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문서 :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 관련 문서 : 한일전, 리즈 시절,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도하의 기적
야구에서의 도쿄 대첩에 대해서는 도쿄 대첩(야구)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파일:/image/260/2011/01/25/tokyo.jpg
치열하게 공 다툼을 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선수들.[1]
파일:/pds/200810/11/17/f0067817 48efc8d79f4f4.jpg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한일전에서 대한민국이 일본에게 극적으로 2-1 역전승을 거두고 희비가 엇갈리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당시 동점골을 넣었던 서정원 (現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을 메인 표지로 신문기사 1면에 실리기도 했다.
한국판 영상.
일본판 영상. 이 영상은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FIFA 월드컵 첫 본선진출 조호르바루의 환희와 관련된 영상이기도 하다.
한국과 일본 해설위원들의 반응.
1 소개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당시 중계를 진행했던 송재익 캐스터.
1997년 9월 28일 일본 도쿄국립경기장에서 벌어진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한일전에서 대한민국이 일본에게 극적으로 2-1로 역전승한 명승부.
당시의 한일전에 대한 국민 감정은 오히려 현 시점보다 더 뜨거웠으며, 독도 분쟁을 비롯한 이런저런 외교 문제가 터지면서 김영삼 대통령이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놔야 한다."는 극단적인 발언을 할 정도로 한일 관계가 상당히 좋지 않았다. 그래서 1996년의 2002 월드컵 개최지 선정을 놓고 한일 양국이 벌인 신경전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었으며, 표결의 불리함을 깨달은 일본이 결국 공동개최안을 수락하면서 공식적으로 FIFA가 한국과 일본의 2002년 FIFA 월드컵을 공동개최를 결정했다.
이것으로 과열 양상을 보이던 한국과 일본의 월드컵 개최 경쟁은 일단락되었으나, 일본은 그때까지 한번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적이 없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1994년 FIFA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도하의 비극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손아귀에 들어왔던 본선 티켓을 놓친 일본은 절치부심하고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본선 진출을 치밀하게 준비했는데, J리그 벨마레 히라쓰카의 선수였던 브라질 출신의 와그너 로페스까지 귀화시키는 초강수를 뒀다. 그런데.....
최종예선 B조에 한국과 일본이 함께 편성되는 운명의 장난을 맞게 된다. 4년 전에 이어 또 다시 최종예선 길목에 한일 양국이 나란히 서게 된 것. 게다가 단판 승부로 순위를 결정지었던 지난 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서로의 안방을 오가며 결전을 치뤄야 하는, 그야말로 두 번의 진검승부를 벌여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당시 한국 대표팀 분위기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불과 몇달 전인 1996년 12월 16일의 아시안컵 8강전에서 이란에게 2:6으로 대패해 박종환 감독이 해임되고 대표팀 선수들의 태업 의혹까지 제기되며 그야말로 난장판이 된 것. 부랴부랴 후임으로 임명된 차범근 감독은 대표팀을 추스려서 1차 예선은 무리없이 통과했지만, 대표팀의 분위기는 여전히 어수선했다.
다만 최종예선 직전 브라질과의 평가전에서 1:2로 선전하는 등, 최종예선 통과 가능성은 생각보다 긍정적이었다. 실제로 잠실에서 열린 최종예선 1~2차전을 모두 이겼는데 카자흐스탄에 3-0, 우즈베키스탄에 2-1로 승리. 한편 일본의 경우 홈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는 6-3의 완승을 거뒀으나 UAE 원정에서 비겨서 1승 1무 승점 4점을 기록한다. 대한민국과 일본 모두 예상대로의 전적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양팀이 맞붙는 3차전에서 어떤 승부가 나올지는 그야말로 예측불허였으며 서로가 반드시 이기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면서 분위기는 한창 달아올랐다.
결국 한일 양국의 최종예선 통과 여부는 한일전에서 판가름나게 되었다. 그리고.....
2 경기 내용
1997년 9월 28일 일요일, 마침내 운명의 한일전이 시작된다. 일본 스포츠의 '성지' 라고 불린 도쿄국립경기장[2]에서 경기가 열렸다.
전반전은 0:0이었지만 전체적으로 일본이 홈 경기의 이점을 잘 발휘하여 경기를 풀어냈다. 대한민국의 공격력이 생각보다 무뎠던데 반해 일본은 맹렬한 공격으로 수차례 찬스를 만들어냈고 김병지의 선방과 일본 선수들이 저지르는 행운의 실책으로 겨우 실점을 면했다.
그렇게 경기는 팽팽하게 흘러가던 도중, 후반 20분 경 대한민국의 고정운이 수비 진영에서 볼 터치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일본의 야마구치 모토히로에게 볼을 빼앗기는 실책을 범하고 마는데,[3] 이 공을 가로챈 야마구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대로 한국 수비진을 돌파한 뒤 골키퍼 김병지의 키를 살짝 넘기는 절묘한 칩샷을 성공시키며 1:0으로 앞서나간다. 5만여명의 일본 관중들이 일제히 환호하기 시작했고 분위기는 일본으로 급속히 쏠렸다. 이렇게 선제골이 나오자, 가모 슈 일본 감독은 경기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기 때문에 공격수 로페스를 교체하고 수비수인 아키타를 투입하면서 1:0 스코어로 승리를 굳히려고 한 게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패착이 되었다.
오히려 수비수를 강화하면서 상대적으로 일본의 공격력이 무뎌졌고 이 틈을 놓치지 않은 대한민국의 공격력이 서서히 되살아난 것이다. 게다가 경기 내내 로페스를 전담 마크했던 수비수 이민성과 수비의 핵 홍명보까지도 공격에 가담하면서 일본이 밀리기 시작한다. 이후 차범근 감독은 날쌘돌이 서정원을 교체 투입하면서 더욱 공격력을 강화했고 이에 대한민국의 파상 공세가 일본 진영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결국 후반 38분, 일본 문전에서 누구의 머리도 맞지 않고 오른쪽 코너로 흘러나온 공을 이기형이 잡아서 길게 크로스를 올렸고, 최용수의 헤딩 패스를 받은 서정원이 헤딩 슛으로 1:1 동점골을 넣었다!
동점골이 터진 뒤에는 사실상 일방적인 대한민국의 공격 일변도가 지속되었는데, 상술했듯이 일본이 수비수를 추가 투입하면서 잠그기에 들어갔기에 한국의 수비수 이민성과 홍명보가 공격에 적극 가담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실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어려운 원정 경기이므로 무승부만 거둔다고 해도 어느 정도 만족스러울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매우 공격적인 자세로 나오자 일본 선수들은 당황하기 시작한다.[4] 그리고 마침내...
후반 41분경 수비수 이민성(現 울산 현대 축구단 수석코치)의 역전골이 터졌다!
페널티 박스 바깥쪽에서 최용수의 패스를 받은 이민성이 그대로 중거리 슛을 날린 것이 가와구치 골키퍼 앞에서 한번 튀어오르고 골문으로 빨려들어간 것이다.[5] 골을 직감한 신문선 해설위원의 "이민서어어엉~~!!" 하는 샤우팅도 일품이다. 이후 대한민국은 일본의 공세를 잘 막아내서 2:1의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었다.
여담으로 일본이 1대 0으로 앞서고 있을 때까지만 해도, 일본 공격수 미우라 카즈요시는 조금만 반칙을 얻어도 잔디에 드러누워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시간을 끈다거나 공이 터치라인을 벗어나면 일부러 관중석 쪽으로 멀리 차버리는 등, 노골적인 비매너의 침대축구를 선보이며 관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하지만 한국에게 역전을 당한 이후에는 조금만 경기가 중단돼도 허겁지겁 경기를 속행하는가 하면, 한국 코너킥 때는 직접 공을 코너지점에 놓아주는 친절을 발휘하는 등, 똥줄타는 모습을 제대로 연출하면서 보는 이들에게 큰 웃음을 안겨주었다.
3 그 이후
이 경기가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B조에 미친 여파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이 당시 판도를 자세히 보면 지금도 흥미진진한데, 원래는 한국과 일본이 1위를 노리고 UAE는 복병 정도인 양상이었으나 이 날 경기로 인해 한국이 3연승으로 단독 1위를 마크했고 UAE가 2승 1무로 2위, 일본은 1승 1무 1패로 3위를 기록하며 도리어 UAE가 한국과 함께 1위를 다투게 된 것.
이후 한국은 잠실에서 UAE마저 3-0으로 뭉개 파죽의 4연승을 거두고 카자흐스탄 원정에서 아쉽게 동점을 허용해 1무를 추가하며 조 1위를 서서히 굳혀나간 반면, 일본은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 2무를 거두고 UAE는 한국전 패배 후 카자흐스탄 원정에서 0-3의 예기치 않은 대패를 당하며[6] 2위 싸움만 격화된다.[7]
이 충격적인 패전으로 인해 당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던 가모 슈 감독이 일본 국민들이 할복이나 하라는 성화를 못 이겨내고 국가대표팀에서 경질됐고, 후임으로 오카다 타케시 감독이 사령탑에 올랐다.
도쿄 대첩 당시 축구협회 김정남 전무가 일본에 같이 왔는데, 일본 언론에서는 1986년 한국 대표팀 월드컵 감독이었던 김정남 전무에게 "한국이 지면 김정남 전무가 감독으로 올라가기로 되어 있고 그래서 미리 왔다는데 사실이냐?"라면서 노골적인 힐난을 하는 식으로 질문을 하자, 김정남 전무는 "일본 감독이 바뀐다길래 궁금해서 왔다."고 받아치기도 했다.
이후 한국은 우즈베키스탄 원정에서 5-1 대승을 거두고 난 뒤 일본-UAE의 도쿄 경기를 주목하게 된다. 이 경기에서 UAE가 이기면 경우에 따라서 1위를 UAE가 탈환할 가능성이 있는 반면[8] 일본이 이기거나 무승부를 기록하면 한국의 1위가 무조건 확정되기 때문. 특히 일본 입장에서는 이 경기를 잡아야 UAE를 승점 2점차로 제치고 2위로 오를 수 있었는데 전반 3분 기록한 선제골을 지키지 못하면서 한국의 1위를 확정시켜버린 것도 모자라서 자력 2위 진출(...)의 가능성까지 날려먹었다.
차라리, 일본이 이 날 이기기라도 했으면 한국의 1위 확정은 둘째치고 일단 일본 스스로 2위에 오르면서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킬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날 경기 직후 흥분한 관중들이 선수들을 향해 엄청난 폭언을 내지르는 험악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었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등의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래서 조호르바루의 환희 문서의 영상을 보면, 험악하게 항의를 하는 장면을 볼 수가 있다.
결국 일본은 2위로 올라가기 위해서 한국 원정 경기와 카자흐스탄전 홈경기를 무조건 잡고 한국이 UAE 원정에서 꼭 이기기만을 간절히 빌어야 하는 굴욕적인 상황을 맞게 된다. 게다가 당시 아시아 쿼터가 고작 3.5장이었던지라 2위를 한다고 해도 A조 2위와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만약 패하면 또 오세아니아 1위팀과 플레이오프를 치뤄야 하는 가시밭길이 예고되어 있었다.
11월 1일 잠실운동장에서 한국과의 원정 경기를 앞둔 일본은 1승 4무 1패 승점 7로 UAE의 2승 2무 2패 승점 8보다 1점이 뒤진 3위였다. 만일 한국에 패할 경우 카자흐스탄과의 홈경기를 잡더라도 UAE가 우즈베키스탄전만 잡으면 조 3위로 밀려 아예 본선진출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이었다.
일본이 한국과 비길 경우에는 골득실이 앞선 상황이라서 2위 가능성이 있긴 했지만, 한국이 한일전에서 절대로 패배하지 않으려고 하는 자세를 감안한다면 사실상 일본으로서는 거의 벼랑 끝에 몰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 마디로, 한국이 월드컵 본선진출이 확정되었다고 하더라도 한일전만큼은 절대로 패배하지 않고 반드시 이기고자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일본의 2-0 완승. 이 날 잠실운동장에는 무려 8천여명의 일본 응원단이 집결했고 일본 선수들 역시 지난 도쿄대첩 때의 한국팀에 맞먹는 투지로 맹렬히 움직였다. 경기 시작 후 약 2분도 채 안되어서 나나미가 선제골을 넣었고, 전반이 종료되기도 전에 로페스가 추가골을 넣은 것을 한국이 만회하지 못하면서 완패한다. 이에 따라 일본은 승점 2점차로 UAE를 제쳐 조 2위로 올라섰고 이후 카자흐스탄과의 홈경기에서 승리하면서[9]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면서 마침내 말레이시아의 조호르바루에서 단판 승부로 열린 A조 2위 이란과의 플레이오프 중립경기에서 극적으로 3-2 역전승을 거두었고[10] 일본은 꿈에도 그리던 FIFA 월드컵 본선진출에 성공한다.
결과가 이렇게 되자, 일본과 조2위를 다투던 UAE쪽에서는 월드컵 진출이 좌절된 것에 열이 뻗칠대로 뻗쳐서 "한국같은 강팀이 어떻게 일본에게 지느냐? 차기 대회 공동개최국과 함께 본선에 진출하기 위한 승부조작이다!"라는 주장을 폈고 한국 내에서도 상대가 상대였던지라 이런 주장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꽤 있었다. 붉은악마의 공식 응원 걸개중에는 LET'S GO TO FRANCE TOGETHER, 즉 한일 양국이 함께 월드컵 본선에 가자는 나름 훈훈한 문구도 있긴 했지만[11] 이건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것이었을뿐, 국민들 사이에는 "한국이 일본을 확실하게 뭉개버려서 아시아의 맹주임을 분명히 하고 겸사겸사 UAE를 2위로 올려주자!"라는 의식이 팽배했다.# #
실제로, 두 번째 골을 허용한 순간 서울 거리에서 대형 전광판으로 경기를 시청하던 시민들의 얼굴은 그야말로 나라잃은 표정 그 자체.[12] (...) 반면 일본 팬들은 엄청 신났으며 "UAE를 이겨서 함께 월드컵에 가자!"는 외침까지 나왔다. 아니, 한국이 UAE 이겨도 너네가 플레이오프에서 지면 탈락하는데요?
승부조작설에 대해서는 차범근 감독이 2002년 5월 방영된 MBC 스페셜을 통해서 "승부조작은 절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이미 본선에 진출해서 여유로웠던 반면에 일본은 워낙 벼랑끝이다보니 악착같이 경기에 임했는데 여기에 밀려서 패한 것이다."라는 발언을 했다. 사실, 당시 일본 내 분위기는 말 그대로 폭풍전야였다. 일부 지역에서는 의자가 날아다닐 정도로 험악했다는데 만약 서울에서마저 일본이 패배하면서 월드컵 본선진출에 실패했다면 아마 나리타 국제공항은 말할 것도 없고 김포국제공항에서부터 일본 응원단의 폭동이 벌어졌을지도....
실제로도 말이 안되는 것이, 프로축구도 아니고 국가대표팀이 그랬다간 후폭풍이 얼마나 될지도 미지수인데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일본을 상대로 그랬다가는 당장 국민들이 들고 일어났을 것이기 때문이다.[13] 따라서 차범근 감독의 주장대로 투지력에서 밀려서 패배한게 맞다. 게다가, 당시 홍명보가 경고 누적으로 결장을 하면서 전력상 다운그레이드가 되었던 것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4 뒷이야기
- 도쿄 대첩이라는 표현은 경기 당일 MBC 뉴스데스크에서 처음 나왔고 이후 현재까지도 쓰이고 있다.
- 송재익 MBC 캐스터의 명언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가 이 경기에서 나왔다.[14]
후지산이 무너지고 일본 국가대표팀이 무너지고
- MBC에서 단독 중계하여 무려 56.9%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 붉은 악마가 결성된 이후 처음으로 해외 원정을 간 경기이다.
- 안정환은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이민성의 골을 '얻어 걸린 것'이라 평했다. 김성주 캐스터의 후지산 운운에는 '산을 올라가긴 했는데... 잘못 올라간거다.'라든가, '실력이 그만큼 안되는데 기대치만 올렸다' 등 절친이라 가능할 듯한 가열찬 디스를 남겼다.
- ↑ 사진에 있는 한국 선수들은 최용수, 유상철.
- ↑ '국립카스미가오카 육상경기장'이라고도 불리는 곳으로 1964 도쿄 올림픽 대회의 주경기장이었다. 축구전용구장이 아닌 종합경기장이지만, 2002 한일 월드컵 이전까지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홈구장으로 사용했고(현재 일본 국대의 사실상 홈구장은 요코하마 닛산 스타디움), J리그컵 결승전과 일왕컵 결승전이 열리던 곳이기도 했다. 2015년 5월 철거를 하여 2020 도쿄 올림픽에 맞춰 새 경기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 ↑ 이 대목에서 고정운의 플레이에 대해 당시 경기를 중계하던 송재익 캐스터는 "저건 웬 패스인가요? 아 위험합니다~ (리플레이 장면에서) 여기서 저 저.. 이상한 짓을 했어요.."(...) 라며 대놓고 까기도 했다.
- ↑ 위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잘 보면 이민성이 슛을 날리려는 순간까지도 일본의 수비가 전혀 타이트하지 않고 우왕좌왕하는 것이 보인다.
- ↑ 이민성은 자신의 슛이 그대로 역전골로 연결되자 머리 속이 새하얗게 되면서 그라운드에 아무 것도 안 보였다고 회고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민성은 실제로는 철저한 오른발잡이로, 당시 오른발이 아파서 어쩔 수 없이 왼발로 찼던 것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 ↑ 만일 UAE가 이 경기를 잡았다면 여전히 1위를 넘볼 수도 있었으나 당시의 카자흐스탄은 홈깡패 수준이었다. 한국의 연승 행진을 저지한 팀이 바로 카자흐스탄이었고.
- ↑ 이 때 UAE는 2승 1무 2패 승점 7, 일본은 1승 3무 1패 승점 6, 카자흐스탄이 1승 3무 2패 승점 6으로 세 팀이 물고 물리는 상황이었다.
- ↑ 이는 말 그대로 가능성에 지나지 않는다. 이 때 한국이 1위를 놓치는 시나리오는 일본과 UAE에 총 10골차로 패하는 것뿐이었으니, 한 마디로 믿기지 않는 상황이 펼쳐지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 ↑ 이 때 UAE는 우즈베키스탄과 무승부를 거두면서 주저앉았다.
- ↑ 전반에 일본이 1-0으로 앞서다가 후반에 이란이 2-1 역전에 성공했다가 다시 일본의 동점골로 2-2 가 되어 연장전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연장후반 13분 오카노의 골든골이 터졌다. 그리고, 나카타 히데토시는 혼자서 3도움을 기록했다.
- ↑ 여담으로 나가누마 켄 당시 일본 축구협회장이 이 문구를 보고 엄청난 감동을 느꼈다고 술회했다.
- ↑ 참고로 영상 속의 거리는 삼성역 5번출구쪽으로 추정된다.
- ↑ 요즘은 한일전의 영향력이 많이 희석됐지만 당시엔 사실상 한국인들이 즐길 수 있는 가장 큰 스포츠 이벤트였다. 심지어 당시 예선을 승승장구하며 범국민적 인기를 구가하던 차범근도 져도 상관없는 이 한일전을 패배하면서 인기가 확 꺾였다.
그리고 본선에서.... - ↑ 위의 일본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도 한국 중계석의 상황을 보여줄 때 이 멘트에 자막을 달아서 보여줄 정도인 것을 보면, 일본 입장에서도 상당히 굴욕적임과 동시에 꽤 인상적인 발언이었던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