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언어 사대주의는 자국의 언어에 대한 열등 의식과 동시에 상대적으로 다른 어느 언어에 대해서 우월 의식을 지녀, 자국의 언어를 폄하하고 질이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며, 타국의 언어를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고관이다. 역사적으로 강대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해당 국가의 사상과 문물, 학술을 받아들였을 경우에 자주 발생한다.
문자 사대주의와도 비슷하다. 왜 영어가 더 좋냐고 물어 보면 한글이 촌스럽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애초에 한글은 문자이다. 혹은 언어와 문자의 개념을 확실히 알지 못하는 경우이다. 실제로 언어 · 문자 사대주의의 관점을 취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언어와 문자를 구별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한국어가 곧 한글이고 영어가 곧 로마자이다.[1]
하지만 대한민국은 법적인 제재도 심할뿐더러[2] 대다수의 국민들이 외국어 남용을 지양하려는 편이라 언어 사대주의가 비교적 약한 축에 속한다. 서양권에 대한 언어 사대주의가 극에 달한 나라로는 단연코 일본을 꼽을 수 있다.[3] 애초에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개화하고 경제발전을 시작한 나라답게 언어 사대주의적 행태 역시 한국보다 2~30년 먼저 일어났었는데, 1980년대 이전부터 영어 가사를 방송에서 남발한 건 기본이었고, 거품경제 시절 광고들 중 I feel Coke(...)같은 사례는 꽤 유명하며, 심지어 공영방송인 NHK의 심야뉴스 프로그램조차 제목을 외국인 목소리까지 곁들여가며 'Midnight Journal'이라고 썼던 역사까지 있다.
2 언어 사대주의 예
1.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간판
거리를 보면 굳이 영어권 국가도 아닌데 오로지 영어로만 된 간판을 쓴 것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물론 해외 기업의 간판이라면 그럴 수 있지만 한국에서 자체적으로 나온 업체의 이름조차 그럴 때가 종종 있다. 일각에서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배려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엄연히 그 간판이 걸린 곳은 한국이고, 가장 많은 이용자는 한국인이다. 한국어와 영어를 병행해서 표기하면 또 모를까, 일방적으로 영어로만 표기해 놓는 것은 그저 시각적인 효과("멋져 보이잖아!")나 심리적 효과("뭔가 믿을 만해 보이고 고급스러워 보여!")를 이용한 게 대부분이다.
2. 서브컬처에서 사용되는 기술 이름
진화하거나 강해지면 외래어 및 외국어(그마저도 대부분은 콩글리시)로 바뀌는 성향이 있다. 대개 현대 마법물이거나 하면 영어로 된 기술을 고급 기술의 명칭으로 사용한다. 마법물이라기보다는 무술풍 계열이라면 한자어가 쓰이곤 한다. 이때 고유어이거나 한자어이더라도 한국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명칭은 하급 기술이 된다. 영어는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고관의 한 가지 예로 볼 수도 있다.
3. 색안경을 낀 언어관
객관적으로 놓고 봤을 때에는 분명히 각자의 특성이 있는 법인데 어느 한쪽은 열등하다고 보고 다른 한쪽은 우월하다고 보는 언어관이다. 대표적인 예로 한국어와 영어에 대한 관점의 차이이다. 예를 들어, 한국어에서 '밥'이라는 다의어를 제시했다고 하자, 한국어에서 이 단어는 '밥벌이'에서 보듯 돈을 의미할 수도 있고, 굳이 쌀로 지은 게 아니더라도 '식사'의 의미로도 쓰일 수 있다. 심지어 '톱밥' 등의 용례까지 합하면 그 뜻은 훨씬 넓어진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뜻도 불분명하고 애매모호한 언어라는 관점을 취한다. 그런가 하면 영어에서 그와 같은 다의어를 제시했다고 하자. 이때 이에 대해서는 정반대로 여러 가지 뜻을 내포하는 유연하고 풍부한 언어라는 관점을 취한다. 이뭐병 이게 문법관을 만나면 더욱 심각한 논리적 오류를 범하게 되는데, 어느 의미를 한국어로 간결하게 전달하면 구조도 단순하고 그런 만큼 뜻이 불분명해지는 언어라는 관점을 취하면서 동시에 영어로는 그렇게 전달하면 간단하게 의미를 전달하는 경제적인 언어라는 관점을 취한다.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생각인가. 문제는 이게 국가에 대한 우월 의식과 결합하면 그야말로 노답 그 자체가 된다. 소위 어중간하게 외국물 좀 먹어 본 사람들이 이런 사고관을 가지는 때가 많은데, 제아무리 설명해 줘 봐야 자신의 왜곡된 사고관에 사로잡혀 절대로 사고를 교정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이 언어 사대주의를 취하면 "아, 한국어는 역시 너무 애매해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영어는 우월해." 이런 입장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언어관을 가진 사람이 생각보다 정말 많다.
4. 각종 가요의 영어 가사
노래의 성격상 굳이 영어로 된 가사를 쓸 필요가 없음에도 영어 가사를 썼다면 객관적으로 비판해 보아야 한다. 무작정 영어 가사를 불필요하게 썼다고 까내릴 것이 아니라, 영어에 대한 사대주의 사고관에서 쓴 것인지 아닌지를 검토해야 한다. 만약 사대주의의 관점에서 영어 가사를 쓴 것이라면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낯설게 하기와 같은 표현법의 일환으로 쓴 것이라면 사대주의로 낙인을 찍는 것은 피하도록 하자. 물론 그렇다고 그 표현을 남용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그렇지만 적절한 낯설게 하기는 신선함을 부여하기 때문에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다. 당장에 노래라는 것이 분류상 서정문학에 들어가고, 오늘날의 시와 같은 서정문학이 태초에는 제정일치 사회에서의 집단 제의식에서 쓰인 노래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노랫말의 영어 표현을 무작정 까는 것은 옳지 않다. 따라서 정말로 언어 사대주의에 입각한 영어 가사의 쓰임인지를 검토하여 비판하는 것이 옳다. 특히나 힙합
3 원인
언어 사대주의의 원인은 국가에 대한 사대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강대국의 문물이 선진 문물이라는 생각에 그 나라에서 쓰는 언어마저 선진 언어이고 우수한 언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색안경을 끼고 언어를 바라보며 자국어를 폄하하며, 자국어는 불분명하고 비논리적이지만 외국어(특히 한국인에게는 영어)는 분명하고 명확하며, 논리적이라는 생각을 지니게 된다.
또 다른 원인으로 언어 컴플렉스를 들 수 있다. 이는 최근 20대의 미국이나 호주 등의 영어권 국가에 대한 갈망과 맞물리는데, 영어 공부에 대한 부담감으로 발생한다. 애초에 한국어와 영어는 언어 유형과 어족부터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의 언어를 배우기가 극과 극으로 어렵다.[4] 그런데 세계적으로 미국이 강대국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한국인 입장에서는 배우기가 매우 어려운 영어를 그들이 쓰니 영어는 한국어와 달리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언어라는 사고가 싹트게 되고, 이게 곧 영어에 대한 열등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영어를 쓰는 사람이었더라면 굳이 영어 학습에 열을 올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더욱 영어에 대한 부러움을 갖게 되고, 이게 곧 언어 사대주의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모국어의 문법은 굳이 세밀하게 배우지 않지만 외국어의 문법은 세밀하게 배운다는 점도 원인이 될 수 있다. 한국인은 한국어의 문법은 지엽적으로 배우지 않는다. 배워 봐야 비교적 굵직한 영역과 지옥 같은 어문 규정 정도만 배울 뿐이다. 영어를 배울 때와 같이 세세한 문장 구조나 각종 예외적인 구문, 단어의 어감적 차이(뉘앙스) 등은 학습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한국어는 영어와는 달리 복잡한 문법도 없고 간단한 언어라는 편견[5]을 지니게 되고, 영어는 그와 반대로 문법도 복잡하다는 편견이 생겨 그만큼 접근하기 어렵고 높은 위치에 있는 언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언어 사대주의로 이어진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외국어는 자국어에 비해 새롭고 신선하다는 느낌을 주는 게 당연하다. 당장에 우리가 보기에는 별 것 아닌 한국의 전통 문화나 물품이 서양인들 사이에서는 신기하고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가 신비롭고 색다르다고 느끼는 각종 서브컬처의 외국어로 도배된 명칭들도 정작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촌스럽고 별 것도 아니거나, 심지어 우스꽝스러운 표현으로 느껴질 수 있다.
4 같이 보기
- ↑ 로마자와 알파벳을 구별하지 못하면 그나마 이해는 한다. 대부분 한글이 알파벳이라고 하면 의아해할 것이다. 그러나 알파벳은 곧 문자 체계를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어와 한글은 다르며, 마찬가지로 영어와 알파벳은 다르다'라고 하면 틀린 말은 아닌데 살짝 2% 어긋난 의미가 된다.
교정해 주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내버려두기도 애매한 경우 - ↑ 군사독재 시절 간판과 TV프로그램 제목 등을 한글과 한자만 쓰게 한 사례가 있다.(예: 뉴스데스크→뉴스의 現場)
- ↑ 사대주의가 아니라 탈아입구라는 주장도 있지만 애초에 탈아입구 자체가 서양권에 대한 극도의 문화 사대주의적 경향에서 나온 사상이다.
- ↑ 그래서 영미권 사람들의 입장에서 한국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배우기 어려운 언어의 범주인 카테고리 5에 들어간다. 그 난이도의 대부분을 한국어의 문법이 차지한다.
- ↑ 물론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교착어와 고립어화된 굴절어 중 어느쪽이 더 쉬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