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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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頂
1932년 10월 8일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출생. 2010년 3월 11일 향년 78세, 법랍 55세로 입적.

1 소개

속명 박재철. 무소유의 저자로 유명한 불승.
남방불교 경전 숫타니파타를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번역하기도 했다.

2 생애

무소유 외에도 여러 저서로 일약 유명해지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자, 어느날 갑자기 강원도 어딘가로 이사를 가버리곤 법회 때나 가끔 산을 내려왔다고 한다. 어디에 사는지는 아무도 몰랐다고.

종교적이고 피안적인 글만 썼을 것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제5공화국 때는 시국, 특히 군사 독재를 비판하는 글도 신문에 기고한 바 있다. 그런 것치고는 별 일 없었는데... 워낙 존경받는 사회 인사라 당시 악명높은 5공도 건드리지 못한 것 같다. 대신 신문사를 요절내버렸다

상당한 인세를 유럽, 인도 여행을 다니는 데 사용한다는 소문도 있으나 사실무근. 유럽의 경우 프랑스 파리에 송광사 분원이 있어 법문을 위해 갔다오는 것으로 여비는 종단에서 내주고, 인도의 경우 기행기를 신문에 연재한다는 조건으로 조선일보에서 대줬다.[1] 정작 인세는 모두 장학금이나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부. 그 때문에 자신의 병원비를 댈 돈이 없었으나, 독실한 원불교 신자였던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 씨가 법정의 임종 직전 밀린 치료비 수천만원을 대납했다.

3 타 종교와의 교류

불교계뿐 아니라 기독교 등 다른 종교인들과도 교류를 가졌으며 종교를 불문하고 많은 존경을 받았다. 김수환 스테파노추기경이 선종하였을 때 이해인 클라우디아 수녀와 함께 애도를 표하였고, 입적하였을 때는 이해인 수녀가 애도를 표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법정스님이 천주교 2000주년 기념 미사김수환 추기경의 초청을 받고 명동성당을 방문해 설법을 한 적이 있었는데,[2] 이 인연으로 법정스님은 길상사 개원법회 때 김수환 추기경을 초청하기도 했다.

"믿지 않는다 하여 자신의 자식이라 하는 인간들을 지옥불에 던져버리는 당신네들의 신을 난 당최 이해 할 수 가 없다... 차라니 난 지옥에 가서 당신네 신에게 버림받은 그 억울한 영혼들을 구제하겠다"라는 출처불명의 말 때문에, 기독교에 비판적이라는 소문이 돌았었다. 불교 외의 다른 종교에 대한 포용력이 부족하다며 그에 대한 비난도 많이 일어났었다.주로 도는 짤방 그러나 이는 반기독교 세력들이 인용하던 '한 스님' 이야기를 디시인사이드 종교 갤러리에서 짤방으로 합성해서 유포한 것이고, 법정의 발언이라는 근거는 없다.저 경우처럼 속지 말자. 오히려 법정 본인은 천주교에서 불교로 개종하려는 사람에게 "천주교나 불교나 사랑의 근본은 모두 같으니 개종하지 말라"고 권유했다.

실제로 법정이 진짜로 저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 논란이 일어나자 길상사에서 직접 사실이 아니라고 공문을 올리기도 했다.

4 2010년 입적

"이 몸뚱아리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 소중한 나무들을 베지 말라. 내가 죽으면 강원도 오두막 앞에 내가 늘 좌선하던 커다란 넙적바위가 있으니 남아 있는 땔감 가져다가 그 위에 얹어 놓고 화장해 달라", "수의는 절대 만들지 말고 내가 입던 옷을 입혀서 태워 달라. 그리고 타고 남은 재는 봄마다 나에게 아름다운 꽃공양을 바치던 오두막 뜰의 철쭉나무 아래 뿌려달라. 그것이 내가 꽃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어떤 거창한 의식도 하지 말고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리지 말라."
 
입적 전 날에는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는 말을 남기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입적하였다.

또한 원적(圓寂)과 함께 자신 이름으로 출간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판하지 말고 머리맡에 남아 있는 책을 자신에게 신문을 배달하던 사람에게 전해 달라는 법정의 유지가 공개되었다.

이에 고인의 뜻을 따라 일체의 장례 의식을 거행하지 않고 2010년 3월 13일에 순천 송광사[3]에서 다비를 진행하며, 조화나 부의금을 받지 않았다.(관련기사) 다비식 이후 나오는 사리는 물론 유골도 49재까지 송광사와 길상사에 안치했다가 조계산 불일암과 강원도 수류산방[4] 인근에서 비공개로 산골하였다. 길상사에 생전 스님이 사용하던 유품과 영정을 모셔두고 있다.

절판해 달라고 한 출판물들에 대해서는 출판사와 유지를 받들려는 이들 간에 아웅다웅하다가 어찌어찌 합의를 봐서 2010년 12월까지만 발매된 후 절판되었다. 이후 팔고 있는 법정스님의 책은 전부 공저거나, 다른 사람들이 법정스님에 대해 쓴 서적. 법정스님의 유지가 알려지자 법정스님 책 붐이 순간적으로 다시 일어서,[5] 도서관이 아니면 간혹 아주 드물게 동네 책방이나 불교상, 헌책방 한 구석에 약간 남아있는 경우를 빼면 구하기 힘들다.

법정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도 소수 있는데, 이건 그의 병명이 폐암이고 병원에 입원한 것에 대해 안 좋은 추측이 돌았기 때문인 듯하다. 대개 폐암의 원인은 담배라는 인식 탓인데, 폐암의 원인은 절대 흡연만 있는 게 아니다! 일례로 평생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다는 최영의도 사인은 폐암에 의한 호흡부전이었다. 이에 대한 말을 많이 들었는지 자신이 폐암에 걸린 건 집안 내력이라 따로 말하기까지 했다(링크). 흡연 외에도 결핵 등 폐질환 병력이 있을 시 폐암 발병률이 높으며, 육식오신채를 금하는 식생활의 불균형과 무리한 수도 생활 역시 폐암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의외로 폐암의 원인은 다양하다. 향불에서 나오는 독한 연기가 그 원인 중 하나였을거라는 추측도 있다.

5 기타등등

성철 스님과의 선문답(?)도 꽤나 유명하다.

고(故) 김영한[6] 과의 인연이 유명한데, 서울특별시에서도 가장 이름 높았던 요정인 대원각을 그녀가 법정에게 시주한 것. 법정은 10년 동안이나 사양했지만 결국 김영한의 고집에 못이겨 1997년 대원각을 시주받아 길상사라는 사찰을 창건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광고등학교와도 인연이 깊게 되는데, 원음이란 법명을 지어준 김광석이라든가, 위 길상사를 시주한 김영한의 연인 백석을 시인으로서 롤모델 삼은 윤동주에 대해 연구 끝판왕인 마광수 교수도 대광고 출신이다. 더욱이 이 두 사람은 불교에서 인연 깊은 일이 있는데,1992년 불교방송에서 송출된 라디오 프로그램인 <밤의 창가에서> 마광수 교수가 방송의 게스트로 출연하여 방송 수위를 넘는 발언을 한것이 화제를 불러 일으키면서 오늘날에는 오히려 불교방송이 수구적이지 않은 이미지를 갖춘 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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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호야 또 속냐
모르는데 어떻게 안 속아요

야갤에서는 야짤을 올리는 척하면서 법정 스님의 사진을 올리고 "또 속냐!!"라고 하는 글이 유행하고 있다.

참고로 여러 스님들 중에서 유일무이하게 혈액형이 A형으로 기재가 되어있다고는 한다.
  1. 이 기행기는 법정 스님의 인도기행이라는 제목으로 책으로 나와 있다. 이것을 보면 80년대 후반의 인도, 네팔 배낭여행이 어땠는지를 대략적으로 볼 수 있다.
  2. 이 때 법정스님이 '저 같은 미약한 사람을 이 제단에 세워주신 천주님 은혜에 깊이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하여 좌중의 박수를 받았다. 이 때가 1984년으로 아직 우리 사회에 종교화합의 분위기가 미약할 때였기에 사회적으로도 큰 화제가 되었다.
  3. 법정 스님이 처음 출가하여 불법을 공부한 본사이다.
  4. 법정스님이 수행을 하던 작은 오두막이다.
  5. 이 때 책값을 몇 배로 올려 경매사이트 등에 파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당연히 법정스님의 정신을 모욕하는 자들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6. 기생으로, 시인 백석이 '자야'라는 필명을 지어주었다는 백석의 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