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춘모


다시는 볼 수 없는 현역시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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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코치로!

SK 와이번스 No.89
제춘모(諸春模 / Chun-Mo Jae)
생년월일1982년 4월 5일
출신지광주광역시
학력유안초 - 동성중 - 동성고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2002년 신인드래프트 2차 1라운드 (전체 1번, SK 와이번스)[1]
소속팀SK 와이번스(2002 ~ 2014)
지도자SK 와이번스 2군 불펜코치(2015 ~ 현재)
SK 와이번스 등번호 18번
조규제(2002)제춘모(2003~2005)위재영(2006~2007)
SK 와이번스 등번호 18번
위재영(2006~2007)제춘모(2008~2014)이창욱(2015~)

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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솩갤러들이 만든 거니 오해 말자

SK 와이번스 소속의 사이버투수. 현 SK 와이번스 2군 불펜코치. 한때는 메이저리그 진출설까지 돌던 대형 유망주였다.[2]

등번호는 18번.[3][4] 그래서 그런지 가끔 제춘모를 마킹한 용자가 SK 와이번스 갤러리에 나타나기도 한다. 그게 얼마 짜린데 그래 그걸

이름이 '모'자로 끝나는 지라 제춘모바일[5], 제춘모텔(…). 한자는 그 뜻이 아니지만[6] 봄털성님 등으로 불리며 갤러들에게 묘한 애증의 대상. 참고로 '제'씨 성은 남양 제갈씨에서 갈라져 나온 세 성씨(제갈, 제, 갈) 중 하나이기 때문에 족보 상 제갈량의 후손(!)이다. [7]

2 선수 경력

2.1 2002~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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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당시 강팀이 아니었던 SK 와이번스에 고졸 신인으로 들어와 9승 7패 평균자책점 4.86을 찍으며 혜성같이 등장했고, 2003 시즌에 10승 6패, 평균자책 4.89로 커리어에서 유일한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하면서 윤길현, 채병용과 함께 SK의 주축 투수로 성장할 것이란 기대를 한몸에 받았으나 2004년에 어깨부상으로 붙박이 선발진에서 광탈했다. 2005년에는 팔꿈치 수술까지 받게 되면서 2006년부터 2년간 선관위에서 선거홍보용 인형탈을 뒤집어 쓴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고 팀에 돌아왔으나 이미 구속은 130km/h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처참하게 몰락했다. 오죽하면 네이버 관련 검색어에 제춘모 구속이 있을 정도(...). 게다가 두바이2군에 있으면서 신인 유망주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는 루머까지 들리면서 팬들도 사실상 그를 향한 기대는 접어버린 상태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한때 팀의 대형 유망주이자 여성팬을 몰고 다니는 미남 선수로[8] 하지만 2004년 이후로 1군에 잠깐 올라왔다 털리는 신세가 되며 야구도 못하는데 놀기만 한다는 이유로 솩갤러들에게 심심풀이 땅콩같이 항상 까이는 존재가 되었다. [9] 그래서 그런지 이런 이야기가. 가끔 다른 갤에서 솩갤을 털러 올 때 너희 팀 에이스 제춘모화라는 몹쓸 저주를 하기도 한다. 2003 시즌에 두자리수 승수를 기록했기 때문에 10승 투수 드린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신인인 김태훈에게 몹쓸짓을 해서 공분을 불러오기도 했다. 몹쓸 짓?

2.2 2012년 이후

2012년 5월 12일, 박종훈과 함께 1군에 콜업되었다. 2군에서 나름대로 활약이 좋았고, 투수가 부족한 상황인데다 실제로 제춘모나 올려라 하는 이야기도 나왔었지만….

구속이 오르지 않음에도 방출되지 않고 2군에 남아 있는 것은 이유가 있는 법. 그런데 2012년 5월 17일, 7년 만에 1군 문학 LG전 선발로 예고되었다! 상대 투수는 정재복이고, 게다가 공중파 방송 중계까지 잡혔다(…). SK 팬과 LG 팬들도 서로 역레발을 떨었는데, 이 경기에서 7이닝 109투구수 3피안타 1피홈런 3볼넷 2탈삼진 1실점 1자책점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호투를 펼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 타선이 정재복에게 6⅔이닝 노히트로 압살당하며 스코어 1:0으로 패하는 바람에 2,552일만의 1군 선발 등판 경기에서 패전 투수가 되고 말았다. 1점만 내 달라고 빠따 시발들아!

이후 5월 27일 삼성전에서도 0⅔이닝 동안 볼넷 하나만 주고 무실점으로 막으며 홀드를 챙기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리는가 싶었으나, 4일 뒤인 5월 31일 넥센전에 선발 등판해 38투구수 4안타 1피홈런 1볼넷으로 4실점하면서 1이닝만에 조기 강판당했다. 하지만 계투로 올라와 사흘밖에 쉬지 못한 상황에서 선발로 나갔던 점, 무엇보다 그 전날(30일) 있었던 이만수 감독의 인터뷰 기사[10]가 경기 후 언론을 타면서, 패전에 대한 비난은 모두 이만수에게로 향했다. 프렌드 실드

부상의 여파인지, 밑천이 바닥난 것인지, 7월 1일 LG전에서 김광현의 어깨 통증으로 인한 자진강판 후 올라와서 3회와 4회를 틀어막으며 잘 버티는가 싶더니, 5회 2사 후 박용택에게 3점 홈런을 맞으면서 패전투수가 되었고 7월 8일 한화전에서는 8회 최진행에게 투런을 맞고 내려간 엄정욱을 대신해 올라와 김태균의 백투백홈런 겸 통산 200홈런 달성의 도우미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초점은 SK의 7연패에 맞춰져 모든 비난이 감독에게 향하였다.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할 지.

결국 8경기 18⅓이닝 3패 1홀드 ERA 5.40 20피안타 10사사구 6탈삼진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시즌을 마쳤다.

2012년 시즌이 끝난 후 느낀 게 있는지 2013년 시즌을 철저히 준비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기사가 올라오기도 했다. 5월에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라도[11]. 하지만 2013년에는 단 한 번도 1군에 올라오지 못했고, 7월 28일 2군 경기에 선발로 등판했다가 부상을 입고 강판된 후 그대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나마 방출은 면하고 재계약한 후 2014년 스프링캠프 참가에는 성공했으나 9월 7일 두산전에 출전하는데 그쳤고 그나마도 실점하며 평균자책 27.00을 찍었다. 결국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은퇴하지 않고 1군 무대에 한 번 더 도전해 보려는 듯.

3 지도자 경력

하지만 결국 상당히 이른 나이에 선수 은퇴 결정을 내렸고, 은퇴 후에는 친정팀 SK 와이번스의 2군 투수코치로 새롭게 출발한다고 한다. 2군 투수코치인 조웅천을 보좌하는 역할이라고. 본인도 SK가 아니면 의미가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선수 시절에는 꽃을 피우지 못했지만, 코치로는 잘 되길 응원해 주도록 하자.

2015년 8월 21일,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공로상을 수상했다. 원클럽맨으로써 해당 구단의 역사에 한 페이지를 남길 가치가 충분한 사례. 이후 9월 20일자로 애리조나 교육리그에 김무관 등과 같이 파견되었다.

2군에 다녀온 투수들이 인터뷰를 할 때보면 거의 항상 언급이 되고 있다. 선수들 사이에서 하마평은 좋은 듯. 제 2의 이상군이 될지, 정명원이 될 지는 본인의 코칭 능력에 달렸다.

2016년 5월 4일 경기에서 데뷔 첫승을 거둔 문승원의 시상자 역할로 깜짝 등장했다. 문승원은 제춘모를 보자마자 울었다(...) 시즌 전 오키나와 1군 캠프에 합류하지 못하고 2군 캠프로 떨어진 문승원을 잘 다독여 주었다고 한다.제춘모가 젊은 선수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모두에게 알려준 순간.

문승원-제춘모 코치, 눈물로 통한 사연

지금은 전병두의 재활을 도와주는 듯 하다. 유투브에 전병두와 찍은 레전드급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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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전에 마구마구 하던 시절, 엘리트카드가 너무 갖고 싶어서 야갤에 구걸한 적이 있다.(...). 지금보다 더 엘리트카드가 비싸던 시절이었고, 결국 야갤러들의 힘을 모아서 전 포지션을 엘리트로 도배에 성공했던 적이 있다. 엘리트로 모든 포지션을 맞추고 나서 "감사합니다"라는 글을 싸이에 썼는데 그게 바로 위의 짤방이다.
  • 2011 시즌에 SK에 입단한 외국인 선수 매그레인은 구속이 하도 나오지 않자 매춘모라고 불렸고 결국 시즌 도중 웨이버 공시되어 방출되었다.

4.1 마이 춘모 텔레비전

  1. 신생 창단 팀 2차 1순위 우선 지명권 3장 중 SK가 가장 먼저 호명한 선수였다. 그 다음에 부른 선수는 윤길현. 3번으로 지명한 박창근2004년을 마지막으로 방출되었다.
  2. 하지만 진짜 진출하려는 의사보다는 몸값 올리기의 일환이었다는 게 당시 아마추어 야구팬들의 정론. 메이저리그 진출만이 아닌 대학 진학 이야기까지 나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쪽에 더 설득력이 있다.
  3. 잘 알려져 있듯이 이 번호는 전설적인 대투수 선동열의 등번호다. 또한 일본프로야구계에서 에이스의 등번호로 선호되는 번호이기도 하다. 같은 고향의 대선배를 염두에 두고 고른 건지도.
  4. 못할땐 SK 팬들이 '18 니 등번호가 욕나오게 해서 18번이냐 18'이라며 신나게 까기도 했다(...)
  5. 부업으로 휴대폰 대리점을 한다는데, (LG유플러스 쪽이라고 한다. SK선수가...) 김성근 전 감독마저도 이를 알고 핸드폰 장사나 할 것이지 대체 왜 야구를 하느냐고 디스를 시전하였다.
  6. 사실 '봄'은 그 뜻이 맞기는 하다.
  7. 제갈량의 직계 후손이라고 보는 건 문제가 있다. 한국의 제갈씨는 제갈량이 아닌 그의 아버지 제갈규를 시조로 삼고, 다시 그의 5세손 제갈충이 신라에 귀순해 중시조가 되었기 때문이다. 제갈충은 제갈량의 후손이 아니다.
  8. SK 프런트에서도 제대하자마자 전광판의 홍보 영상에 등장시키는 등 잘생긴 선수로 띄워주면서 팔아먹으려고 갖은 노력을 했다. 당시 드라마 꽃보다 남자 주제가가 흐르는 가운데 전광판에 뜬 문구는 '춘모와 떠나는 맛있는 소풍!'(…). 부상 등으로 스타가 될 기회를 놓친 심수창과 비슷한 유형의 선수다.
  9. 본인도 이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고 한다.
  10. "작년에 2군에서 가슴과 어깨쪽 근육이 찢어진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프다고 해서 선발 로테이션을 어떻게 돌릴지 고민이다" 즉 선수의 부상을 알았으면서도 선발로 내보낸 것. 거기다 '모양이다'라며 이제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처럼 말을 했지만, 그 '작년' SK의 2군 감독은 다름아닌 이만수 본인이었다(...). 본의 아니게 2군 감독시절 선수에는 별 관심 없었음을 인증해버린 셈.
  11. 자녀는 딸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