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노부유키

역대 일본 총리
35대36대37대
히라누마 기이치로아베 노부유키요나이 미츠마사
역대 조선 총독
8대9대(총독부 해체)
고이소 구니아키아베 노부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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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아베 노부유키/Abe Nobuyuki.jpg

阿部信行(あべ のぶゆき, 1875년 11월 24일 ~ 1953년 9월 7일)

1 마지막 조선 총독

쇼와시대의 일본 총리이자 마지막 조선총독부 총독. 일본의 패전과 조선의 해방까지 보게 된 총독이기도 하다. 총리를 지내다가 총독에 임명된 역승진(어쩌면 좌천)한 케이스.[1] 하지만 그럴 만큼 또 뒷갈망(?)은 했다 싶은 인물.

일본의 정치인이자 군인. 이시카와 현 태생. 1930년대 말 총리를 지냈다가 물러난 육군대장 출신으로, 1944년 일본 내각수상이 되어 사임한 고이소 구니아키의 후임으로 크로스 9대이자 마지막 조선총독이 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전하고 조선이 광복하면서 그 해 9월 미군서울 진주 때 미 육군 중장 존 하지 장군에게 항복을 공식 인정하여 미군정청 앞으로 조선의 행정권을 위임하고 총독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귀국해서 1953년에 죽었다.

일본 육군대학을 졸업하였고 1923년 관동대지진 때 계엄사령부 참모장으로 부임했으며 이후 육군차관과 대장 직무대행을 거쳐 사단장으로 부임하였고 1933년 육군대장으로 승진하였다가 1937년 군부에서 전역신고를 하였다.

1939년 히라누마 전 총리의 후임으로 내각수상이 되었다. 의회주의를 표방하던 민정당/정우회 양당의 협력을 구하여 전쟁으로 치닫는 정세에 대응하고자 했으나, 군국주의적 분위기로 치닫던 의회가 도리어 총리에게 불신임을 던져버려서 물러나야했다.

1944년 중국 전권대사를 지내다가 전임 조선총독인 고이소 구니아키가 내각수상으로 임명되면서 그의 후임으로 9대이자 마지막 조선총독으로 부임하였다.

재임기간이 1년밖에 되지 않았던 데다가 마지막 조선총독이긴 하였지만, 전임자 못지않은 온갖 강경책와 폭정책으로 조선에서 온갖 물자와 인력의 수탈 및 징집을 무자비하게 강행했으며 국민의용대를 제창하여 조선의 애국자 및 독립운동가 색출에 총력을 벌이기도 하여 마지막까지 발악하였다.

1945년 8월 소련의 침공으로 한반도 북부 일부(함경도 청진 등.)를 사실상 상실하였고 이 후 여운형등과 협의하여 건국준비 위원회를 사실상 설립하도록 하였지만, 군권은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8월 15일 덴노의 항복선언과 조선의 해방으로 한반도의 북반부는 소련군에 의해서 항복이 진행되고 9월 미군서울에 진주하게 되자 최후의 수단으로 할복을 시도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9월 9일 결국 존 리드 하지 장군이 주도하였던 항복 조인식장에 나와서 항복문서에 조인하게 되었다.


1945년 9월 9일 미군에 항복하는 마지막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

이후 초대 미군정청장인 미 육군소장 아널드 장군에게 조선의 행정권 등을 모두 위임하고 총독직을 사임하여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연합국에 의해 전범으로 체포되어 무혐의로 석방되었고 1953년에 지옥으로 끌려갔다. 여담이지만 재한 일본인들은 나몰라라하고 자기 재산만 챙겨서 잽싸게 돌아갔기 때문에 그들에게 원망을 많이 받았다.

이 자를 마지막으로 조선총독부1945년 9월 미군서울에 진주하였을 때까지 만 35년,[2] 1905년 을사조약으로 설치되었던 전신기관인 조선통감부 기간까지 포함하면 40년동안 존속되어 있었다가 마침내 공식 해산되었다.

2 뒤끝있는 말을 하고 갔다?

인터넷에 '아베 노부유키의 예언' 등의 이름으로 조선 총독부의 마지막 업무에서 그는 아래와 같은 말을 남겼다는데 신빙성은 없다(...). 학계에서 그런 얘기가 나왔다는 얘기도 전혀 없고 저자도 역사 교양서 몇권을 썼던 시인, 소설가로 되어있다. 보통 국군 정훈 시간에 나오는 이야기이고 가끔 국개론과 엮여 이용한다. 하지만 과연 옛 조선의 영광, 찬란 운운하는 말을 일본 총독이 할 리가 없고, 더군다나 '난 되돌아온다'는 낯간지러운 대사를 읊는다는 것도 우스꽝스럽다. 애초에 원본이라고 돌아다니는 글을 보면 한국어를 번역기 돌린 흔적이 심심찮게 발견된다.

우리 대일본제국은 패전하였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내가 장담하건대, 조선인들이 다시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여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인들에게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결국 조선인들은 서로를 이간질하며 노예적인 삶을 살 것이다. 보아라! 실로 옛조선은 위대하고 찬란했으며 찬영했지만 현재의 조선은 결국은 식민교육의 노예들의 나라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2045년에 다시 돌아올 것이다."

-개소리 집어쳐

위의 내용은 '1910년, 그들이 왔다'라는 책의 내용에서 만들어진 듯하다. 이 책 주석 223페이지에 '우리 일본은 조선인들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 교육을 심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조선인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라는 그의 말이 적혀 있다고 하는데, 아마도 이 내용에서 살을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이런 종류의 설은 이미 1950년대 초반쯤부터 널리 퍼진 이야기로, 역사학 쪽보단 언론사나 정치사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관련 에피소드 얼핏 듣기라도 했을 것이다. 처음엔 직접 남기고 간 말에 있네, 유서에 그렇게 적었네 하다가, 아니니까 이젠 일기로 넘어갔을 뿐. 아베 버전만 있는게 아니라, 당시 경찰총장 버전도 있었다. 그러니까 그저 떡밥

하지만 말 자체는 워낙 강렬한 데다, 사실 저 내용처럼 식민지배의 잔재 및 거기서 파생된 문제점들[3]이 한둘이 아닌지라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회자되는 글이기도 하다. 2015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로 또 한 번 사람들에게 오르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날조인 이상 계속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면 역사관에 영 좋지 않다. 최근에 이를 다룬 기사가 나왔다.

3 이야깃거리

일본 극우 언론인 구로다 가쓰히로는 90년대에 한국에 낸 책자인 좋은 일본인 나쁜 일본인에서 아베 총독이 한국에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느니 아니 유감이라는 사과방송을 하려다가 여러 사정으로 못하고 나갔다고 엉터리 헛소리를 쓰기도 했다. 위에 나오듯이 그런 말 할 작자가 아니다....

한때 아베 신조가 아베 노부유키의 손자라는 설이 인터넷에 나돌았지만, 아베 노부유키와 아베 신조는 완전 남남이다. 독음은 똑같이 아베여도, 한자가 매우 다르다. 아베 노부유키는 阿部고 아베 신조는 安倍다. 그리고 아베 신조의 친할아버지는, 야마구치 현 소속 중의원을 지낸 아베 칸(安倍 寛, 1895~1946)이다. 한국에서는 후손들보다 주목을 덜 받아서 이런 설이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아베 신조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가 일본의 56, 57대 총리를 역임했다. '55년 체제' 로 불리는 자민당의 장기집권 구도를 만들어냈다. 이전 버전에는 키시가 A급 전범이라고 서술되어 있었으나, 키시는 A급전범 용의자로 구속수사를 받았으나 재판 종결 이후에 불기소로 무죄 석방되었으므로, 이를 A급 전범이라 칭함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 아베 신조의 작은 외할아버지인 사토 에이사쿠는 61, 62, 63대 총리를 역임했으며, 197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는 외무성 장관을 역임했다.

  1. 당시 조선 총독은 일본 내각의 지배를 전혀 받지 않았다. 총독 위로는 천황만이 있을 뿐이었다.
  2. 1945년 8월 15일에 바로 총독부가 해산된 게 아니다. 미 군정은 조선 치안의 현상 유지를 위해 미군이 도착할 때까지 일시적으로 조선총독부 및 산하 행정기관을 그대로 두었다.
  3. 친일파 청산 문제, 독립유공자 보상 문제, 악랄한 군대문화 및 그로 인한 사회 전반의 비인권적 의식, 동북아 역사 왜곡, 지역감정,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왜색과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불필요한 일본혐오 문제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