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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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생각 나시나?[1]
본명 | Amy Christine Dumas (에이미 크리스틴 뒤마스[2]) |
생년월일 | 1975년 4월 14일 |
신장 | 170cm |
체중 | 57kg |
출생지 | 미국 플로리다 주 포트 로더데일[3] |
피니시 | 스냅 DDT |
트위스트 오브 페이트 [4] | |
문설트[5] | |
테마곡 | Crazy Roof (2000.02 ~ 2000.06) [6] |
Electron (2000.06 ~ 2000.10)[7] | |
It Just Feels Right (2000.10 ~ 2002.04) | |
Lovefurypassionenergy (2002.04 ~)[8] | |
주요 커리어 | WWF/E 위민스 챔피언 4회 |
2001년 PWI 선정 올해의 여성 레슬러 | ||||
스테파니 맥마흔 | → | 리타 | → | 트리쉬 스트래터스 |
전 WWE 디바이자 프로레슬러. 트리쉬 스트래터스와 함께 현 북미 메이저 여성 레슬링의 초석을 세운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목차
1 프로레슬링 커리어
WCW에서 활동하던 레이 미스테리오를 보고 프로레슬링에 흥미를 느껴 혈혈단신으로 멕시코에 건너가 루차 리브레를 배웠다. 흥행을 보러 간 98년의 리타 이후 안젤리카(Angelica)란 이름으로 인디 무대를 전전[9]하다 99년에 미스 컨지니앨러티(Miss Congeniality)란 이름으로 ECW에 데뷔했다. 대니 도링의 여자친구 기믹으로 등장했었는데 이 때도 결혼식 비스무리한 세그먼트를 했었다(...) 세결여의 원조?
99년 가을 WWE에 입성, 우리가 잘 아는 리타(Lita)[10]란 이름으로 에사 리오스와 데뷔한다. 당시 WWF는 여성=아이캔디란 공식이 정석이었기 때문에 데뷔무대에서 선보였던 문설트는 팬들에게 엄청난 임팩트를 남겼었다. 에사 리오스가 사용한 기술을 고대로 따라하는 기믹을 갖고 있기도 했으며, 카이엔타이 같은 경량급 레슬러들과 정식 매치를 치르기도 했었다.
에사 리오스와 각본상 불화를 겪은 뒤 그지같은 쫄쫄이를 벗고 하디 보이즈의 제 3의 멤버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11] 이 당시 리타는 더 락,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 부럽지않은 인기도를 보유하고 있었다. RAW 최초의 여성 챔피언쉽 메인 이벤트에서 승리했으며[12], 4년 뒤엔 트리쉬와 함께 오직 디바들만의 힘으로 위민스 챔피언쉽 매치를 메인 이벤트로 끌어올렸고 여기서도 승리한다.[13]
페뷸러스 물라의 30년 독주와 일본 전녀시대를 카피했던 90년대를 지나오며 여러 차례의 암흑기가 있었던 WWE의 여성 디비전에 있어 리타의 등장은 꽤나 큰 의의를 갖는다. 바로 스타성과 레슬링 실력을 함께 겸비한 최초의 인재라는 것.[14] 이후 트리쉬 스트래터스의 비약적인 성장으로 여성 디비전은 유래없는 황금기를 맞이했고, 이로 인해 WWE는 디바 서치 등을 통해 한동안 미모가 되는 인재들을 선발해 레슬링을 가르치는 방법을 택해왔다.
하지만 2002년 심각한 목부상[15]을 당하고 1년 6개월의 공백기간을 가지다 컴백했을 때, 리빙 레전드로서의 활약에 반해 주어지는 각본은 꽤나 막장이었다. 대표적인 게 케인과의 각본. 이 각본은 케인에게 강간당해 아이를 임신해 억지결혼을 하게 되고 얼마 뒤 사고로 유산한다. WWE의 역대 각본들 중 가장 높은 막장도 덕에 현재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은퇴 각본 역시 안습. 라이벌 트리쉬 스트래터스가 고향 캐나다에서 최다 챔피언 기록을 세우며 명예롭게 은퇴한 반면, 리타는 은퇴전에서 미키 제임스[16]에게 패배해 타이틀을 뺏기고, 크라임 타임이 리타의 개인 물건인 속옷, 딜도(!!!)[17] 등을 훔쳐와 관중들에게 팔아치우는 수모를 당해 최악의 은퇴식에 항상 꼽히곤 한다. 에지와 Live SXX 세그먼트를 진행하다 밥그릇 대자를 얹어놓은듯한 왼쪽 가슴이 무방비로 노출당하는 일도 겪었었고, 한번도 하기 힘든 결혼식 각본을 두번이나 소화하기도 했다.
의외의 기록이 있는데 바로 WWE 최초의 풀 타임 여성 해설자였던 것. 2003년 초 재활에 전념하고있던 시절 RAW의 2군 프로그램 '히트'에서 해설자로 일했었다.
2012년 RAW 1000회 특집에서 간만에 등장. 히스 슬레이터와 노 DQ 매치를 가졌는데......... 하필이면 APA(브래드쇼 & 파룩)을 고용했다고 말하고 더군다나 이제까지 히스 슬레이터가 상대했던 선배 레슬러들도 총집합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트위스트 오브 페이트 & 문설트 콤보로 승리.그 전에 슬레이터가 클로스라인 프롬 헬을 맞긴 했다.
어쨌던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4년 WWE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게 됐다. WWE가 조지 클루니의 연인으로 유명세를 탄 스테이시 키블러를 명예의 전당에 올리는 초강수를 두려고 해서 한때 팬들이 좌절했으나 결국엔 입성했다. 헌액 영상을 보면 에지와 함께하던 시절은 하나도 없고 선역 언더독으로 최전성기를 보냈던 2000년대 초반과 2004년의 모습만 나온다. 하긴 PG프로그램에서 라이브 검열삭제 영상을 틀 순 없다 오랜 친구 트리쉬 스트래터스의 소개를 받으며 헌액됐다. 그녀의 인생과 커리어 및 커리어에 큰 영향을 끼친 스티브 오스틴, 안 앤더슨, 레이 미스테리오, 더들리 보이즈, 하디 보이즈 등을 언급했고 "당신의 펑크락, 당신의 루차 리브레, 당신의 프로레슬링을 사랑하라"는 그녀다운 쿨한 소감을 남겼다.
2015년에 빌리 건, 부커 T와 함께 WWE 터프 이너프 시즌 6의 트레이너가 되었다.
2015년 10월부터는 선수가 아닌 WWE의 전속 직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맡은 일은 각본 팀과 생산 팀의 연락 담당자.
2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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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사하는 공중기만큼남자관계가 화려하기로 유명하다. 99년부터 몇년 간 매트 하디와의 공식커플이었는데[18] , 매트가 부상으로 빠져있는 사이 당시 유부남이었던[19] 에지와 바람을 피워버린 '러브 트라이앵글' 사건은 프로레슬링 역사에 길이 남을 스캔들이다. 은퇴 후엔 조용히 지내는 듯 했지만[20] 2009년, 리타 못지않게 여자관계가 화려한 CM 펑크와 스캔들이 터져버렸다! 얼마 안 가 이 스캔들이 매트 하디의 음해공작이었음이 밝혀졌지만, 또 얼마 안 가 이 스캔들이 진짜로 판명났다(...)매트 하디 지못미CM 펑크와는 2013년까지 잘 만나다 그 해 가을 임신설까지 루머로 떠버리는 상황까지 갔지만, 그 때 CM 펑크는 리타를 보며 레슬러의 꿈을 키운 소녀와 썸을 타고 있었다는 사실.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이제 쟤네 둘이 혼인신고까지 했는데
- 2006년, 은퇴할 무렵에 루차고어스(The Luchagors)라는 인디 밴드를 결성하고 보컬로 활동했다. 2007년엔 정규 앨범까지 발매했지만 그다지 좋은 평가는 받지 못했다.
흑역사소규모 클럽에서 몇 차례 공연을 가지는 등 큰 활약없이 2014년에 해체했다.
- 라이벌 트리쉬가 PPV 언포기븐의 전승 기록을 갖고있는 반면, 리타는 2000년부터 2006년까지 PPV 서바이버 시리즈의 5전 전패 기록을 갖고있다.[21] 특히 2006년의 은퇴전은 패배하며 타이틀도 잃은데다, 크라임 타임에게 엄청난 굴욕까지 당했었으니.... 안습.
- 시대의 라이벌 트리쉬와는 절친 중의 절친으로 현역 시절 항상 함께 움직였고, 은퇴한 뒤에도 여전히 친하다고 한다. 특히 리타는 명예의 전당에서 소감으로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트리쉬와의 우정이라고 했을 정도.
- 수많은 여성 레슬러들의 존경을 받는 선수이기도 하다. 아이캔디로 시작해 노력 끝에 레슬러가 된 트리쉬와는 달리 처음부터 아이캔디가 아니었으며, 남자들과도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강한 여성이라는 터프한 이미지를 보여줬기에 수 많은 디바들이 자신의 롤모델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