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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宅熙
1934년 01월 01일 ~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1934년 충청북도 충주군에서 태어났다. 충주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석사)를 졸업하였다. 이후 단국대학교 정치학과에서 강사로 일하였다.
1966년 신한당에 몸담았다. 이후 신한당이 민중당과 통합하여 신민당이 되자 신민당에 속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충주시-중원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1971년의 제7대 대통령 선거와 관련된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출마하지 못하였다. 이후 김영삼 총재 체제 때는 비주류에 속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신민당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중원군-제천군-단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이종근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불법으로 연행되어 고문당하고 강제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였다. 그리고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1984년 정치규제에서 해금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중원군-제천시-제원군-단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이춘구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같은 해 신한민주당 정책위의장에 임명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김대중-김영삼에 반기를 들고 이철승, 이택돈 등과 이민우 구상을 지지하였다. 그리고 김용남(용팔이) 등 정치깡패를 동원하여 통일민주당 창당을 방해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북도 충주시-중원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같은 해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으로 구속되어 교도소에서 복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