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애미 돌핀스

American Football Conference
동부지구 소속 구단
뉴욕 제츠
(New York Jets)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New England Patriots)
마이애미 돌핀스
(Miami Dolphins)
버펄로 빌스
(Buffalo Bi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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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워드마크
마이애미 돌핀스
Miami Dolphins
창단1966년(AFL 확장 프랜차이즈)
NFL 가입1970년(AFL-NFL 합병)
연고지플로리다마이애미
구단 연고지 변천마이애미(1966~)
구단명 변천마이애미 돌핀스(1966~)
홈 구장마이애미 오렌지 볼(1966~1986)
하드록 스타디움[1](1987~)
구단주스티븐 M. 로스(Stephen M. Ross) & 웨인 휘첸가(Wayne Huizenga)
사장톰 가핑클(Tom Garfinkel)
단장데니스 히키(Dennis Hickey)
감독아담 게이스(Adam Gase)
약칭MIA
홈페이지
우승: 2회
슈퍼볼 우승
(2회)
VII(1972), VIII(1973)
컨퍼런스 우승: 5회
AFC1971, 1972, 1973, 1982, 1984
디비전 우승: 13회
AFC East1971, 1972, 1973, 1974, 1979, 1981, 1983, 1984, 1985, 1992,
1994, 2000, 2008
플레이오프 진출: 22회
NFL1970, 1971, 1972, 1973, 1974, 1978, 1979, 1981, 1982, 1983,
1984, 1985, 1990, 1992, 1994, 1995, 1997, 1998, 1999, 2000,
2001, 2008

NFL미식축구팀. AFC 동부지구 소속. 연고지는 마이애미.

1 창단

1960년 창설된 AFL이 점차 NFL이 놓치고 있던 틈새시장 공략에 성공하면서 기반을 잡아나가자 마침 1946년 AAFC의 마이애미 시호크스 이후로 20년 가까이 프로 미식축구팀이 없었던 대학풋볼의 성지 플로리다주[2]에 프로 미식축구팀을 유치하자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변호사 조 로비와 배우/코미디언 대니 토마스가 돈을 대 AFL의 9번째 팀이자 확장 프랜차이즈로 참여한다.[3]

2 돈 슐라 시대

1966년 리그에 참가한 조지 윌슨 헤드코치 체제의 마이애미 돌핀스는 창단 다음해인 1967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4번으로 팀의 첫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쿼터백 밥 그리시를 뽑는다. 그리고 그 다음해 1라운드 전체 8번으로 팀의 레전드 러닝백이자 역시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래리 송카를 뽑는다. 이렇게 뛰어난 슈퍼스타들을 드래프트로 발굴한 마이애미 돌핀스는 1970년부터 볼티모어 콜츠를 이끌던 명 헤드코치 돈 슐라를 영입한다.

돈 슐라는 입단과 동시에 밥 그리시,래리 송카, 러닝백 짐 킥, 와이드 리시버 폴 워필드, 그리고 노네임 디펜스(Noname Defense)라고 불리는 강력한 수비조직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강력한 공수 조화를 앞세워 1972년 14전 전승+슈퍼볼우승으로 NFL 역사상 유일한 퍼펙트 시즌[4]을 만들어냈고 1972년, 1973년 슈퍼볼에서 워싱턴 레드스킨스미네소타 바이킹스를 물리치고 2년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이 노네임 디펜스라는 별명은 당시 마이애미 돌핀스를 처음 상대하던 NFC 팀의 헤드코치들이 돌핀스의 수비팀 선수명단을 보고 "왜 마이애미 돌핀스 수비수들은 내가 아는 선수가 없냐"라는 말을 한데서 유래하였다. 마이애미 돌핀스의 공격진이 밥 그리시, 래리 송카등 당시 최고의 기량과 네임밸류를 가진 반면 상대적으로 수비팀은 스타급 선수들이 없었기 때문.[5]

이렇게 근간을 탄탄히 다지면서 1976년을 제외하면 매년 10승 이상을 올린 돌핀스는 1979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밥 그리시가 팀을 떠나면서 쿼터백에 공백이 생기는가 했지만 데이빗 우들리가 나타나 팀을 빠르게 안정시켰고 1982년 제17회 슈퍼볼(Super Bowl XVII)에도 진출한다. 팀은 아쉽게 워싱턴 레드스킨스에 패했지만, 1983년 미국 프로스포츠의 대표적 무관의 제왕으로 꼽히는 댄 마리노를 1라운드 27번째 픽으로 지명하면서 쿼터백 자리를 또다시 명예의 전당 선수로 채운다. 데이빗 우들리 때도 고승률로 플레이오프에 오르던 돌핀스는 마리노가 안정되자마자 1984년 압도적인 공격력을 앞세워 14승 2패로 슈퍼볼에 진출하지만 아쉽게 조 몬태나가 이끌던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에 패한다. 이 경기가 전설 댄 마리노의 유일한 슈퍼볼 진출이며, 이 패배를 시작으로 1997년 제32회 슈퍼볼(Super Bowl XXXII)에서 덴버 브롱코스가 승리할때까지 AFC가 슈퍼볼에서만 NFC에게 13연패를 당한다. 안습

이때부터 지구 라이벌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뉴욕 제츠의 전력 상승과 수비력 난조, 공격진에선 매년 주전 러닝백이 바뀌는 러싱의 불안으로 인한 전력 불균형으로 플레이오프권에서 다소 밀려난 마이애미 돌핀스는 수비진의 리빌딩에 박차를 가했고 수비진의 리빌딩에 성공한 돌핀스는 1990년, 1992년 다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만 버팔로 빌스라는 AFC 절대강자의 벽을 넘지 못하고 슈퍼볼 진출에 실패했다. 이 와중인 1990년에 팀의 아버지인 조 로비 구단주가 사망하고 웨인 후이젠가가 구단을 인수한다.

3 지미 존슨 시대

1990년대 중반까지 매년 5할 이상의 꾸준한 승률과 플레이오프 진출을 노리던 컨텐더 마이애미 돌핀스를 이끈 팀의 살아있는 전설 돈 슐라가 1995년, 65세에 NFL 코치계를 은퇴한다. 그는 무려 25년동안이나 마이애미 돌핀스 한 팀을 이끌었고, 그의 밑에서 공격코디,수비코디를 하던 제자들이 80~90년대에 대거 헤드코치등으로 승진하여 스승과 경쟁할 정도로 오랜시간동안 재임했다. 그런 돈 슐라가 물러난 자리에는 90년대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최전성기를 이끌고 1992,1993년 2년 연속 슈퍼볼 우승을 이끈 헤드코치 지미 존슨이 오른다. 지미 존슨은 전력을 재정비하고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있던 쿼터백 댄 마리노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 위해 팀을 이끌지만 덴버 브롱코스,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라는 강호들의 벽에 막혀 결국에는 슈퍼볼 진출에 실패하고, 1999년 시즌을 마치면서 댄 마리노와 함께 4년간의 돌핀스 코치직을 마치고 현역 은퇴한다.

4 헤드코치 불안정

지미 존슨과 댄 마리노의 시대가 끝난 마이애미 돌핀스는 지미 존슨 밑에서 수비 코디를 하다가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시카고 베어스 헤드코치를 맡았던 데이브 완스테드를 영입한다. 마리노는 은퇴했지만 지미 존슨이 구축한 탄탄한 수비진을 바탕으로 기본 전력을 갖췄던 돌핀스는 다트머스 대학교 출신의 저니맨 쿼터백이었던 제이 피들러를 중심으로 슈퍼볼에 도전하지만, 하필이면 그 시기 같은 지구에는 빌 벨리칙과 톰 브래디가 이끄는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가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어서 그 벽을 넘지 못했다. 그리고 늦깎이였던 제이 피들러가 부상과 노쇠화로 경기력이 떨어지면서 쿼터백자리가 불안해지자 성적이 급전직하했고 4시즌 동안 5할 승률을 넘기며 좋은 모습을 보였던 완스테드는 2004년 초반 1승 8패의 성적 폭락 책임을 지고 사임하게 된다.

2005년 마이애미 돌핀스는 루이지애나 주립대학교(LSU 타이거스)의 헤드코치를 맡던 닉 세이반을 영입하게 되는데, 디펜스 관리 능력이 뛰어났던 닉 세이반이 첫해 평범했던 선수들을 잘 조합해 9승 7패의 성적을 내면서 믿음을 주기 시작했는데, 2006년 조이 해링턴,단테 컬페퍼등으로 돌려막기하던 쿼터백 자리에 큰 구멍이 나면서 6승 10패로 성적이 떨어지자 2006년 시즌을 잔뜩 기대했던 돌핀스의 프런트가 닉 세이반의 지도력에 불만을 드러내고, 타이밍 좋게 SEC의 풋볼 명문 앨라배마 대학교의 헤드코치였던 돈 슐라의 아들 마이크 슐라가 해임되자 돌핀스 헤드코치직을 사임하고 앨라배마 크림슨 타이드의 헤드코치로 이적해버린다.[6]

이 이후로 헤드코치와 쿼터백 구멍이 뻥 뚫린 마이애미 돌핀스는 공격 코디 캠 캐머런이 급하게 헤드코치로 나서지만 바로 다음시즌인 2007년 1승 15패라는 최하위 성적을 찍고 말았다. 이때 꼴찌를 한 대가로 전체 1번 지명을 받아 공격태클 제이크 롱을 지명하고, 신임 헤드코치 토니 스프라노가 뉴욕 제츠의 쿼터백 채드 페닝턴을 영입해 2008년 단시간에 팀을 재건하는 듯 했지만, NFL을 대표하는 유리몸계의 레전드 답게 페닝턴은 2007년 시즌 마치자마자 퍼져버렸고, 또 쿼터백 자리가 빵꾸난 돌핀스는 2009년 또다시 7승 9패로 5할 승률 달성에 실패하면 쭈욱 내리막길을 걷게 되고 토니 스프라노가 성적부진을 이유로 사임하고 뉴욕 제츠 공격 코디네이터로 떠난 자리를 전 스탠퍼드 대학교 헤드코치 짐 하버로 메우려고 열심히 스카웃제의를 했지만 그가 돌핀스 헤드코치를 거절하고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로 가버리자 아예 한시즌 손을 놔버린다.

그리고 2012년 조 필빈 신임 헤드코치를 선임한뒤 1라운드 전체 8번으로 뽑은 텍사스 A&M출신 쿼터백 라이언 태너힐을 중심으로 리빌딩 중이다.

4.1 2013년 시즌

4.1.1 전반기

엠블렘까지 바꾸며 분위기 일신에 나선 돌핀스. 1주차 브라운스와의 경기를 쉽게 가져간 돌핀스는, 2주차의 콜츠 원정과 3주차의 팰컨스 홈 경기를 모조리 쓸어담아 초반 3연승의 돌풍을 불러일으켰다. 2012년 다른 동기(콜츠의 앤드류 럭, 시혹스의 러셀 윌슨, 레드스킨스의 로버트 그리핀 3세)들에 비해 유난히 못나가던 타넨힐이 루키 시즌보다 훨씬 나아진 경기력을 보여준 것이 고무적이며, 특히 2주차에서 잘나가는 동기 앤드류 럭을 원정에서 잡아낸 것이 아주 인상적이라는 평.

하지만 그 3연승이 돌풍의 전부. 바로 4연패를 찍으며 3승 4패로 무너져 버렸다. 태너힐은 4경기 동안 7개의 인터셉트를 양산하며 작년 수준의 경기력으로 돌아가 버렸고 7주차에는 AFC 호구동맹 빌스에게 홈에서 깨지는 수모를 당해버렸다. 지금의 전력은 평범한 NFL의 중하위권 팀 정도. 태너힐이 각성한다 하더라도 평균이상은 해주는 수비진에 비해 공격진의 나머지 멤버들이 영 빈약한 돌핀스 상황에서 2013년 시즌도 5할 승률 언저리에서 노는 것이 전부 일듯.

4.1.2 후반기

설상가상으로 8주차가 지난 이후 팀의 2년차 공격라인맨인 조나단 마틴이 팀의 선배이자 자기 바로 옆에 서던 가드 리치 인코그니토에게 지속적인 갈굼괴롭힘을 당한 것을 참지 못하고 라커룸을 한바탕 엎은뒤 팀을 무기한 이탈해버렸다.

거친 남자들의 세계인 스포츠, 특히 미식축구에서 선배의 후배 괴롭히기가 어느정도는 묵인되는 게 일상이었다. 이를 보통 루키 헤이징(hazing)이라고 하는데 타 종목에서도 종종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예를 들어 MLB에서 신인 선수들의 옷을 몰래 찢어놓는다든가, 시즌 막판에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히고 이동을 시키는 것도 이런 종류에 속한다. 루키 헤이징은 대부분 팀 스케줄에 맞춰 신인 선수 여러명을 모아놓고 한번에 하며 적어도 눈에 보이는 선에서 일정 수준을 넘지 않는 것이 관례. 그러나 이번 인코그니토의 행동은 헤이징이 아니라 일방적인 bullying이었다는 것. 각 선수가 동등한 개인사업자의 지위를 가지는 프로에까지 와서 단체 회식때 나온 우리돈 수백만원에 달하는 식사비를 막내 후배 한명에게 떠넘긴다거나[7], 인종차별 욕설이 담긴 보이스메시지를[8] 남기는 등 장난 수준을 넘어간게 문제. 결국 리치 인코그니토도 팀 자체징계로 남은 시즌 출장정지를 먹었지만 이 상황을 NFL 사무국이 주시하는 가운데 일부 베테랑들은 선배가 그럴 수도 있다는 둥, 자기들도 다 그렇게 해왔다는 둥, 마틴이 동성애자였다는 둥, 마틴이 원래 찌질한 놈이었다는 둥 선배인 인코그니토편을 들면서 라커룸이 분열될 상황에 놓였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9] 그리고 결국 NFL의 조사 결과 리치 인코그니토 한명이 아닌 가드 존 제리, 센터 마이크 파운시, 前 태클 제이크 롱등 자기 옆에 같이 선 라인맨 선배들이 뭉쳐서 작정하고 한명을 조졌다는 리포트가 발표되었다.[10] 이 문제는 NFL을 넘어서 미국 프로스포츠 전체의 인권문제로까지 확대될 조짐을 보이는지라 어려운 팀 상황에 달갑지 않은 화제로 주목을 받게 되어 더더욱 집중력이 떨어지게 되었다.

결국 이런식으로 붕괴된 팀 케미스트리는 가뜩이나 쿼터백 보호에 취약하고 쌕을 많이 당하는 라이언 태너힐의 약점을 더욱 부각시켰고 남은 시즌 6번 시드 진출의 가능성을 보였지만 오펜스라인부터 무너진 팀이 뭘 어떻게 할 수 없었고 팀은 DTD. 16주차 경기에서 지구내 호구이던 버팔로 빌스에게 0대 19로 충격의 완봉패를 당하더니 마지막주차 경기에서 이미 플옵 탈락이 확정된 상황에서 칼을 갈고 나온 뉴욕 제츠에게 일격을 맞으면서 8승 8패로 최종전에서 탈락했다.

4.2 2014년 시즌

올해는 다르다! 올해는! 뭐가?

선수들 간의 불화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한해를 보낸 돌핀스는 일단 올 시즌 중반인 9주차 까지 5승 3패를 기록하며 괜찮은 스타트를 보여주고 있다. 1주차 부터 같은지구 깡패 패트리어츠를 10점차 이상으로 크게 이겼고, 7주차 이후 3연승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시즌 최고의 활약을 보이던 쿼터백 필립 리버스가 이끌던 샌디에이고 차저스를 무득점으로 묶어버리는 기염을 토하기도.

이들의 선전 역시 같은 지구의 빌스와 비슷하게 공격력 보다는 막강한 수비력에 기인하고 있는데, 최소 실점 순위가 리그 3위에 올라있을 정도로 탄탄한 수비력을 자랑하고 있는 중. 프로볼 수비엔드 캐머런 웨이크를 중심으로 웨이크-자레드 오드릭-얼 미첼-올리비에 버논이 이끄는 프런트 4가 강력한 패스러시로 쿼터백을 압박하고 있으며 이를 백업하는 라인배커진도 선전하고 있다.

자기들끼리 내분 일으켜서 무너진 오펜스라인은 새롭게 영입한 태클 브랜든 앨버트가 활약해주면서 안정을 찾았고, 프로 3년차 쿼터백 라이언 태너힐 역시 부족한 공격타겟에도 불구하고 엘리트 급은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리그에 적응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빌스보다 전력이 더 나아 보인다.

그러나 선전에도 불구하고 이 이상 나가지는 않는 모습을 보여주며 작년과 똑같은 8승 8패로 시즌을 마무리한다.

4.3 2015년 시즌

병든 세포는 빨리 도려내야한다는 불변의 진리를 외면한 결과

오프시즌 은다무콩 수를 1억 달러 넘게 주고 영입하는등 야심찬 행보를 보였지만, 지난 몇년간 돌핀스의 가장 큰 문제였던 팀 내분의 1차 원인인 헤드코치 조 필빈의 허접한 선수단 장악력에 대해 지나치게 과신하여 필빈을 그대로 놔둔 것은 결국 독이 되어 돌아왔다.

시즌 초 먹튀 전체 3번픽 디온 조던이 약물적발로 시즌아웃되는 등 여전히 팀 관리가 되지 않는 모습과, 거물 FA 은다무콩 수가 여전히 필드 위에서는 미친 개처럼 발광하는걸 막지 못하는 불협화음으로 1승후 3연패를 당하자, 참지 못하고 돌핀스는 조 필빈을 해임했다. 하지만 해임시점도 늦었고, 임시 헤드코치 댄 캠벨이 팀을 안정시키려는 찰나 수비 에이스 캐머런 웨이크의 아킬레스건 파열 시즌아웃 부상은 핀스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요인. 9주차 현재 3승 5패로 최하위로 처져있어서 플레이오프 가능성이 다소 어려워보인다.

결국 지구 최하위인 6승10패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 했다. 그나마 마지막주차 뉴잉글랜드전에서 20대10으로 승리하면서 지구 라이벌 뉴잉글랜드를 2번시드로 끌어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고춧가루부대 역할을 한 것이 마지막 위안.

5 홈구장

하드록 스타디움 항목 참고

6 기타

  • NFL International Series에 첫 진줄했다. 2015-2016 시즌에도 홈팀으로 뉴욕 제츠와 경기를 벌인다. 현재까지 3회 진출.
  1. 2011년까지 플로리다 말린스와 공유했다. 2012년 말린스는 마이애미 말린스로 개명하면서 새 구장 말린스 파크로 이사.
  2. 플로리다주는 원래 마이애미시 교외에 위치한 마이애미 대학교 (플로리다), 탤러하시에 위치한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게인스빌에 위치한 플로리다 대학교라는 대학풋볼 명문팀이 3개나 밀집한 지역이다. 마이애미 돌핀스 이후에도 잭슨빌과 탬파베이가 NFL팀을 유치하면서 이지역은 완전히 풋볼 스테잇이 되었다.
  3. 2년 뒤인 1968년 10번째로 신시내티 벵갈스가 확장 프랜차이즈로 참가한뒤 NFL과 합병한다.
  4.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2007년 시즌은 정규시즌 16전 전승이지만 슈퍼볼 XLII에서 패해 결국 전승준이라 퍼펙트 시즌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5. 그러나 이것이 돌핀스 수비수들을 듣보잡이라고 무시한건지, 아니면 무명 선수들로 강한 수비팀을 만들었다는 칭찬인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6. 이전부터 닉 세이반은 대학풋볼에서 이름난 명장이지만, 한 팀에 로열티가 없이 연봉 많이 주면 미련없이 다른 팀으로 이적하던 전형적인 돈독오른 저니맨 헤드코치였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돈을 밝힌다고 닉 세이반을 Nick $aban이라고 쓴다. 2014년 현재 8년째 앨라배마 대학교 헤드코치를 맡고 있는데, 그의 한해 연봉은 무려 690만 달러에 해당한다. 앨라배마 대학교는 앨라배마 주의 정부 세금으로 운영되는 주립대학. 즉 이사람은 690만 달러받는 준 공무원인 셈. 하지만 세이반이 배마에서 대성공을 거두며 더 많은 돈을 벌어 그 돈이 학교 발전에도 쓰이고 있으며 주민들 사이에서 세이반의 위상이 엄청나다보니 큰 불만은 나오지 않는다.
  7. 미국의 4대 메이저급 선수들의 최소연봉이 우리돈 5억은 넘는 30~40만달러의 고액이긴 하지만 식사 한번에 3천~5천달러씩 되는 고액 지출을 반 강제로 내는건 감당하기 힘든 일이다.
  8. 이 메시지는 마틴의 부모님에 의해 공개되었다. 마틴의 부모님은 둘다 하버드대학교를 다녔고 로스쿨을 나온 인텔리들.
  9. 위에 언급한 인종차별건에도 같은 흑인 선배들조차 마틴을 병신취급하고 인코그니토를 옹호했다.
  10. 출처 폴 와이스 리포트, 데드스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