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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아스날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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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토니 애덤스
토니 알렉산더 애덤스 (Tony Alexander Adams, MBE) | |
생년월일 | 1966년 10월 10일 |
국적 | 잉글랜드 |
출생지 | 런던 롬포드 |
신체 조건 | 191cm, 83kg |
포지션 | 센터백 |
유소년 클럽 | 아스날 FC (1980~1983) |
소속 클럽 | 아스날 FC (1983~2002) |
국가 대표 | 66경기 5골 |
지도자 | 위컴 원더러스 감독 (2003~2004) 페예노르트 유소년 코치 (2005) 아스날 FC 스카우트 (2005) FC 위트레흐트 코치 (2006) 포츠머스 FC 수석코치 (2006~2008) 포츠머스 FC 감독 (2008~2009) 가바라 FK 감독 (2010~2011) 가바라 FK 단장 (2012~ ) |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역대 주장 | |||||||||||
데이비드 플래트 (1993~1994) | → | 토니 애덤스 (1994~1996) | → | 앨런 시어러 (1996~2000) |
아스날 FC 역대 주장 | |||||||||||
케니 샌섬 (1986~1988) | → | 토니 애덤스 (1988~2002) | → | 파트리크 비에이라 (2002~2005) |
셔츠 앞에 쓰여있는 이름을 위해 뛰어라. 그러면 그들이 셔츠뒤의 이름을 기억해 줄 것이다. - 토니 아담스(2011년 파브레가스, 나스리가 이적 문제로 말이 많을 때 한 말)
Mr. Arsenal
아스날의 영원한 주장.
EPL과 잉글랜드 역대 최고의 센터백중 한명
1 개요
잉글랜드 국적의 축구인. 축구선수 인생을 전부 아스날 FC에서 보냈고 주장도 오랫동안 역임했던 원 클럽 맨이자 레전드. 아스날뿐만 아니라 국대에서도 맹활약을 보이고 주장도 맡았다. 이같은 활약 덕에 아스날과 잉글랜드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을 꼽을 때 항상 언급된다.
2 유년 시절
영국의 롬포드에서 태어난 그는 다겐햄에서 자라 1971년부터 78년까지 헌터스 홀 초등학교에 다닌 후 1978년부터 1983년까지 이스트브룩 종합학교에 다녔다. 이 기간 중 1980년부터 1983년까지는 아스날에서 유스 선수로 활동했으며, 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아스날에 데뷔했다.
3 축구선수 경력
3.1 클럽 경력
아르센 벵거와 함께 우승을 자축하는 애덤스 |
유소년 클럽부터 성인 클럽까지 총 23년의 커리어 전부를 아스날에서 보냈다. 말 그대로 진짜 로컬 유스. 아스날의 수비 라인을 든든히 지키면서 구너들의 버팀목이 되어주었으며, 선수생활 말년에는 아르센 벵거 감독과 콤비를 맞추기도 했다.
아스날 소속으로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504경기에 출전했다. 이는 데이비드 오리어리의 뒤를 잇는 아스날 역사상 2위.
아스날에 있으면서 네 번의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우승, 세 번의 FA컵 우승, 두 번의 풋볼 리그 컵 우승, 세 번의 커뮤니티 실드 우승, 그리고 한 번의 UEFA 컵 위너스 컵 우승을 경험했다. 이중엔 두 번의 리그&FA컵 더블과 한 번의 리그컵&FA컵 더블도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2002년에 은퇴해 무패 우승[1] 멤버는 되지 못하였다.
자신의 동상 앞에서 즐거워하는 애덤스 |
2011년 12월 9일,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앞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앞에 동상이 세워진 인물은 티에리 앙리, 데니스 베르캄프, 허버트 채프먼[2], 켄 프라이어[3] 그리고 애덤스 뿐이다. 이는 그가 아스날의 역사에서 어떤 지위에 있는 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3.1.1 1980년대
1983년 11월 5일에 프리미어 리그의 전신인 잉글리시 풋볼 리그 디비전 1에서 선더랜드 AFC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뤘다.
그후 85-86 시즌부터 조지 그레이엄 감독[4]의 지휘 하에 주전으로서의 입지를 다졌으며, 1987년에 풋볼 리그 컵 결승전에서 리버풀 FC를 이기고 그의 커리어 첫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1988년 1월 1일, 그는 겨우 만 21세의 나이로 주장 완장을 달았다. 그리고 그는 은퇴할 때까지 14년간 주장을 맡았다.
88-89 시즌에도 주장 완장을 달며 아스날의 18년만의 리그 우승에 큰 기여를 했다.
3.1.2 1990년대 & 2000년대
아스날의 전성기를 이끈 Mr. Arsenal
90-91 시즌, 그는 또다시 아스날의 리그 우승, 그것도 1패 우승을 지휘했으며, 바로 다음 시즌인 92-93 시즌엔 리그 컵&FA컵 더블을 경험했다. 그리고 다음 해 UEFA 컵 위너스 컵 우승.
그러나 애덤스는 1980년대 중반부터 알코올 중독에 의해 무너지고 있었다. 취한 상태에서 나이트클럽에서 싸우기도 했으며, 1990년 5월 6일엔 법정 허용치 4배 이상의 혈중 알코올 농도에서 음주운전을 해 벽에 차를 들이박는 사고를 쳐 징역을 살고 나오기도 했다.
감방을 갔다 온 후인 93-94 시즌엔 취한 상태에서 경기를 한 것이 들통나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으며, 취한 상태에서 계단에서 넘어져 머리에 29바늘을 꿰맸던 적도 있다.
그래도 여전히 많은 구너들이 그를 응원했으며, 1996년에 마침내 알코올 중독을 떨쳐냈다. 이는 새롭게 부임한 아르센 벵거 감독에게 큰 도움이 되었고, 그의 부활에 힘입어 97-98 시즌 아스날은 리그&FA컵 더블을 달성하였다. 이는 아스날 역사상 두 번째.
01-02 시즌, 그는 또 한 번 리그&FA컵 더블의 공신이 되었으나, 그 시즌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애덤스는 홈에서 에버튼 FC와의 리그 마지막 경기[5]를 끝으로 은퇴했다.
3.2 국가대표 경력
유로 1988에 참가해 1골을 넣기도 했으나, 나라가 전패로 조별리그 광탈. 참고로 이때 잉글랜드의 총 득점이 2득점이었다. 반면 4강까지 진출한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에선 스쿼드에 들지도 못했다. 유로 1992엔 부상을 이유로 불참.
이렇게 점점 국대와 인연이 멀어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여전히 잉글랜드 수비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컸다. 기존에 주장 완장을 달던 게리 리네커가 은퇴하자마자 그와 데이비드 플랫에게 완장이 간 적이 대표적인 증거. 그러나 토너먼트 운은 지독히도 없는지 1994 FIFA 월드컵 미국은 아예 예선 탈락. 그래도 유로 1996에 주장으로서 참가해 4강까지 오르면서, 그동안의 국대 토너먼트 설움은 나름대로 털어냈다. 하지만 이것도 당시 잉글랜드가 강력한 우승후보였으니 좀 아쉬울 수도 있다. 이후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와 유로 2000에 참가했다.
2000년, 스벤 예란 에릭손이 감독으로 부임하고 리오 퍼디난드가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오자, 애덤스는 에릭손이 첫 스쿼드를 짜기 전에 은퇴를 선언하고 파란만장했던 국대 커리어를 마감했다.
4 스태프 경력
은퇴 후 2003년 11월 풋볼 리그 1(3부리그)의 위컴 원더러스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며 팀의 풋볼 리그 2(4부리그) 강등을 막지 못했다. 강등을 당했지만 계속 감독직 유임이 되었고 2004/05 시즌 초반에는 선두를 달릴 정도로 팀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하지만 리그가 진행될수록 성적이 점점 하락하여 2004년 11월 1년여만에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위컴 원더러스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 2005년 7월 페예노르트 유소년팀의 특별 코치로 부임하여 11월까지 4개월간 활동 하였고 동시에 아스날의 파트 타임 스카우트로 활동하며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지역을 관찰하기도 했다. 그 후 2006년 1월과 2월에 네덜란드의 FC 위트레흐트의 코치로 단기간 활동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2006년 6월에는 포츠머스 FC의 수석코치로 임명되어 해리 레드냅 감독을 2년간 보좌하며 팀의 FA 컵 우승을 이끌었다. 2008년 6월 해리 레드납 감독이 팀을 떠나자 포츠머스 FC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2009년 2월 팀의 성적 부진으로 해고 당하게 된다.
그 후 2010년 5월 아제르바이젠의 가바라 FK에서 감독을 역임했으며, 2011-2012 시즌이 끝나기 전에 가바라 FK 감독직을 사임했다. 그러나 2012년 10월 가바라 FK의 단장으로 복귀하였고 지금까지 가바라 FK의 단장으로 활동중이다.
5 여담
- 로랑 코시엘니의 별명인 코담스는 이 사람의 이름에서 따왔다. 코시엘니가 아담스의 번호였던 6번을 달고 있고 그의 플레이가 과거 애덤스를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인데 일부 올드 아스날팬들은 코담스 소리를 들으면 '저런 풋내기에 애덤스가 비교당하다니'라며 뒷목을 잡는다.
- 엄청난 애주가이다.
-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2003-2004 시즌
- ↑ 1925년부터 1934년까지 아스날을 지휘하며 아스날의 초기 전성기를 이끌었던 명장이다. 아스날 최고의 감독을 뽑을 때 전문가들 사이에서 항상 아르센 벵거와 같이 언급된다.
- ↑ 12세에 티켓 매표소에서 파트 타임으로 일한것을 시작으로 1973년부터 클럽 총무직을, 1983년부터는 디렉터도 겸해서 2000년까지 맡았다. 이후 클럽의 보드진에 있어왔으며 2015년 현재 아스날에서 무려 64년째 일하고 있다.
- ↑ 나름대로 아스날을 잘 이끌었었으나, 부정 스카우트의 대가로 뇌물을 받은 것이 들통나 쫓겨난 아스날의 흑역사이다.
- ↑ 특이하게도, 2002년엔 리그 마지막 경기를 FA컵 결승전보다 나중에 했다.
- ↑ 본래 영국인에게만 수여하는 훈장이지만, 명예 훈장의 개념으로 외국인에게 수여하기도 한다. 다만 평소에 호칭을 불러주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