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 이념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포함할 수 있어 문서를 열람할 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한 문서의 악의적 서술 · 편집은 민사 · 형사 상 소송이 발생할 여지가 있습니다.
嚴永達
1928년 02월 14일 ~ 2003년 05월 10일
1928년 강원도 정선군 동면(현 화암면)에서 태어났다. 정선 인암공립보통학교, 춘천고등학교, 경성제국대학 예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경성제국대학이 서울대학교로 개편되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제6회 고등고시 행정과에 수석 합격하여 외무부(현 외교부) 소속 외교공무원으로 주로 근무하였다. 한일기본조약 체결 당시에는 외무부 아주과장이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에 강원도 영월군-정선군 선거구로 공천 신청을 하였으나 장승태에 밀려 탈락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장승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강원도 영월군-평창군-정선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장승태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4년부터 1975년까지 신민당 부총무를 역임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장승태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9년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이택돈, 이택희, 유한열, 정재원, 박병효 등과 자민동지회를 구성하여 김영삼을 총재 후보로 지지하였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정치규제 기간에 모 입시학원에서 스페인어 강사로 일하였다. 1984년 정치규제에서 해금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심명보 후보와 한국국민당 신민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강원도 정선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박우병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통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자유당 박우병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5년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