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유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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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확정짓는 마지막 선방
마지막 국가대표 메이저 대회 출전이었던 유로 2008에서의 모습.
유로 2000 지네딘 지단과 함께.
이름 | 에드빈 판 데르 사르(Edwin Van der Sar) |
생년월일 | 1970년 10월 29일 |
국적 | 네덜란드 |
출생지 | 포르호우트 |
신체 조건 | 199cm, 83kg |
포지션 | 골키퍼 |
소속 클럽 | AFC 아약스 (1992~1999) 유벤투스 FC (1999~2001) 풀럼 FC (2001~200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05~2011) VV 노르드빅 (2016) |
국가 대표 | 130경기[1] |
1 개요
피터 슈마이켈에 이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레전드 골키퍼.
AFC 아약스의 레전드 골키퍼.
네덜란드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키가 2m에 육박했으며 녹색 유니폼을 자주 입어 녹색 거인이라고 불렸다.
2 클럽
에레디비지에의 아약스 유스 출신으로 1992년부터 성인팀에서 뛰었다. 1995-1996 시즌에 무려 1082분의 무실점 기록을 세웠다.[2] 유로 1996과 1998년 프랑스 월드컵[3]에서도 대표팀에 선발되어 맹활약했다. 안타깝게도 98년 월드컵 4강전에서 먼치킨 팀 브라질과 웬 대머리 키퍼를 만나 패배.[4] 이후 1999년에는 이탈리아의 명문 클럽 유벤투스와 계약, 유베 역사상 최초로 비이탈리아인으로 주전 골키퍼의 등번호인 1번을 받은 선수가 되었다. 유베에서 좋은 활약을 펼칠 거라 예상했으나, 종종 실수를 범해[5] 신뢰를 잃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유로 2000에서도 네덜란드의 주전 골키퍼로 맹활약했으나, 하필이면 4강에서 만난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톨도가 날아다니는 바람에 또 패배. 그 자신에게는 바로 전 메이저 대회인 98년 월드컵에서의 승부차기에 이은 또 다른 승부차기 패배가 되고 말았다. 이후 당시 파르마의 슈퍼 유망주였던 지안루이지 부폰이 계약하는 바람에 바로 풀럼 FC로 이적하게 된다.[6]
한편, 유벤투스에서 마음 고생을 한 탓에 2001년 잉글랜드의 풀럼 FC로 이적하여 다시 좋은 활약을 보였다.[7]
2005년 풀럼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하였는데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맨유의 고질적인 골키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베테랑 키퍼를 영입하기로 한 것이다. 이 당시 훈훈한 미담을 남겨서 풀럼 서포터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8]
나이가 마흔이 다 되어가는데도 불구하고 맨유에서 부동의 주전 자리를 꾸준히 채웠다. 슈마이켈 이후로 맨유는 알다시피 골키퍼 문제가 많았는데, 예를 들자면 마약을 한 보스니치에 기름손에다가 절친 앙리에게 패스해주는 바르테즈, 맨유에서 처음에만 잘하고 이후 자신감을 상실한 하워드, 아스날을 상대할 때만 잘했던 로이 캐롤 등... 이것만 봐도 알겠지만 슈마이켈 이후의 골키퍼들이 문제가 많았다. 이들의 뒤를 이어 입단한 반 데 사르도 사실 처음에는 2~3시즌만 하고 은퇴하거나 이적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며 맨유의 골문을 든든히 지켰다. 물론 나이가 나이인지라 간혹 실수가 나오기는 했다. 예를 들면 06/07 시즌 포츠머스와의 경기에서 리오 퍼디난드와의 콜이 맞지 않아 어이없는 자책골을 내주기도 하고, 10/11 시즌 웨스트 브롬위치와의 경기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범해 무승부를 한 바가 있다.
맨유 시절의 08-09 시즌에는 95-96 시즌의 1082분의 무실점 기록을 뛰어넘어 1311분의 무실점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뛰어난 판단력과 중거리슛 선방 능력, 그리고 큰 키를 통한 코너킥 또는 프리킥 상황에서의 제공권 장악은 그야말로 최강급이다. 다만 길쭉한 다리 때문인지 다리 사이로 들어가는 실점이 간간히 나온다.
2010년 11월 29일 이번 시즌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어차피 지난 시즌부터 지속적으로 마지막 시즌 떡밥이 나온 만큼 팬들도 그다지 놀라지 않는 분위기.
은퇴가 예정됐고 거의 막바지에 이른 10-11 시즌 첼시와의 중요한 경기에서도 눈앞에서 오는 헤딩슛을 동물적인 반사신경으로 막거나 프리킥을 슈퍼세이브 하는 등 꼭 은퇴를 해야만 하나...? 라는 반응을 이끌어 낼 정도로 활약은 상당한 편.
여담으로 울버햄튼전에서 두 골로 팀의 승리를 이끈 박지성을 경기 끝난 후 돌아갈 때 에브라와 함께 들어 올려주어서 한국 팬들의 훈훈함을 얻으셨다.
2011년 2월 2일에 펼쳐진 아스톤 빌라와의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어시를 기록했다.[9]
자신의 축구 커리어 마지막 경기인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바르셀로나의 압도적인 공격을 눈물나는 투혼의 선방을 선보였지만 결국 3:1로 무릎을 꿇었다. 이 날 반 데 사르는 8개의 슈팅을 막아내었다.
퍼거슨 감독이 한 시즌은 더 뛸 수 있다고 잡았는데도 은퇴했는데 그 이유가 감동적이다. 뇌졸중 투병 중인 아내를 간호하기 위해서라고... 존 테리나 라이언 긱스와 대비된다.
반 데 사르의 은퇴 후 맨유의 최대의 고민은 그의 대체자를 찾는 것. 후계자로 지목됐던 토마스 쿠슈차크, 벤 포스터는 모두 기량 이하의 플레이를 보여준 데다가 벤 포스터는 떠나버렸다. 2군 골키퍼인 벤 아모스도 마뜩찮은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덴마크의 아너스 리니고르 이적에 합의하여 2011년 1월 1일에 영입하기로 결정했다.
본의 아니게 축구 해설위원인 한준희와의 인연이 있다. 한준희 해설위원이 샤우팅으로 유명해진 계기가 바로 05/06 시즌 첼시와의 경기에서 터진 샤우팅이기 때문. 아아앍!!! 반데쏴르!!!
2011/12 시즌 복귀 떡밥이 떴다. 폴 스콜스는 이미 복귀한 상황, 다비드 데 헤아나 린데가르트는 아직 여물지 못한 상태라 맨유팬들은 복귀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러나 데 헤아가 일취월장하는 모습을 보여 현실적으로는 무리일 듯.하지만 은퇴한 이후에도 맨유에 도움을 주었는데 2012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 당시 맨유와 유벤투스를 놓고 고민하던 같은 네덜란드의 선수 반 페르시에게 조언을 해주었다고.[10]
3 국가대표
1994년 FIFA 월드컵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3번째 골키퍼로 명단에 올랐으나 출전하지는 못했다. 첫 경기 출전은 1년 뒤인 1995년 6월 7일 벨라루스와의 경기에서 국가대표팀에 공식 데뷔하였다. UEFA 유로 1996을 시작으로 UEFA 유로 2000, UEFA 유로 2004, 1998년 FIFA 월드컵[11], 2006년 FIFA 월드컵, UEFA 유로 2008까지 총 6번의 메이저 대회에 참가하였다.
2002 FIFA 월드컵 유럽 예선에서 포르투갈과 아일랜드에게 패하며 조 3위로 본선 진출에 실패하여 월드컵 출전이 불발된 적이 있다. 이후 절치부심하여 유로 2004에서는 8강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승부차기 끝에 네덜란드를 4강에 진출시켰으나 포르투갈에게 패해 결승 진출은 좌절되었다.[12] 이후 2007년 유로 2008을 끝으로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할 것이라고 말했고, 대회 기간 네덜란드는 같은 조였던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대파하며 조 1위로 8강에 올랐으나, 자국 출신의 명장인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러시아에게 3-1로 패해 자신의 마지막 메이저 대회를 마감하게 되었다.
이후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으나 새로 부임한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 감독이 2008년 10월, 2010 FIFA 월드컵 유럽 예선을 치루는데 골키퍼 마르크 스테켈렌부르흐와 빔머가 부상으로 나오자 못하자 긴급히 반 데 사르에게 국가대표팀 임시 복귀를 요청했고 반 데 사르는 이를 수락했다. 2경기 모두 출장하였고 A매치 총 130경기를 뛰어 현재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A매치 최다 출전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4 여담
마누엘 노이어가 어렸을 때 우상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2014 프랑스풋볼지와 인터뷰에서) 나는 나를 중요한 선구자라 생각하지 않는다. 새로운 관점을 매우 이른 시기에 가져온 선수 중 한명은 반데사르이다. 반데사르는 발밑을 매우 자주 사용했으며, 포지션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도록 하였다. 나는 그의 플레이 스타일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난 아약스의 철학을 좋아했다. 어린시절 아약스의 경기를 녹화해둔 비디오가 매우 많았다. 그들의 경기 비디오를 찾아보고 그들의 게임을 따라왔다.(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를 묻자) 이거 대답하기 어렵다. 언제나 그 시대 세계적으로 위대한 골키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대마다 경기 방식들이 변해져 왔기도하고. 나의 어린시절에는 반데사르가 나의 우상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굉장히 현대적으로 플레이했고 골키핑을 발전시켰다고 생각한다. -노이어-
통산 705경기에 출장했다.
5 은퇴 이후
2011년 현역 은퇴 이후 아내의 병간호를 하면서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으며, 향후에는 아약스의 코치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한 적도 있다.
2012년 말에는 친정팀인 아약스에서 마케팅 담당으로 보드진에 이름을 올렸다는 기사가 나왔다. 사업 수완이 중요한 자리인데 새로운 일에 대해 전 소속팀이었던 맨유의 데이비드 길 사장에게서 조언을 받았다고 한다.
2015년 11월 14일 영국 vs 세계 올스타로 치루어진 유니세프 후원 자선경기에서 박지성, 지단, 피구 등과 함께 월드팀의 멤버로 선발되었고, 전반을 1실점으로 막고 경기 본 사람은 알겠지만 현역으로 복귀해도 될 듯 보였다후반 시작과 함께 교체 아웃되었다.[13]
2016년 자신이 데뷔 후 5년간 몸 담았던 네덜란드 3부리그 노르드윅에서 SOS를 보냈다고 한다. 반 데 사르의 응답은 OK. 즉 현역 복귀전을 갖는다는 것.# 흠좀무
- ↑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최다 출전자
- ↑ 이때 골도 한 골 넣기도 했다고 한다.
- ↑ 8강전에서 아르헨티나를 맞아 경기 막판에 아리엘 아르날도 오르테가를 퇴장시키는(...) 등의 맹활약을 펼쳐, 네덜란드 대표팀을 4강에 올려 놨다.
- ↑ 98년 월드컵의 4강전에서 브라질과 맞섰는데, 이때의 브라질은 당시 최전성기의 위용을 자랑하던 희대의 먼치킨 호나우두를 비롯, 둥가, 히바우두, 베베토, 호베르투 카를로스, 레오나르두 등 레전드가 즐비했다. 거기에 골키퍼로는 클라우디오 타파렐까지. 결국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배했는데, 당시 반 데 사르는 타파렐이 2개를 막아낸 데에 반해 1번의 방향조차 제대로 잡지 못한 채 4골을 먹고 패배했다. 쓰라린 추억인데... 그 다음 유로 2000에선...
- ↑ 유벤투스 시절의 지네딘 지단 자책골 동영상이 인터넷에 떠도는데 반 데 사르의 실수도 컸다.
- ↑ 그래서 FM의 전신격인 CM3에서 부폰을 싫어하는 선수로 설정되어 있다. 물론 실제로는 사이가 나쁘지는 않다.
- ↑ 풀럼 이적을 보고 당시 전문가들은 이제 반 데 사르는 끝났다는 설레발을 치기도 했다. 풀럼보다 더 좋은 구단에 갈 수 있었는데도 풀럼을 선택한 것은 유벤투스에서 마음고생을 너무 해서 부담감이 적은 팀을 원해서였다는 말도 있다.
- ↑ 애초에 풀럼과 맺었던 계약기간이 다 되어서 맨유는 풀럼에 이적료를 줄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반 데 사르는 중소구단인 풀럼에 이적료를 남겨주기 위해 일부러 재계약을 했다. 물론 맨유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이적료를 지출한 것이 되었지만 그 금액이 거액도 아니고 이후 반 데 사르의 활약은 그 이적료 값을 하고도 남았기에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거래였다.
- ↑ 전반 1분만에 자신의 진영에서 길게 차준 롱볼을 루니가 트레핑 이후 바로 슈팅으로 연결하여 선취골을 뽑아냈고 이것은 정식으로 반 데 사르의 어시로 기록됐다.
- ↑ 반 데 사르는 유벤투스와 맨유에 모두 뛰어본 선수인 데다가 같은 고향 출신이라서 같은 두 팀에게 제의를 받은 반 페르시가 그에게 전화로 두 팀에 대한 조언을 부탁했다. 그런데 반 데 사르가 유벤투스에 대해서는 몇 마디만 해주고 나머지 몇십 분을 맨유에 대해서 이야기해줬다고 한다. 반 페르시도 어느 정도 맨유로 마음을 굳히고 전화를 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반 데 사르의 조언으로 확고한 결심을 한 듯.
- ↑ 당시 한국이 네덜란드에게 5:0으로 깨진 경기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 ↑ 승부차기에서 당시 스웨덴의 주장인 올로프 멜베리의 슛을 막아낸 후 무표정으로 마지막 키커 아르연 로번에게 "이제 네가 차서 끝내라"는 식으로
감히 대선배 로번에게삿대질을 한 건 그야말로 폭풍간지. #근데 반 데 사르는 70년생이고 로번은 84년생인데?? 14살 많은 형보다 더 늙어보이는 로번의 위엄 - ↑ 당연히 못해서가 아니고 웬만한 레전드 경기는 선발출전하면 후반에 웬만하면 교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