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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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관점에서 본 자식 명칭
맏이외동딸장녀차녀3녀딸/4녀 이상고명딸막내
외동아들장남차남3남아들/4남 이상고명아들

1 개요

長男

가장 먼저 태어난 아들을 일컫는 말. 외동아들이나, 고명아들이 아닌 이상 대부분이 , 오빠가 된다. 아들 중에서만 고려하기에 꼭 맏이가 아니어도 위로 형이 없으면 여자형제가 있는 둘째, 셋째, 심지어 막내여도 장남이다. 외동아들도 장남이다.

예로부터 "가정"이란 사회 속에서 누구보다도 가장 특별한 위치를 갖고 있는 기둥같은 존재이다. 지금은 예전처럼 철저하지는 않지만, 가족들이 같이 식사를 할 때도 부모들은 집안의 서열을 강조하기 위해서 당연히 동생들보다 맏이(특히 장남)에게 먼저 밥을 퍼줘야 하는 것이 불문율이며, 지금도 철저하게 지키는 가정도 적지 않다. 우선 기본적으로 고대 사회에서 그토록 높이 여기던 남성인데다가, 첫 번째이기 때문에 장남이 가장으로서 집안을 잇는 경우가 많았기에 장남인 경우 부모가 거는 기대가 매우 크다. 과거의 왕정사회에서는 왕이 승하하면 장남이 왕위를 물려받아야 하는 사회관습이 매우 당연했던 것이었을정도로 그만큼 매우 특별한 위치이기도 하다.

여성의 결혼 기피 대상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남자의 부모님 부양이나 제사를 도맡아 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피 대상의 최종 단계는 종갓집 큰손. 이건 장남인 당사자로서도 썩 좋은 일이 못 된다. 은근히 일이 많은 데다가 책임감에 (다른 분가의 기대까지 포함한)기대가 겹쳐지기 때문에 무척 피곤해진다.

반면, 장남이라서 부모들이 알아서 잘 챙겨주는 경우가 많아서 나름대로 지원은 빵빵하게 받는다. 단지 그 탓에 '관계를 통해서' 신뢰, 도움을 얻는 스킬은 동생들에 비해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늘 당연히 주어지다시피 하니, 장남들이 얻어내려고 노력한 적이 동생들에 비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 때문인지, 역사적으로 성공적으로 왕위를 물려받은 장남이 다수이기는 했으나, 의외로 왕가의 장남이 왕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대표적인 경우가, 성군으로 불리는 조선세종대왕이 있다.

그렇기에 장남의 뒷바라지를 위해서 장남의 손윗누이나 동생들이 희생되는 경우도 많았다. 70년대 경공업 발전 과정에서 여자들이 방직, 봉제공장에 취직해 남자 형제 특히 장남의 뒷바라지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골탑이라는 말도 대학에 보내기 위해 농가에서 를 팔았다는 말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장남을 위해서 소를 파는 경우는 많았어도 장녀, 차남, 차녀를 위해서 소를 파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현 기성세대(40~60대)의 학력을 보면 보통 장남의 학력이 평균적으로 높은 편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유독 큰아들에게 기대는 것도 원하는 것도 많고, 집안일로도 바라는 것도 매우 많다. 즉, 맏이(특히 장남)들은 어느 집안이든지 부모들에게 집안을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을 강하게 교육을 받는 것이 매우 당연한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다. 덕택에 장남들은 책임이 많은 만큼, 지원은 지원대로 많이 받는다. 물론, 지원을 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책임질 것은 그대로 남는다. 당연히 심적인 부담감과 기대치도 다른 형제들에 비해서 당연히 높다. 덕택에 장남 노릇 제대로 하기 힘들고 해야 할 일도 많은데다 지고 가야 할 것도 많다.

그래서 장남은 다른 형제들에 비해 표현력과 발표 능력이 뛰어난 경우가 많고, 이 때문에 장남은 직업별로 보자면 아나운서가 유난히 많다고 한다.

그런데 의외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 이유는 고아인 상태에서 동생들이 많은 장남의 경우가 있다. 일반화를 할 수는 없지만, 동생들이 공부를 너무 잘해서 대학으로 진학해야 할 때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서 진학을 포기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장남은 부모가 없을 경우 사실상 부모님의 역할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형제가 많거나 동생과 터울이 많이 날 땐 더욱 그러하다.

특히, 장남과 그 바로 아래 동생이 20살 이상 차이난다면 동생의 입장에서는 형이나 오빠가 아니라 그냥 부모님이나 다름없고, 이런 경우는 동생들이 깎듯하게 경어를 사용하는 집안도 많다. 결국, 동생들의 뒷바라지만 하다가 자기만 교육의 혜택을 놓치는 경우인 것이다. 물론, 이런 경우 형제, 자매들이 장남을 집안의 가장 권위있는 큰어른으로 대하며 그 희생을 늙어서까지 고마워하고 미안함에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많다.

한자로는 '(伯)'. 옛날 사람들 중 자에 백 자가 들어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큰아들이라고 보면 된다. 밑의 손책이라든지. '(孟)'자도 맏이를 나타내는 한자다. 대표적으로 이맹희가 있다. 보통 백중숙계(伯仲叔季)라 해서 장남, 차남, 삼남, 막내를 가리키는 한자어가 있는데, 이와 비슷한 맹중계(孟仲季)라는 한자어도 있다.

정확히 말하면 伯은 정실 부인 소생의 아들, 즉 적자 중 적장자를 의미하고 孟은 둘째 부인 이후의 소생에게서 난 서자 중 서장자를 의미한다.

그 외에도, 大나 太가 들어하는 사람들도 대체로 장남이다. 차남이 이런 이름이 들어간 한자가 들어가면 차남이 사실상의 장남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장남이 장남 구실을 제대로 못하며 이 경우는 영락없는 갈모형제가 된다고 한다.

국내 에서 항렬 잘 지키는 가문의 경우 항렬자+에 원(元), 일(一), 윤(侖), 그리고 준(準) 등을 많이 쓴다.[1] 물론 다 그렇다는건 아니다.

일본에서는 '이치로(一郞)'나 '타로(太郞)', 혹은 '●+이치로/타로'를 장남 이름으로 많이 쓴다.[2]

미신적인 이야기지만 조선 왕실은 유난히 장남(적장자)들이 수난을 겪거나 수명이 짧은 징크스가 있었다. 개국왕인 이성계부터가 장남이 아닌거야 그렇다쳐도 이성계의 장남 이방우부터 잘된 장남이 거의 없다. 그리고 만약 자식을 남겼을 경우 자식들이 일찍 죽거나 못볼꼴을 봤다거나 하는 경우도 수두룩했다. 이는 당연한 것이, 차남 이후가 왕이 되었을 경우 적장남의 후손들은 차후에 반란으로 왕위를 노리는 가장 위험한 존재였다. 그래서 주변반란에 휘말려 죽거나 왕의 견제에 몰락하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장 조선의 첫 번째 왕위 계승자였던 문종부터 시작해서 단종, 인종, 경종 등이 대표적 사례. 이 징크스를 깬 왕은 숙종(이쪽은 외아들) 정도 밖에 없다. 이에 관해 한가지 재밌는 기록이 있는데 세종의 묏자리를 알아볼 때 정인지 등이 정한 자리를 그동안 허조 등에 의해 허황된 의견을 낸다고 탄핵당한 전력이 있는 풍수가 최양선이 이 자리를 쓰면 장자들이 단명하고 후손이 끊길 것이다라고 예언한 것이다. 자리를 정한 정인지는 근거 어딨어?라고 크게 반발했고 최양선은 "마음의 눈으로 깨우친 것입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온 조정이 근거 없이 불온한 말을 한 최양선을 벌해야 한다고 난리를 쳤지만 세종은 의견을 말한 것을 벌할 수는 없고 대신 국가의 일에 다신 그를 쓰지 않겠다고 중재했다. 근데 문종을 시작으로 단종이 다 요절하고 심지어 세조의 장자 의경세자와 의경세자의 장자인 월산대군에 예종의 장자 인성대군까지 죄다 요절한다. 예종은 최양선의 말이 걸렸는지 세종의 묘를 이장하지만 그래도 장자 수난은 끊이지 않았다.

여담으로 최양선은 근성있는 양반이었는지 이후 문종, 단종 시대까지 세종의 묘를 옮겨야 한다고 상소를 올려 여러 번 경을 쳤고 끝내 세조 시대에 극변으로 안치되는 운명을 맞이한다.(...)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고 이후 성종조까지 최양선은 망언하는 양반의 대명사로 여러번 언급된다.

장남의 끝판왕은 외동아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과거 미국, 중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장남도 군면제 대상이 되었다!

참고로 유독 대기업에서 형제싸움에서 맨날 털린다. 그러니까 그런일은 없지만대기업을 이을 장남 위키러는 막내를 조심하자(…)

2 장남인 인물

장남/인물 목록으로
  1. ex) 백종원, 이상윤 등.
  2. 여담이지만 한국인들이 이치로 하면 떠올리는 야구선수 스즈키 이치로는 장남이 아니라 차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