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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見寺
1 개요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 휴양림길 232(용리 산1-2)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이다. 비슬산 정상에 있는 절로 한 때는 폐사된 상태에서 삼층석탑만 달랑 있었기에 '대견사지'라고 불렀다.
2 역사
창건자는 미상이나, 신라 흥덕왕 때 창건된 사찰이라고 전한다. 전설로는 당나라 문종(文宗)이 절을 지을 곳을 찾고 있었는데 하루는 낯을 씻으려고 떠놓은 대야의 물에 아주 아름다운 경관이 나타났다. 이곳이 절을 지을 곳이라 생각한 문종은 사신을 파견하여 찾게 하였다. 결국 중국에서는 찾을 수 없게 되자 신라로 사람을 보내어 찾아낸 곳이 이 절터이다. 이 터가 대국(大國)에서 보였던 절터라 하여 절을 창건한 뒤 대견사라 했다고 한다.
창건 이후의 역사는 거의 전래되지 않고 있지만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이 승과 선불장에 장원급제한 뒤 초대 주지로 부임해 22년 동안 지냈으며 이 곳에서 삼국유사를 구상했다고 한다. 1416년(태종 16년) 2월 29일, 1423년(세종 5년) 11월 29일 이 절에 있던 장륙관음석상(丈六觀音石像)이 땀을 흘려 조정에까지 보고되었고 종파는 교종(敎宗)에 속하였다고 한다.
절의 폐사에는 빈대가 너무 많아서 이를 견디지 못하고 모두 떠나 자연스럽게 폐사되었다는[1] 일반적인 설화가 전래되고 있지만 그 시기는 임진왜란 전후로 전해지고 있기에 임진왜란 때 일어난 화재로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그 뒤 광해군과 인조 때 재건되었으며 1900년 영친왕의 즉위를 축하하고 대한제국 축원을 위해 이재인(李在仁)이 중창했으며 관리를 안 하는 사이 1908년 허물어지기 시작하여 1909년 다시 폐허화되었다.
결정적으로 일제강점기인 1917년 강제 폐사됐는데 당시 대견사의 대웅전이 일본 쪽으로 향해 대마도를 끌어당기고 일본의 기를 꺾는다는 이유로 조선총독부가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강제로 없앴다고 한다.
그렇게 100년 가까이 삼층석탑만 남은 채로 방치되는가 싶었지만...
2.1 복원
2013년 8월 15일 전체 사찰 부지 3633㎡에 대웅전을 비롯해 대견보궁, 선당, 산신각, 종무소, 요사채 등의 건물을 폐사 당시의 원형대로 최대한 복원하기 위해 공사를 시작했다. 특히 대웅전의 대들보는 지름 60㎝에 길이 10m인 강원도산 소나무 황장목으로 만들어졌는데 수령이 500년 됐고 한 개 가격이 2000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2014년 3월 1일 공사를 끝내고 복원 완료했다. 대견보궁에는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진신사리 1과가 모셔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