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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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No.46
백인식(白寅植 / In-Sik Baek)
생년월일1987년 11월 19일
출신지경기도 의정부시
학력백운초 - 덕수중 - 청원고 - 제주산업정보대
포지션투수
투타우사우타
프로입단2008년 신인드래프트 2차 2라운드 (전체 14번, SK 와이번스)
소속팀SK 와이번스(2008 ~ 현재)

1 소개

SK 와이번스의 우완 사이드암 투수.

2 아마추어 선수 시절

의정부 출신이지만 의정부에는 야구부가 있는 중고등학교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1] 야구부가 있는 서울의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로 진학해야 했다. 청원고 졸업 후에는 제주산업정보대학교에 입학했다가 SK의 지명을 받고 입단하게 되었다. 2차 2순위로 뽑힐만큼 팀내에서 어느정도 기대를 가지고 지명했다. 당시 백인식에 앞서 SK가 지명한 2차 1라운드 신인은 모창민이었다.

3 프로 선수 시절

185cm, 86kg의 좋은 체격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입단 당시에는 오버핸드 투수였으나 최일언 코치의 조언으로 사이드암으로 투구폼을 바꾸었다. 하지만 입단 후 부상으로 인해 신고선수로 전환되었고, 이후 병역을 해결하기 위해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했다.

소집해제 후인 2012 시즌 퓨처스리그에서 호투를 하며 신고선수에서 정식선수로 다시 전환되었다. 직구 구속이 140대 중반으로 올라온 것이 좋은 활약의 원인. 2012년 퓨처스리그 기록은 15경기 8승 4패 94.2이닝 ERA 2.76으로 상당히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작가님이 2.92, 핸드폰 팔던 분이 1.76인건 무시하자

3.1 2013년

이 선수가 이름이 언급된 것은 2013년 김상현SK 와이번스로 트레이드될 때의 일이었는데, 이호준NC 다이노스로 이적하면서 빈 번호였던 27번을 백인식이 차지하였다 김상현이 오면서 27번 번호를 내주게 된 것. 한편 번호를 내주면서 백인식은 송은범의 등번호였던 46번을 가져가게 되었다.

2013년 5월 2일 프로 데뷔 처음으로 1군으로 콜업되었고, 콜업 다음날인 2013년 5월 3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1군 첫 등판을 했다. 1이닝을 무실점으로 처리.

그리고 희대의 막장경기에서 0이닝 6실점으로 문자 그대로 털린(...)여건욱최영필의 뒤를 이어 등판했는데, 4이닝 2실점 4삼진 1볼넷 투구수 79개로 역전에 보탬이 됐다. 2실점이 아쉽긴 하지만 이닝을 많이 먹어준 덕분에 투수 누출을 최소화 할 수 있었으며, 점수차가 크게 난 상황이긴 했지만 1군 2번째 등판에서 도망가지 않는 피칭을 한 것에서 팬들에게 점수를 많이 땄다. 솩갤과 다른 야구 커뮤니티에서는 여건욱보다 몇 배 낫다는 말들이 나왔다. 이후 여건욱이 2군으로 내려가면서 비게 된 5선발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도 있다.

5월 12일 선발 김광현의 뒤를 이어 등판하였으나 김민성에게 안타를 맞았고 진해수가 역전을 허용하며 프로 통산 첫 패를 기록했다. 그리고 여건욱의 2군행으로 비게 된 선발자리를 차지하며 5월 16일 광주 KIA전에 프로 첫 1군 선발 등판했다. 상대선발은 1군 복귀 후 첫 선발경기에 나서는 윤석민. 본인은 밑져야 본전이라며 편하게 던지겠다고 말했고, 약속대로 본인의 호투와 야수들의 도움으로 본인 프로 통산 첫 승을 거두었다. 볼넷이 5개로 많긴 했지만 6이닝 동안 안타를 하나 밖에 맞지 않았다. 피안타 한 개는 바로 나지완의 투런홈런. 이 날 성적은 6이닝 2실점 1피안타(1피홈런) 5탈삼진 투구수 84개.

이후 선발로테이션에 진입하는데 성공했고 19경기(16선발) 5승 5패 91⅓이닝 85피안타 50삼진/36볼넷 ERA 3.55 WHIP 1.32로 물음표 투성이였던 SK의 5선발로 자리잡았다. 한화와 LG에게 강한 면모를 보였다.

3.2 2014년

이만수 감독이 5선발로 채병용을 낙점함에 따라 경쟁에서 밀려난 백인식은 불펜 보직을 맡아 시즌을 시작했지만 개막전 2이닝 무실점을 제외하면 올라올 때마다 부진한 투구내용을 보여주었다. 4월 4일 한화전에서 ⅔이닝 4실점을 기록한 후 2군으로 내려갔다. 2군행 직전까지 기록한 성적은 4경기에 등판해 3이닝 8자책점, 평균자책점 24.00에 WHIP는 4.00, 피안타율 0.625. 등판할 때마다 표정이 좋지 않았다는 트집이 잡혀 고의태업설까지 나돌았으나 정확하게는 개막전 이후 시작된 부진으로 멘탈이 무너지며 소포모어 징크스로 이어졌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5월 4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홈 경기에서 1군에 복귀해 선발로 등판했다. 결과는 5이닝 10피안타 1피홈런 4사사구 1삼진 9실점. 그야말로 탈탈 털렸다. 1회는 무실점으로 막았지만 2회에 무사 만루를 만들고 김문호를 몸에 맞추며 흔들리더니 좌익수 김상현이 실책성 송구를 하자 완벽하게 무너지며 2회에만 7실점했다. 결국 이 날의 부진으로 1군에서 말소되었다. 이날까지의 1군 기록은 5경기 동안 ERA 19.13. WHIP는 3.13, 피안타율 0.513. 이 날 9실점을 했음에도 모든 기록이 이 날 전보다 아주 약간 나아졌다(...) 피안타율이 0.513이면 투수가 타자한테 그냥 진다는 얘기네. 피출루율은 상상하기도 무섭다.

그 후 5월말에 1군에 복귀하여 5월 29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도 선발출장하여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1과 3분의 2이닝 2실점으로 교체되었고, 그 이후로 3개월 동안 전혀 1군에서 등판하지 않고 있다.

후반기 SK가 여러 문제가 생겨 멀쩡한 선발진이 너무 부족해서 4,5선발 자리가 텅텅 비었음에도 신인이나 무명을 겪었던 선수들이 4,5선발로 나오고, 백인식이 1군 콜업이 안 되고 있는 점을 보면 실력이나 상태가 많이 나빠진 걸로 보인다. 작년에 선발로 잘 쌓아놓은 거 다 날리면 어떡하니

시즌이 끝나고 마무리캠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구속도 140km/h 중반대로 회복했고, 커브도 잘 익혔다고 한다. KT 위즈의 20인외 특별 지명 때 지명될 것이라고 예상한 의견도 있었으나 김상현을 지명하면서 실현되지는 못했다.

3.3 2015년

김용희 감독으로부터 5선발로 낙점받았다. 시범경기 초반에는 툭하면 홈런을 얻어맞는 배팅볼급 피칭을 보여주었으나 마지막 경기에서 5이닝 1실점 호투하면서 극적으로 선발 로테이션 합류 성공. 하지만 여건욱채병용, 고효준 등 5선발 후보군이 기회를 엿보고 있기 때문에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선발 로테이션에서 금방 탈락할 수도 있다.

그리고 4월 5일 5시에 진행된 목동 넥센전에서 선발로 나와 5이닝 2실점으로 승리를 챙겼다! 565일 만의 승리투수가 되었고 그 상대가 막강타선 넥센이라는 점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 이후 투구내용은 좋지 못한데 4월 11일 마산 NC전에서는 5이닝 3실점(1자책)을 기록했고, 4월 22일 수원 KT전에서는 1.2이닝 만에 2점을 내주고 2연패를 당했다.4월 28일 문학 NC전에서는 3이닝 동안 5안타 1볼넷을 내주고 3실점했다. 이에 김용희 감독은 백인식을 5선발에서 제외 시켰으며 그 대신 박종훈이 5선발을 하게 되었다. #

이후 리그베다 위키 사유화 사태 등의 여파로 수정이 안 되고 있었다... 그러다 514 대첩 때 3이닝 7실점 6자책으로 탈탈 털린 김광현의 뒤를 이어 롱릴리프로 나와 무실점으로 이닝을 먹어주며 2년 전처럼 SK가 대역전극을 이뤄내는 데 숨은 공신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두 대첩 모두 선발이 조기강판을 당한 뒤에 롱릴리프로 자기 역할을 해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트래비스 밴와트의 등록으로 말소되었다. 진해수와 같은 이유인 경기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2군으로 갔다고.

그리고 2015년 9월경 토미존 서저리 수술을 받으며 기나긴 재활생활이 시작되었다.2014년의 기록적인 부진도 팔꿈치 피로가 원인이 되었던듯. 그래도 2015년에는 괜찮게 던졌었다

4 기타

뿌우하는 표정을 지을 때 안면홍조가 있어서 SK 와이번스 갤러리 등에서는 뿌인식이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다. 후반기에 들어서는 주자를 출루시킨 다음에 꾸역꾸역 막아내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어서 뿌역이(뿌인식+꾸역꾸역)라는 별명도 생겼다(...)

체인지업을 반재륭에게 배웠다고 한다. #
  1. 2012년 말에야 의정부 상우고등학교에서 야구부를 창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