 교통정체에 묶여 경기장에 입장하지도 못하는 촌극이 벌어졌다.[22] 이 때 데얀이 불평하는 트윗을 올렸는데 교통경찰들을 비하(stupid)하는 문구가 있어서 논란이 되었다. 선수단 버스가 경기장에 늦게 도착했다면 교통체증을 예상해서 일찍 출발하지 않은 구단의 잘못이지 경찰이 무슨 죄가 있느냐, 특별대접해주길 바라는 것이냐며 비판적으로 보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 선수들이 체력문제로 힘겨워하는 한국의 여름철에 유난히 강하다. 봄에 조금 폼이 안 좋더라도 여름이 되면 귀신같이 회복해서 매 경기 골을 집어넣어 여름엔 역시 데얀이라는 평가가 있다.

7 같이 보기

FC 서울 2017 시즌 스쿼드
등번호이름포지션국적생년월일비고
1유현GK30px1984년 8월 1일
2황현수DF30px1995년 7월 22일
3심우연DF30px1985년 04월 03일
4김동우DF30px1988년 2월 5일
5오스마르MF30px1988년 6월 5일
6주세종MF30px1990년 10월 30일
7김치우DF30px1983년 11월 11일
8이상호MF30px1987년 5월 9일
9데얀FW30px1981년 7월 27일
10박주영FW30px1985년 7월 10일부주장
11윤일록FW30px1992년 3월 7일
13고요한MF30px1988년 3월 10일
14조찬호MF30px1986년 4월 10일
15김원식MF30px1991년 11월 5일
16하대성MF30px1985년 3월 2일
17신광훈DF30px1987년 3월 18일
19심상민DF30px1993년 5월 21일
20정인환DF30px1986년 12월 15일
21양한빈GK30px1991년 8월 30일
22윤승원MF30px1995년 2월 11일
23이석현MF30px1990년 6월 13일
25전호준DF30px1994년 2월 3일
26김주영MF30px1997년 5월 5일
27김정환FW30px1997년 1월 4일
29황기욱MF30px1996년 6월 10일
30김철호GK30px1995년 10월 25일
31손무빈GK30px1998년 5월 23일
32김한길MF30px1995년 6월 21일
33박민규DF30px1995년 8월 10일
34마우링요FW30px1989년 12월 10일
35임민혁MF30px1997년 3월 5일
36박성민FW30px1998년 12월 2일
38김근환DF30px1986년 8월 12일
40김원균DF30px1992년 5월 1일
43윤종규MF30px1998년 3월 20일
45신성재MF30px1997년 1월 27일
55곽태휘DF30px1981년 7월 8일width=30&align=center
88이규로DF30px1988년 8월 20일
  1. 세르보크로아트 어 표기법을 정확히 지키면 '데얀 다노비치'가 된다.
  2. K리그 최초 3연속 득점왕. 참고로 최초의 2년 연속 득점왕도 데얀이다.
  3. 2016 시즌을 앞두고 괌 전지훈련에서 이번 시즌은 어떨 것 같냐는 질문에 대답한 답변. 보러 가기(25초부터) 그리고 이 발언은 팬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타더니 결국엔 구단 공식 캐치프라이즈에까지 등극했다.
  4. 이전 설명에는 아디와 함께 유이한 외국인 레전드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하지만 2005~2007년 동안 활약했고 팀을 떠난 후에도 뜨거운 애정을 보여준 히칼도와 2011~2015년 5시즌 동안 두 번 우승에 기여하고 도움 기록을 갈아치웠던 몰리나도 있기에 유이하다는 설명은 적절하지 않다.
  5. 데얀 위에 놓을 수 있는 외국인 선수는 리그의 패러다임과 제도를 바꿨던 신의손 단 한 명 뿐이다.
  6. 2016년 8월 17일 전남 드래곤즈전까지의 기록. 리그컵 포함.
  7. 2016년 8월 25일 현재 역대 득점 3위.
  8. 당시엔 몬테네그로가 세르비아와 같은 나라였다.
  9. 내전을 틈타서 부를 챙긴 조폭들이 많았고, 이 조폭들이 돈 세탁 방법으로 선택한 게 축구였다.
  10. 당시 안종복 인천 단장은 과거 부산 대우 로얄즈 단장직을 역임했고, 샤샤는 그때 안정환, 마니치, 뚜레와 부산 공격을 이끌던 선수였다. 또한 팬들이 농담삼아 '동유럽 커넥션'이라 말할 정도로 안종복 단장은 동유럽 선수를 선호했으며 중박 이상을 친 경우가 많았다.
  11. 2007시즌은 외국인 스트라이커들의 전성기로 경남의 까보레와 뽀뽀, 대전의 데닐손, 전북의 스테보, 인천의 데얀 등 외국인 선수들이 공격 랭킹 순위권을 독식했다. 국내파 중에서 그나마 순위권에 오른 이는 이근호 정도였다. 한편 인천의 창단 멤버인 스트라이커 라돈치치는 데얀에 밀려 J2리그로 임대 가는 등 완전히 벼랑 끝에 몰렸다가 2008 시즌 절치부심한 끝에 재기에 성공했다.
  12. 전반기에는 경기당 1골에 육박하는 가공할 득점력을 과시했으나 팀이 치열한 순위 다툼을 벌이던 후반기에는 철저하게 침묵했다.
  13. 서울의 페널티킥 전담 키커 아드리아노가 벤치에 있었기 때문에 키커가 없는 상태에서 최용수 감독이 아무 지시도 내리지 않았는데, PK를 얻어낸 데얀이 박주영에게 양보했다. 최용수 감독에 의하면 박주영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였다고 한다.
  14. 아디는 264경기 출장 기록을 가지고 은퇴했다.
  15. 1위 윤상철 300경기, 2위 아디 264경기, 3위 정조국 239경기, 4위 고명진 227경기, 5위 김진규 220경기, 5위 이영진 220경기, 7위 김성재 203경기.
  16. 경기가 일정 조정으로 앞당겨져서 24라운드보다 27라운드를 먼저 치렀다.
  17. 똑같이 몬테네그로 국대에 뽑혔던 라돈치치가 실력은 충분함에도 리그 인지도가 떨어져 벤치나 달구며 제대로 뛰지 못한것에 비하면 꽤나 잘나가는 편이다.
  18. 상대 팀 선수들을 데얀을 막으면서 가장 힘들어 하는 점이 슈팅 타이밍을 잡기 힘들다는 점이다.
  19. 이 시기 서울에 제일 강했던 팀이 수원인데 수원은 센터백들이 페널티 박스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철저하게 금지하고 데얀 수비는 오장은, 박현범 등 중앙 미드필더들에게 전담시키는 방법으로 데몰리션을 막았다.
  20. 비슷한 맥락으로 곽희주는 데얀에 대해서 끈질기게 괴롭히고 못살게 굴면 조급해지면서 스스로의 장점인 침착함을 잃어버린다고 증언했다. 누군들 안 그러겠냐만.
  21. 이날 5만여명의 관중이 경기를 보기 위해 입장했다.
  22. 보통 킥오프 한시간 전부터 선수들이 피치에 나와서 몸을 푸는데 광저우 선수들이 몸풀러 나올 때까지도 경기장에 도착하지 못한 상황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