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도 시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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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전성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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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데뷔 25년만에 긴 머리를 숏컷으로 잘라 화제가 되었다.

工藤静香(くどう しずか).
일본여성 가수. 1970년 4월 14일생. 결혼 후 이름은 기무라 시즈카.[1]

1 인물

1.1 데뷔~오냥코 클럽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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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냥코 오디션에서의 모습.

1984년 만 14살의 나이로 출전한 미스 세븐틴 콘테스트에서 특별상을 받은 것[2]을 계기로 연예계에 진출, 같은 대회 출신 두 명과 함께 '세븐틴 클럽'이라는 아이돌 그룹을 결성했으나 이것은 흑역사. '모모코 클럽'을 거쳐 고등학교 진학 후 당시 인기 폭발중이던 오냥코클럽의 코너였던 '유우야케 냥냥(夕やけニャンニャン)' 오디션에 합격하여 회원번호 38번으로 후기 멤버로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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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닛 '우시로카미 히카레타이(うしろ髪ひかれ隊)'.
좌:이쿠이나 아키코,우:사이토 마키코.

이 시기부터 이름을 알리게 되어 1987년 오냥코클럽의 멤버 이쿠이나 아키코, 사이토 마키코와 함께 うしろ髪ひかれ隊(우시로카미히카레타이)[3] [4][5]를 결성, 지명도를 높혀갔다. '우시로카미'는 처음에 이쿠이나를 센터로 세웠기때문에 이 때까지 쿠도는 그다지 눈에 띄던 멤버는 아니었으나 쿠도의 가창력이 월등하였기때문에 점차 쿠도가 센터를 서게되었고 한다. 이쿠이나 왈 "저는 그냥 립싱크였죠(..)". 이후 인지도가 상승하여 오냥코의 후기 히트곡인 달팽이 삼바에서는 4인의 프론트멤버에 발탁되기도 하였다.

1.2 솔로 데뷔이후

오냥코클럽의 해산을 알린 1987년 '유우야케 냥냥' 마지막 방송날 '금단의 텔레파시(禁断のテレパシー)'로 솔로 데뷔. 이 데뷔곡은 엄청나게 히트하여 오리콘 차트 1위에 오른다. 그렇기 때문에 오냥코클럽의 라스트 콘서트를 보면 작정하고 쿠도를 띄우려 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실제로 솔로 무대에서 레이저를 쏘는 등의 특수효과를 쿠도에게만 잔뜩 사용하는 것에 다른 멤버들이 질투를 하여 말도 걸지 않았다고 한다. 89년엔 곡이 연속으로 히트하며 5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려 연간 싱글 랭킹 상위 10곡 중 3곡이나 노래가 들어가는 성과를 내었다.

이후 차례대로 수많은 히트곡을 발매하여 아사카 유이, 나카야마 미호, 미나미노 요코와 함께 아이돌 사대천왕이라 불리며 1980년 후반부터 1990년 초반을 대표하는 여성 가수로 이름을 날렸다. 솔로로 전성기를 이룬 후 오냥코클럽과 연관되는 것을 싫어한다는 소문이 있어왔으나 90년대 후반 옛 멤버들과 공식적으로 모인 자리에서 소문을 반박했다. 94년 전담 작곡가인 고토 츠구토시와 결별하고 소속사를 나와 독자적인 회사를 차리고 작사를 맡는 등의 셀프 프로듀스를 맡았다.[6]

1997년톤네루즈의 이시바시 타카아키[7]와의 듀엣곡 A.S.A.P를 발매했는데 뮤직비디오의 격렬한 키스신이 화제가 되었다. 이시바시에겐 '공주'라고 불리고 있다고 한다.

결혼하고 출산 한 이후에는 활동이 적어지긴 했으나 꾸준히 버라이어티 방송, 음악 방송 등에 출연하며 음악 생활을 지속하고 있다. 2012년 솔로데뷔 25주년을 맞아 싱글 '네가 주었던 것(キミがくれたもの)'을 오랫만에 발매하였고 기념 콘서트, DVD발매가 이루어졌다. 날이 날인것을 감안하여 남편과 같이 한번쯤은 무대에 서지 않을까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소속사가 쟈니스임을 고려한다면 불가능해보인다(…)

세살 위인 오빠가 중학교 3학년 때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앨범 purple에 수록된 tomorrow river는 오빠를 위한 노래. 요리사인 부친과 미용사인 모친 사이에 출생. 음악 뿐만 아니라 그림에도 재능이 있어 앨범 속지에 자신의 그림을 넣은 적도 있고, 일본 국전에 14번의 입상전력이 있다. 보석디자인을 하거나 여타의 예술적인 분야에도 종종 도전하는 등 다방면에 재주가 있는 듯 하다. 본인이 스스로 작사할 때는 '아에리(愛絵理)'라는 명의를 사용한다.

두 사람은 프리큐어의 극장판에서 목소리 연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배역은 바로 '희망의 정원의 여왕'.

2 기무라 타쿠야와의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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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된 투샷은 이 사진이 거의 유일하다.

우리나라에서는 90년대 초중반 WINK, 나카야마 미호, 사카이 노리코 등과 함께 일본 음악 개방 전 몰래 일음을 듣던 남고생들의 로망이었으나 국내에 그 이름을 알린것은 2000년 11월 일본의 국민 아이돌 그룹 SMAP의 멤버인 기무라 타쿠야와의 결혼이다.

국민적 스타인 SMAP의 멤버에 '러브 제네레이션', '뷰티풀 라이프'등의 드라마에서 한창 활약하던 기무라였으며 '속도위반 결혼'이라는 소문이 있었기에 수많은 여자들을 적으로[8] 돌려야했지만, 쿠도는 키무라가 뜨기 훨씬 이전인 80년대에 이미 정점을 찍은 톱가수였다.

일례로 쿠도가 솔로 무대를 섰던 88년 홍백가합전에서 기무라 타쿠야는 연습생 신분으로 소속사 선배 그룹 히카루GENJI의 백댄서를 서고 있었다. 또한 당시에 길거리에는 뒷모습만 쿠도인 여자들이 우글거렸을 정도로 여성들 사이의 인기도 매우 높았다. 때문에 쿠도의 전성기 인기를 알던 사람들은 세월의 무상함(...)과 아이러니함을 느끼기도...결혼 한방에 여자들의 우상에서 여성의 적으로

실제로는 기무라 타쿠야의 이상형이 쿠도 시즈카였으며 기무라가 결혼 전 사귀던 여성도 쿠도와 똑 닮은 인물이라 한다. 성공한 덕후? 물론 90년대 초중반 이후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기는 완전히 역전되었고, 애초에 결혼과 동시에 쿠도는 연예계 활동을 접다시피 해버렸고 기무라는 점점 더 활발하게 활동울 했으니 당연한 수순이다.



工藤静香 & 木村拓哉 - A.S.A.P 작성자 kenjikasukabe

SMAP X SMAP에서 함께 공연한 'A.S.A.P.' 둘이 함께 노래하는 영상도 이 방송이 유일하다.

SMAP의 히트곡 중 하나인 'Lion Heart'는 기무라 타쿠야가 그녀에게 프로포즈할 때 부른 노래로 화제가 되었지만 기무라 타쿠야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본인이 DJ를 하고 있는 라디오에서 자신은 그런 낯가지러운 일은 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했다.

2001년 장녀인 코코미, 2003년 차녀인 미츠키를 낳았다. 출산 후에는 예전처럼 활발하게 활동 하지 않고 보육에 전념하고 있다.[9] 과거 아이돌 시절에는 스캔들의 여왕이라 불리며 당대 많은 남자스타들과 스캔들에 휩싸였는데, 결혼 후에는 구설수없이 내조에 열중하는 것이 대중들에게 갭을 자아내는 모양이다.

남편과 아내 모두 톱스타라 방송에서 한번쯤 이야기가 나올 법 하지만 기무라 타쿠야의 소속사인 쟈니스의 방침[10]을 받아들여 절대 서로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다. 쟈니 할배에게 결혼이란 단어는 없다.

결혼 이전의 대표적인 연인관계로는 X JAPANYoshiki가 있다. 요시키와는 기무라와 결혼하기전에 헤어졌으나[11] 차인건지 찬건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런데 요시키는 이후 자서전에서 그녀는 실물이 늙어보였다고 언급(…) 여튼 배려와는 담 쌓은 사람이다.

3 음악 관련

90년대 데뷔한 우리나라의 강수지가 그녀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유명. 쿠도의 긴 생머리와 청순한 컨셉을 모토로 한 듯 하나 음악적인 노선은 전혀 다르다. 쿠도는 울 듯한 일자눈썹의 청순한 외모를 밀긴 했지만 그 시대 아이돌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좋은 가창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콘서트 등에서 보여주는 댄스실력도 발군. 당시 아이돌 4대천왕이긴 했지만 일반적인 일본아이돌의 깜찍발랄 노선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노래할 때의 목소리와 평소 때의 목소리에 상당한 이있다. 노래톤은 중저음톤이지만 말할때는 몇옥타브 올라간 듯한 매우 애교있고 간드러진 목소리라서 괴리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히트곡중 국내에 알려진 '무곤 이롯뽀이(Mugoㆍん…色っぽい)'때문에 원래 노래톤도 비음작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이런 창법의 노래는 극소수고 실제로는 오냥코클럽시절부터 허스키한 톤을 고수해왔다.
개인 콘서트가 '귀여움'보다는 '멋있음'에 치중해 있음을 감안하면 본인 취향도 이쪽에 가까운것으로 보인다.[12]

히트곡 중 하나인 '폭풍의 맨얼굴(嵐の素顔)'을 부를 당시, 박남정ㄱㄴ춤과 같은 동작의 댄스를 춘다. 박남정의 ㄱㄴ춤이 등장하는 '널 그리며'가 1988년 발표곡이고, 쿠도 시즈카의 '폭풍의 맨얼굴(嵐の素顔)'이 1989년에 발표된 곡임을 감안하면 시기적으로 박남정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당시 문화의 교류 온도를 생각해본다면 티파니의 "I saw him standing there"를 모방했을 가능성이 크다.

히트곡이 워낙 많기때문에 코다 쿠미, 시바사키 코우, 고토 마키, 카하라 토모미, 미즈키 나나등 수많은 후배 가수들이 히트곡을 커버하였다.

4 친분

동세대 아이돌중에서는 나카야마 미호와 절친이었다. 1988년 크리스마스 특집드라마 미스 매치로 공연한후 각별한 우정을 자랑하였으나[13] 90년대 초반 우정이 삐걱거리며 깨져버렸다. 90년말 첫싱글부터 5번째 싱글까지 보컬 뉴버젼이 포함된 베스트 앨범 'Unlimited'의 12번째 보너스 트랙 '사랑 모양'이란 곡은 작사할때 예명으로 쓰는 '아에리(愛絵理)' 명의로 쓰여진, 타하라 토시히코와 사귀고 있던 그녀를 위해 헌정하는 곡이었으나 얼마안가 91년 연초 특방에서 타하라 토시히코와의 과도한 키스씬이 나카야마 미호의 격노를 사며 사이가 틀어졌다 카더라! 세상에 작사한지 얼마나 됐다고 절친의 남친과 이 무렵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친한 친구가 한명 있는데 툭하면 남친 문제로 전화 걸어와서 징징대는거 들어주는 것도 한두번이지 완전 짜증 지대로야"같은 발언 한적 있는데 누가봐도 미호 얘기였다.

이후엔 모리타카 치사토와 절친이었다. 두사람 함께 쇼프로 나오면 항상 옆자리에 붙어앉아 수다떨며 (주로 주의산만한 시즈카가 먼저 수다떨면 치사토가 맞장구 쳐주는 패턴) 친분을 과시, 94년 홍백가합전 때는 둘이 나란히 붙어서 출연하는 코너들이 많다. 서핑 친구였던 사카이 노리코와도 절친이었다. 사카이 노리코의 남편과 서핑 친구였는데, 그 서핑에서 만난 게 기무라 타쿠야라고. 이이지마 나오코와도 각별한 사이인듯 하다. 나오코의 조카와 본인의 딸들이 같이 만나 논다는 얘기를 버라이어티 프로에서 언급했다.

솔로 초기 시절부터 음반의 작사를 자주 맡아온 나카지마 미유키와의 친분은 특히 각별한데, 데뷔전 와타나베 유조에게 "나카지마 미유키마츠토야 유미타케우치 마리야중에 누가 좋은지?"라는 물음에 나카지마 미유키라고 대답한 것이 인연이 되어 그녀의 초창기 거의 모든 히트곡들의 가사를 제공하였다. 쿠도 시즈카 본인은 데뷔 전부터 그녀의 음악에 영향을 받아왔으며, '나카지마 미유키씨만큼 동경하는 사람은 없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의 팬이었다고 한다. 나카지마 자신도 쿠도에게 보낸 음성 메시지로 '앞으로도 계속 당신의 눈동자를 동경하겠습니다. 당신과 만난 것이 나에겐 보물입니다.'라고 얘기하며 깊은 뜻을 나타냈다. 이 말을 들은 쿠도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성공한 덕후2?

5 히트곡 목록

  • 1987년 - 禁断のテレパシー
  • 1987년 - Again
  • 1988년 - 抱いてくれたらいいのに / FU-JI-TSU / MUGO・ん…色っぽい / 恋一夜
  • 1989년 - 嵐の素顔 / 黄砂に吹かれて/
  • 1990년 - くちびるから媚薬
  • 1991년 - メタモルフォーゼ / めちゃくちゃに泣いてしまいたい
  • 1993년 - 慟哭
  • 1994년 - Blue Rose / Ice Rain
  • 1997년 - Blue Velvet (드래곤볼 GT의 주제곡)
  • 1998년 - 雪・月・花
  • 2000년 - 深紅の花 (YOSHIKI 작사, 작곡, 프로듀스)
  1. 2000년 키무라 타쿠야결혼 후 남편의 성을 따름.
  2. 응모자는 18만 325명으로 대회 역대 최대 응모자수였다. 동기엔 오냥코클럽의 멤버가 되는 고쿠쇼 사유리도 있었다.
  3. 직역하면 뒷머리를 잡히고 싶은 아이들, 사전적 의미는 미련을 남기다는 뜻.
  4. AKB48 서브유닛중 하나인 '이동복도주행대'는 이 그룹의 후배그룹을 자처하고 있다. 기획사가 같기 때문에 가능한 일.
  5. 솔로 전향 직후 조연으로 출연한 드라마 '한가하면 놀러와'의 5화에 극중 견습 게이샤 역할인 쿠도가 방송국에 나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사회자가 쿠도를 소개할 때 "니혼가미히카레타이'가 부릅니다." 라는 드립을 친다.
  6. 이 시기부터 아티스트 노선을 취하는 듯 했으나 크게 성공했다고 보기 어려우며, 어찌됐던 쿠도의 전성기는 88-92년이다.
  7. 1990년대를 대표하는 정상급 여배우로 유명한 스즈키 호나미의 남편이다.
  8. 한 때, 일본의 어느 여성 잡지의 설문조사에서 "가장 싫은 여자연예인"에서는 언제나 최상위권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래도, 2015년 현재에는 동정론도 많아져서 많이 줄어들긴 했다.
  9. 두 딸이 다니는 유치원은 일본 주재 외국 대사관 자녀들이 다니는 초호화 유치원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10. 쟈니스는 엔간해서는 소속사 연예인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는다(…))
  11. 2000~2002년까지도 요시키의 회사인 엑스타시 레코드소속이었다.
  12. 개인콘에서는 보이쉬한 스타일로 과격한 댄스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 파트가 항시 들어가는 등 역시 일반적인 아이돌 스타일은 아니다.
  13. 미스 매치 자체가 절친 아이돌 두 명을 주연으로 기용했다는 점을 내세운 드라마였다. 첫 인연은 1987년 나카야마 미호 주연의 드라마 '한가하면 놀러와'에 쿠도가 조연으로 출연하면서부터였고, 이 드라마 종영 이후 각종 매체에서 절친임을 과시하고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