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러시아 제국 시절
러시아에 처음으로 영화란 매체가 출현한 것은 1896년 5월,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영화가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여름 극장에서 상영했을 때였다. 뒤이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영화는 점차 러시아인들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었다. 1903~1904년부터 러시아의 대도시와 중, 소 도시에는 이동식 극장이 등장해서 각 도시별로 순회하며 영화를 상영했다. 이후 단순한 영화 관람을 넘어 러시아인의 손으로 영화가 제작된 것은 1908년으로, 이 때 알렉산더 드란코프(Alexander Drankov)가 제작한 러시아 최초의 장편 영화 스텐카 라진(Stenka Razin)이 개봉했다. 그러나 당시 러시아의 영화 산업 기반은 거의 없다시피 해서 자본, 기술, 그리고 장비는 전적으로 서유럽에 의존해야 했다. 드란코프 외에도 초기 러시아 영화사에서 중요한 인물로는 알렉산드르 한존코프(Aleksandr Khanzhonkov)가 있다. 그는 1904-1914년의 기간 동안 70여 편의 영화를 제작하였는데, 그가 제작한 영화는 주로 러시아 고전 작품과 역사를 바탕으로 했다. 이 시기 러시아 영화는 주로 문학 작품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이후 1908년부터 1914년까지 제작된 대부분의 영화는 전쟁 선동을 위해 만들어진 작품들이었다. 특히 전선에서 기록 영화가 많이 촬영되었는데, 당시의 기록 영화들은 특별한 주제 의식이나 스토리 없이 그저 영상으로 정보만을 전달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러한 선동 영화의 주 목적은 바로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것이었다.
2 혁명 직후 소비에트 영화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볼셰비키들은 정치적 선동과 선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이것을 실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매체로 영화를 주목했다. 이후 영화 산업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소비에트 영화는 당의 기본 지침에 따라 공산주의 이념의 선전과 민중의 교화를 위해 만들어졌다. 영화는 이제 단순한 오락물로서가 아니라, 대중들의 교육과 계몽의 도구로서 자리잡게 된 것이다. 또한, 체계적인 영화인 교육을 목적으로1919년에는 세계 최초의 영화학교인 게라시모프 국립 영화학교(All-Union State Institute of Cinematography)가 설립되었다. 1919년 적백내전 당시에는 전선의 상황을 담은 기록 영화가 주로 만들어졌다.
3 1920년대
적백 내전 이후 신경제정책으로 경제가 회복세에 접어들자, 영화 산업도 탄력을 받게 된다. 1922년 소련 국가 영화위원회 (고스키노) 가 설립되어 국가적으로도 영화 산업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시기 극장에 걸린 영화 대부분은 외국 영화였으며, 주로 미국과 서유럽으로부터 수입해 온 영화가 많이 상영되었다. 이런 경향은 20년대 중반에 들어서부터 바뀌게 되는데, 바로 젊고 재능있는 인재들의 등장이었다. 전함 포템킨으로 잘 알려져 있는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은 그의 몽타주 이론을 정립했고, 지가 베르토프(Dziga Vertov) 는 러시아인의 삶 그 자체를 보여주는 기록 영화를 주로 만들었다. 그의 작품 '카메라를 든 사나이' 는 시나리오, 배우, 세트의 도움 없이 그저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가서 직접 제작한 것으로, 오늘날의 다큐멘터리의 효시이다. 또한 이 시기는 소비에트 무성영화의 황금기로 평가받는데, 대표적인 작품들은 예이젠시테인의 '전함 포템킨', '파업', 베르토프의 '카메라를 든 사나이', 푸도프킨의 '어머니', '페테르부르크의 종말' 등이 있다.
4 1930년~1940년
1930년대 이오시프 스탈린이 등장해서 철권 통치를 펴자 소비에트 영화 산업은 침체기를 맞는다. 네프 시기 독자적으로 영화를 제작, 배급하던 수많은 영화 제작사들은 모두 국가의 통제 하에 놓였으며, 영화위원회의 감독 하에 영화를 만들게 된다. 1932년 공산당은 1920년대의 '아방가르드적' 경향을 버리고 소비에트 리얼리즘을 따르라는 명령을 내렸다. 소련 공산당은 또한 영화 제작에 있어서 몇 가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는데, 이에 따라 관객들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정의로운 영웅을 내세운 영화,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 그리고 당 정책을 지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가 주로 제작되었다. 이를 어기는 영화는 심의, 검열을 받고 상영이 금지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시기 소비에트 영화는 1920년대의 실험정신을 완전히 잃고, 혁명의 역사를 다루는 데만 치중하면서 점차 정형화, 획일화되어 갔다. 이 당시 영화의 두드러진 특징으로는 레닌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가 많았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레닌에 대한 묘사는 다양했는데, 주로 그는 혁명의 지도자, 순수하고 겸허한 인간, 아니면 일반 민중들과 다름 없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예외적으로, 1930년대에는 뮤지컬 코미디 장르가 성행했다. 이 분야의 대표적인 감독은 그리고리 알렉산드로프(Grigori Aleksandrov)인데, 그는 뛰어난 코미디 배우이자 자신의 아내인 류보프 오를로바(Lyubov Orlova) 와 손잡고 여러 뮤지컬 영화를 만들었다. 1938년에 개봉한 볼가 볼가 (Volga Volga)는 그의 대표작으로, 소비에트 영화 역사 사상 공전의 대성공을 기록했다.
1940년대에는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군인들의 영웅적인 활약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와 뉴스 영상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시기 극영화의 주요 주제는 전선의 상황과, 병사들의 영웅적 활약상 등이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으로는 앞서 말했던 레닌의 경우와 같이, 스탈린을 주요 주인공으로 다룬 영화들 역시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 영화들은 스탈린을 주로 전쟁 영웅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영화의 예로 1948년 제작된 이고르 사브첸코의 '세번째 공습' 과, 2부작으로 만들어진 블라디미르 페트로프의 1949년 영화 '스탈린그라드 전투' 가 있다.
5 1950년~1960년
스탈린 사망 후, 뒤를 이은 니키타 흐루쇼프가 등장해 스탈린 격하 운동을 벌이면서 해빙기가 도래한다. 이러한 영향으로 소비에트 영화계 역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영화 검열 제도가 일부 폐지되어 소련 영화인들은 보다 자유로운 제작 환경을 만끽할 수 있게 되었고, 영화 학교에서 교육받은 젊은 영화인들의 유입으로 소련 영화계에는 이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영화들이 속속 등장한다. 1962년 제작된 SF 컬트 영화 '앰피비언 맨' 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기존에 제작되던 역사, 문학 관련 작품들 역시 성행하였는데, 주요 소재는 바로 2차 세계대전이었다. 40년대와는 다르게, 이 당시 전쟁을 묘사한 작품들은 국민 선동과 이데올로기적 요소에서 탈피해 보다 사실적이고 인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그리고리 추흐라이의 1959년 작 '병사에 대한 발라드' 로, 전쟁 중 포상으로 휴가를 받게 되자 고향으로 잠깐 돌아가 어머니를 뵙고자 하는 병사의 이야기이다. 예술 영화의 거장인 안드레이 타르콥스키가 이반의 어린 시절로 데뷔한 것도 이 시기이다. 그러나 브레주네프가 집권한 이후로는 세르게이 파라자노프처럼 가혹한 탄압을 받은 사례도 있다.
이 당시 활약한 여배우로 아나스타샤 베르틴스카야(Anastasiya Vertinskaya)가 있다. "소련의 비비안 리" 라고 일컫어질 정도로 빼어난 미모를 자랑했던 그녀는 1961년 '진홍색 돛' 으로 데뷔해 평단과 관객들의 호평을 받고, 이후 '앰피비언 맨', '전쟁과 평화' 등 다양한 영화에 출연해 러시아 영화계 굴지의 여배우로 자리매김한다.
6 러시아 영화의 특징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처럼 초창기 영화사에 혁명을 일으킨 몽타주 기법의 중심이기도 하지만, 정작 그 몽타주 기법은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상업적으로 재밌게 편집하기 위해 활용되었다(…) 본디 몽타주 기법은 혁명을 위한 정치적인 기법이었다.
안드레이 타르콥스키라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예술영화계의 거장이 등장하기도 했다. 물론 지루하지만... 더불어 소련 시절에는 엄청난 엑스트라로 알아주는 영화들이 대거 나왔는데, 특히 러시아 신화를 영화화한 작품에서는 괴수물 마니아들의 호평을 받은 작품도 여럿 나왔다. (다수의 엑스트라를 출연시키는 이유는 인민을 위한 영화라는 정치적인 목적에 기반한다.) 10만 이상의 엑스트라를 써서 드래건을 잡는 거대한 스펙터클을 보여줬으며, 세르게이 본다추크의 '전쟁과 평화'는 기네스북에도 오른 총 70만 이상 엑스트라를 쓴 바 있다.
타르콥스키 이후엔 비평적으로 알렉산드르 소쿠로프 감독이 예술 영화의 명맥을 잇는 중. 1990년대 공산주의 체제 붕괴 이후 나이트워치 시리즈 등 다양한 상업 영화들도 점점 나오고 있는 중이다. 1990년~2000년대의 영화들은 신생 러시아 상업 영화의 붐이라고도 볼수 있는데, 그 당시의 암울한 분위기와 리얼리즘 느와르의 지평을 연 '형제' 시리즈도 있었으며, 시베리아의 이발사와 같은 러시아 제국에 대한 고증을 살린 수준급의 역사 로맨스도 존재한다.
외국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더빙을 한다는 것, 그냥 더빙도 아니고 배우들의 목소리를 전혀 삭제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위에 성우들이 더빙을 한다. 그 때문에 원본 대사와 더빙 대사가 동시에 들린다. 그외에도 러시아내에서 만든 영화 역시 그렇다, 캐릭터가 외국어로 말할 경우 그위에 바로 더빙을 한다, 역시 두언어가 동시에 들린다. 무엇보다 국어책 읽기식의 더빙이라 듣는 사람 입장에선 더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