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일반적인 의미
蜂起. 벌 떼처럼 무리지어 세차게 일어난다는 말. 주로 무언가(지도자의 폭정 등)에 항거하기 위해 민중이 들고 일어나는 것을 뜻한다. 시민 불복종 운동에 속하며, 전반적으로 폭동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를 띄고 있다. 역사적으로 봉기가 발생하면 군대와의 무력 충돌이 생기곤 했다. 부활절 봉기, 동학농민운동, 바르샤바 봉기, 동베를린 봉기(1953년) 등이 이에 속한다. 일본사에서는 잇키라는 단어가 쓰인다. 사실은 공동체를 결성하는 일을 뜻하는 거지만, 봉기도 어쨌든 사람이 모여서 일어날 테니 그 과정에서 공동체가 생기는 건 자명하고, 잇키 공동체나 잇키 공동체가 일으키는 분규·반란이나 다 잇키로 부르기에 구분하기는 어렵다.
2 후한 말의 인물
逢紀
(? ~ 202년)
원소 휘하의 모신. 자는 원도(元圖). 남양군 사람.
2.1 생애
2.1.1 관도대전 이전
원소가 십상시를 주살하기 위해 하진과 손잡자 허유와 함께 원소의 심복들 중에서는 단연 최고참으로 허유, 봉기는 원소가 6년상을 지내던 시점부터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진이 봉기와 하옹, 순유와 같은 지모가 뛰어난 선비들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하옹, 순유와 같이 언급되는 것을 보면 네임벨류도 꽤 있었나보다.
원소가 기주목 한복의 견제에 시달리고 있을 때 원소에게 공손찬을 부추겨 기주를 공격하도록 하고 그 사이 불안해진 한복을 협박해 기주를 취하는 계책을 진언했다. 원소는 봉기의 책략에 따라 공손찬을 움직이고 한복이 공손찬에게 격파된 틈에 한 몫 잡아보려는 떨거지(...)들을 정리하면서 위세를 떨치고, 곽도, 고간, 순심 등을 세객으로 보내 한복을 협박하며 기주목의 지위를 양도받았고, 원소가 기주목이 되자 심배와 함께 기주의 모든 문서작업과 실무를 총괄했다.
하지만 임무 자체가 겉으로 보여지는 부분보다는 실제적인 행정처리 담당일셔틀이니 관도전 무렵까지 기록이 없다.
봉기는 총명하고 지모가 뛰어났으며 원소와의 친교도 깊고 가장 오랫동안 원소를 따랐기 때문에[1] 참모들 중에서 가장 중용받았지만, 동료 참모들인 심배와 전풍과는 사이가 나빠 항상 대립하였다고 한다.
2.1.2 관도대전
관도전투 직전 공융은 원소 휘하의 장수들을 칭찬하며 승리에 대해 회의적인 발언을 하는데 봉기를 심배와 함께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칠 원소의 충신으로 평가했다. 순욱은 이를 반박하면서 심배는 고집불통에 융통성이 없으며 봉기 역시 과단성은 있지만 자기 판단에만 따르기 때문에 무용지물이라고 했다.
원소가 남하할 때는 심배와 함께 업에서 군사를 총괄했다고 하는데 이때도 원소가 부재중인 업의 사무처리와 군수품의 보급 등 행정업무 담당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셔틀
2.1.3 관도대전 이후
원래 봉기는 심배와 사이가 나빴지만 관도전의 패배 이후 심배가 원소에게서 중용되고 곽도, 신평 등 영천파가 몰락하기 시작할 무렵에 맹대, 장기가 심배를 탄핵하자 곽도, 신평이 이에 동조했는데 봉기가 심배를 적극적으로 변호하며 위기를 넘기게 해 준 일을 계기로 심배와 화해했고 영천파와 대립했다.
봉기는 전풍의 뻣뻣함을 싫어해 평소부터 수차례 헐뜯었으며 원소가 관도에서 참패하고 돌아왔을 때도 "사람들이 지금 모두 나를 걱정하고 있지만, 전풍만은 이전에 나에게 거듭 그만두라고 간언해 다른 사람들과 달랐으니 그를 보기가 부끄럽다."라는 말에 "전풍이 군이 패했다는 소식에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고 참언해 원소가 전풍을 죽일 마음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2.1.4 허무한 죽음
원소가 죽자 원담의 권력 장악을 견제해 심배와 함께 선수를 쳐서 기주를 장악하고 원상을 옹립했다. 군사를 이끌고 뒤늦게 도착한 원담이 거기장군을 자칭하며 여양에 주둔하자 적은 병사를 이끌고 중재역으로 파견되었다.
대립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조조가 원소의 사망을 틈타 북상해 왔고 원담은 군사를 지원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심배는 이에 대해 논의하여 원상에게 지원군을 보내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원상은 원담을 돕고 싶었지만 원군을 보내면 원담이 그 군사를 빼앗을 것을 두려워했으므로 이에 따랐다고 하며 이에 분노한 원담이 봉기를 죽이자 그제서야 원상이 직접 여양으로 나서 원담을 도와 원씨 형제와 조조가 여양에서 격전을 벌이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있는데 한진춘추에 인용된 심배의 글에서는 '흉신 봉기가 망령되게도 (원소의 뜻에) 쓸데없는 사족을 긋고 그릇된 말로 첨언만 하여 친족의 도리는 이간되었다.'고 적고 있으며 봉기를 원가의 수치,커다란 종양에 비유하며 봉기를 죽인 원담의 행위를 칭찬하고 있다. 봉기를 죽였기 때문에 화해할 수 있었다는 표현인데 다른 곳에서는 관련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의혹을 낳고 있다.
2.2 평가
2.2.1 긍정적 평가
당시 한복의 견제에 비실거리고 있던 원소에게 주변의 위협세력들을 모두 한 데 엮은 사기극으로 기주목을 양도받게 하여 원소의 첫 발판을 만들어줬던 봉기의 책략은 결코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는 엄청난 공적이고, 봉기와 심배가 행정과 실무를 총괄했는데 원소 세력은 전국에 난립한 군벌들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영내를 안정시키고 물량을 뽑아낼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최소한 능력적인 부분만큼은 탁월했을 듯.
일단 초반의 공적이 엄청난 데다 그 이후로도 충성과 능력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었으니 원소로서는 신뢰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 인물이었던 셈이다.
봉기하면 찌질한 소인배로 보는 경향이 강하지만 봉기와 동시대인이며 영웅기의 저자인 왕찬은 봉기를 일컬어 총달(聰達=총명하고 사리에 통달)했다고 평가하고 있을 정도고 개인적으로 사이가 나빴던 심배를 개인의 일과 나라의 일은 별개라며 변호해 주는 일화를 소개하는 등 상당한 개념인으로 평가했다.
2.2.2 부정적 평가
영웅기에서는 봉기를 높게 평가했지만 영웅기는 주석으로 인용된 일부만이 현존할 뿐이고 봉기의 최후에 대해서는 심배가 언급한 것을 빼고는 자세히 남은 기록이 없다. 또한 선현행장에서는 전풍을 참소하는 등 악한 이미지로 묘사되고 있다.
자치통감에 주석을 달았던 역사가 호삼성은 원소의 측근들 중 심배만이 원소에게 마지막까지 충성을 바친 유일한 인물이라며 칭찬하고 있는데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원소 생전 심배와 더불어 원소의 절대적인 충신으로 평가되었던 봉기는 심배와 달리 끝까지 충성을 바치진 않았다는 말이 된다. 호삼성이 살았던 송원대에는 현대에 유실된 당대의 풍부한 사료들을 접했을 것이고 이를 종합해 평가를 내렸을 테니 신뢰도가 높을 것이다.
선현행장은 최소한 영웅기보다는 뒤의 기록이니 어쩌면 당대에는 높게 평가받았지만 후대로 가면서 비판이 이루어져 까이는 트렌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2.3 미디어 믹스
2.3.1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에선 초반부에 반동탁연합 해산 이후 기주를 장악할 계책을 진언하는 원소의 모사로 나오는데, 얼굴만큼은 안량, 문추는 물론 관우나 장비조차도 씹어먹을 듯한 험악한 인상의 맹장 분위기로 나오면서 하는 짓은 주도면밀한 모사 포지션이라 뭔가 괴리감이 든다. 이후 관도대전과 조조의 하북 평정이 반 페이지(...)로 끝나기 때문에 재등장은 없다.
2.3.2 화봉요원
화봉요원에서는 원소의 주요 모사로 초반부터 등장. 꽤 냉철하고 살벌한 이미지로 나와서 사마휘와 수경팔기에 대해서 허명만 가득하단 식으로 자신만만하게 디스해 강한 임팩트를 남겼지만 결과적으론 굴욕만 당하고 이후 별 등장 없이 공기로 전락한다.
2.3.3 삼국전투기
봉기(삼국전투기) 문서 참조.
2.3.4 삼국지 시리즈
삼국지 11 |
삼국지 12,13 |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대체로 B급 문관 수준으로 등장한다. 초창기 시리즈에는 과단성이 있지만 독선적이라는 순욱의 평가에 따랐는지 성질 더러워보이는 인상의 문관으로 나왔고 무력이나 통솔력도 5,60대로 그다지 낮은 편이 아니었지만, 최근작에 가까워질수록 무력과 통솔력이 급락하고 일러스트 역시 찌질하고 나약한 이미지로 변하는 추세다. 게다가 기주의 실무를 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70도 못 찍는 경우가 다반사.[2][3]
삼국지 3에서의 능력치는 육지 66/수지 62/무력 54/지력 82/정치 64/매력 52로 그냥 그런 B급 군사. 최근작과는 다르게 전투력이 준수하다. 시나리오 1,2에서는 전풍,저수 때문에 묻히는 편이지만 인재가 매우 부족해진 시나리오 3에서는 대조조전에서 상당한 활약을 할 수 있다.[4]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16/19/83/69. 혼란, 덫, 매도를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27/22/84/69/36으로 지력 하나에만 특화된 듯한 모사 느낌. 특기는 총 6개로 내정특기는 상업 하나 줬는데 정치가 69라 그저 그렇고, 군사 특기가 있긴 하지만 통솔이 27로 바닥이라 그렇게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나머지는 반목, 유인, 명사, 간첩.
삼국지 12에서는 전작들에 비해 대접을 좀 괜찮게 받아서 능력치는 43/21/84/70로 상향되었고 특기는 상제,명사,군사,원사에 전법은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궁군병격. 비책은 구재지책,이간지책,원망지책,망기지책이있다. 평상시에는 상제,명사,구재지책을 활용하여 내정용으로 쓸 수 있고 전장에서는 통솔은 낮지만 원사와 궁군병격을 가지고 있어서 수성전에서 어느정도 활약을 기대할 수 있다.
2.3.5 영걸전 시리즈
삼국지 영걸전에서는 공손찬의 구원군으로 가던 도중 신도 전투와 광천 전투를 선택하는 분기에서 광천 전투를 선택하면 총대장으로 등장하며, 레벨 6의 단병으로 나온다. 지력이 82로 꽤 높은 수준이라 책략에 주의해야 하며, 나머지 능력치는 무력 54, 통솔력 56. 이외에 아이템으로 청강검과 오자의 병법서를 갖고 있다.
의외로 54의 무력을 가지고 무력 98의 관우와 일기토를 벌이는데, 초살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건만 라이벌같은 대사를 남기고 사라져 명대사만 남기고 장비에게 능욕당한 안량과 문추보다 더 강한 남자로 등극했다.(...) 과연 맹장 곽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남자 다만 영걸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 중 대다수가 신도 전투를 선택하기 때문에 묻혀진 일기토가 되었다.(...)
만약 선택 분기에서 광천이 아닌 신도 전투를 선택했다면 그 다음 전투 분기에서 거록 전투를 선택했을 경우 해당 전투에서 레벨 7로 등장하며, 거록이 아닌 청하 전투를 선택했을 경우에는 계교 전투에서 레벨 8로 등장한다. 순우경과는 달리 분기를 어떻게 택하든 한 번은 마주하게 되며, 계교 이후에는 전투 상황에서 등장히지 않는다. 다만 유비가 조조의 공격을 피해 원소 휘하에 있을 때 회의장에서 볼 수 있으며, 곽도가 여남으로 도망가는 유비를 추격하러 가는 것을 방관한다. 따라갔으면 한 번이라도 더 나왔을텐데
삼국지 조조전에서는 이상하게도 기존 이미지인 디버프 계열이 아니라풍수사 계열로 등장하며, 관도 대전부터 나온다. 지력이 84, 통솔력이 66으로 상승된 반면 무력은 48로 줄었다. 회복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원소와 같이 남겨놓으면 경험치 쌓기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