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왕국 Regno di Sicilia(이탈리아어) Regnum Siciliae(라틴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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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 국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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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년 ~ 1816년 | ||
위치 |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섬 | |
수도 | 팔레르모[1] 나폴리[2] 카타니아[3] 팔레르모[4] | |
정치체제 | 군주제 | |
국가원수 | 왕 | |
언어 | 이탈리아어, 라틴어 | |
민족 | 이탈리아인 | |
종교 | 가톨릭 | |
주요사건 | 1130년 건국 1282년 시칠리아 만종 사건 1816년 양시칠리아 왕국 건국 | |
통화 | 추가바람 | |
성립 이전 | 이슬람의 세력권 | |
멸망 이후 | 양시칠리아 왕국 |
1 개요
12~19세기 초까지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에 존속했던 왕국.
2 역사
1071년 로베르 기스카르를 위시한 노르만 기사들이 시칠리아 섬을 지배하던 이슬람 군주들을 몰아내고 세력을 구축한 것을 시작으로, 1130년 시칠리아의 백작인 루지에로 2세가 대립교황에게 축성을 받아 성립했다.
1186년 루지에로 2세의 유복녀이자 상속자인 콘스탄체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6세와 결혼하여 시칠리아 왕국의 권리가 제국의 황제 가문인 호엔슈타우펜 가문에게로 넘어간다. 그러나 교황은 황제의 영향력이 이탈리아 남부에 뻗치는 것을 싫어했고, 프리드리히 2세와 콘라트 4세가 잇따라 죽고 콘라트 4세의 아들인 콘라딘의 왕위를 숙부 만프레디가 찬탈하자 프랑스 앙주 백작이며 루이 9세의 동생인 카를로 1세를 불러왔다. 카를로는 만프레디를 전투 중 살해하고 시칠리아 왕이 됐다. 적법한 왕위를 주장하고 쳐들어온 콘라딘까지도 1258년에 무찌르고 살해해 호엔슈타우펜 왕조의 적통 후손을 단절시키니, 시칠리아에서 카를로에 도전할 사람은 없어지고 카를로의 왕위는 튼튼해졌다.
카를로 1세는 이후 동로마 제국의 제위를 노리고 팔레올로고스 왕조의 미카일 8세를 전복시키기 위해 영내의 주민들을 압제하고 세금을 많이 거두었다. 불만에 차있던 시칠리아 사람들은 1282년 만프레디의 사위 페드로 3세 대왕과 미카일 8세의 사주로 시칠리아 만종 사건을 일으켜 카를로는 이탈리아 반도로 달아났고, 국명처럼 정말 시칠리아밖에 남지 않게된다.
이후 독립한 시칠리아는 곧바로 페드로 3세가 왕위에 올라 아라곤 연합 왕국에 속하게 된다. 그리고 1816년에는 나폴리 왕국에 합병당해 양시칠리아 왕국으로 재 탄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