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런던 더비

토트넘 핫스퍼
Tottenham Hotspur
아스널 FC
Arsenal FC
북런던 더비 (North London Derby)

북런던 토박이 토트넘 VS 이사온 아스날

1 소개

북런던 더비를 잘 요약하는 짤방.[1]


북런던 더비는 잉글랜드 런던 북부의 축구팀들인 아스날 FC토트넘 핫스퍼가 벌이는 더비 매치를 일컫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북런던 일에 끼지 마시죠" 드립으로 유명하다. [2] 하지만, 손흥민이 2015년 토트넘 핫스퍼로 이적하게 되면서 한국 사람들도 북런던일에 끼어들게 되어버렸다!!!!!

2 더비 현장


▲ 토트넘 팬들이 아스날들을 환영하고 있다.


▲ 아스날 구장에 도착한 토트넘 팬들


▲ 아스널 팬들과 토트넘 팬들의 충돌 상황

3 유래


양 팀 라이벌 관계는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1913년 북런던 토트넘 인근에 아스날이 이사오면서 시작되었다.

3.1 헨리 노리스

1910년, 풀럼의 회장이었던 헨리 노리스는 재정위기를 겪으며 파산직전에 있던 '울위치 아스널'(Woolwich Arsenal)을 인수했다. 풀럼의 헨리 노리스가 아스널을 인수한 데는 특별한 목적이 있었는데, 풀럼과 아스널 두 클럽을 합병하여 하나의 축구클럽을 만들어서 런던을 대표하는 최고의 팀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런던 연고팀 중 역사가 깊은 두 클럽인 아스널과 풀럼의 합병이라는 노리스의 황당한 목표는 풋볼리그와 축구협회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리고 헨리 노리스는 잉글랜드 축구계에 엄청난 사건을 일으켰다.

1913년, 헨리 노리스에 의한 아스널의 북런던 이전

아스널은 재정난을 악화시키는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들이 연고로 했던 지역인 울위치 지역이 지리적인(또는 교통적인), 그리고 낮은 인구에서 비롯된 문제로 경기장에 입장하는 관중의 수가 너무 적었던 것이다. 현대와는 달리 쉽게 멀리 이동할 수 없는, 입장권 수입이 팀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20세기 초반에 있어 그런 문제는 결국 아스널의 재정파탄 위기에 직면했다.

1913년, 2부리그로 강등된뒤 아스날은 토트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홈구장을 버리고 연고지 이전을 강행했다. 아스날은 연고지를 남부 울위치의 매너 그라운드에서 북런던의 하이버리로 옮겼다. 이사한 아스날 홈 스타디움은 토트넘의 화이트 레인에서 불과 4마일 정도 떨어진 위치.

그리고 그들은 이듬해 구단 이름에서 울위치를 빼버리고 완벽하게 현재의 아스날 FC로 바꾼다.

3.2 승격 스캔들

2부 리그 5위였던 아스날이 1부 리그로 승격, 1부 리그 20위였던 토트넘의 강등 사건

토트넘과 아스널의 맹렬한 라이벌관계는 아스널이 북런던으로 이주한 것에서 촉발되어 1919년, 헨리 노리스에 의해 토트넘이 강등 당하는 대신 아스널이 승격한 논란적인 상황에 의해 확산됐다.

아스널의 헨리 노리스 구단주는 비정상적인 방법을 사용해 아스널을 1부리그로 승격시켰고, 1부리그로 승격한 아스널 대신 2부리그로 강등당한 것이 다름 아닌 토트넘이었다.

1914/15시즌, 1부 리그에서 최하위를 기록한 두 팀은 첼시(19위)와 토트넘(20위)이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이후 리그가 재개되면서, 리그측에서 참가팀을 20팀에서 22개팀으로 늘렸고 정상적인 관행대로라면 두 팀은 그대로 1부리그에 남고 2부 리그에서 2팀이 승격하는 것이었다. 아스날은 같은 시즌 2부 리그 5위를 기록해, 2부 리그 1, 2위가 아니므로 정상적으로는 승격이 어려웠다.

헨리 노리스 구단주는 아스널의 승격을 이끌기 위해 활발하게 로비를 했다. 그는 아스널이 토트넘보다 풋볼리그에 더 먼저 참가했기 때문에 토트넘 대신 아스널이 1부 리그에 참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1919년, 1부리그 팀 참가를 20팀에서 22팀으로 늘리는 과정에서 원래 1부리그 19위로 2부리그로 강등 예정이었던 첼시 FC가 남게 되었고, 나머지 한 자리를 차지할 팀으로 1부리그 꼴찌팀인 토트넘과 2부리그 3-7위였던 반슬리 FC, 울버햄튼 원더러스, 아스날, 버밍엄 시티 그리고 헐 시티가 입후보해 투표가 열리게 된다.

결국 아스날이 이 투표에서 승리해 아스날이 1부리그로 승격되었다. [3] 이 뇌물 수수 사건 이후 아스날은 2015년 현재까지 단 한 번도 2부리그로 강등되지 않는 1부 리그 최장 기간 생존 기록을 세우게 되었고, 아스날 대신 2부 리그에서 뛰게 된 토트넘은 아스날과 질기고 질긴 악연을 이어가게 된다.[4]

아스날 팬들은 매 시즌마다 St. Totteringham's day라는 이름으로 아스날이 토트넘보다 리그 순위가 더 높은 것이 확정된 날을 기릴 정도로 토트넘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 최근 성적도 아스날만 못하고, 하술한 에피소드들처럼 당한 것도 많은 토트넘 팬들이야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수준.

2016년 20년만에 토트넘이 아스널을 앞서는 시즌이 나올 뻔했으나... 막판에 토트넘이 자멸하면서 이번에도 St. Totteringham's day가 실현되었다...

3.3 선수 이적

2001년 여름에 열기에 기름을 붓는 일이 발생하는데 바로 토트넘의 주장 솔 캠벨이 계약이 만료가 된 상황에서 재계약을 미루고 있어서 토트넘 팬들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자유이적으로 돈 한푼 못받고 팀을 옮길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더욱 더 그랬다. 캠벨은 토트넘에는 큰 애정을 품고 있었지만(?) 우승권에 들지 못하자 슬슬 한계를 느끼고 우승을 갈망하여 잉글랜드 국가대표 주전 수비수라는 위상에 걸맞게 우승을 할 수 있는 팀으로 이적을 할 수도 있는 기색을 보였다. 우승할 수 있는 클럽으로 이적하는 걸 포기하게 만들려면 토트넘 측에서 캠벨의 주급을 대폭 인상한 계약 조건을 내미는 수 밖에 없는데 토트넘 측에서도 재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 재계약을 둘러싼 협상에서 서로의 이해가 맞지 않아 결국엔 일단 캠벨은 거의 떠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캠벨은 "재계약 할수도 있고 이적할수도 있는데, 이탈리아에서 연락이 오고 있어서 고려 중이고 프리미어리그의 다른 팀은 맨유나 리버풀 쪽으로 생각하고 있지 무슨 일이 있어도 아스날은 안감." 이런 식으로 발표하여 팬들은 최악의 경우는 없을거라며 안도하고 있었고, 서포터 그룹쪽에서도 "캠벨에게 그동안 활약에 대해서 감사하며 앞으로 타팀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길 빈다"라는 성명까지 발표할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는데 바로 얼마후 솔 캠벨은 토니 아담스의 수하가 되었다.아스날과 계약을 한다. 토트넘 팬들은 유스 때부터 토트넘 맨이었고 주장이었고 토트넘 수비의 핵심인 그의 이적을 눈뜨고 바라봐야 했다. 일부 과격한 팬들은 솔 캠벨에게 살해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국제적인 파장은 1년전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에서 FC 바르셀로나 소속이었던 루이스 피구레알 마드리드 이적에 비하면 덜한 편이었지만 프리미어리그 내에서는 가장 논란이 된 이적 사건이었으며 피구의 이적과 비교해서 어떻게 보면 캠벨의 이적이 더 능가할 수 있는 사실은 피구는 적어도 바이아웃 조항 때문에 이적료는 많이 안겨주고 갔다. 하지만 캠벨은 자유계약이라서 토트넘은 단 한 푼도 얻지 못했다. 게다가 피구는 바르셀로나 팬들에게 인기가 많긴 했어도 외국인 선수였고 애초에 유벤투스파르마 FC와의 이중계약 파문 때문에 세리에A 진출이 막히자 마지 못해 바르셀로나로 온 거였지 오고 싶어서 온 것은 아니었다. 반면 캠벨은 유스 출신에 주장이었고 자국 잉글랜드 국가대표 주전 수비수여서 토트넘 팬들에게 자부심을 선사했기 때문에 배신감은 더 컸을 것이다.

이적한 시즌에 아스날은 캠벨의 합류 덕분에 노쇠화된 수비[5]의 약점을 보완하면서 리그과 FA컵을 우승해 더블을 달성했고 아스날 팬들은 토트넘 팬을 조롱하는 응원가를 불렀다.

우리는 솔 캠벨을 얻었다. 우리는 솔 캠벨을 얻었다. (화이트하트)레인에서 솔 캠벨을 뺏어왔다. 더블(X3) 솔 캠벨은 더블을 했다. 레인에 있는 선수들중에 더블 해본놈 있냐? 하지만 솔 캠벨을 더블을 했다. 이봐 거기 토트넘 양반들 궁금한게 있는데 말이지. 니네 주장 어디갔냐. 쓰레기들아.

토트넘 서포터 그룹의 성명대로 솔 캠벨은 다른 팀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긴 한 셈이다. 더비 라이벌이니 문제였지만.

그리고 2003-2004 시즌에도 북런던 더비에서 아스날은 토트넘 원정에서 2-2로 비기며 우승을 확정지었다. 바로 이 시즌이 그 유명한 아스날의 무패우승 시즌이다.
당시에도 아스날 원정 팬들이 토트넘 팬들을 도발하는 문구를 걸었다.

왜 솔(캠벨)이 (화이트하트)레인을 떠났을까? 아스날 우승! 43년 동안 너네들은 뭐했냐?(또는 43년 째 너네들은 아직도 기다리고만 있지?)[6]

이후 솔 캠벨이 포츠머스 FC로 이적한 후에도 토트넘과의 경기가 있으면 토트넘 팬들은 야유를 했다.

캠벨의 이 이적 사건이 터지기 전만해도 인터넷에서는 조지 베스트의 북아일랜드 국가대표 동료로 유명했던 팻 제닝스의 이적으로 논란이 일었고 열기가 더 뜨거워졌다는 정보를 실었으나 이 사건 이후에는 거의 다 캠벨의 이적사건만 다룬다.[7]

9년 뒤인 2010년에는 반대로 아스날에서 자유계약으로 풀린 윌리엄 갈라스가 토트넘으로 이적했다.(...) 다만 아스날 팬들은 캠벨 이적 당시의 토트넘 팬과는 달리 잘 나갔다라는 반응. 애초에 첼시에 있다가 애슐리 콜이 아스날에서 불화를 일으키며 첼시로 이적하는 과정에서 트레이드 식으로 왔기에 본인이 아스날과 팬들에 대해 가지는 애정은 그다지 높지 않았고, 팬들 역시 그가 온다고 해서 딱히 그다지 좋아한 건 아니었다. 게다가 데니스 베르캄프의 번호 10번을 과분하게 이어받은 주제에 주장이라면서 사미르 나스리와 불화를 일으키는[8] 등 팀 분위기를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쟤 원래 그런 놈인줄 알았다. 아마 은퇴는 웨스트햄에서 하겠구만[9]" 이런 반응을 보이기까지 했다고.

이후에 엠마누엘 아데바요르 역시 아스날 - 맨체스터 시티 - 토트넘 순으로 이동했는데, 중간에 어디를 거쳤느냐를 떠나서 이 쪽은 아스날 팬들에게 갈라스보다 더 찍힌 존재라서 어딜가든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아데바요르는 토트넘 소속으로 아스날을 상대로 화끈한 세리머니를 펼치며 아스날 팬들의 증오를 재점화시켰다. 정작 아데바요르는 토트넘에서 주전에서 밀리고 나간 뒤에 토트넘에 대해 불만을 터뜨려 토트넘 팬들도 아데바요르를 좋아하지 않는다.

3.4 토트넘의 불운과 아스날의 조롱


Its happened again, its happened again! Tottenham hotspurs, they'll always be s***!

그리고 지금도 아스날 팬들은 토트넘과 그의 팬들을 조롱하는 '라자냐 송'을 부르고 있다. 라자냐 송이란 05~06 시즌에 아스날과 토트넘 사이에 있었던 또 다른 악연의 끈을 상기시키는 노래.

시즌 마지막 경기를 앞둔 상황에서 토트넘은 4위, 아스날은 5위였다. 토트넘의 상대는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여기서 승리하면 (비록 예선을 치르긴해도) 토트넘만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1995년 이후로 11년간 아스날보다 순위가 높아봤던 적이 없던 토트넘이라 그 기대는 더욱 컸다. 당연히 아스날 팬들은 아스날이 최종전에서 위건 애슬레틱을 이기고 토트넘이 져서 그 결과가 뒤집히기를 바랐다.

그런데 경기 전날 토트넘 선수들 대다수가 런던의 매리어트 호텔에서 라자냐를 먹었는데... 이것이 화근이었다. 얼마 안 있어서 사이먼 데이비스, 티무 타이니오, 로비 킨, 마이클 도슨, 마이클 캐릭, 아론 레넌, 라덱 체르니, 데이븐포트, 바나드, 그리고 이영표 등 주축 선수들의 상당수가 구토를 시작한 것이었다.

토트넘은 경기 취소를 원했고 웨스트햄도 동의했지만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에서 퇴짜..[10] 결국 경기를 강행할 수 밖에 없었고 예상대로 토트넘은 요시 베나윤에게 결승골을 얻어맞아 지고 아스날은 티에리 앙리의 해트트릭으로 이겨서 순위가 뒤집히고 말았다. 아스날은 챔스 진출, 토트넘은 UEFA 컵... 그리고 토트넘을 아스날 못지 않게 싫어라 하던 웨스트햄[11]은 토트넘 선수들과 관중들이 볼 수 있도록 아스날의 스코어를 전광판에 계속 중계했고, 이후 라자냐 송도 아스날 팬들과 함께 부르고 있다. 지못미...

4 이영표 증언


손흥민은 토트넘 구단 관계자에게 '빨간색 차를 구매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들었다.

토트넘 선수로서 이 더비를 겪어본 이영표는 2015년 토트넘에 입단한 손흥민에게 주의하라며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해준 바 있다.

"토트넘 크리스마스 파티에선 산타클로스 모자도 파란색. 클럽하우스에 절대로 빨간색 옷을 입고 가면 안 된다"

(북런던 더비가 현지시간 낮 12시에 열렸던 것에 대해) "밤에 하면 경기 후 심한 폭동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영표-

에미리츠 스타디움에서 토트넘 지역까지는 일직선으로 약 4km다. 원정 경기를 마친 토트넘 선수들은 이 짧은 거리를 통과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다. 경기가 끝나면 토트넘 선수들은 라커룸에서 3시간 가량 대기한다. 그 사이 경찰들이 밖에서 토트넘, 아스널 팬들을 모두 해산시킨다. 팬들이 흩어지고 선수들이 버스에 오르면 경찰차량 5~6대가 호위한다. 모든 신호를 미리 조작해 버스가 대기 시간 없이 자동 통과하도록 조치한다. 이렇게 하는데도 위험은 도사리고 있다. 갑자기 매니저가 버스 안 선수들에게 말한다. "고개를 숙여서 무릎 사이에 머리를 묻어."
당시 이영표는 무슨 영문인가 싶었지만 곧 이유를 깨달았다. 갑자기 '파파팍', '펑펑' 소리와 함께 버스 유리창으로 맥주병과 돌이 날아들었다. 정말로 그 말끝나기가 무섭게 온갖 물건들이 버스에 처박히고 유리창이 금이 쩍쩍 갔기에 이영표도 기겁하고 고갤 푹 숙여 매니저가 하던 말대로 했다고 한다. 버스가 교차로를 지날 때 아스널 팬들이 튀어나와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교차로를 지날 때마다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이영표는 "에미리츠 스타디움에서 토트넘까지 4mk 중 2km는 아스널 지역, 나머지 2km는 토트넘 지역이다. 매니저가 '이제 괜찮아. 고개를 들어'라고 하면 아스널 지역을 통과해 토트넘 지역으로 접어든 거다"고 웃었다.
겨우 토트넘 구역으로 들어오니 이런 공격이 뚝 줄었는데 나중에 이영표는 같은 팀에서 뛰었던 로비 킨에게 "아니 자기네(아스널) 팀이 이겼잖아? 그랬는데도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너무한 거 아냐?" 그러자 로비 킨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쟤들에겐 말이지, 이기고 지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토트넘 자체가 증오스럽다 이거지." "우리(토트넘) 팬들은 어떨 것 같아. 쟤네(아스널 선수단)를 순순히 보내줄 것 같아?" 물론 토트넘도 마찬가지 가만히 보내주지 않는다. 피장파장이라는 것.

2008년 1월 23일, 풋볼 리그 컵인 칼링컵에서 토트넘이 5-1로 아스날을 뭉개자 5-1,5-1 승리!라고 써있는 토트넘 기념 유니폼이 불티나게 팔리고 똑같은 머플러에서 컵,모자까지 다양하게 팔렸는데 이후로 토트넘 서포터들은 아스날 차량이 지나가면 뭘 던지면서 이 머플러나 유니폼이나 깃발까지 흔들면서 5-1!, 5-1! 이라고 신나게 크게 외쳤다고 한다.

5 전적

더비경기 전적과는 별개로, 2016년 기준 토트넘은 아스날보다 높은 리그 순위를 기록한 적이 없다.
더비경기 전적은 15-16시즌 종료 시점까지를 기준으로
아스날 75승 토트넘 55승, 50무승부로 아스날이 우세에 있다.

6 한국과의 인연

북런던 더비의 클럽들은 한국 선수들이 진출한 덕분에 국내에 팬들이 꽤 있는 편이다.
1) 이영표: 토트넘 핫스퍼 FC (2005~2008)
2) 박주영: 아스널 FC (2011~2014)
3) 손흥민: 토트넘 핫스퍼 FC (2015~)

7 기타

  • 2015년 11월 9일 북런던 더비,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토트넘 팬들이 경기장 화장실을 박살.

8 참고

  • 북런던 더비: 북런던 토박이 토트넘 지역 인근에 1913년 아스날이 북런던의 하이버리 지역으로 옮기면서 시작. 1919년 아스날이 처음 1부리그로 승격한 이후로 불타오른 고전 더비.
  • 첼시 FC아스날 FC 라이벌 전: 북런던 아스날과 서런던 첼시 사이에 최근에 형성된 라이벌 전. 2000년대 후반 첼시가 부상하면서 생겼다. 첼시에게 더 전통적인 라이벌은 토트넘이었지만 지금은 아스날.
  1. 티에리 앙리가 골을 넣고 세레모니를 한 곳이 공교롭게도 토튼햄의 관중석이었다. 어마어마한 야유가 쏟아지고 각종 물체(?)들이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사진을 보면 거꾸로 V자를 하면서 욕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데, 이는 영국에서 뻐큐와 의미가 같다. 손가락 욕참조. 훗날 앙리가 아스날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면서 이 세레모니 장면이 동상으로 만들어져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에 세워졌다. 트롤링
  2. 토트넘 팬과 아스널 팬이 분쟁이 붙자 리버풀 팬이 끼어들었는데, 현지 런던 팬이 "북런던 일에 끼지 마시죠" 드립을 날리면서 유명해졌다.
  3. 헨리 노리스는 팀 버스를 매각한 자금을 횡령하여 £125를 그의 주머니로 챙긴 죄로 유죄를 선고 받았다. 그는 자신의 운전수 월급을 클럽의 비용에서 지급했다. 헨리 노리스는 선수 연봉지불에 대한 규정을 어겼고, FA는 그를 축구계에서 영구 제명했다.
  4. 이는 구단주인 헨리 노리스가 아스날 fc에게 유리하도록 조성을 하는 영향을 행사했다. 자세한것은 이성모 기자의 칼럼에 나와있으니 여기를 참조하자.
  5. 당시 아스날의 수비를 책임지던 토니 아담스, 리 딕슨, 마틴 키언은 전부 30대 중후반의 노장들이었다. 아담스와 딕슨은 실제로 2001-2002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이에 비해서 캠벨은 그 당시엔 20대여서 한창 전성기의 체력이었다.
  6. 토트넘의 마지막 1부 리그 우승은 1960-1961 시즌이다.
  7. 사실 팻 제닝스의 경우에는 토트넘에서 FA컵 우승과 UEFA컵 우승 등 이룰건 다 이루고 아스날로 이적했기 때문에 아직도 레전드로 기억하고 있고, 은퇴 후에 토트넘에서 골키퍼 코치를 하기도 했다. 반대로 캠벨의 경우 감독이 글렌 호들로 바뀌고 새로운 투자자의 등장으로 재도약을 노리는 시점에서 터진 사건이었기 때문에 팬들의 실망이 컸다.
  8. 그런데 사미르 나스리도 성격 개판이라서 아스날 팬들은 이 때의 대립을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 수준으로 취급하고 있다.
  9. 아스날 이전 소속팀이 첼시였다. 런던 팀 순례자.
  10. 승부조작을 방지하기 위해 리그의 마지막 경기는 모든 팀이 동시에 치르는 게 원칙이었기 때문에 원래 일정대로 강행될 수밖에 없었다.
  11. 이쪽도 같은 런던팀이라... 다만 이쪽은 동런던. 직접적 라이벌은 밀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