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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宅敦
1935년 01월 27일 - 2012년 05월 07일
대한민국의 전 법조인, 정치인이다. 호는 춘강(春江)이다.
1935년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현 안산시)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제8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이후 판사를 역임하다가 사직하고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시흥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전국구 국회의원인 민주공화당 이영호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와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시흥군-부천시-안양시-옹진군 선거구에 신민당 후보로 출마하여 각각 민주공화당 오학진 후보, 민주공화당 윤국노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4년 9월 신민당 김영삼 총재 체제 출범에 따라 신민당 대변인이 되었다. 그러나 1975년 김옥선 파동 과정에서 김영삼 총재가 보인 어정쩡한 태도로 김영삼과 결별하고 비주류가 되었다. 1976년 전당대회에서 이철승을 지지하였다. 이후 이철승의 중도통합론이 비판을 받자 1979년 5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소장파 의원들과 자민동지회를 결성하여 다시 김영삼을 지지하였다. 1979년 6월 김영삼 체제가 출범하자 신민당 정책위의장이 되었다. 한편 신민당 국회의원 시절 차지철 대통령경호실장과 밀월관계를 유지하였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입건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 정치규제도 당하였다. 이 때 모진 고문에 못 이겨 허위사실을 자백했다는 논란이 있다. 1984년 정치규제에서 해금되고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후보로 시흥군-광명시-안양시-옹진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주장하는 김영삼-김대중 양김에 반기를 들고 이철승, 이택희 등과 이민우 구상을 지지하였다. 이 때의 상황을 제5공화국(드라마)에서는 장세동 국가안전기획부장의 사주를 받는 것으로 묘사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기도 안양시 갑(현재의 만안구)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통일민주당 이인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이 말썽이 되자 잠적하였다가 김영삼 정권 때 사법처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