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볼리바르 교향악단

스페인어: Orquesta Sinfónica Simón Bolívar
영어: Simón Bolívar Symphony Orchestra of Venezuela

베네수엘라관현악단. 명칭은 라틴아메리카 독립 운동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시몬 볼리바르에서 따왔다. 유럽이나 미국도 아닌 남미에서 갑툭튀한 악단이지만, 2000년대 들어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얻으며 미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쇼스타코비치교향곡 10번 2악장. 2007년 BBC 프롬나드 콘서트(약칭 프롬스) 실황 영상.

악단의 연주력도 ㅎㄷㄷ하지만, 이 악단이 해외에도 유명해진 것은 베네수엘라만의 독특한 유소년과 청소년을 위한 음악 교육 프로그램인 '엘 시스테마(El Sistema)' 가 전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부터였다. 베네수엘라는 20세기에도 그랬고 지금도 국민 소득이 그리 높지는 않은 나라고, 청년 실업률이나 범죄 빈도도 높은 편이다. 그나마 이러한 현시창에 숨통을 터준 것이 저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실제로 수많은 비행청소년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음악을 익히면서 범죄로부터 벗어났고, 이는 음악계 뿐 아니라 교육계에서도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악단은 엘 시스테마의 악단들 중 가장 많은 지원을 받고 있는 악단인데, 운영 비용의 상당 액수를 국가에서 충당하기 때문에 사실상 국립 관현악단으로 볼 수 있다. 악단 규모도 굉장히 큰데, 보통 공연할 때는 5관 편성[1]이라는 대규모 편제로 무대에 선다. 심지어 입단 희망자들이 급증하면서 2000년대 초반에는 악단 자체를 청소년 이상 성인들로 구성하는 A팀과 30세 이하 청년과 청소년들로 구성하는 B팀으로 나누기까지 했다.

기원은 1975년에 아브레우가 처음으로 발족시킨 청소년 관현악단인 '호세 란다에타[2] 국립 청소년 관현악단' 이었는데, 이 악단이 여러 젊은 음악인들의 참가로 대규모 체제를 갖추게 되자 1978년에 이름을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관현악단(Orquesta de la Juventud Venezolana Simón Bolívar/Simón Bolívar Youth Orchestra of Venezuela)으로 개명하고 재창단했다. 2년 뒤인 1980년에는 베네수엘라 작곡가들의 작품과 서양 클래식 명곡들을 골고루 담은 LP들을 자체적으로 취입했고, 동시에 베네수엘라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객원 지휘자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이 악단 뿐 아니라 엘 시스테마의 명성도 세계구 급으로 확장되기 시작했고, 1980년대 후반에는 멕시코 출신의 지휘자 에두아르도 마타가 악단을 정기적으로 지도하기 시작하면서 연주 실력을 한층 끌어올렸다. 마타는 1995년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기 직전까지 악단을 지휘했고, 이 악단의 첫 CD를 미국의 음반사인 도리안에서 제작하기도 했다.

도리안과의 작업은 마타 사후에도 계속되어 마타 지휘로 여섯 장, 칠레 지휘자인 막시미아노 발데스와 멕시코 지휘자인 엔리케 아르투로 디에메케, 캐나다 지휘자인 케리-린 윌슨이 한 장씩 해서 총 아홉 장의 앨범이 발매되었다. 수록곡들도 스페인 작곡가 마누엘 데 파야오페라발레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경쟁반이 드문 편인 중남미 작곡가들의 근현대 작품들이라, 해당 작품의 애호가들에게도 매우 좋은 반응을 얻었다.

1999년에는 이 악단의 B팀에서 음악 감독으로 재직 중인 구스타보 두다멜유럽과 미국 무대로 진출하면서 덩달아 유명세를 얻었는데, 2006년에 세계 유수의 클래식 전문 음반사인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베토벤교향곡 5번7번 두 곡을 CD로 내놓으면서 굉장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유명세와 상업성을 중시하는 메이저 음반사의 성향을 고려하면, 일개 청소년 관현악단의 음반을 이렇게 선뜻 내줄 정도로 푸쉬를 해주는 것이 이상하리만치 드물기 때문.

하지만 해당 교향곡들의 음반이 이미 수백 장이나 될 정도로 경쟁반이 많은 상황에서도 이 CD는 꽤 많은 매출을 올렸고, 이어 말러의 교향곡 5번, 라틴아메리카 관현악 작품을 담은 컴필레이션 앨범 '피에스타(Fiesta)', 차이콥스키교향곡 5번 등을 담은 CD가 차례로 발매되었다. 2014년 12월 현재까지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발매된 앨범은 모두 여덟 장이다.

두다멜 지휘의 이들 음반 외에도, 과거 베를린 필의 상임 지휘자였던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한 베토벤의 3중 협주곡 음원도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집에 새로 끼워져 발매되었다. 이외에 미국 음반사인 안칼라곤(Ancalagon)에서 에두아르도 마르투레트의 지휘로 바이올리니스트 라라 세인트 존과 협연한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집 '사계' 와 피아졸라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 를 커플링한 앨범을, 독일 음반사인 필.하르모니에서 크리스티안 바스케스의 지휘로 콘트라베이시스트 에딕손 루이스와 협연한 판할과 호프마이스터, 디터스도르프의 비올로네/콘트라베이스 협주곡 앨범을 내놓는 등 활발한 음반 시장 공략을 계속 하고 있다. 공연 실황이 담긴 DVD들도 2014년 현재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세 종류(두다멜 지휘), 아첸투스(Accentus)에서 한 종류(아바도 지휘. 블루레이로도 발매)가 나와 있다.

국내 뿐 아니라 해외 공연도 꾸준히 개최하고 있는데, 위의 BBC 프롬스 외에도 스위스의 루체른 음악제, 독일의 본 베토벤 음악제,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음악제 등 세계 유수의 음악제들에 참가해 연주하고 있다. 2008년 12월에는 한국에서 첫 공연을 가졌다.

남미 관현악단 다운 굉장한 활력과 함께 꽤 정밀한 합주력도 보여주고 있지만 전체적인 음향은 약간 거칠고 덜 정제된 편이라는 지적도 있다. 또 사운드가 가볍도 뜨는 음향을 들려준다는 평도 있다. 그리고 뭔가 깊이 있고 심오한 음악을 연주할 때는 2%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 이들도 있는 모양. 이 오케스트라의 사운드에 대한 지적에 대해 일각에서는 이들이 사용하는 악기가 좋지 않아서 그렇다고 얘기하기도 하지만 사실 이들이 사용하는 악기는 적어도 관악기의 경우 베를린 필 같은 정상급 오케스트라와 별반 차이가 없는 최고급 악기를 사용하고 있다.

이 악단은 또 공연 때 앙코르 무대에서 꽤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휘자와 단원 모두 베네수엘라 국기 문양으로 디자인된 점퍼를 입고 나와 리드미컬한 곡을 선보이는데,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보여주는 퍼포먼스 저리가라 할 정도다. 백문이 불여일견.



번스타인의 교향 춤곡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중 맘보. 2007년 루체른 음악제 실황 영상.

'엘 시스테마' 를 소개할 때 항상 중심적인 역할로 소개되기 때문에, 해당 프로그램을 다룬 다큐멘터리에 감초처럼 등장한다. 국내에 정발된 도이체 그라모폰의 DVD 다큐멘터리 '음악의 약속' 과 2010년 8월에 한국에서도 개봉되어 상영된 다큐 영화 '엘 시스테마' 에서도 마찬가지. 후자는 이미 공식 개봉 전에도 EBS에서 세계 명작 다큐 시리즈에 포함시켜 축약판 형태로 방영한 바 있는데, 부유층 자제들도 아닌 뒷골목의 아이들이 어떻게 관현악단에 입단하고 연주와 교육을 받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청소년 오케스트라라는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도 단원들이 교체되지 않아서 의구심을 자아내기도 했는데, 2011년 무렵 악단 명칭에서 청소년이 빠지고 대신 symphony가 들어가 교향악단이 되었다. 이미 엘 시스테마를 통해 배출되고 있는 청소년 연주자들의 숫자가 엄청나게 누적되어 있고 또 청소년 악단 만이 아닌 정규 악단의 존재도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성인 고정 멤버들로 구성되는 상설 악단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악단이 갖고 있던 베네수엘라를 대표하는 청소년 관현악단의 입지는 테레사 카레뇨[3] 청소년 교향악단(Sinfónica Juvenil Teresa Carreño de Venezuela)이 이어받게 되었다. 다만 청소년 악단이라는 성격은 잃게 되었어도 이 악단이 엘 시스테마로 탄생한 첫 관현악단이라는 상징성은 여전해서, 엘 시스테마 홈페이지의 관현악단 목록에도 이 악단이 계속 포함되어 있다.
  1. 목관악기를 종류별로 다섯 대씩 편성하는 관현악 편성법.
  2. 베네수엘라의 국가용감한 이들에게 영광을의 작곡자.
  3. 베네수엘라 태생의 피아니스트로는 최초로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오른 인물로, 카라카스의 복합 문화 공연장인 테레사 카레뇨 복합문화단지도 이 사람의 이름을 따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