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타카 치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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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인 2015년 9월 23일 엠스테 30주년 돌입 기념 울트라 FES. 중 (좌: 모리타카 치사토, 우: 쿠도 시즈카)

森高 千里.

1969년 4월 11일생. 일본가수, 작사가, 작곡가, 드러머탤런트. 남편은 배우에구치 요스케.

미각(美脚)으로 대표되는 아이돌 가수. 정통파 미인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1 가수로서의 활동

포카리스웨트 이미지 걸 데뷔 영상.

1986년 오츠카 제약에서 주최한 포카리스웨트 이미지 걸 콘테스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연예인이 되기 위해 도쿄로 상경하여 호리코시고등학교로 편입하였다. 1987년 자신이 주연을 맡은 영화 「あいつに恋して」의 개봉 전 영화의 주제가인 'NEW SEASON'으로 데뷔.

활동 초반에는 연기활동과 가수활동을 병행하였으나 88년 싱글 'ザ・ミーハー'[1]의 여름 라이브투어의 리허설 도중 복통으로 입원한 것이 계기가 되어 연기활동을 중단, 이후 가수로서의 활동에 전념하게 되었다.

88년 발매한 앨범 'ミーハー'[2] 중 동명의 타이틀곡을 통해 작사가로 데뷔, 가사의 유니크함을 주목받았고 상기한 입원생활을 바탕으로 작사한 'ストレス'가 또 한번 화제가 되어 이후 거의 모든 작사를 직접 담당하게 된다.

89년에는 'ストレス'를 중동풍으로 믹스한 싱글 'ザ・ストレス'에서 이후 모리타카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는 코스프레 의상이 처음 등장하였고, 70년대의 아이돌 미나미 사오리(南沙織)의 곡을 리메이크한 '17才(17세)'가 대히트를 치면서 일약 초인기 가수로 발돋움하게 된다. 특히 무대에서의 의도적인 판치라는 남성팬들의 열광적인 인기를 불러일으켰다.[3] 이 시기 발매한 앨범 '非実力派宣言(비실력파선언)'의 가사 또한 그 특이함이 높게 평가받았다.

△17才(17세)

1992년엔 '私がオバさんになっても(내가 아줌마가 되어도)'가 히트, "내가 아줌마가 되면 당신은 아저씨야!!"라는 특유의 가사 센스(…)를 보여주며 여성팬들에게도 큰 지지를 받았다. 같은 해 니혼TV에서 방영된 'まったナシ!'라는 드라마에 오프닝곡으로 쓰이기도 했다.[4] 홍백가합전에는 92년부터 97년까지 연속으로 출장하였다.

한편 음악적인 면에서는 아이돌이라는 수식이 무색할 만큼의 실력파 뮤지션이기도 한데, 음악가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피아노, 기타[5], 드럼, 리코더 등 다양한 악기에 능하며 특히 드럼은 본인의 곡 뿐만 아니라 다른 뮤지션의 세션으로 참여할 정도의 수준급. 이러한 재능을 바탕으로 90년대에 들어서는 앨범 및 싱글의 수록곡 대부분을 직접 연주하여 수록하는#[6] 등 활발한 음악적 참여를 보였는데, 아이돌과 아티스트의 노선이 명확히 갈리기 시작했던 시점에 아이돌 가수의 포지션을 유지하면서도 아티스트와 같이 가수 본인이 음악적 완성도를 추구하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보기 드문 행보를 보였다.

1996년 TAIYO Tour에서 드럼과 보컬 라이브 영상 "太陽と青い月"

보컬리스트로서는 발성과 비음의 사용으로 인해 평이 갈리나 안정감에 있어서는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는 편. 데뷔 이래 수차례의 콘서트와 라이브 투어를 개최하였으며 특히 90년에서 93년까지의 라이브 전국 투어는 유래를 찾을 수 없이 많은 공연횟수를 자랑한다. 일본 전국을 돌아다니며 한달에 10번 꼴로 공연하기도 했다고… 92년의 투어 기록 링크 공식 페이지의 바이오그래피. Live・Event 참조

또한 모리타카의 가사는 솔직하고 직설적이며 여성 입장에서 쓰여진 것이 많아 많은 여성 팬들의 공감을 받기도 했다.

渡良瀨橋 (와타라세 다리)

二人は恋人 (두사람은 연인)

뮤지션으로서의 모리타카 치사토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PV. 이외에도 콘서트 및 라이브투어에서 직접 연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2 결혼 후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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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의 모습.

5년간 사귄 배우 에구치 요스케와 1999년에 속도위반 후 결혼하여 1남 1녀를 두고 있다. 2000년 이후에는 여성잡지에 연재를 하거나 드러머로 활동중이며 광고에도 간간히 출연중.

2007년에는 자신의 1993년 히트곡 渡良瀬橋(와타라세 다리)의 배경이 된 아시카가 시(足利市)에 그 곡의 노래비가 세워졌다.

2010년에는 일본 어머니 협회의 베스트마더상을 수상하였다. 2011년부터 애들이 웬만큼 컸으니 활동 재개를 고려중이라는 발언을 시작으로 방송에 간간히 얼굴을 비추고 자신의 공식 유튜브에 꾸준히 셀프 커버곡을 올리고 있다.

2012년부터는 싱글 컬렉션인 'ザ・シングルス'의 발매 및 연말 가요제 출연, 셀프 커버곡의 공개 수록 등 뮤지션으로서의 활동을 재개하고 있다! 2013년에는 도쿄, 오사카, 나고야에서 콘서트를 개최하였으며 데뷔 25주년 기념 기획인 셀프 커버 시리즈의 음반 발매, 방송 활동 및 라이브 공연 등 조금씩 활동 범위를 넓혀 나가는 중.

3 에피소드

구마모토 시의 관광버스 가이드가 "'모리타카'는 부모의 출신지인 타카모리마치, '치사토'는 쿠사센리(草千里)에서 따온 예명이다" 라고 얘기했는데 모리타카 본인이 자신의 이름은 본명이라고 필사적으로 여러번 부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가이드의 말은 거짓이다. 모리타카 치사토의 아버지는 로커빌리 밴드에서 활동했던 음악가 모리타카 시게카즈(森高茂一)이기 때문에 모리타카라는 성은 원래의 성이 맞다. 게다가 집안이 원래 오사카 출신으로 어릴 때 구마모토로 이사갔을 뿐 구마모토 시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다.

초기 히트곡인 17세는 리메이크 곡이라 본인의 잘못은 아니지만 린 앤더슨의 'Rose Garden'과 유사하여 일본 음악계에서 대표적인 표절 의혹을 받은 곡이다.

4 작품일람

4.1 주요 히트곡

  • 1989년 - 17才(17세), 非実力派宣言(비실력파선언)
  • 1992년 - 私がオバさんになっても(내가 아줌마가 되어도)
  • 1993년 - 渡良瀬橋(와타라세 다리)
  • 1993년 - 風に吹かれて(바람을 맞으며)
  • 1994년 - 気分爽快(기분상쾌)
  • 1995년 - 二人は恋人(둘은 연인)
  • 1996년 - ララ サンシャイン(라라 선샤인)
  • 1998년 - 冷たい月(차가운 달)
  1. 88년 발매한 앨범 'ミーハー'의 타이틀곡 'ミーハー'를 새롭게 믹스하여 발매
  2. 유행에 쉽게 휩쓸리는 젊은 세대(특히 여자)를 지칭하는 단어.
  3. 참고로 이때의 의상은 KOF 97에서 아사미야 아테나를 1P측에서 1번 엔트리로 놓았을때 나오는 복장의 원본이다.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에 나오는 N 나가토미 하스미의 특훈후 복장도 이 복장의 오마쥬이다.
  4. 여담으로 92년 당시 히라마츠 에리의 部屋とYシャツと私(방과 와이셔츠와 나)와 더불어 결혼식 축가로 큰 인기를 모았다고. 제목만 봐서는 의아할 수 있으나 노래의 내용이 '내가 아줌마가 되어도 변치말고 사랑해줘!'라는 내용이라 결혼식 축가로 부르기에 어색한 곡은 아니다. 그나저나 '바람피우면 식사에 독을 넣겠다'는 가사가 있는 '部屋とYシャツと私'는 어째서… 것보다 바람피운 남편에게 식사를 차려주다니 가사 속 화자가 엄청난 대인배인가 보다.
  5. 일렉트릭 기타의 경우 Bill Lawrence에서 출시된 시그네춰 모델까지 나와 있다!(사용 사진그래봤자 포스터 위쪽의 조그만 사진 확대한 거&사용 영상)
  6. 링크는 PEPPERLAND 앨범의 가사집 중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