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의 역사 История на България | |||||||||||||||||
고대 | 중세 | 근현대 | |||||||||||||||
트 라 키 아 인 |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 | 헬레니즘 제국 | 리시마코스 | 틸리스 왕국 | 로마 제국 | 로마 제국 | 비잔티움 제국 | 남 슬 라 브 족 | 불 가 르 족 | 제1차 불가리아 제국 | 동로마 제국 | 제2차 불가리아 제국 | 오스만 제국 | 불가리아 공국 | 불가리아 왕국 |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 | 불가리아 공화국 |
오드뤼사이 왕국 |
바르샤바 조약 (WP) | |||||||
소련 | 폴란드 | 동독 | 체코슬로바키아 | 헝가리 | 루마니아 | 불가리아 | |
* 알바니아는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프라하의 봄을 유혈 진압한 것에 대해 항의하는 의미로 1968년 9월 13일에 탈퇴. |
벌가리야 인민 공화국 Народна република България | ||
1946년 ~ 1990년 | ||
표어 | Съединението прави силата (단결은 힘) | |
국가 | 조국 불가리아 | |
위치 | 중부 유럽, 발칸 반도 | |
수도 | 소피아 | |
정치체제 | 일당제 사회주의 국가 | |
언어 | 불가리아어 | |
주요사건 | 1946년 건국, 1990년 붕괴 | |
통화 | 레프 | |
성립 이전 | 불가리아 왕국 | |
멸망 이후 | 불가리아 |
소련의 영향으로 불가리아 왕국이 폐지되면서 등장했다. 초대 서기장은 게오르기 디미트로프였다.
디미트로프가 1949년 사망하자 유해를 엠버밍처리하고 영묘를 조성했는데, 불가리아가 민주화되면서 유해는 화장되었고, 영묘 자체도 1999년에 헐리게 된다.
발코 체르벤코프의 뒤를 이어 1954년 집권한 토도르 지프코프는 불가리아의 공산주의 독재자로 공산체제가 무너진 1989년까지 무려 35년간 장기 집권을 했다. 공산국가 시절에 지프코프 정권이 친소정책을 유지하면서 소련이 주장한 '사회주의 국제분업'에 적극 협력해 농업 성장에 집중했다.[1] 불가리아는 농업을 집중 육성하는 국가로 지정되었는데 이 계획을 정말 열심히 수행했다. 그래서 지금도 먹는 것 하나는 풍족하고 먹는 것에 한해 물가도 크게 저렴하다. 여하튼 이 시기에 상당한 경제성장을 이록하면서 그럭저럭 먹고사는 나라가 될뻔했지만 소비재의 질이 낮다는 문제점이 상존했다.[2] 덕택에 1970년대 들어서 상당한 액수의 외채를 빌리게 되는데 1980년대 경제침체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 이 시기 불가리아는 소련의 16번째 공화국이라는 비아냥을 들을정도로 소련과의 관계가 밀접했다. 지금도 러시아와 관계가 나쁜건 아니지만 공산주의 시절에 비하면 미적지근한 상태.
1980년대 들어서는 터키계 불가리아인에 대해 터키풍 성씨를 불가리아식으로 바꾸게 하는 '재생과정(Възродителен процес)' - 일종의 창씨개명 정책이 실시되었다. 그 결과 1989년 국경이 개방되자, 이 정책에 반대하는 30만 명의 터키계가 터키로 이주하였다.
1989년 동유럽 혁명으로 지프코프는 실각했고, 페타르 믈라데노프가 집권하면서 다당제를 도입하였으며 불가리아 공산당도 사회당으로 당명을 바꾸어 오늘날 불가리아가 된다.
여담으로 지프코프는 공산주의 정권이 붕괴된 이후 한때 체포되기도 했지만, 건강 악화를 이유로 연금 상태로사는 것이 허락되었다. 1996년 불가리아 대법원에서 면소 판결을 받았고, 1998년에 폐렴으로 사망했다. 불가리아 정부는 지프코프의 국장을 거부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