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좌부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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थेरवाद
上座部佛敎
Theravada Buddhism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부따사[1]

1 개요

불교의 한 분류. 부파불교의 상좌부 계열, 분별설부(Vibhajjavada)의 삼장을 계승하였다.

대승불교와 상좌부 불교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 대승경전을 인정하지 않는다. (예: 반야심경)
  • 계율과 형식 그 자체를 중시하고, 다른 종교 및 다른 문화의 형태를 혼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나 이게 항상 100%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 대승 불교권처럼 스님들이 직접 농사를 짓지 않고, 독자적으로 발달한 사찰 음식이라는 개념이 없다. 승려들의 음식은 별도로 마련하지 않고 탁발로 사람들로부터 얻어먹으며, 계율에 따라 저장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기 때문이다. 육식을 허용하는 이유도 사람들에게 얻어먹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역시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 어떤 논제에 주관적이거나 추상적으로 답하지 않는다. 불교는 본래 경전이 많은 종교이고, 부처의 말씀도 상당히 많은데, 그 이유가 생활의 수많은 질문과 답변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상좌부 불교의 특징 중 하나는 비구니가 없다는 것. 대승 불교와는 달리 전승되던 중에 비구니계가 유실되어 더 이상 비구니를 낼 수 없다. '띨라신'이라는 평신도 여자 수행자(모르는 사람이 보면 비구니로 착각할 만 하다)가 있기는 하지만 본래 불교의 계율은 부처에게 계를 전해 받은 자가 다시 후대에 전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 계율의 맥이 끊어지면 임의로 계를 줄 수가 없다. 그런데 상좌부 비구니 계맥이 전부 끊어져버렸기 때문에 전세계 불교에 상좌부 전통에 따른 비구니계가 전해지는 곳은 없다.

대승불교에서도 계맥이 끊겼으나 이를 서상수계, 즉 계를 받기를 부처나 보살에게 간절히 요청해서 받았다고, 혹은 자서수계, 즉 자기가 자기에게 계를 주었다고 하면서 계맥을 존속케 한 사례가 있다. 조선시대의 우리나라 불교계에서도 서상수계로 계맥을 시작한 사례가 있다. 이러한 서상수계나 자서수계는 대승불교 전통에서는 용인됐지만 상좌부 불교에서는 불법적이며 무효라고 본다. 서상수계나 자서수계의 교학적 근거가 대승경전에만 있는 것이라... 그래서 우리나라 불교계에서도 바로 이 계맥 문제는 내부적으로는 첨예한 논란의 대상이다. 상좌부 불교권에서도 대승 비구니 계맥을 받음으로써 비구니 승단을 복구하려는 노력이 있지만 대부분 용인받지 못했으며, 오직 스리랑카에서만 용인되어 정착했다.[2]

본래 소승불교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으나 현재는 소승이라는 말에 모욕적인 의미가 담겨있다고 하여, 상좌부 불교라고 부른다.[3] 대승 불교 측에서 임의로 붙인 표현이 바로 소승이다. 자기들은 수많은 중생을 구제하니 큰 수레(대승)고, 저쪽은 개인의 해탈만을 중시하니 작은 수레(소승)이라고… 그래도 소승이란 말이 입에 붙은 사람들은 다 소승이라 한다.

대승비불설 문서만 보면 상좌부 불교대승 불교가 서로 갈등이 많고 멀리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생각보다 교류가 많다. (성지순례, 스리랑카 진신사리) 그러나 상좌부의 승려들은 대승불교 승려들과 함께 포살할 수 없다거나, 대승의 의견에 동의하면 범계한 것으로 보는 등 선을 명확하게 긋는다. 또한 우리나라 승려들이 상좌부 불교계로 유학 갔을 때 몇몇 상좌부 승려들이 대승불교 승려들의 법랍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은근히 경계하거나 무시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2 지역

불교의 원류는 부처의 탄생지인 네팔 남부이자 인도 북부 지역에서 시작하여, 아쇼카 대왕 사후의 힌두교 세력을 피하며 계속하여 남하하였다. 그래서 마침내는 스리랑카까지 내려와, 안정적으로 불교의 원형을 지키고 발전시켜왔다. 스리랑카를 시작으로 동남아시아 지방에 전래되었으며 그런 관계로 남전불교, 남방불교라고 부른다.

이 수행을 통해 이상의 경지에 도달하면 아라한(나한)이 된다. "붓다(부처)"는 석가모니 만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아 깨달음을 얻은 인물을 의미하는 경우는 아라한 등 다른 호칭을 사용한다. 깨달음(광명)을 얻은 인물을 "부처님"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지만 이것은 대승, 금강승 불교에서만 해당한다.

힌두교에서는 아트만이라고 하는 진아의 개념이 있는데, 이는 모든 살아있는 존재에 내재하고 있는 변하지 않는 불멸의 영혼을 일컫는다. 대승불교에서도 진아라는 개념이 있으며 그 진아를 부처라 부른다. 그러나 대승의 진아는 공성이며 힌두교의 아트만은 불멸의 영혼으로, 그 용어는 같아도 두 성질이 전혀 다르다.

대승 불교와 핵심적인 교리는 차이가 없지만, 수행법이나 사상면에서 차이가 있다. 또 세세한 계율과 그 해석에도 차이가 있다. 예컨대 육식을 금하지 않고 허용한다.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의 불교가 상좌부에 속한다. 다만, 같은 동남아시아라도 베트남중국을 통해 전래된 대승 불교 계열이다.

3 한국의 상좌부 불교 전파

한국에 상좌부 불교가 전파된 시기는 의외로 오래되었다. 고려 후기 등장한 여러 군소종파들을 통틀어 십이종이라 부르는데, 이 십이종 중에 소승불교와 관련된 교종 종파인 소승종(小乘宗)의 존재가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 여말선초기의 한국 선종의 고승 나옹 혜근 스님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준 인도 승려 지공선현(指空禪賢)대사도 북전불교와 더불어 랑카의 상좌부 불교를 학습했던 승려였다.

그러나 이때는 남전불교가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고, 본격적으로 한국 불교사에 영향을 드러낸 것은 1990년대 후반 위빠사나 수행이 한국에 알려지면서부터였다. 당시 한국의 주루 불교계에서는 간화선만을 중시하고 위빠사나와 남방불교는 소승의 가르침이라 하여 이를 폄하하고 별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불교사에 대해 제대로 된 지식을 갖추고 있던 학자들 중 남방불교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몇몇 승려들에 의해 위빠사나 수행과 남방불교에 대한 공부가 시작되었으며, 재가자 단체를 중심으로 남전 빨리어 경전 읽기나 위빠사나 수행이 시작되었다.

본격적으로 남방불교가 퍼지기 시작한 것은 2010년 즈음에 들어서였다. 조계종의 간화선 중심주의가 안팎으로 비판받는 정도가 강해지고 승려들의 도박/음주 사건이 언론을 타면서 기존 한국불교계에 자성과 비판의 여론이 번져나갔고, 이 과정에서 이재열 법사와 유마선원(현 법림선원), 전재성 박사와 한국빠알리성전협회를 중심으로 빨리어 남전불경을 국내에 번역/보급하고 빨리어 대장경인 <앙굿따라니까야>를 세계 최초 완역해 펴내는 등의 노력으로 대중적으로 남전불교를 접하는 신도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또한 한국 불교계가 세계 각 나라의 불교계와 교류를 늘리면서 남방불교권의 고승들이 한국을 몇 차례 찾아왔고, 2016년 한국에서 열린 세계명상대전에서는 태국불교의 전설로 불리는 고승 아잔간하[4][5] 와 아잔브람[6]이 참가하여 자리를 빛내고 한국의 선승들과 무차토론을 가지면서 상좌부 불교가 한국에 더욱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 와중에 대만 심도스님에 대한 관심은 뭍혔다.[7]

4 비판

그러나 이렇게 남전불교가 우리 나라에 알려지면서,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불자들 사이에서, 심지어는 몇몇 승려들도 오직 빨리어 니까야와 남전불교만이 순수한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정통불교며, 남전불교만이 옳다는 잘못된 사고방식을 갖고 이를 퍼뜨리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도 사실이다. 남전불교 역시 석가모니 부처님 입멸 후 수 천 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현지 문화의 영향이나 내부적으로 많은 계파의 등장과 논쟁, 자체 문헌의 등장이 있었고 이 와중에 대승불교와 마찬가지로 후대에 첨삭/증보개정을 거친 문헌들이 존재한다. 또한 남전불교와 북전불교는 오래 전부터 서로간에 교류하면서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기 때문에 현대의 남전불교와 남전불교 문헌만이 절대적으로 옳으며 석가모니의 친설을 담고 있다고 볼 객관적인 근거는 없다. (이와 관련해 더 자세한 정보는 근본주의 항목 참조.)

더욱이 남방불교 자체 역시 시대에 따른 변화와 완전히 괴리되어 초기승단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잇지도 않는다. 당장 서구에 유행하는 위빠사나 명상 센터도 서구 문화에 맞게 원래 상좌부 불교 교단 운영 형태와는 다르게 일부 변용한 부분이 있으며, 본격적인 밀교 수준은 아니지만 상좌부 불교에서도 빠릿다(paritta, 호신주護身呪)라 하여 위험이나 악령으로부터 몸을 지키고 고통을 해소하는 잡밀 수준의 선의의 진언들을 사용한다.[8]

남방불교에서 잘 남아있다고 알려진 탁발 문화 역시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는 탁발만 받는 것이 아니고, 사찰 근처에 깟삐야꿋띠[9]를 마련해 음식을 조리하고 깟삐야부흐미[10]를 두어 음식을 저장한다. 이는 원래 계율에서는 금지하던 것이었으나 현실적으로 완전 탁발로는 승단 운영이 불가능하니 생겨난 것. 이러한 것들은 정법[11]이라 하여, 석가모니 당대부터 현실에 맞게 예외조항을 둔 것이다. 계율 역시 석가모니 당대에부터 시대와 상황에 맞게 계속 변해 왔고(참조), 동북아에서 많이 변한 것은 기존의 인도 문화권과 전혀 다른 동북아의 기후와 사회문화에 적응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뿐이다.

때로는 한국 불교의 부패를 비판하면서 남전불교의 계율 중심 생활을 언급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한국 스님들이라고 다 파계승이 아니듯이 남전불교에도 파계승이나 영업 행위가 없는 게 아니다. 당장 남전불교 사원에도 동북아 사찰의 민간신앙마냥 기복신앙을 자극하거나 승려가 자금세탁으로 조사받거나 심지어 사찰에서 동물학대와 불법 동물밀매를 벌이기도 한다. 더욱이 상좌부 불교 국가들의 현지의 승려의 높은 사회적 신분 지위로 인한 폐해는 오히려 한국보다 심하다. 그러나 남전불교를 국내에 소개하는 재가자 중심의 단체들 중에는 일방적인 남전불교 옹호만 할 뿐 이런 어두운 면들은 숨기거나 언급을 꺼리는 경우가 있다.
  1. '존귀하시고 스스로 모든 법을 깨달으시고 모든 번뇌를 떨치고 온갖 공양과 예경을 받으실 만한 부처님께 예경합니다'라는 뜻의 대표적 진언
  2. 상좌부 불교에서 여성 불자에 대한 차별은 현실적으로 있으며 현세에 공덕을 쌓고 윤회하여 다음 생에 남자로 태어나 깨달음을 얻는 것을 추천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서 법륜 스님 구글토크에서 외국인이 질문하고 법륜 스님이 답변하였다. 법륜 스님은 여성에 대한 차별은 불교가 봉건 문화를 받아들여서 발생한 것이고 원래 부처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3. 과거 인도에서 대승경전을 취급하지 않는 부파불교를 소승불교라고 불렀기 때문에 엄밀하게 상좌부 불교만을 소승불교라고 하지는 않는다.
  4. Ajhan Ganhah. '아잔'이 스님이란 뜻이다.
  5. 아잔간하는 무려 45년간이나 일체의 외부 문물과 관계를 끊고 수련에 집중한 경력을 가진 스님으로, 9미터나 되는 거대한 코브라가 자신의 코 앞에 나타나 혀를 낼름거리며 입을 벌리며 위협하자, 코브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날 만나러 와 줘서 고맙다'라고 하자 코브라가 고개를 숙이고 사라진 이른바 '코브라 설법' 사건은 태국에서 유명하다. 특히 아잔간하가 40여년간의 은둔을 깨고 나온 것이 이번 2016 한국 세계명상대전을 개최하기 전 한국 참불선원의 각산스님의 삼고초려 후 한국의 불자들을 위해 생애 최초의 국외출타를 결정한 일이라 더욱 뜻깊은 일이었다.
  6. 혹은 아잔 브라흐마. 호주불교의 개척자로 알려진 서양인 승려다. 이전에도 몇 차례 한국에 온 적이 있으며, 저서인 <성난 물소 놓아주기>,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는 국내에도 출간되어 있다.
  7. 이 분도 대만에서 세계통합불교 운동을 펼치는 고승이다.
  8. 사실 이런 풍조 자체는 석가모니 생전부터 존재하여, 아함경에 '바라문교의 주문을 사용하는 것은 축생도에 떨어지는 것이다'라 나올 정도로 주술을 금기시하던 석가모니 본인도 점차 선의의 주문은 인정하였고, 때문에 초기 불교 시대부터 이미 호신주가 사용되었다. 이런 풍조가 극대화된 케이스가 대승불교 중 밀교다.
  9. kappiyakuti 혹은 kappiya-kuti, 정주淨廚로 번역한다
  10. 한자로는 정지淨地. 범어로는 kappiya-bhumi.
  11. 한자로는 淨法, 범어로는 카파kappa 모 브랜드하고는 상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