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게르만주의

(대독일주의에서 넘어옴)

영어: Pan-Germanism, Pan-Germanicism[1]
독일어: Großdeutschland / Pangermanis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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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방어와 공격의 정신으로 형제처럼 서로 함께 단결하면 마스[3]에서 메멜까지 에치에서 벨트까지!

Wenn es stets zu Schutz und Trutze brüderlich zusammenhält, von der Maas bis an die Memel, von der Etsch bis an den Belt!
- 독일인의 노래 1절 중에서

1 개요

19세기~20세기 전간기 사이에 독일어권 지역에서 성행했던 민족주의 사상. 대독일주의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범게르만주의가 주장하는 바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독일어 쓰는 지역은 모두 하나의 국가로 뭉치자!'이지만 이것이 인종주의와 겹쳐 나치2차대전이라는 희대의 병크로 표출되고 말았고, 그 이후로는 거의 매장되다시피한 사상이다.[4] 자매버전으로 러시아가 주도한 범슬라브주의라는 것이 있다.[5]

2 역사

2.1 탄생

18세기까지 프랑스에서 독일을 가리키는 단수(單數) 명칭이 없이 독일들, 혹은 독일어권이라고 지칭한데서 알 수 있듯이 1871년 독일 제국의 형성 이전까지 통일된 국가 없이 중소규모의 공국들이 난립하는 지역이었고, 이에 따라 신성로마제국과 같은 느슨한 형태의 정치적 결합체만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면서 독일에서도 민족주의의 열풍이 거세지기 시작했고 1848년 혁명을 거치면서 독일어권 사용지역을 하나의 통일된 국가로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표출된다. 이러한 시대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독일인의 노래 1절.

2.2 소독일주의의 승리

하지만 통일된 독일국가를 형성하고자 했던 프랑크푸르트 의회는 보수세력의 반동으로 붕괴하고, 독일어권 지역은 다시 독일 연방이라는 느슨한 정치적 연합체가 형성된다. 독일 연방을 양분한 세력은 전통적으로 독일어권의 터줏대감을 자처해온 합스부르크 가문오스트리아 제국과 새로이 강국으로 급부상한 프로이센 왕국이었다. 두 강대국의 갈등은 결국 보오전쟁으로 이어졌고 여기서 승리한 측은 비스마르크가 이끄는 프로이센이었다. 그 결과 오스트리아는 독일 연방에서 축출되었고 독일민족만으로 이루어진[6](=소독일주의) 통일 국가가 형성되니 이것이 바로 독일 제2제국.

2.3 다이 하드, 그리고 나치즘과의 결합

하지만 범게르만주의가 그리 쉽게 사라질 리가 없었다. 애초에 오스트리아는 천년넘는 세월동안 독일제국과 같은 문화권안에 자리잡고 있었고, 오스트리아가 독일 연방에서 추방된 이후에도 '우리가 남이가'라는 인식은 양국 국민들 사이에서 만연했다. 독일 내에서 상대적으로 강성 민족주의와 거리가 멀었던 가톨릭 신자들과 사민주의자들 중에서도 '언젠가는 오스트리아와도 통일해야지'라는 목소리가 드높았으며[7], 아우스글라이히 이후 급부상한 소수민족들에게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받던 오스트리아-헝가리 내 독일계 주민들 역시 범게르만주의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8]

이러한 범게르만주의는 옆동네 러시아 제국의 범슬라브주의와 필연적으로 충돌을 빚었고 1차대전이 발발한다. 만약 독일이 전쟁에서 이겼으면 범게르만주의가 정말로 실현될 수도 있었겠지만, 현실은 시궁창. 전쟁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패배로 끝났고, 폴란드의 독립,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해체, 안슐루스 금지 등 범게르만주의자들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결과가 온다. 물론 이 동네 소수민족들에게는 축복

그리고 패전의 충격으로 인해 정신이 나간 몇몇 작자들이 범게르만주의를 비뚤어진 인종주의와 결합시켜버리면서 문제가 더욱 커져버린다. 소위 레벤스라움이라고 불리는 동부유럽으로의 영토 확장은 처음부터 범게르만주의와 뗄래야 뗄 수가 없는 사이였지만 우생학을 신봉했던 나치들은 '저 동네 슬라브인들을 싸그리 멸족시키고 우리가 그 땅을 차지하자'라는 정신 나간(...) 주장을 펼쳤던 것. 여기에 독일판 환뽕이라도 맞았는지 '고대 게르만족의 후예이면 모두 하나다!'라는 개념까지 더해져서 네덜란드, 스칸디나비아 반도까지 하나의 독일안에 포함시켜야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이러한 움직임의 정점이 1938년 실시된 안슐루스. 여기서 멈췄으면 괜찮았겠지만 나치는 정신못차리고 판을 전세계구급으로 벌렸고 망했어요. 이후 독일에 수립된 서독동독에서 당연히 범게르만주의는 사회적인 금기가 됐고 몇몇 여전히 정신못차린 네오나치들을 제외하면 사장된 사상이 된다. 1990년 독일통일과정에서 영국과 프랑스 등을 중심으로 독일이 통일되면 다시 범게르만주의를 제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순간 커지기도 했지만 다행히도 그런 건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 본래 독일어권에서 시도하려 했던 좁은 의미의 범게르만주의는 전자, 2차대전 당시 나치당이 좀 더 넓게 정의한 범게르만주의는 후자에 해당한다.
  2. 1937년 시점에서 게르만족(=독일어 사용자)의 유럽내 분포도. 하지만 2차대전에서의 삽질 덕분에 동유럽의 독일인들이 싹 다 추방되면서 오늘날에는 이 당시 영역의 70% 정도로 쪼그라 들었다는게 함정
  3. 벨기에에 자리잡은 뫼즈강의 독일어식 표현이다.
  4. 독일인의 노래 1절이 공식적인 국가에서 배제된 것에서 보이듯이 오늘날에 이런 생각을 입에 들어냈다간 거의 네오나치 취급을 당한다. 그나마 좀 좋게 대우받아도 독일판 환빠 정도.
  5. 원래 제정시기부터 있던 사상이지만 이것도 나중에 소련에서 잘 써먹게 된다. 냉전시기 슬라브족 국가들이 예외없이 위성국으로 편입되어버린 이유.
  6.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독일민족만으로 이루어졌다는 거지 현실에서의 독일 제2제국은 엄연한 다민족국가였다. 당장 독일 제2제국 수립을 주도한 프로이센만 하더라도 동부의 슐레지엔, 포젠, 서프로이센 일대에 수백만명의 폴란드인들이 거주하고 있던 상황.
  7. 강성 민족주의자가 아니었던 자들마저 이럴 정도이니 나머지 일반 민중들의 목소리가 어땠을지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8. 이렇게 다민족국가였던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역겨움'을 참지 못하고 상대적 단일민족국가인 독일제국으로 도망치는 인간들이 종종 있었는데, 다들 알다시피 이 놈이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