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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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治主義
Rule of law

1 일반적 내용

사람이 아니라 법이 국가를 통치한다.

1.1 의의

근대입헌국가의 자유주의적 통치원리로서 권력분립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여,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가 제정하는 법률에 의하여 국가활동이 기속되는 동시에 법률의 적용을 보장하는 재판제도를 가짐으로써 인권보장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제도.

혈통으로 세습된 왕권이나 개인의 카리스마적인 영도력, 전통적 권위, 폭력과 강압에 의지하지 않고 에 의해 통치하는 것을 말한다. 즉, 폭력으로 유지되는 독재 권력, 절대주의, 인(人)치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

1.2 법치주의 개념의 발달

1.2.1 서구의 법치주의

한자 자체가 法治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법치주의는 통치에 대한 원칙이다. 따라서 국민들이 권력을 가진 정부에 대항하여 방패와 무기로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법치주의이며 법치주의의 원류도 정부에 대하여 시민들의 권리를 방어할 수 있는 기제를 만드는 것이었다. 서구에서는 영국대헌장에서 절대권력자인 의 의지도 법에 의해서 제한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법치주의의 장을 열었다. 이것은 영국에서 "누구도 법 이외의 것에 지배되지 않는다. 통치자도 법의 지배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법치주의의 일반원리로 자리잡았다. 법치주의의 의의는 피지배자뿐 아니라 지배자도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함을 명시한 데 있다.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하다지만 애초에 평민들은 그런 거 없이도 평등하다

법치주의는 서양의 정치전통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사조다. 로마의 평민들은 정치투쟁의 과정에서 자유와 평등의 이론을 발전시켰고 이는 12표법으로 대표되는 로마 시민법 체계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다른 지역에서도 성문법전의 전통은 있었으나 대개는 왕이 제정해 하사하거나(오리엔트, 동양) 시민들이 직접 제정한(그리스, 게르만 등) 제정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자연법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는데, 이에 따르면 자연법은 누군가가 제정하는 법이 아닌 자연 그 자체에 존재하는 자연의 법칙이고, 따라서 발견될 뿐이지 발명될 수는 없었다. 또한 자연의 섭리, 법칙이기 때문에 신분이나 계급,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야 했다. 따라서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법치주의의 사상은 자연법에 대한 통찰이 그 근거에 깔려있지 않고서는 근본의 작동 원리가 결여된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1.2.2 한국의 법치주의

한국에서도 조선시대에 지구 상 여러 나라에서와 같이 성문법전이 정비되어[1] 이전 시대의 임의적인 통치에서 탈피해 법에 기초한 통치가 실시되었다. 한국에서의 법에 기반한 통치는 예법일치사상의 완성이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왕이라고 하더라도 경국대전을 위반할 수 없었고 신권이 최후의 보루로서 역할을 했다.

다만 이 법의 근본 법리는 서구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만인의 자유와 평등이 아니라 유교적 이념에 기초한다. 때문에 당연하게도 조선의 법치주의는 서구 근대 이후의 법치주의와는 구분된다. 예를 들어 사방지양성구유라는 본인의 장애 그 자체가 유교적 질서를 해친다고 하여 귀양조치를 당했는데 현대의 법치주의라면 이 사건은 타인에게 아무런 실제적 피해도 주지 않는 장애[2] 이유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3] 정조가 경국대전을 위반하지 않기 위하여 정약용을 시켜 한강에 배다리를 놓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중국인들은 법가를 법치주의라고 주장하지만, 통치자의 편의를 위해 조직된 법이자 황로술과 결합되어 법 위에 존재하는 통치자를 상정하는 사상이므로 서구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는 정부가 국민들에게 법치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준법주의와 법치주의를 혼동한 것 같다. 심지어 자신의 정치 신념에 반하는 판결이 내려진 세력이 '법치주의는 죽었다' 등의 드립으로 반박하려고 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 서구의 법치주의란 통치 세력이 법에 합당하지 않은 통치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인데, 정부가 국민에게 법치주의를 지키라고 말하는 것은 경영자가 직원들에게 정도경영하라고 설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상한 일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유시민이 쓴 국가란 무엇인가에 잘 정리되어있다. 옳은 의미대로라면, 정부가 법치주의를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경제적이든 무력이든 권력이든 개개인의 국민보다 강한 존재인 정부가 스스로를 법의 테두리에 가두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제 제 손의 몽둥이를 내려놓겠습니다. 이제 제 왼손을 묶겠습니다." 이런 식의 발언이다. 그런데 과연 한국에서 그런 의미로 쓰이고 있는가. "국민이 법을 어기면 정부는 가차없이 엄단합니다."는 준법주의의 언명이지 결코 법치주의의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법학을 교양과목으로 듣는 학생들이 처음 법치주의를 배울 때 흔히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지곤 한다. 고민하지마라. 법학 교수님이 하시는 그 말씀이 맞는다. 그리고 사법부의 판단이 옳으냐 그르냐는 법치주의와 무관하다. 법치주의적 관점에 의하면 사법부의 결정과정이 합법적이면 족하고 그 결정의 옳은가 그른가는 판단하지 않는다.

법치주의에서 법이란 공포되고 명확하게 규정된 법을 말하는 것이며 법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권력을 유지 강화하는 것은 실질적 법치주의가 아니다. 이러한 것을 외견적 법치주의 혹은 형식적 법치주의라고 하고 법을 오직 통치의 수단으로서만 이용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탄압하는 것을 법률적 불법(Gesetzliches Unrecht)이라고 한다. 이러한 개념은 법치주의가 나치를 막지 못했던 독일의 경험에서 나왔다(나치도 분명히 합법적으로 당선된 정권이었음을 기억하자).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결과주의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는 경우도 있다. 이 양자간의 구분을 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는 법앞에 평등은 법치주의와 약간 그 의미가 다르다. 영미법계 전통을 따르는 내용으로 일반법(Common Law)원칙 혹은 법의 지배(Rule of Law)의 사상으로 볼 수 있다. 주된 내용은 국가나 사인이나 법적으로 동등한 지위를 가진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원리에 의해 국가(즉, 군주)의 특수성을 인청치 않고 하나의 일반법의 지배를 받게 되는 원칙이다.

1.2.3 중국의 법치주의

한국의 경우와는 이유가 많이 다르긴 하지만, 중국에서도 역시 정부가 국민들에게 법치주의를 설파하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의 경우에는 중국 공산당일당독재를 옹호하고 정당화하거나 소수민족분리주의 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차원에서 법치주의를 내세우는 경향을 보이는 편이다. 특히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법치를 내세우는 사례가 적지 않은데, 대표적인 사례로서 2014년 홍콩 우산 혁명 당시에도 민주화를 요구하는 홍콩인들의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그 명목 중 하나로 법치주의를 내세우기도 했다.

1.3 대한민국 헌법에 나타난 법치주의

우리 헌법에서는 법치주의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다음을 규정하고 있다.

  • 기본권의 보장
  • 권력분립
  • 입법작용의 헌법에의 기속
  • 법치행정의 원리
  • 법률의 명확성 및 예측가능성
  • 법적 안정성의 원칙
  • 효과적인 권리구제제도

2 법치행정의 원리

2.1 의의

행정은 법률에 근거하고 법률에 따라 행해져야 한다는 원리. 행정의 법률적합성의 원칙이라고도 표현된다.

2.2 구성

법치행정의 원리는 법률의 법규창조력, 법률우위의 원칙, 법률유보의 원칙으로 구성된다.

2.2.1 법률의 법규창조력

의회에서 제정한 법률만이 국민생활을 직접 구속하는 법규를 창설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와, 관습법이나 불문법도 국민생활을 직접적으로 구성할 수 있으며, 행정부도 법률대위적 법규명령을 발할 수 있으므로 '법률의 법규창조력' 대신 아래의 두 원칙만을 법치행정의 내용으로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2.2.2 법률우위의 원칙

소극적 법률적합성의 원칙이라고도 한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를 참조.

2.2.3 법률유보의 원칙

적극적 법률적합성의 원칙이라고도 한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를 참조.
  1. 고려시대에도 당률을 바탕으로 한 법률이 있었으나, 관습법에 많이 의존하였다.
  2. 정확히 말하면 성소수자 속성의 일종이지만, 장애라고 표현한 이유는 두 성별 중 어느 기능도 제대로 갖지 못하며 수많은 신체적 결함까지 동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3. 다만 잔 다르크가 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로 화형을 당한 것을 상기해 보면 현대 기준으로는 전 편집자가 얘기한 것처럼 사방지의 일화는 세계구급 병크가 되겠지만 세조시대라고 해 봤자 1400년대 중반이다. 근대 정신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데카르트의 탄생년도와는 거의 150년 정도 차이가 있다. 오히려 지금 언급한 것처럼 바지를 입었다고 잔 다르크를 불에 태웠을 때가 1431년이고 사방지는 대강 1460년쯤 된다. 이 시기는 오히려 유배 때린 조선이 좀 더 세련됐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