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양키스 No.29 | |
더스틴 애클리 (Dustin Michael Ackley) | |
생년월일 | 1988년 2월 26일 |
국적 | 미국 |
출신지 | 노스 캐롤라이나 윈스턴 세일럼 |
포지션 | 2루수/외야수 |
투타 | 우투좌타 |
프로입단 | 2009년 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 |
소속팀 | 시애틀 매리너스(2011~2015) 뉴욕 양키스(2015~) |
1 소개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의 2루수/외야수. 등번호는 29번. 해야갤에서는 대학타자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2 아마추어 시절
윈스턴 세일럼에서 자란 애클리는 학창시절 노스 캐롤라이나주의 노스 포사이스 고등학교(North Forsyth High School)에 진학해 초기에는 투수와 3루수를 겸업했다. 그리고 사우스 스토크스 고등학교(South Stokes High School)로 전학해 3년 동안 준수한 선수로 활약했는데 문제는 본인이 고교 때 투수를 하다가 팔꿈치 부상을 당한데다가 고교가 변두리의 작은 고등학교였고 수준이 낮은 레벨의 리그에서 뛰었던 걸로 평가받았기 때문에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지명되지 못했다.
결국 고교 졸업 후 프로에 입단하지 못한 애클리는 지역의 명문 주립대인 노스 캐롤라이나 주립대학(UNC)에 진학했고 애클리는 재학 3년 동안 일약 대학야구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로 도약했는데 2007년 베이스볼 아메리카 선정 올해의 대학 신입생 플레이어에 선정된 것을 시작으로 대학 내내 자신의 모교를 대학 월드시리즈로 이끌었고 15경기 28안타로 대학 월드시리즈 기록을 세운데다가 통산 최다안타(346), 타율(0.412), 득점(227), 루타(544)을 기록하는 등, 모교 기록을 자신의 것으로 죄다 갈아치웠고 3시즌 연속 타율 4할을 기록하는 먼치킨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2009년 아마추어 최고의 선수한테 주는 골든 스파이크 어워드 최종후보까지 올랐으나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에 밀려 아깝게 수상에 실패했다.
그리고 이런 대활약으로 2009년 아마추어 드래프트 이전부터 드래프티 자원 중 뛰어난 스윙능력과 컨택툴을 갖춘 최고의 퓨어히터로 평가받았고[1] 대학야구를 씹어먹던 괴물투수이자 역대 최고의 포텐셜로 평가받던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다음으로 완성도가 높은 실링으로 평가받았다.
3 메이저리그 커리어
이런 평가에 힘입어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드류 스토렌, 셸비 밀러, 마이크 트라웃 등이 지명된 2009년 아마추어 드래프트에서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다음이자 야수 유망주 중 전체 1위인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시애틀 매리너스에 지명되었다.
계약 마감시한인 2009년 8월 17일, 매리너스와 5년 $7.5M($6M의 사이닝 보너스)가 보장되는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어 프로에 입단하게 된다.[2][3]
그리고 아마추어 최고 유망주답게 당해 참가한 애리조나 가을리그(AFL)에선 MVP를 차지하더니 마이너리그에선 싱글에이를 거치지 않고 더블에이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고교 때 투수를 하다가 어깨부상을 겪는 과정에서 대학 진학 이후 거의 1루수로만 출장한데다가 2008년 토미 존 서저리까지 받았지만 스카우터들은 그가 가진 빠른 발을 살려 프로 입단 후엔 중견수로 뛰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이미 중견수 포지션엔 골드글러브 위너의 수비만를 자랑하던 프랭클린 구티에레즈가 있었고 마이너에서도 마이클 선더스라는 유망주가 있었기 때문에 잭 쥬렌식 단장은 그를 2루수로 기용할 뜻을 내비쳤다.
2년 동안 마이너를 200경기 타/출/장 0.280 0.387 0.435 16홈런 17도루 86타점이라는 준수한 성적으로 패스한[4] 애클리는 2011년 6월 17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인터리그 경기에서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뤘다. 그리고 로이 오스왈트를 상대로 메이저리그 첫안타를 신고했고 홈팬들은 이에 우레와 같은 함성을 보냈다.
데뷔전 하이라이트
그리고 90경기에 출장해 타율 0.273 6홈런 36타점 6도루를 기록해 수비로 일내야 하는 수준인 시애틀 매리너스 막장타선에 한줄기 단비가 되었다. 신인왕 투표에서는 6위를 기록. 이같은 활약에 팬들은 그를 저스틴 스모크, 헤수스 몬테로와 함께 매리너스의 차기 클린업 트리오 후보로 기대하기도 했다. 현실은 모두 망했다
2012년 도쿄돔에서 열린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개막전에선 선제 솔로홈런과 연장 결승적시타, 그리고 도루 하나와 에러 하나를 추가하며 돌풍을 예감하게 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2012년 시즌은 153경기 .226 .294 .328 12홈런 50타점 13도루(3실패)로 소포모어 징크스를 제대로 겪었다. 오프시즌엔 발목 뼛조각 제거수술도 받고 타격폼도 수정하는 등, 절치부심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절치부심을 하면 뭐하는가. 갖다 맞히는 것도 헉헉대던 2013년 애클리의 답답한 타격에 팬들은 시애틀 매리너스 자체에 수맥이 흐르는 것이 아니냐는 탄식을 하였고, 구단에서는 같은 드래프트 출신의 유격수/2루수 유망주인 닉 프랭클린을 콜업하며 애클리를 마이너로 보냈다. 대체로 바깥쪽 스트라이크를 제대로 때려내지 못하는 데에서 문제가 이 지경까지 곪아터졌다는 평가다. 그리고 5월 말 에릭 웨지 시애틀 감독은 세이버메트릭스가 애클리를 망쳤다는 희대의 망언을 하여 까였다. 그 발언에 대한 촌철살인적인 기사의 번역글. 6월 26일 콜업이 다시 되긴 했는데, 그동안 닉 프랭클린, 브래드 밀러같은 2루수,유격수 자원이 치고 올라오면서 잠정적으로 외야수로 전향하며 자신의 포지션까지 뺏기는 신세가 되었다. 안습. 2013년 후반기 성적은 .304/.374/.435로 아주 좋았다.
2014 전반기까지는 모두가 알고 있는 바로 그 대학타자 애클리(...)의 모습을 보여주며 티끌같이 남아있던 시애틀 팬들의 희망을 버리게 해주나 싶더니, 작년의 데자뷰인지 후반기 들어서 또 각성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후반기 활약으로만 한정하면 OPS가 9할(!!!)에 육박하는 수준. Fwar도 9월 6일 기준 무려(...) 1.8 을 기록하며 데뷔시즌 이후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애틀 매리너스가 정말 오래만에 플레이오프 출전을 놓고 경쟁을 한 만큼 나름대로 의미있는 활약.
8월에만 6홈런 24타점으로 터졌다. 그리고 9월에 다시 폭망(...) 누적 14홈런 65타점으로 커리어하이. 하지만 OPS 691은 여전히 많이 부족하다. 게다가 수비가 나아졌다지만 좌익수로 출전중인 만큼 공격에서 더 분발해야 한다. 기복이 너무 심하다는 점을 극복해야 할것.
2015 시즌도 전반기는 여전히 대학타자 모드로 마쳤다.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되었다.
4 스카우팅 리포트
유망주 시절엔 전형적인 공격형 2루수의 재능을 지니고 있으며 장래 체이스 어틀리급의 대형 2루수로 성장할 자질을 갖고 있다는 평가였다. 좋은 선구안도 갖췄으며[5] 또한 발도 빨라서 20-80 스케일에서 60으로 평가받는 주자능력, 70으로 평가받는 스피드를 갖췄다. 스윙 스타일은 거포 스타일보다는 15~20홈런 전후로 홈런 수가 형성될 중거리타자에 가깝다. 스카우트에 따르면 파워툴은 평균 혹은 평균보다 약간 좋은 수준이라고... 그리고 밀어치기에도 능해서 외야 전방향에 타구를 보낼 수 있는 스프레이 히터의 자질을 갖췄다. 몇몇 스카우트들은 그가 메이저리그 타격왕이 될 필수조건을 모두 갖췄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다만 왼손투수 대처능력은 옥의 티로 남으며, 수비적으론 2루수로서 수비 레인지가 넓지는 않으며 수술받은 영향 탓에 송구 툴도 평균 이하라 송구능력도 강하지는 않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수비는 오히려 메이저에 올라와서 더욱 발전했다.
하지만 이같은 평가가 무색하게 메이저로 올라와선 그야말로 리그 평균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안습타격을 보여주며 대학야구 최고의 타자라는 명성을 까먹는 중이다.
5 이모저모
- 아버지인 존 더글러스 애클리(John Douglas Ackley)도 야구선수였다. 1979년 드래프트에서 3라운드에 지명되어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선수생활을 했지만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지 못했고 레드삭스 산하 트리플A에서 7년간 포수로 활동했다.
- ↑ 컨택능력만 따지면 지난 10년간 최고라는 평가도 있었다.
- ↑ 크고 아름다운 계약조건을 보고 감이 오겠지만 애클리의 에이전트는 스캇 보라스이다. 그것도 처음엔 마크 테셰이라급의 $9.5M을 원한다고 뻥카를 부리다 사이닝 데드라인이 끝나기 15분 전에 계약했다고(...)
- ↑ 결국 애클리의 계약금을 마련하기 위해 매리너스는 나머지 1라운드 지명권을 닉 프랭클린, 스티브 배런이라는 예상 지명순위가 낮은 유망주에 행사할 수 밖에 없었다. 참고로 둘다 팀 중심타자 라울 이바녜즈가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FA 계약으로 떠나서 받은 보상픽, 샌드위치픽이다.
- ↑ 2010년 베이스볼 아메리카 유망주 11위, 2011년 베이스볼 아메리카 유망주 12위, 팀내 유망주 1위(2위 마이클 피네다).
- ↑ 그러나 빅리그에 올라와서는 막스윙을 가져가는 탓에 삼진을 많이 적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