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혼

1 개요

남자가 밤중에 남의 집에 몰래 숨어들어 여자를 보자기에 싸서[2] 훔쳐가는 행위. 한 마디로 납치 되시겠다. 납치에 성공하면 강간한 후 아내라고 데리고 사는 듯. 강간 피해자가 보호받지 못했던 시절이라 가능했던 악습으로, 현대에는 엄연한 범죄다(법적인 내용은 상위 항목 참조). 구형법에서는 본죄를 영리목적약취유인죄와 같이 규정하고 있었으나[3] 새로 형법이 제정되어서 '결혼목적 약취유인죄'로 이를 분리하여 그 형을 감경하였고, 2013년 형법을 고치면서 다시 추행목적약취유인죄에 들어갔다.

2 상세

38dc5cd3401d3d33a0eaf7ee50065386.jpg

연려실기술에서도 나오는데 조선 초기, 왕족인 이백온(?~1425)이 하륜의 첩실을[4] 보쌈하고자 수하들을 내보냈다가 걸려서, 이 일을 빌미로 유배되어 거기서 생을 마감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사실 이백온은 이 사건 말고도 여색을 너무 밝혀서 여종을 겁간하다가 이에 분개하는 여종의 남편을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5]도 저질러 유배를 당한 일도 있었고, 온갖 사건과 사고를 일으켜 끝내 이 사건이 터졌을 땐 여러 번 봐주던 세종대왕도 격분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만 있었던 문화는 아니며 약탈혼이라고 하여 신부를 납치하여 결혼하는 풍습이 일반적인 문화권도 있었다. 실제로 중동 지방에서는 율법상 결혼 전 성행위 금지를 강조하였는데 이때문에 약탈혼으로 대체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현대의 이슬람 국가는 여기에다가 자칭 이맘의 혼인, 이혼 절차 집행을 통한, 말이 납치혼이지 강간이나 다를 바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고대~중세 몽골에서도 납치혼은 흔했는데 시집 가는 신부를 도중에 가로채서 납치해 결혼하거나 이미 결혼한 여자를 약탈해오는 일이 많았다. 게다가 몽골에서는 남자가 납치혼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는 듯. 칭기즈 칸의 어머니 호엘룬도 원래 결혼할 상대자에게 가던 도중에 예수게이에게 납치당해 칭기스칸을 낳았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호엘룬의 원래 정혼자 쪽에서는 후에 칭기즈 칸의 아내인 보르테를 납치했다.[6] 이 때문에 보르테가 낳은 첫째 아들 주치는 칭기즈 칸의 아들이 아니라는 의심을 강하게 받았다. 하여튼 2대에 걸친 수난 때문인지 후에 칭기즈 칸은 이러한 약탈혼을 금지했다.

참으로 악습이지만 과거엔 과부나 이혼녀, 소박 맞은 여성들을 재혼[7] 시킬 때 쓰기도 했다고. 성종 때 과부재가금지법을 만들어 재혼을 금지한 유교 사회에서 대놓고 재혼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면서 과부들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사실혼을 시키는 것이다. 서큐버스와 같은 맥락일 수도 있다. 이렇게 짜고 치는 것이긴 했지만 그래도 정도의 차이는 있어서 연인 관계인 상대가 아예 처음부터 다 짜고 날짜와 시간을 정해서 시늉만 하는 경우와 갑작스럽게 들이닥치는 정도도 있었다.

사실 고려조와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재혼은 금지가 아니였다. 그러다가 성종 때에 재혼이 금지되었고[8] 초반엔 양반 가문 일부에서 지키다가 후기엔 정도가 강해져 재혼은 무조건 금지되는 분위기가 됐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만 해도 근대 사회가 배경인데 재혼 금지 풍토를 소재로 한다.[9] 이것은 현대 대한민국에서도 아직도 그 잔재가 남아 재혼을 꺼려하는 분위기가 기성세대 사이에 알음알음 있다.

설화 속의 인물인 봉이 김선달에서는 남자를 보쌈해가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 설화에서는 시집 가기 전 점을 봐서 이 여자가 시집을 가서 과부일 상이라고 하자 몰래 남자를 납치해와 강제로 약식 혼례를 하고 합방을 시킨 뒤 그 다음날 새벽에 남자를 죽이려 했다고. 그러면 그 여자는 이미 결혼을 한 뒤 과부가 된 셈이므로 정식 결혼에서 과부가 아니다(사기꾼 김선달한테는 얄짤없지만).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정조를 목숨처럼 중시하는 조선시대 이미지라면 생각할 수도 없는 설화. 하지만 실제로는 몇몇 지역에서 비슷한 옛 이야기가 있으니, 조선시대라도 부모 마음이 마음인지라 딸이 청상과부를 하리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힘이 있는 집안에서는 시도하는 일이 있었던 듯하다. 이와 관련해서 90년대 중후반에 방송했던 역사 프로그램에서 조선시대 보쌈을 다룬 적이 있는데 이때 남자 보쌈도 다뤘다. 이 일화에서 피해자는 효종이라 흠좀무. 평복을 하고 밤 길을 걷다가 납치되었는데 첫날밤에 응하는 척하면서 밖에 대기하던 납치범들을 때려눕히고 도망쳤다고. 무예 좀 하던 효종이라서 가능했다.[10]

보쌈의 가장 심한 케이스로는 알라 카추가 있다.

납치혼을 부르는 말인 보쌈을 1번 항목의 보쌈에 빗대는 농담이 있다. 예를 들면 할머니보쌈이라든가 장군보쌈이라든가...

이 납치혼과 관련된 의식들 중 그 흔적이 현대의 결혼식에 남아있는 형태가 있다. 일명 '예도 의식'이 그것이다. 보통 현역/예비역 군인들이나 그 자녀들이 결혼을 할 때, 군인의 동료나 부하들이 2열로 서서 예식용 칼을 들고 그 아래를 신혼 부부가 행진하는 의식이다. 그런데 이게 사실은 납치혼을 할 때 신랑의 동료들이 칼을 빼들고 여자를 뺏는 행위를 지켜주는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화 암살에서 안옥윤(전지현)과 카와구치 슌스케(박병은)이 결혼식을 하는 장면에서 이 의식이 나온다.

이 외에도 결혼식에서 신랑이 오른쪽에 서고 신부가 왼쪽에 서는 것은 이렇게 신부를 탈취하려는 시도가 있을 시 신랑이 오른손으로 바로 칼을 뽑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신랑이 왼쪽에 서면 당장 오른손이 신부의 손을 잡고 있게 되므로 대응이 늦어지고 검을 뽑으려고 오른팔을 휘두르면 신부가 다칠 수 있으니...[11]

3 각종 매체에서

눈물을 마시는 새피를 마시는 새에 나오는 발케네 지방에서는 전통적인 결혼 방식으로 좀 잘 사는 집안이라면 이 발케네 전통의 결혼식을 한다. 이를 '신부 절도'라고 부른다. 현실의 보쌈과는 많이 다른데, 신부 절도는 가문 간의 모의 전쟁에 가깝다.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며 그 과정에서 두 세력 사이의 전투가 벌어지게 된다. 신부 절도는 보통 두 명문가의 합의 하에 서로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정말 신부를 약탈하려고 벌어지기도 한다. 합의 결혼일 때는 축제 같은 분위기가 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사상자가 나올 만큼 치열하다고. 날붙이는 사용 불가라는 규칙이 있는데, 그것이 규칙의 전부다. 자연스레 신부 절도에는 온갖 협잡이들이 나타난다. 배신자[12]는 기본이고 이중 배신자, 공개 배신자, 신부 바꿔치기[13], 심지어 신랑 절도도 있다는 듯하다. 그 밖에도 너무 많아서 말하기 힘들 정도라, 여러 모로 무서운 동네.

얼음과 불의 노래에서 웨스테로스의 지역인 강철 군도장벽 너머도 납치혼의 풍습이 있다. 강철 군도에서 납치혼을 통해(보통 약탈로) 생긴 첩 내지 부인을 소금 부인이라고 하며, 그냥 정상적으로 결혼한 부인은 바위 부인이라고 부른다. 또한 장벽 너머 와일들링들도 납치혼 풍습이 있는데, 남자는 여자에게 힘과 열정을 과시하고, 여자는 자기 자신을 지킴으로서 스스로의 자주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1. 과거에는 '결혼목적약취유인죄'라는 독립된 조항으로 존재했으나 2013년 형법 개정으로 인하여 추행목적약취유인죄에 흡수되었다. 따라서 현행법상 결혼목적약취유인죄는 추행목적약취유인죄의 하나의 수법에 지나지 않으므로 틀을 따로 붙이지 않는다.
  2. 그래서 보쌈이라 불렀다 카더라.
  3. 일본 형법(=구형법)에서는 한국에서 결혼목적약취유인죄가 존재하던 시절에도 계속 영리목적약취유인죄에 이를 규정하고 있었으며 지금도 그렇다. 어떻게 보면 다시 구형법 시절로 돌아간 셈. 다만 일본의 그것과의 차이점은 일본에는 결혼목적약취유인죄의 경우 친고죄가 적용되나, 한국은 추행목적약취유인죄로 다시 합치면서 친고죄 조항을 삭제하였다.
  4. 그냥 써있으니까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으나 하륜은 세조의 할아버지인 태종을 한낱 대군에서 왕으로 만드는 과정 중 태종 본인 다음으로 역할이 컸었던 사람이었다. 즉 킹메이커이자 1등 공신인 셈. 세조 당시에는 은퇴했지만 아직도 공신으로서의 영향력은 상당했던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의 첩이었으니 아무리 왕족이라도 그냥 지나갈 수 없는 문제였다.
  5. 원칙적으로는 종이라도 못 죽이니 당연히 중죄다. 게다가 그 과정과 손속이 너무 잔인하여 말이 굉장히 많았다. 그러나 가해자가 왕족이니 처벌은 엉성했고 대강 무마했지만...
  6. 이때 보르테가 강간 당했다는 말도 있고 납치혼이 되었다는 말도 있다. 보르테 입장에서는 다 똑같겠지만.
  7. 엄밀히 말하면 정식 혼례를 치루지 않았기에 사실혼.
  8. 신하들은 세 번 결혼하는 삼가금지를 하고 재가는 허용하자고 했지만 성종은 재가를 금지했다.
  9. 재혼한 여자를 화냥년이라고 부른다고 나온다.
  10. 이게 재위 중의 일인지 그 전의 일인지는 불확실. 만약 재위 중의 일이라면 흠좀무.
  11. 다만 동양에서는 이 외에도 동쪽은 해가 뜨는 곳이니 양의 기운을 가지고 있으므로 양의 존재인 남자가 동쪽에 서는 게 옳다는 이유로 동쪽에 서는 것도 있다.
  12. 배신자로 상대편을 꽉 채워서 시작하자마자 이기는 것이 발케네인들의 꿈이란다. 상대방도 그걸 바라기에 일어난 적은 없다...
  13. 신방에 결혼하기 힘든 결함이 있는 여자를 넣어놓고 대신 데려가게 하기. 속아넘어갔음을 인정하면 도둑의 치욕이기에, 얄짤없이 데리고 살아야 한다니 흠좀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