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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鹿屯島

1 개요

두만강 하구에 있었던 . 본래 퇴적토로 이루어진 섬이었으나 두만강의 퇴적작용으로 인해 땅덩어리가 연해주 쪽 방향으로 붙어버렸다. 겨울에는 두만강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녹둔도 방면도 두만강 경계라고 볼 여지가 생긴다.

퇴적 작용으로 연륙되었다는 점은 압록강 하구의 위화도황금평과 비슷하다. 황금평도 원래는 압록강 하구의 섬이었지만 퇴적에 의해 중국 쪽 땅에 붙어버렸는데 여기는 녹둔도와 달리 여전히 북한 땅으로 인정되고 있으며 철조망으로 육상국경이 형성되어있다. 이후 중국 측 자본이 이 지역을 개발해보고 싶다고 나서기도 했다.

북한1989년에 녹둔도를 소련으로부터 반환받으려고 시도하였지만 실패했고, 이후 1990년 국경조약에 따라 녹둔도를 러시아 땅으로 인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어로는 두음법칙을 인정하지 않아 "록둔도"라고 한다.

2 역사

처음 우리나라 역사에 기록된 것은 세종실록지리지이다. 4군 6진 개척 때 우리 영토가 된 땅으로, 개척 후 1432년 세종은 녹둔도에 길이 1천246척, 높이 6척의 녹둔토성을 쌓아 녹둔도를 방비했다. 이후 세조 원년에 녹둔도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됐고 조선 선조 때 이 곳에 둔전을 설치하였다. 이순신장군이 백의종군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한 녹둔도 전투가 유명하다. 여담으로 녹둔도 전투를 패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순신 항목에도 나와 있지만 보통 1,000명 이상의 기마병에게 기습당한 상황에서 불과 수십 명으로 방어에 성공하고 반격까지 감행, 절반 이상의 포로를 구출해 피해를 최소화한 전투를 패전이라고 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순신의 증원 요청을 무시했던 상관 이일이 이순신 쪽에 떠넘겼고 당시 가장 무명이 높은 장군이었던 이일인지라 이순신은 백의종군할 수밖에 없었다.

1800년대 즈음부터 두만강의 퇴적작용으로 녹둔도가 연해주쪽으로 연륙되게 되었다. 그리고 1860년 북경조약에서 청나라와 러시아 제국의 조약에 의해 러시아가 불법적으로 점거하여 소련을 거쳐 현재 러시아 연방에 이르게 되었다. 당시 영토 소유자는 조선이었는데 당사자는 빼놓은 인접 당사국만의 조약이기 때문에 불법적인 것이다.

19세기 후반에도 조선인들은 두만강을 건너 녹둔도에 농지를 적극적으로 개척했다. 그런데 1938년 구 소련의 스탈린이 녹둔도에 사는 조선인을 강제로 중앙아시아로 이주시킨 뒤 사람이 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2014년 현재는 지금은 늪과 모래언덕, 잡초만 무성한 거친 땅으로 변했다고 한다. #

3 현황

두만강의 수위에 따라 그 경계를 알기 어려운 관계로, 남측에서 편찬되는 지도에는 백두산 천지와 달리 표시되지는 않는다. 다만 개정 교육과정 한국지리 교과서 일부에서 그 위치와 역사를 언급하고 있다.

북한의 경우도 이 수위 문제로 2008년 기존의 "두만강이 국경"이라고 둔 국경문제를 재협의하기로 했으나 딱히 협의가 된 것으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추후 통일 한국이 성립될 경우, 녹둔도는 대한민국러시아 간의 영토 분쟁의 여지가 남아 있는 땅이다. 물론 국력 차이가 심해 러시아와 대치는 못 하고 미국의 중재를 거칠 가능성이 높다.

4 관련 항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