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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16-17시즌 스쿼드 |
1 한다노비치 · 2 안드레올리 · 5 갈리아르디니 · 6 마리우 · 7 콩도그비아 · 8 팔라시오 · 9 이카르디 · 11 비아비아니 · 15 안살디 17 메델 · 19 바네가 ·20 세인즈버리 · 21 산톤 · 23 에데르 · 24 무리조 · 25 미란다 · 30 카리소 · 33 담브로시오 · 44 페리시치 46 베르니 · 55 나가토모 · 77 브로조비치 · 87 칸드레바 · 94 야오 · 96 가브리엘 · 97 라두 · 99 피나몬티 |
* 이 표는 간소화된 버전입니다. 스쿼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주세요. * 본래 스쿼드에서 타 팀으로 임대간 선수는 제외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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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No. 19 | |
에베르 막시밀리아노 다비드 바네가 (Éver Maximiliano David Banega) | |
국적 | 아르헨티나 |
생년월일 | 1988년 6월 29일 |
출생 | 산타페 주 로사리오 |
신체조건 | 174cm |
포지션 | 중앙 미드필더 |
소속팀 | 보카 주니어스 (2007) 발렌시아 CF (2008~2014)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임대) (2008~2009) 뉴웰스 올드 보이스(임대) (2014) 세비야 FC (2014~2016)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16~ ) |
국가대표 | 40경기 3골 |
1 소개
아르헨티나 중원의 핵심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포지션은 미드필더이며 주로 중앙 내지 2선의 전방에서 뛰는 역할을 맡고 있다.
2 클럽 경력
보카 주니어스의 유소년 팀 출신으로, 불과 18살의 나이에 수준급의 재능을 보여 주며 1군에 승격되었다. 팀의 동료 미드필드였던 페르난도 가고가 2007년 1월에 레알 마드리드 CF로 이적함에 따라,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계승자로 선택되었다.
바네가는 2007년 2월 10일, 4-0으로 승리한 CA 반필드 전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2007년 4월에는 교체 아웃되며 팬들의 기립박수를 받는 등 빠르게 팀의 주요 선수로 성장하였다.
2008년 1월 바네가는 라 리가의 명문 발렌시아로 이적하였으며 €20m의 거액의 이적료가 발생했다. 감독인 로날드 쿠만의 비호 아래 꾸준히 출전했지만 20살도 안된 어린 바네가는 리그 적응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08-09 시즌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임대되어 뛰었고, 09-10 시즌에는 EPL의 에버튼 FC로의 임대가 성사되기 직전 취업비자 발급이 되지 않아 무산되었다. 쿠만의 경질 이후 은사와 같은 우나이 에메리가 부임한 후에야 포텐을 터트려 리그 내 최고 수준의 미드필더 자원으로 자리잡는다.
하지만 불운한 자동차 사고[1]로 부상을 입고, 그 여파로 폼이 떨어져 아르헨티나로 도피성 임대기간을 보낸다. 복귀 후에도 돌아오지 않는 폼에 애물단지로 전락한 그를 다시 부른 건 세비야에 부임한 옛 은사 에메리 감독. 세비야에서 에메리 감독의 전술의 코어로서 활약하였고 유로파 3연속 제패에 기여하였다. 특히 15-16시즌 유로파 리그 결승전에서는 MOM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2016년 6월 코파 아메리카에서 활약하는 가운데 기자회견에서 인테르나치오날레 행을 인정했다. 세비야와의 계약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었는지는 불명.[2] 일단 인테르는 코파 아메리카가 끝나서야 오피셜을 낼 생각으로 보인다. 바네가의 영입으로 요베티치계륵티치나 에데르의 공격을 도울수 있고 메델 멜루 콘도그비야 브로조비치 넷밖에 없던 중원 뎁스를 보강하는 등 인테르 입장에서는 꿀영입...이지만 만치니는 야야 투레를 사달라고 조르는 중이다.근데 만치니가 짤렸다.
2016년 7월 7일 이적이 공식적으로 완료되었다. #
3 국가대표
바네가는 U-20 국가대표에 세르히오 아구에로와 더불어 캐나다에서 열린 2007년 FIFA U-20 월드컵 스쿼드에 차출되었고, 7경기 모두 출장하여 팀의 우승에 힘을 보탰다.
2008년 1월, 발렌시아 CF로 둥지를 옮긴 후, 그는 같은 해 2월 6일에 과테말라전에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선발로 치렀다. 같은 해 여름, 그는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금메달 사냥에 공헌하였다.
발렌시아에서 기복없는 모습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디에고 마라도나로부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열린 2010년 FIFA 월드컵의 23인 최종 엔트리에 들지 못하였다. 마라도나 사임 이후에는새로 부임한 세르히오 바티스타에 의해 발탁되어 중용되는 듯했으나 2011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바티스타 사임 이후 알레한드로 사베야가 부임하면서 국대와 다시 멀어지게 된다.[3] 2015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최종 엔트리에 들어가서 출전하였다. 주로 교체출전. 이듬해에 열린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에서는 주전 미드필더로 도약하며 미드필드의 키맨으로 활약했다.
4 플레이스타일
뛰어난 수준의 패스와 크로스, 그리고 탁월한 경기 운영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볼을 다루는 능력도 좋은 선수. 중앙에서의 볼 배급을 주로 담당하는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는다. 세비야나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에선 공격적인 롤을 주로 수행했지만 아르헨티나에 있던 시절엔 수비형 미드필더 롤을 수행하기도 했다. 다만 다소 느린 발과 약한 몸싸움이 단점. 대표팀에서 자주 외면 받은 것도 이런 면이 대표팀에서 두드러진 탓이 컸다.
현재 아르헨티나 내에서는 그와 비등할만큼의 실력을 가진 미드필더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며 사실상 중원에서 패스 플레이에 가장 능하고 2선에서의 공격이 부진할 때 이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거의 흔치 않은 중원 자원이라고 볼 수 있다.
전방에서 공격을 풀어가는 역할의 공미, 그리고 중원을 장악하고 여기저기 활보하는 박스 투 박스나 마스체라노와 같은 전투적인 수비 스타일의 미드필더들이 거의 즐비한 아르헨티나 국대 중 거의 유일하게 수준급의 패스 플레이를 구사할 수 있는 선수이기 때문에 그만큼 아르헨티나 중원에 대체할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부상 등의 여파와 전술적인 문제 등으로 국대에서는 의외로 자주 기용되지 못했다. 만일 국대에서 자주 차출되었다면 그만큼의 실력을 보여주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5 트리비아
수음 행위를 한 동영상이 돌아서 곤욕을 치룬 적도 있다. 그래서 한때 딸네가로 불렸지만, 지금은 가정을 이루었으며, 2016년 둘째를 득녀하면서 현재 딸만 둘이다. SNS에서 가족 사진을 굉장히 많이 올리는 편이다.- ↑ 셀프 주유소에서 주유하던 도중 차 바퀴가 발을 깔고 지나갔다고 한다(...).
- ↑ 1년 자동갱신 조항이 있는 상황에서 FA 자격으로 인테르에 가게 된 상황이라 해당 조항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불명인 상황이다. 에이전트는 해외 구단 이적 시 실효가 없는 조항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세비야 측은 조항이 이미 발효되었다고 주장하는 상황. 인테르가 위약금을 내고 해지시켰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아딜 라미처럼 XAVI를 내고 해지했거나 - ↑ 다만 평가전에서는 종종 기용된 일이 많았다. 다만, 부상 이후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폼과 더불어 수비주의적인 전술을 선호하는 사베야의 성향으로 인해 다시 국대에서 제외된 것이 컸다.
무엇보다도 그때는 그래도 페르난도 가고가 그럭저럭 쓸 만했던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