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서부 컨퍼런스 | |||
◀ 사우스웨스트 디비전 | |||
45px | 댈러스 매버릭스 (Dallas Mavericks) | 45px | 휴스턴 로키츠 (Houston Rockets) |
45px | 멤피스 그리즐리스 (Memphis Grizzlies) | 45px | 뉴올리언스 펠리컨스 (New Orleans Pelicans) |
45px | 샌안토니오 스퍼스 (San Antonio Spurs) | |
300px | ||
휴스턴 로키츠 | ||
Houston Rockets | ||
창단 | 1967년 | |
연고지 | 텍사스 주 휴스턴 | |
컨퍼런스 | 서부 컨퍼런스 | |
디비전 | 사우스웨스트 | |
현재 연고지로 이동 | 1971년 | |
구단 연고지 변천 | 샌디에이고 (1967~1971) 휴스턴 (1971~) | |
구단명 변천 | 샌디에이고 로키츠 (1967~1971) 휴스턴 로키츠 (1971~) | |
구단주 | 레슬리 알렉산더 (Leslie Alexander) | |
단장 | 대릴 모레이 (Daryl Morey) | |
감독 | 마이크 디앤토니 (Mike D'Antoni) | |
파이널 우승 (2회) | 1994, 1995 | |
컨퍼런스 우승 (4회) | 1981, 1986, 1994, 1995 | |
디비전 우승 (5회) | 1977, 1986, 1993, 1994, 2015 | |
홈구장 | 토요타 센터 | |
약칭 | HOU | |
홈페이지 | ||
유니폼 | ||
홈 | 원정 | 얼터네이트 |
목차
1 개요
Houston Rockets.로켓단
NBA의 프로농구팀. 서부 컨퍼런스 사우스웨스트 디비전 소속. 연고지는 휴스턴. 1967년 '샌디에이고 로키츠'라는 이름으로 창단하였으며, 1971년 휴스턴으로 연고지를 옮겼다. 즉,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달리 팀명이 NASA스러운 것은 그냥 우연이라는 말.[1][2] 홈구장은 1만 8300명 수용규모의 토요타센터이다.[3]
통산 우승 횟수는 2회.(93-94, 94-95)
2 역사
2.1 초창기
초창기엔 여느팀이나 그렇듯이 별볼일 없는 팀이었으며, 루디 톰자노비치[4] 정도나 좀 활약했던 팀이었다.
그러나 70년대 후반, MVP 3회에 빛나는[5] 레전드 센터 모제스 말론을 영입하면서 본격 강팀으로 거듭나고 1979년에 델 해리스 감독[6]이 부임한 뒤인 80-81시즌엔 결승전까지 올라갔지만 래리 버드를 앞세운 보스턴 셀틱스에게 4-2 패배를 당하고 만다.
이후 81-82시즌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시애틀에게 패배한것을 끝으로 말론과 해리스 감독은 휴스턴을 떠났고, 이후 두 시즌동안 14승 68패, 29승 53패 라는 참담한 성적을 거두었다. 다만 단순히 참담하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이, 두 시즌동안 신나게 박살나면서 두 시즌 연속으로 드래프트 1번픽을 받았고 2년 연속으로 224cm의 거인 센터 랄프 샘슨과 90년대 4대 센터중 하나로 불리게 되는 하킴 올라주원을 드래프트에서 득템지명하게 된다.[7]
2.2 올라주원의 시대
하킴 올라주원이 팀에 입단하자마자 랄프 샘슨-하킴 올라주원의 트윈타워는 위력을 발휘했다. 1983시즌 데뷔 첫해 평균 21.0점 11.3리바운드 2.4슛블록의 괴물같은 활약으로 신인왕을 차지한 224cm의 거인 센터 랄프 샘슨에, 데뷔하자마자 평균 20.6득점, 11.8 리바운드 2.7슛블록을 기록한 하킴 올라주원이 가세했다. 한 명만 있어도 상대에게 공포인 20-10(2슛블록은 보너스) 센터가 두명이나 골밑에서 있으니 상대팀 빅맨에겐 지옥이 따로 없을 지경.
이 막강한 랄프 샘슨-하킴 올라주원 트윈타워를 앞세워 팀의 성적은 29승에서 48승으로 오르는 호조를 거두면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1라운드에서 유타 재즈에게 3-2패배.
85-86시즌엔 당대 최강팀 중 하나였던 쇼타임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까지 꺾으며 다시 한번 파이널에 진출하지만 또다시 래리 버드의 보스턴에게 4-2로 무릎꿇고 말았다. 86-87시즌에는 트윈타워의 한 축이었던 랄프 샘슨이 시즌을 겨우 반 정도 치르고 부상으로 아웃당하는 바람에 올라주원 혼자서 어찌어찌 2라운드까지 진출시키긴 했으나 시애틀에게 탈락.
이후 87-88시즌부터는 무릎부상으로 기량이 뚝 떨어진 랄프 샘슨을 트레이드시키며 팀의 전력을 올라주원에게 집중시키지만 번번히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떨어지고 만다.
이렇게 팀을 만든 빌 피치와 돈 체이니가 91~92시즌 물러나고 휴스턴 로케츠 최고의 명 감독으로 인정받는 루디 톰자노비치가 감독을 맡으면서 전력이 더 업그레이드 되었다. 루디는 하킴 올라주원의 숨은 보디가드인 파워포워드 오티스 도프, 정규시즌엔 그냥 괜찮은 롤플레이어였지만[8] 플레이오프에서만큼은 미칠듯한 클러치샷으로 상대팀 팬들에게 깡소주를 먹인(...) 미스터 빅샷 로버트 오리 등이 버티는 포워드진에, 게임리딩능력은 평범했지만 삼점슛은 일품이었던 주전포인트가드 케니 스미스, 비록 후보에다 루키였지만 강심장으로 큰 경기에서 대박활약을 해준 샘 카셀, 클러치 슈팅력과 집요하기까지 한 수비력에 이를 능가하는 성깔로 유명했던 슈팅가드 "매드 맥스" 버논 맥스웰 등 외곽슛이 뛰어난 벌떼 가드진으로 팀을 정비했고 팀 전력은 상승일로를 탔다.
그리고 대망의 93-94시즌, 하킴 올라주원은 리그를 씹어먹으며 MVP에 올랐고[9] 휴스턴은 58승 24패의 7할이 넘는 성적을 거두고 포틀랜드-피닉스-유타를 차례로 격파하며 다시 파이널에 진출,상대는 당연히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가 아니고....[10] 그동안 번번히 조던의 벽에 막혀 절치부심하고 있던 패트릭 유잉의 뉴욕 닉스. 시리즈는 치열하게 진행되어 7차전까지 가는 대접전이었고[11] 마침내 휴스턴은 대망의 첫 우승을 거머쥐었다.
94-95시즌엔 올라주원 등 주축 선수들의 부상 등의 악재가 퍼져 47승 35패밖에 못 거두며 정규시즌은 6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통해 얻은 클라이드 드렉슬러 덕에 상위시드를 연이어 업셋하면서 혈투끝에 [12] 파이널에는 진출했다. 이 때 파이널에서 만난 팀은 샤킬 오닐의 올랜도 매직이었는데 이번에는 4-0으로 개발살내며 대망의 2연패를 이뤄내게 된다. 우승트로피을 받은 후 탐자노비치 감독이 남긴 코멘트가 간지폭풍인데,
"We had nonbelievers all along the way, and I have one thing to say to those nonbelievers: Don't ever underestimate the heart of a champion!" - (챔피언에 이르는) 길을 걸어오는 동안 우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군요: 절대 챔피언의 열정을 과소평가하지 마세요!"
두 번의 우승 이후에 휴스턴에서 반지원정대를 차리기 위해 노장 찰스 바클리가 96-97시즌에 합류했고[13], 악덕 단장인 제리 크라우스에게 질려버린 스카티 피펜도 98-99시즌에 합류하면서 마이클 조던이 없을 땐 역시 휴스턴인가 하는 기대를 모았지만, 이미 신흥강자 시애틀 슈퍼소닉스, 유타 재즈등에게 점점 밀리는 상태였고, 빅3의 시너지효과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당초 찰스 바클리는 피펜을 영입할 수 있다면 자신의 연봉도 포기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진짜로 자신의 실력과 명성에 비하면 헐값인 100만달러만 받는 새 계약을 하면서 팀이 피펜을 영입할 수 있게끔 해주어서 휴스턴 팬들을 흐뭇하게 만들어주었지만, 철저히 트라이앵글 오펜스에 적응된 피펜은 휴스턴에선 그냥 수비 잘하는 포워드에 불과했다. 휴스턴은 올라주원과 바클리의 골밑 공격에 큰 비중을 두었지만 팀의 심장인 올라주원은 이미 부상과 노쇠화, 그리고 심장병 등의 이유로 정상이 아니었고 바클리 역시 지나치게 무거운 체중으로 인해 잦은 부상에 시달리면서 골밑 공격도 예전만큼 위력적이지 못했다. 게다가 피펜이 합류한 98-99시즌은 파업으로 인해 50경기만 치루어진 단축시즌이었는데, 세명의 베테랑이 경기를 많이 뛰어서 손발을 맞췄다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줬겠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결국 4년전 올라주원이 농락했던 샤킬 오닐의 LA 레이커스에게 1라운드 1승3패로 무기력하게 탈락했다.
기대를 모았던 빅3는 불과 한시즌만에 실망스럽게 끝이 났는데, 한 시즌 쉬던 필 잭슨이 레이커스로 컴백하자 스카티 피펜이 자신을 레이커스로 보내줄 것을 요구한다. 이에 피펜을 위해 연봉까지 삭감했던 바클리가 그에 대해 분개하자, 피펜이 언론에 대고 바클리를 '이기적인 뚱보', '입만 열면 우승타령인데 우승할만한 자격이 없는 선수'라며 비꼰 것. 당연히 언론도 휴스턴 팬들도 바클리를 응원했지만 오히려 피펜이 '바클리가 사과해도 안받아줄 것'이라며 적반하장격으로 나섰고 원조 모두까기 인형인 바클리조차 그러한 피펜의 태도에 질려버려 '피펜은 동료를 실망시켰고 팬들을 실망시켰다'는 점잖은 인터뷰를 하면서 대충 사태는 수습됐다. 이후 피펜은 언론에 트레이드 상황을 적극적으로 풀어 휴스턴 팀 분위기를 더욱 개판으로 만들면서 우승을 노렸던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로 떠났다.[14] 당연히 휴스턴 팬들에게 스카티 피펜은 금지어 취급.
결국 99-00시즌부터 4시즌동안 팀은 플레이오프에 나가지 못하는 암흑기를 겪게되고 바클리는 99-00시즌 도중 친정팀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의 경기에서 부상을 당한게 계기가 되어 은퇴했다. [15], 팀의 심장이자 모든것이었던 하킴 올라주원은 에이전트의 농간때문에 00-01시즌 종료 후 엉뚱하게 토론토 랩터스로 떠나야 했으며, 팀의 2연패를 이끌었던 루디 톰자노비치 감독도 02-03 시즌 막판에 방광암에 걸려 11년만에 사임해야 했다. [16]
2.3 맥밍 듀오, 현실은 시궁창
2002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픽으로 만리장성 야오밍을 영입, 03-04시즌을 앞두고 제프 밴 건디를 감독에 선임, 거기다 경기장도 컴팩 센터(더 서미트)에서 토요타 센터로 옮겼다. 그리고 바클리가 촌스럽다고 깠던 로고와 유니폼도 지금의 깔끔한걸로 바꾼다. 그리고 야오밍을 중심으로 다시 플레이오프에 얼굴을 내밀게 된다. 물론 1라운드에서 탈락했지만.
04-05시즌, 내친김에 트레이시 맥그레디까지 영입하며 맥밍 듀오를 결성,순식간에 다시 서부지구의 강자로 떠오르게 되었다. 근데 이번에도 1라운드에서 댈러스에게 4-3으로 깨졌다.
그래도 맥밍듀오는 당시 nba를 통틀어 최강의 듀오였기에 휴스턴은 충분히 우승을 노릴만 했었다.......만, 05-06시즌, 둘이서 동시에 드러누워버리면서 서서히 불안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맥밍 듀오는 04-05시즌을 제외하면 한명이 일어서면 한명이 뻗고 다시 한명이 회복되면 한명이 드러누워버리는 신나는 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05-06시즌은 그렇게 팀의 원투펀치가 동시에 실신하면서 접게 되고, 06-07시즌, 이번에도 야오밍은 중간에 3개월을 쉬었다만 이번엔 다행히 맥그레이디가 그럭저럭 건강했던 관계로 다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만 또다시 1라운드에서 유타 재즈에게 4-3 패배. 맥밍 듀오는 잘 했는데 나머지가 못받쳐줬다.
07-08시즌에는 무려 22연승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긴 했는데 이번에도 야오밍은 16연승하고 누웠다.... 플레이오프에서 맥그레이디 혼자 분전하긴 했지만 유타에게 4-2로 패했다.
08-09시즌 이번에는 야오밍은 건강했는데 맥그레이디가 35경기 치르고 뻗었다(...)그래도 야오밍의 활약으로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레이커스와 격돌...했는데 시리즈중에 야오밍마저 뻗고 만다. 맥밍듀오가 없는 상태에서 루이스 스콜라, 애런 브룩스, 셰인 베티에 등이 분전하며 7차전까지 끌고갔지만 결국 높이의 열세로 분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 시리즈에서 부상당한 야오밍은 09-10시즌 자체를 통째로 접는다(...)
2.4 리빌딩
09-10시즌엔 아델만감독과 불화가 생긴 맥그레이디를 아예 트레이드 시켜버리면서 맥밍듀오를 해체시킨다. 상기했듯이 야오밍도 시즌을 통째로 접은 관계로 팀의 코어가 없는 상태에서 나머지 선수들이 그럭저럭 분전했으나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
10-11시즌엔 한 시즌 푹 쉬고 돌아온 야오밍이 또 다시 5경기뛰고 드러누웠다. 맥그레이디의 트레이드를 통해 데려온 케빈 마틴을 중심으로 새 판을 짜기는 했으나 전력의 열세로 다시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다. 그리고 10-11시즌 종료후 야오는 은퇴를 선언했다.
3번 연속 9위로 플레이오프 탈락을 겪은 뒤 12-13 시즌때는 젊은 선수들을 데리고 싸웠다. 원래 이 시즌 역시 암울한 시기가 될 예정이었는데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에서 식스 맨이었던 슈팅 가드 제임스 하든을 영입, 하든이 올스타급 활약을 보여주며 에이스로 자리잡은 덕분에 오랜만에 플레이오프 티켓을 얻는데 성공했다. 비록 오클라호마에게 2-4로 밀려 탈락했지만 최소 샐러리 팀중 하나였는데 플레이오프 진출한것만 해도 큰 성과.
2.5 2013-14 시즌
12-13시즌 후 FA가 된 리그 최고의 센터 드와이트 하워드를 잡기 위해 카를로스 델피노, 애런 브룩스를 웨이브하고, 토마스 로빈슨을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 보내는 대 Kostas Papanikolau, Marko Todorovic의 권리와 미래의 2라운드 픽 두장을 받으며 트레이드. 하워드와 만날 때 팀의 레전드들인 클라이드 드렉슬러, 하킴 올라주원에다가 스카이프로 야오밍까지 섭외하는 열정을 보여줬다. 덤으로 그들의 곁에는 현 로키츠 소속 가성비갑[17]미남 선수 챈들러 파슨스도 있었다.미남계 헤이 파슨스 커피 타와
결국 2013년 7월 5일, 하워드 본인이 로키츠에 입단할 것을 발표하면서 우승까지 바라볼 수 있는 전력을 갖췄다. 하든-하워드 조합을 앞세워 서부 플레이오프 홈 어드밴티지를 따낼 수 있는 시즌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하워드를 영입하면서 단숨에 쩌리 신세가 되버린 오메르 아식이 트레이드를 요구하고 모리 단장은 아식의 최대 스텟에 맞는 가치가 아닌 이상 트레이드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 결국 아식은 부족한 몸관리가 원인이었던지 부상을 입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트레이드는 백지화 되버렸고, 부상에서 복귀한 이후에도 폼이 다 죽어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린 역시 패트릭 배벌리가 주전으로 나오고 식스 맨 역할을 소화해야했다. 린은 이에 대한 불만은 가지지는 않은 채 묵묵히 자기의 할 일을 했지만 기복이 있고 하든과의 공존이 안되고 있어서[18] 오버페이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어 보인다. 그 외에도 린을 제외하면 밴치멤버 중에서 확실히 자기 몫을 해주는 사람은 옴리 카스피 이외에는 드물어서 결국 덴버 너기츠로부터 조던 해밀턴을 받아오면서 벤치를 강화했지만 여전히 부족한 모습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하든의 확실한 공격력과 하워드는 하워드, 파슨스와 2년차 포워드 테렌스 존스의 주전라인업은 그야말로 환상적. 최종성적은 54승 28패로 포틀랜드와 동률이지만 상대전적에서 3승 1패로 우세, 서부 컨퍼런스 4위가 되었다. 이리하여 홈경기 어드벤티지를 가졌지만 플레이오프 내내 하든의 슛감각이 엄청나게 줄어든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렇잖아도 약했던 수비가 계속 악화되면서 불안한 시리즈를 계속 이어갔고 마지막 6차전에서는 98-96으로 0.9초까지 앞서 있었으나 작전타임 이후 바로 데미안 릴라드가 망설임 없이 쏜 3점슛이 그래도 골대로 관통하면서 버저비터로 연결되면서 98-99로 패배하면서 2승 4패로 또다시 1라운드에서 탈락하고 만다.
맥헤일 감독과 하든의 부족한 수비 가끔 제레미 린 이야기도 나온다. 이해력이 이 시리즈 이후에는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 하워드라는 뛰어난 수비수를 가지고도 이 정도면 분명 가드나 스몰포워드 쪽의 수비를 강화시켜야 하는게 명백해졌고 이 팀의 과제가 될 듯.
2.6 2014-15 시즌
2014년 신인드래프트에선 스위스 출신의 클린트 카펠라 라는 파워포워드를 뽑았는데 운동능력과 블락 능력이 좋은 선수고, 애초에 20~30 번 대에서 뽑힐 선수라는 평이 많았기에 거의 픽에 맞는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만일 파슨스가 떠날 경우 보험이 될 수 있을 만한 선수라는 평. 그러나 역시 유럽리그에서 뛰는 선수이기 때문에 바로 합류할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하워드와 하든이라는 막강한 듀오를 얻은 로키츠지만, 또다시 1라운드에서 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셔야 했고 오메르 아식과 제레미 린은 계약 마지막 해를 앞두고 있고 이 4명과 챈들러 파슨스를 제외한(그나마 챈들러 파슨스는 팀 옵션을 행사하면 $964,750 이라는 헐값에 1년을 더 쓸수 있다.) 나머지 선수들에게 들어가는 샐러리는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Big 3를 만들기 위한 도전을 할 것을 천명했다. 이에 따라 르브론 제임스, 크리스 보쉬, 카멜로 앤써니, 카일 라우리 등에게 모두 적극적인 구애를 보냈고 아식과 린은 이에 따른 유동적인 샐러리를 만들기 위해 만기계약이라는 점을 내세워 트레이드를 시도할 듯 하다.
결국 아식은 드래프트 당일 뉴올리언스 펠리컨스에 15년 1라운드 픽(4-19픽 안에 들시에만 휴스턴이 행사가능)을 댓가로 트레이드에 합의했고, 앤써니와는 토요타 센터에 초청하여 미팅을 가졌다. 그런데, 이 도중에 린에게 매우 실례되는 행동을 했는데, 린이 아직 로키츠 선수이고 7번의 등번호를 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휴스턴의 7번 유니폼을 입은 앤써니의 모습을 합성해 보여준것.
이에 린은 트위터에 성경문구를 통해 간접적으로 자신의 심경을 드러내기도 하였다.[19] 이 성경문구는 제레미 린 2014-15시즌 항목을 참조하길 바란다.
한편 모리 단장은 이 사태에 대해, 만일 다른 빅 네임을 영입한다면 아식과 린 같은 선수들은 트레이드 될수밖에 없는 운명이다라고 발언하면서 어찌되었던 린이 14-15 시즌에도 로키츠 유니폼을 입는 모습을 상상하기는 힘들게 되었다. 아식이야 이 당시엔 이미 트레이드가 된 상황이였고.
이럼에도 불구하고, 멜로에게 커다란 오퍼를 하는듯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는데 [20] 멜로가 처음 옵트아웃했을때와는 달리 점점 뉴욕 닉스 쪽으로 잔류를 생각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더니 결국 멜로는 최종적으로 시카고 불스, LA 레이커스, 뉴욕 닉스의 오퍼를 받고 고민한다는 소식이 전해짐으로서 린에게 실례를 범하고 휴스턴에 초청까지 하면서 미팅을 한 것이 닭 쫓던 개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자 꿩 대신 닭이라고, 갑자기 크리스 보쉬에게 4년에 8800만불이라는 거금을 오퍼하면서 어떻게든 FA시장에서 하나는 건지겠다라는 의지를 보여주는 중. # [21]
한편, 기존 다른 포워드였던 챈들러 파슨스에 대한 팀옵션은 포기함으로서, 챈들러 파슨스는 제한적 자유계약 선수자격을 얻게 되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2라운드로서 헐값에 뛰어준 파슨스에 대한 예우를 해준 것이다 라는 의견과 빅 네임을 영입하기 위해 파슨스를 포기하려는 움직임 이다 라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아무튼 파슨스는 다른 팀과 협상할 자격을 얻었으며, 로키츠가 다른 팀의 오퍼를 매치만 해준다면 지키는것이 가능은 한 상황. 한편으론 1500만불을 받게 될, 제레미 린의 트레이드 가치가 매우 떨어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파슨스를 이용해서 린을 쉽게 보내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린은 결국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 현금과 Sergei Lishouk이라는 82년생 유럽센터의 계약권리를 받는 조건으로 린과 1라운드, 2라운드 드래프트 지명권을 함께 주면서 트레이드를 하여 샐러리 유동성을 마련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2번 타겟이었던 보쉬에게 히트가 5년의 118M이라는 거대계약을 지르면서 결국 히트 잔류를 선언한데다 댈러스가 파슨스에게 3년 $46M 오퍼를 날려버려서 비싸게 잡아야 하는 상황에까지 놓였다. 결국, 그 대산 다른 준척급 선수였던 트레버 아리자와 3년 $32M에 사인 앤 트레이드 형식으로 영입하고[22] 트레이드 팬딩 상태였던 오메르 아식의 트레이드에서 옴리 카스피를 추가로 얹어주면서 알론조 지를 추가로 영입하게 되면서 파슨스와의 계약은 포기하게 되었다.
결국 당초에 계획했던 빅 네임 영입은 실패하고, 아리자만을 영입하면서 아식, 린, 파슨스까지 모두 잃어버리는 최악의 오프시즌을 맞이하게 되었다. 아식과 알론조 지를 영입할때 뉴올리언스로부터 1라운드 지명권을 얻었으나, 린을 보내면서 1라운드 지명권을 소진하였기 때문에 그나마도 쌤쌤. 물론 뉴올리언스가 작년처럼 부진해서 4번에만 들어준다면야 엄청난 이익이 되겠지만. 하지만 로키츠가 망한다면 레이커스만 감사해하고 그야말로 답이 없게 되겠지. 시즌 초반은 여전히 건재한 드와이트 하워드와 자유투를 꾸준히 삥뜯어가며 득점해대는 제임스 하든, 챈들러 파슨스의 공백을 괜찮게 메꿔주는 트레버 아리자등의 활약과 부상이나 부진으로 어딘가 모자란 다른 팀들이 부진하는틈을 타 멤피스 그리즐리스와 함께 개막 6연승을 달리는 중이다.
이후 지옥의 싸웨에서 멤피스, 댈러스 등과 엎치락뒤치락하다가 디트로이트에서 방출된 조쉬 스미스를 냉큼 영입하면서 우승후보로 거듭나는듯....했지만 조쉬의 영입효과는 크지 않았다. 게다가 하워드의 부진 및 부상 때문에 하든이 어거지로 팀을 이끌게 되었는데, 하든이 그야말로 MVP급 활약을 펼치면서 팀의 추락을 저지했고 조쉬는 적응기를 끝내고 하워드와 테렌스 존스의 부상공백을 잘 메워줬다. 정규시즌 최종 성적은 56승 26패로 디비전 리더 자리를 획득하며 전체 2위가 되었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는 우환이 많았던 댈러스 매버릭스를 4-1로 가볍게 제압하고 세미파이널에서 LA 클리퍼스와 격돌했다. 4차전까지 1:3으로 몰리며 고전했고, 5차전은 잡았으나 6차전 3쿼터까지만해도 패색이 짙어서 탈락하는 듯 했지만 맥헤일 감독이 4쿼터에 하든을 아예 배제하고 하워드와 조쉬, 테리, 브루어골무 삼형제를 투입한 양궁농구 작전으로 대역전을 이끌며 승기를 잡았고 7차전에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클리퍼스를 쓰러트리는데 성공, 올라주원 시대 이후 처음으로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올라가는데까진 성공했지만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게 1승 4패로 패배하여 탈락 파이널 진출에 실패하며 내년을 기약하게 되었다
2.7 2015-16 시즌
눈뜨고 볼 수 없는 시즌
주워와서 싸게 써먹은 조쉬 스미스가 FA로 나갔지만, 대신 타이 로슨을 저렴한 대가를 내주고 영입해 전력보강을 했다. 공을 오래 쥐어야 능력을 발휘하는 유형이기에 하든과의 조화에 대한 의문과 형편없는 멘탈이 의문요소이긴 했으나 뛰어난 공격전개능력과 수비를 헤집을 수 있는 돌파력을 갖춘 선수이기에 우선은 괜찮은 영입이라는 것이 전반적인 평. 지난 시즌 부상의 악령에 전체적인 로스터가 망가졌음[23]에도 컨퍼런스 2위를 차지한만큼 부상 관리만 잘 된다면 큰 보강이 없더라도 다른 컨텐더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시즌 초반 에이스 하든이 야투감각을 찾지 못하며 공격에서 헤맸고 본래 다소 아쉬웠던 수비는 더 나빠지면서 팀의 공수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졌다. 하워드는 지난 몇 시즌 중 그나마 건강한 시즌을 보내고 있으나 되려 경기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에이스인 하하듀오가 시즌 초반 자리를 잡지 못하는 와중에 다른 선수들도 부진하면서 리그 컨텐더의 자리는 커녕 플레이오프 진출마저도 힘겨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즌이 진행되면서 하든의 공격력은 원상태로 회복이 되었고, 주전들의 경기력도 회복되었으나 개선되지 않는 수비 문제, 형편없는 벤치 생산력은 여전했으며 팀 케미스트리가 무너졌다는 소식까지 안팎에서 새어나오면서 16시즌 최악의 팀이라는 혹평을 듣기에 이르렀다. 결국 11월 18일 케빈 맥헤일이 경질되었으나 팀의 수비력은 오히려 시즌이 진행되면 될수록 더 형편없어졌으며 감독 대행의 입에서 '팀이 부서졌다.'라는 말이 나오기에 이르렀다[24].타이 로슨도 공을 오래 잡지 못하니 순식간에 몰락해버린다.
결국 계약 마지막해인 드와이트 하워드의 트레이드 설까지 돌았는데, 하워드는 지키는 대신 전반적으로 팀을 리툴링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든이 출전시간 전체 1위를 찍으며 노예처럼 구르고 있는 중.
유타 재즈, 댈러스 매버릭스와 치열한 플레이오프 경쟁 끝에 결국 정규시즌 마지막날에 운명이 갈리게되었다. 이 날 휴스턴 로케츠는 새크라멘토 킹스와 홈 경기를, 유타 재즈는 LA 레이커스와 원정 경기를 펼친다. 상황은 휴스턴에게 유리한것이 새크라멘토를 잡을경우 자력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고, 패배한다 하더라도 레이커스가 유타를 잡아주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된다. 물론 레이커스가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있고 유타에게 이번 시즌 약하긴 하지만 어쨌든 자력으로 진출할수 있는 기회가 있기에 유리한건 확실하다. 결국 새크라멘토를 116:81로 대파하며 최종성적 41승 41패 서부 8번시드로 플레이오프 막차에 탑승했다. 1라운드 상대는 NBA 역대최고의 정규시즌 성적을 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1차전 전반 종료직전 스테픈 커리가 발목 부상을 당해서 2,3차전을 결장했고, 4차전 전반 종료직전에는 무릎 부상을 당해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1-4로 패배하며 끝까지 엉망진창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나마 3차전도 제임스 하든의 클러치샷에 힘입어 1점차로 겨우 이긴것이었다. 5차전 원정경기는 이번 시즌 휴스턴의 문제점을 제대로 드러낸 경기였다. 오프시즌때 대대적인 개편이 예상되는 상황.
플레이오프 탈락 후 새 감독으로 마이크 댄토니를 선임했다.
2.8 2016~17시즌
언드래프티 개리 페이튼 주니어, 카일 월터와 계약하고, 드와이트 하워드는 옵트아웃하여 애틀랜타 호크스로 이적한다. 이후 뉴올리언스에서 뛰던 두 선수 라이언 앤더슨과 에릭 고든을 각각 4년 $80M, 4년 $53M에 계약했다.
3 기타
농구에도 세이버메트릭스가 도입되면서[25] 경기운영에도 변화가 생겨났는데 휴스턴이 세이버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팀에 속한다. 농구에서의 기대득점은 자유투 - 골밑슛 - 3점슛 - 미드점퍼 순인데 휴스턴의 경우엔 아예 공격에서도 롱2는 버리고 자유투를 얻기위한 돌파와 골밑슛, 가드와 스윙맨의 3점슛만 노리고 수비에서도 기대득점이 낮은 롱2만 쏘도록 유도하는데 12-13시즌을 앞두로 트레이드로 영입한 팀의 에이스 제임스 하든이 이런 휴스턴의 플레이스타일을 확연히 보여준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 참조
2번의 NBA 우승을 거둔 다음시즌인 95~96시즌부터 입었던 90년대 중반 로케츠의 저지는 미국인들이 꼽는 NBA 역사상 최악의 저지 순위에서 항상 1등하는 걸로 유명하다. 같은 시기 피닉스 선즈와 비슷한 컬러에 심하게 유아틱하다는 이유로 미국 농덕들이 싫어한다고 한다.
4 2016-2017 선수 명단
2016-17 시즌 휴스턴 로키츠 선수단 | |
감독 | 마이크 댄토니 |
코치 | 조쉬 오펜하이머, 브렉 버닝, 제프 브즈델릭, 로이 로저스, 존 루카스 |
가드 | 2.패트릭 베벌리 6.타일러 에니스 8.바비 브라운 10.에릭 고든 13.제임스 하든 |
포워드 | 1.트레버 아리자 3.라이언 앤더슨 5. 몬트레즐 하렐 7.샘 데커 30.카일 윌저 33.코리 브루어 |
센터 | 15.클린트 카펠라 |
가드-포워드 | 32.K.J. 맥다니엘스 |
포워드-센터 | 21.치나누 오카누 42.네네 힐라리오 |
5 영구 결번
22. 클라이드 드렉슬러(Clyde Drexler) : 뛴 기간은 꼴랑 세 시즌 반이지만 이 기간 동안 한 차례 우승을 안겨준 공로를 인정받아 영구결번.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된 위대한 선수다.
23. 캘빈 머피(Calvin Murphy) : 1970년대 주로 활약한 로키츠에서만 13년을 뛴 가드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4. 모제스 말론(Moses Malone) : 1970년대 후반 휴스턴에서 활약한 NBA 최초의 고졸 선수이자, 한 시대를 풍미한 센터.
34. 하킴 올라주원(Hakeem Olajuwon) : 휴스턴에게 두 차례 우승을 안겨준 당대 최고의 센터.
45. 루디 톰자노비치(Rudy Tomjanovich) : 선수로도 활약했고, 감독으로도 팀의 두 번의 우승은 안겨준 인물.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당시 드림팀 4기 때 감독이기도 했다.
CD. 캐롤 도슨(Carroll Dawson) : 1979년부터 2007년까지 로키츠에서 어시스턴트 코치(1979~1995)와 단장직(1995~2007)을 맡았던 인물.- ↑ 애초에 NASA의 로켓은 휴스턴에서 쏘지 않는다. 제작하는 곳은 앨라배마주 헌츠빌 마셜 우주비행센터, 발사장은 플로리다주 케이프 커내버럴 케네디 우주센터다. 휴스턴에서는 우주인 훈련, 교육, 연구, 우주프로그램 관제 등의 업무가 이뤄진다. 하지만 어쨌든 로켓 이름 들어가면 가장 먼저 NASA부터 떠오르기 때문에 지금 와서는 사실상 휴스턴의 랜드마크인 NASA를 이용한 마케팅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 ↑ 다만 2003년 2월 1일 STS-107 참사 다음날에 새크라멘토 킹스와 대결한 홈경기에서는 음력설 기념 행사를 강행하며 욕을 좀 먹었다. 뭐, 2003년 설날이 2월 1일이었으니 야오밍 마케팅으로 처음에 행사 다 예약해놓은 것을 이제 와서 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라지만 전미가 울고 있는데 거참 눈치도 없다.
- ↑ 우리가 아는 그 토요타 맞다. 2003년 새로 개장된 경기장의 명명권을 20년간 1억에 사들였다.
- ↑ 이후 감독으로써도 휴스턴에서 활약하게 된다. 2연패도 톰자노비치 감독때의 일.
- ↑ 휴스턴에선 두 번 탔다.
- ↑ 1990년대 중반 레이커스의 침체기 시절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 ↑ 다만 이 과정이 단순히 "운이 좋다" 수준인지 의문이 있는데 1984시즌 당시 로켓츠는 20여 경기를 앞두고 24승으로 4할이 살짝 안되는 승률을 기록했으나, 마지막 20경기에서 5승을 추가하는데 그쳐(승률 25%) 탱킹한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당시 이런 일은 그리 드물지도 않았는데, 그 다음해에 사상 최고의 대학 선수 중 하나라 평가받는 패트릭 유잉을 노리고 여러 팀이 이 짓거리를 하자 결국 NBA는 추첨으로 순위를 정하는 로터리 제도를 도입하게 된다.
- ↑ 그래도 선수생활 초창기엔 큰 키와 다재다능함으로 기대를 받는 유망주였다.
- ↑ 리그 MVP와 올해의 수비수를 동시에 차지한 선수는 역사상 올라주원과 마이클 조던 뿐이며, 거기다 파이널 MVP까지 동시에 차지한 선수는 올라주원 뿐이다! 물론 조던은 정규시즌+파이널+올스타MVP까지 차지하는 일명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지만, 올스타 MVP는 사실상 이벤트전이라 그렇게 권위가 높은 상은 아니다.
- ↑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지만 조던은 이때 잠깐 야구하러 나가있었다.
- ↑ 실제로 5차전까지 뉴욕이 3승2패로 앞서고 있었고, 6차전 막판에 존 스탁스가 역전 슛을 시도하지만 이게 올라주원의 손에 걸리고 만다. 그리고 스탁스는 최종전에서 슛 18개를 던져 2개 성공, 특히 삼점슛은 11개 모두 놓치면서 시원하게 경기를 말아먹는다. 최종 스코어는 90대84
- ↑ 1라운드 3승2패, 2라운드 4승3패, 3라운드 4승2패로 두번이나 최종전까지 갔고 마지막 3라운드에서도 4승2패로 결코 쉽게 승리하지 못했다.
- ↑ 이때 명예의 전당급 멤버가 셋이나 있는, 네임밸류만 보면 리그 최고인 팀이 형성되었으나 97년 기준으로 올라주원과 바클리가 만 34세, 드렉슬러가 만35세로 노장이라 한계가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서부 최강 유타를 위협하는 전력을보여줬다) TNT패널들이 슈퍼스타들이 뭉치는 이른바 슈퍼팀에 대해 논하는 와중에 케니 스미스가 이 팀을 두고"그건 슈퍼팀이 아니었어. 그건 super old 팀이었어"라고 해 다들 빵 터지기도... 훗날 피펜이 합류했을때는 피펜-바클리-올라주원으로 그야말로 역대 최고의 프런트코트ㄹ라고 불릴만한 네임밸류였으나 이때는 더더욱 슈퍼올드한 팀이 된지라 많은 기대에도 1라운드 탈락에 그쳤다.
- ↑ 현재까지도 바클리와 피펜의 사이는 좋지 않으며, 심지어 피펜이 포틀랜드에서 뛰던 시절 해설이던 바클리는 피펜을 거의 언급하지 않았고 어쩔수 없이 언급해야 할 때도 '33번 선수'로 호칭하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 ↑ 시즌 초반이던 12월 열린 이 경기에서 부상을 당했으나 의연하게 고통을 참다가 라커룸에 들어가서 눈물을 쏟는다. 당시 딸이 지켜보고 있어서 걱정시키기 싫었다고 한다. (espn sports century 참조) 또한 바클리는 코트 위에서 자신의 마지막 이미지가 "부상으로 실려가는 것"이 되어버리는게 싫다며 재활에 몰두, 약 4개월 후인 4월 19일에 밴쿠버와의 홈경기에 출전해 오펜스 리바운드에 이은 풋백 득점을 하고 nba커리어를 마무리한다. 당연히 당시 홈팬들의 기립박스를 받으면서 당당히 걸어서 벤치로 물러섰다.
- ↑ 당시 로켓츠는 플레이오프 진출이 유력했으나, 선수들, 특히 루키 야오밍의 정신적 버팀목 루디가 사임하면서 슬럼프에 빠져 승률을 많이 까먹고 결국 피닉스 선즈에 간발에 차이로 뒤지면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다. 더불어 야오밍도 아마레 스타더마이어에게 밀려 신인왕 수상에 실패.
- ↑ 연봉은 1밀도 안되지만 12-13시즌 15.5 득점 5.3 리바운드 3.5 어시스트 필드골 성공률 48% 3점은 39%에 육박하는 준수한 주전급 성적을 냈다. 겨우 2라운드에서 뽑혔는데 말이다. 그의 본의 아닌 노예계약(...) 덕분에 현 휴스턴이 리빌딩을 보다 수월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 ↑ 물론 이 문제는 슈팅가드임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리딩을 하려고 하는 하든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 ↑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알려진 린은 종종 성경문구를 트위터에 적어 자신의 뜻을 표현하는 걸로 유명하다.
- ↑ 멜로 본인이 사업 문제도 있고 부인인 La La Anthony의 직업(배우, 샐러브레티 등)도 있어서 뉴욕,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쪽을 선호한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진 사실이긴 했다. 휴스턴의 인구 수로만 보면 위의 3개 도시 다음가는 미국의 제4의 도시지만 대도�시 인구권은 저 3 도시는 물론이고 댈러스나 필라델피아에도 밀리는 판국이라. 아니 애초에 저 3도시와 휴스턴의 도시 규모 격차는 넘사벽이긴 하다.
- ↑ 4년에 9600만불이라는 보도가 있었으나 오보로 밝혀졌고, 휴스턴은 최대로 제안할 수 있는 금액이 8800만불이라고 한다.
- ↑ 대가는 8.5M의 트레이드 익셉션 권리가 워싱턴 위저즈로 가게 된다.
- ↑ 베스트5로 경기를 온전히 치른 것이 채 5경기가 되지 않았다.
- ↑ 전반기 마지막 경기인 포틀랜드 원정에서 116-103으로 패배한뒤 팀내 최고참인 제이슨 테리가 라커룸으로 향하면서 했던 말을 보면 부서졌다는 것이 팀 케미스트리로 추정된다. #
- ↑ 대신 농구계에선 APBR메트릭스(Association for Professional Basketball Research Metrics)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