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


1 전라남도 순천시의 송광사

대한민국의 삼보사찰
법보사찰승보사찰불보사찰
해인사송광사통도사
대한민국의 국보
National Treasures Of Korea
공식명칭한글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
한자順天 松廣寺 木彫三尊佛龕
영어
분류번호국보 42호
소재지대한민국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안길 100
분류유물 / 불교공예 / 장엄구/ 장엄구
시설1구
지정연도1962년 12월 20일
제작시기조선, 1466년
파일:/pds/200901/06/52/a0100052 4962f19eb7c11.jpg
송광사의 본찰로 들어가는 입구인 삼청교와 우화각. 송광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히는 곳이다.

1.1 개요

사적 제506호. 전라남도 순천시 조계산 기슭에 위치한 대한민국불교 사찰로 한국의 삼보 사찰(해인사, 통도사, 송광사)이라고 불릴 정도로 크고 이름이 높은 절이다. 예로부터 해인사의 경전, 통도사의 적멸보궁과 더불어 승려의 송광사로 불리우는 유명한 절이었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이다.

1.2 역사

신라 말 혜린 선사가 송광산에 길상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것이 시초이다. 고려 신종조계종의 창시자인 지눌선사가 정혜결사를 이곳으로 옮겨와, 수선사로 이름을 고치고 가르침을 베풀기 시작하면서 발전하였다.

또한 고려의 대선사이자 조계종의 창시자인 보조 국사 지눌이 정혜결사를 옮기려고 터를 잡는 중 모후산에서 나무로 깎은 솔개를 날리자 지금의 국사전 뒷등에 떨어지자 그 뒷등을 솔개가 내려앉은 곳이라 하여 치락대라 불렀다고 전해오는데, 최남선은 이 전설에 따라 송광을 솔개의 사투리인 솔갱이라 하여 송광사를 솔갱이 절이라고도 풀이했다.

절 이름에 대한 다른 유래로는 예로부터 조계산소나무가 가득했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이 이 산을 솔메라고 부른 것에서 ‘'송광산'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으며, 산 이름을 따서 사찰 이름도 송광사라 불렀다는 것이 있다.

이후 산 이름이 조계산으로 바뀌면서 절 이름도 수선사에서 지금의 송광사로 바뀌었다. 지눌의 제자 혜심이 중창한 뒤부터 조선 초기까지 많은 국사를 배출하였는데 이 절에서 배출한 국사는 지눌을 비롯해 16명이나 되어 한국 불교의 전통을 이은 중요한 승보종찰이라 한다. 하지만 해방 이후 성철 스님 등 해인사 위주로 중심이 이동하면서 약간 밀리게 되었다.

임진왜란정유재란을 치르면서 폐사에 이르렀으나 승려 응선과 부휴가 천자암, 보조암, 임경당을 차례로 중건하고 동행랑, 천왕문 등을 세웠었다. 1842년에는 큰 화재가 일어나 거의 모든 건물이 불타 없어져 또 다시 세웠다. 1922년부터 1928년까지는 승려 설월과 율암이 용화당, 명성각 등을 보수하고 장원문, 사감고를 새로 지었다. 이후 여수, 순천사건과 6.25 전쟁으로 사찰의 중심 전각들이 불탔는데, 그 뒤 승려 취봉과 금당이 건물들을 복구하였다. 대웅보전은 1988년에 재건된 것이라고 한다.

1.3 가람

절의 전체 면적이나 전각의 수가 전국에서 손 꼽힐 정도로 크다. 다만 큰 절임에도 불구하고 이 없다는 점이 특이하다. 풍경[1]석탑, 석등이 없기 때문에 송광사에는 3가지가 없다는 말로 불리기도 한다. 풍경이 없는 이유는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가 스님들의 공부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며, 석탑과 석등이 없는 이유는 송광사 터가 연화정수[2]형으로 무거운 석탑을 세우면 가라 앉는다는 의미 때문이다. 일종의 3대 요소 클리셰인 셈. 3가지 명물도 있는데, '비사리구시'라고 불리는 커다란 나무 밥통,[3] '능견난사' 라고 하는 음식을 담는 그릇들,[4], '쌍향수' 라는 나무. 이 3가지다.[5]

한국의 3보[6] 사찰로도 꼽히는데, 해인사는 법보(팔만대장경), 송광사는 승보(수계사찰), 통도사는 불보(진신사리) 사찰이기 때문이다. 부산범어사, 구례화엄사 등과 함께 5대 사찰로 꼽히기도 한다. 뛰어난 승려를 많이 배출한 곳[7]답게 여러 고승들이 나왔다. 송광사의 송광(松廣)이란 이름에서 松(소나무 송)자를 파자하여 十八公으로 풀이, 고승 18명이 나오게 될 절이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국사전, 약사전, 영산전을 비롯해 목조삼존불감, 고려고종제서, 대반열반경소, 수선사형지기, 금동요령, 대승아비달마잡집론소, 묘법연화경찬술, 금강반야경소개현초 등 전국 사찰 가운데 가장 많은 문화재가 있는 절로도 유명하다.

1.4 기타

1.4.1 원숭이상

일주문 계단 소맷돌에는 원숭이상이 있다. 상원사고양이상으로 뜨는 것에 비하면 별 존재감이 없다. 고양이만 사랑받는 더러운 세상

1.4.2 선암사

조계산의 산등성이 너머에는 또다른 고찰인 선암사가 있다. 그래서 조계산의 등산 코스로 두 사찰을 시/종점으로 한 길을 택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1.4.3 송광사의 병크

송광사의 병크 중 하나는, 1993년에 오래된 해우소(화장실) 건물을 부수고 다시 지으면서 옛 건물과는 판이하게 다른 새 건물을 새웠다는 점이 있다. 옛 것은 좀 더러울지라도 오래된 나무 목재들과 연못, 그리고 아름다운 팔작지붕이 어울어진 꽤 멋진 건물이었지만, 그것을 그대로 날려먹고는.. 팔작지붕을 맞배지붕으로 멋대로 바꾸고 비율과 구성 등 고증은 싹 무시한 새 건물을 세워놓았다. 뭐 같은 한옥은 한옥이겠지만 좀 꾸민다고 꾸며놓은 모습이 조잡하기 그지없다. 한국의 문화재 관리와 복원이라는 것의 수준을 보여주는 한 사례. 특히나 옆에 자리한 선암사는 해우소 수리를 했어도 비교적 옛 모습을 지켰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2 전라북도 완주군의 송광사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에 위치한 절이다.

  1. 처마 끝에 달리는 작은 종
  2. 물 위에 연꽃이 뜬 듯한 모습.
  3. 쌀 7가마분, 약 4천명분의 밥을 한꺼번에 담을 수 있다고 한다.
  4. 지눌이 원나라에서 가져온 그릇 세트. 수공예품인데도 세트인 29개의 그릇이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원래는 500개였다는데, 아무튼 이 그릇들을 포개어 놔도 딱 맞을 정도로 그 정교함이 대단하다고. 훗날 조선 숙종이 똑같은 그릇을 만들려고 하였으나 실패하고는 "능히 볼 수는 있어도 이치를 알기 어렵다"(보기에는 쉬워보이는데 만들기는 어려운)고 해서 능견난사라고 하였다.
  5. 똑같은 모양의 향나무 2그루가 엿가락처럼 꼬여 가지가 모두 땅을 향하고 있다. 800년 전에 보조국사 지눌이 꽂은 지팡이로부터 자랐다. 일종의 고승-절-지팡이 클리셰긴 하지만.
  6. 3보란 불교에서 불(佛), 법(法), 승(僧)을 뜻하는것
  7. 법정 스님도 이곳에서 기거하셨고 때문에 다비식도 이곳에서 거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