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비불설

大乘非佛說

1 개요

대승 경전은 성립 시기가 늦기 때문에 석가모니의 가르침으로 볼 수 없으며, 따라서 대승 불교의 가르침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주장. 불교는 분명 유신론은 아니나, 그렇다고 석가의 가르침이라는 권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기에 생기는 논쟁이다. 한국 조계종에서도 석가의 가르침 여부를 불과 비불을 나누는 규준으로 사용하고 있다.[1]

2 논의

대승비불설의 기초는 대승불교상좌부 불교의 경전(팔리어 경전)은 아함경을 제외하면 공통성이 없다는 것이다. 대승불교에서 가르침의 근간으로 삼는 금강경·반야경·화엄경·법화경 등은 상좌부 불교에서는 해당하는 경전이 없다. 전통적으로 대승불교의 교리에서는 아함경은 석가모니 초기의 가르침, 법화경 등은 후기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근대에 문헌학적 연구결과, 상좌부 불교의 팔리어 경전(아함경이 여기에 포함된다.)의 성립 시기가 더 빠르다는 연구 결과가 지배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론은 아직 존재하지만 대승경전의 성립은 아함경 등의 초기 경전보다 몇백년은 늦는다는 것이 일반론이 되었다. 그러므로 근대적인 '대승 비불설'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대승 경전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아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대승 불교 측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 구전론 :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경전으로 결집된 것 이외에도 여러 경로의 구전이 존재했으며, 상좌부 불교의 경전도 그 가운데 하나이며 대승 불교의 경전과는 단지 전승한 집단과 그 경로가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즉, 대승 경전의 성립이 늦은 것은 단지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인도에서는 이미 구전 전통이 있었고 대승 경전의 가르침 역시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었음은 드러나고 있다.
    • 말하자면 문헌학적 비판이나, 본문 비평에 의한 연대 추론을 한다고 해도 '대승불교가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아니다'는 증명은 할 수 없다. 성립 연대가 늦었다는 것이 곧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증명으로는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 물론, 이 주장 역시 현재로서는 확고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증명이 불가능하다. '문자로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석가모니는 대승불교의 가르침도 전파했다'는 '믿음'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인도나 티베트의 일부 사람들은 석가모니와 몇몇 지배계급출신의 제자들이 산스크리트어에 정통했기 때문에 소수의 제자들에게 산스크리트어로 비밀스럽게 전승되었다가 후대에 문자로 기록된 것이라고 믿기도 한다. 다만, 일부 출토된 프라크리트어 문헌을 볼 때 산스크리어 전승보다는 프라크리트어로 전승되다가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된 것이 더 가능성 있다. 그러나 모든 불경이 소수에게 전승되었다고 보기에는 대승 경전의 양이 너무 많다. 또한 대승 경전중에서도 일부 경전만이[2] 이른 시기에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 집단론 : 유교의 가르침이 공자 이외에도 맹자, 주자 등에 의해서 성립된 것처럼, 역사상의 석가모니 개인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해도 그 가르침을 이어받은 집단과 제자들이 완성해낸 가르침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주장이다.
  • 불성론 : 대승 불교의 특수한 관념으로, 모든 중생은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으며 대승 경전 역시 불성에 따라서 만들어진 것이다. 예를 들자면, 수행자가 명상으로서 만난 부처의 가르침을 기록한 것이다.

이전부터 상좌부 불교에서는 대승 경전은 본래 없던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대승 불교 측에서는 이상과 같은 논리로 반박했다. 근대 문헌학적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나타나면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사실 위경 논란은 중국 불교 내부적으로도 많은 논쟁이 있었으나, 중국에선 아함경, 법구경 등의 경전은 석가모니의 활동 초기의 불교 지식이 없는 중생들을 향한 가르침이기에 방편론 성격이 강했다고 보고, 후대에 나온 화엄, 금강, 법화 등은 어느 정도 단계가 오른 중생들을 대상으로 한 수승한 가르침이라는 식으로 정리했다. 당연하지만 이런 분류는 전혀 실제 역사와 들어맞지 않는다. 더구나 중국 불교 내에서도 후발주자인 선종이나 유교 도교 등의 공격을 받을 시기에 정통성 확보를 위해 많은 위경/위조 문헌이 만들어졌다.

3 맹점

본격적인 대승비불설이 처음 등장한 일본의 대승비불설 주장 세력은 초기 경전(숫타니파타, 법구경, 자설경, 아함경)만이 진실한 경전이며 다른 불설은 전부 부처의 직설(直說)이 아니라고 단정적으로 결론내리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어느 정도였나면 당시 일본의 불교계 전체가 이 설을 내세운 학자들을 공공의 적으로 규정해버리고, 그 학자들도 이로 인해 평생 고생했을 정도였다. 물론 이때의 비판은 당시 불교계가 아직 최신의 문헌고증학의 연구결과를 수용할 만한 수준이 되지 않았던 것이 더 컸으나, 이후 다음과 같은 비판들이 등장하게 된다.

1. 대승불전이라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과 전혀 관련이 없는가?

대승비불설에 대한 가장 오래된 형태의 비판이다. 물론 현대에는 정말로 대승경전들을 전부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했다는 걸 믿는 학자는 없고, 승려들 중에서도 학문 연구를 많이 하나 이쪽에 관심을 갖는 승려들은 믿지 않는다. 현대에 이 비판은 대승경전의 설립과 관련이 있다. 애초에 한국 조계종의 승려교육 교재로 쓰는 책이나 자료들에도 학자들이 연구해낸 경전 형성과정은 당연히 언급된다. 즉 현대 기준으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한국 승려라면 대승비불설이나 관련된 정보를 최소한 들어보기는 하는게 정상이다.

물론 대승경전 자체가 성립 시기에 관해서는 초기경전보다 한참 뒤인 건 맞다. 그러나 대숭불교라는 것도 결국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들이 만든 것이고, 기존의 불교 문헌과 연구를 근간으로 형성된 것이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대승불교에서 보이는 불법승 삼보에 대한 공양 사상이나 정토염불 신앙은 초기불전 중 아함경에도 나타나며, 불교사적으로도 초기불교를 기반으로 생겨난 것이지 그냥 짠하고 독자적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2. 남전 불교문헌들은 비불설에서 자유로운가?

이는 현대적인 문헌연구학을 통한 불교 문헌 연구가 더욱 발달하면서 나타난 것으로, 정통성 의식이 강한 남방불교 문화권이나 국내의 극단적인 남전(南傳)불교 옹호론자들은 대승비불설을 옹호하면서도 정작 대승비불설의 연장선인 이 주장은 모로쇠로 넘기는 경우가 많다.칼날이 우리들에게 돌아올줄은 몰랐지

실제로 남전불교 문헌 역시 연구 결과, 초기경전이 북전(北傳)불교보다 잘 전수되고 중시되어 온 것은 사실이지만 남전불교에서 전래되던 불경을 비롯한 여러 불교 문헌들도 후대에 여러 차례의 첨삭과 증보개정을 거쳐 현재까지 전해 왔다는 사실은 문헌연구학적으로는 이미 명확한 근거와 더불어 정설인 상황. 아이러니하게 현존하는 불경중 가장 오래된 것은 대승경전이다. [3]

종교사적으로도 남전불교 역시 석가입멸 후 2천여 년이 넘는 동안 수많은 논서와 해석의 차이가 나타났고, 여러 부파 간 논쟁과 정치적인 암투가 벌어지면서 하나의 부파가 분열하기도 하고, 몇몇 부파는 패해 사라지기도 하고, 다른 부파에 흡수되기도 하면서 북방불교계에서 위경이 나타났듯이 남전불교계에서도 불교 문헌에 대한 다양한 첨삭과 수정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심지어 몇몇 연구자들은 남전불교 문헌이나 북전불교 문헌이나 학술적인 정통성 면에서는 다를 게 없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사실 몇몇이라 할 것도 없이, 학계의 입장은 이쪽이고(불교평론에서 이 문제를 다룰 때는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의 주장'이라는 표현까지 사용되었다.) 개중에는 권오민 교수처럼 남방불교 연구자도 있다. 2009년, 이 문제를 갖고 논쟁이 벌어졌을 때, 남방불교의 순수성을 주장하며 학계 쪽에 시비를 건 쪽은 마성스님이고 그를 지지한 사람은 전재성 박사인데, 둘 다 적극적으로 한국에 팔리어 불교문헌을 번역해 팔고 상좌불교 사상을 퍼뜨리며 사람들을 모으고 있는 단체의 인물들이다. 똑같이 남방불교를 공부했고, 남방불교의 위파사나 수행을 국내에 보급하면서 대중 포교를 중시하고 있는 유마선원장 이재열 법사는 '초기불교와 대승불교는 대립관계가 아닌 상호보완과 융화의 관계로 발전해야 한다.'며 다른 입장을 취한 것과도 비교된다.

실제로 사상적인 면에서는 오히려 비정통 취급받는 대승불교 쪽이 남전불교보다 더 초기불교에 가까운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다만 이런 쪽 주장은 대승불교 문화권인 일본에서 나온 비판이라는 점은 어느 정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일본이 밀교와 남전불교 연구도 발달한 나라라지만 일본 불교계와 불교학계는 엄연히 대승불교가 주류다.
  1. 그래서 창가학회SGI가 불교가 아니라고 한다.
  2. 이를테면 소품반야경이나 금강경, 아미타경 정도가 초기 대승불경으로 가능성이 있다.
  3. 간다라불경이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