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이기

酈食其

1 개요

초의 모사.

역생(酈生)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生은 '선생님' 정도의 의미로 '역 선생' 정도의 뜻이다. 한자 때문에 '역식기'라고 읽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잘못. 역이기가 맞다. '食'자는 물론 '밥 식'이지만 사람 이름으로 쓰일 때는 '이'라고 읽는다.

사마천은 그의 열전을 기록하면서 ‘유학자의 풍도에다 협객의 기개가 흘러 넘치는 실패한 영웅’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역이기의 실패는 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협객의 기개때문이었다.

2 활동

어려서부터 독서를 즐겼으며 집안이 가난해서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궁핍한 생활의 연속이었으나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발벗고 나서서 해결해 주는 협객의 기질도 있었다.

늙은이가 되도록 별 명성없이 지내다가 진에 반기를 든 진승을 찾아갔으나 그의 역량에 실망, 그 후 항우의 삼촌 항량의 군세를 보고 자진해서 찾아갔는데 이미 공대에 모사 풀이던 항량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국 임관할 만한 다른 세력을 찾던 역이기는 진나라를 차근차근 먹어가던 유방의 군세를 보고 그에게 찾아갔다.

근데 찾아가보니 유방은 시녀들과 발 닦으면서 희희낙락하고 있었고 역이기는 노인 대하는 태도가 돼 먹지 못한 걸 보고[1] 욕을 바가지로 해댔는데 오히려 그 당당함에 반한 유방이 그와 진지한 면담을 요청한 후 그의 식견에 탄식해 그를 모사로 임명한다.

수수대전 후 다시 항우의 편이 된 왕 위표를 설득하기 위해 위로 가지만 별 소득없이 돌아온다.

2.1 육국의 후예를 봉하려 하나 실패하다

항우를 압박하기 위해 6국의 후예에게 봉토를 내려 공격하자며 봉건제를 주창하지만, 장량젓가락 설교에 당해 포기하게 된다.

유방은 어느날 역이기를 불러 어떻게 항우의 전략에 대처하는게 좋은지 의견을 물었다. 역이기는 위나라에 가서 위왕 표를 설득하지 못한 이래로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마침 유방이 자신에게 계책을 묻자 다시 기운을 차리고 힘있게 말했다.

“옛날에 은나라의 탕왕은 하의 걸왕을 정벌하고 걸의 후대를 기(杞)에 책봉하였고, 주나라의 무왕은 은나라의 주왕을 멸하고 은나라의 후대를 송(宋)에 책봉하였습니다. 이러한 방법은 멸족당한 귀족을 위로하고 천하에 인의(仁義)를 과시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진시황은 제후를 정벌하고 그들의 종묘사직을 없앴으며 제후의 후대가 설 수 있는 기반마저 부수었습니다. 그래서 진승과 오광이 반진(反秦)의 깃발을 들자 제후의 후예들이 모두 연합하여 진나라를 공격하였던 것입니다. 만일 대왕께서 육국 제후의 후대들에게 왕호를 회복시켜 주면 그들과 백성들은 모두 대왕의 은덕을 칭송하고 한(漢)나라에 귀순할 것입니다. 그러면 대왕의 인덕은 천하에 널리 퍼져서 오만하고 불손한 초패왕 항우도 대왕께 머리를 숙일 것입니다.”

유방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대는 육국의 도장을 가지고 육국 제후의 후대를 찾아 나의 명의로 그들을 왕에 봉하도록 하시오.”

역이기가 육국 제후의 후예에게 유세를 하기 위해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을때, 장량이 이 소식을 듣고 유방에게 달려와 말했다.

“장자방(張子房), 어서 오시오. 방금 항우를 굴복시킬 수 있는 가르침을 얻었소.”

“역이기의 계책을 말하는 것입니까?”

유방이 고개를 끄덕이자 장량이 소리쳤다.

“그렇다면 그만 두십시오. 대왕께서 그동안 쌓은 사업이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유방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무엇때문이오?”

장량이 탁자에 있는 젓가락을 집어 올리며 말했다.

“옛날 은 탕왕과 주 무왕이 하 걸왕과 은 주왕의 후대에게 봉지를 내린 것은 그들의 세력이 미미하고 보잘 것 없어 충분히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대왕께서는 지금 항우의 세력을 통제할 수 있습니까?”

장량은 유방의 앞에서 젓가락 하나를 분지르며 계속 말했다.

“천하의 명사(名士)가 대왕의 곁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조금이라도 공을 세워 한 뼘의 땅이라도 봉지로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대왕께서 육국 제후의 후대에게 왕위를 내려준다면 그들은 자신의 조국을 찾아 모여들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대왕을 따르겠습니까?”

장량은 다시 젓가락 하나를 분지르고 계속 말을 꺼냈다.

“현재 제후의 세력 중에서는 초(楚)나라가 가장 강성합니다. 만일 대왕께서 육국의 후예에게 땅을 내려주고 왕으로 봉한다면 그중에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초패왕 항우에게 항복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항우의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대왕의 생각은 근본부터 어긋나고 맙니다.”

장량은 쉼없이 제후의 후대에게 땅을 내려서는 안되는 여덟가지 이유를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여덟번째의 젓가락을 분지른 장량이 말했다.

“이처럼 역생의 계책은 위험하기 그지없습니다. 당장에 그런 계획을 철회하시기 바랍니다.”

유방은 장량의 말에 탁자에 있는 음식을 바닥에 내던지며 역생을 욕하였다.

“유치한 유생 놈 때문에 대사를 그르칠 뻔하다니. 당장에 역이기에 내린 육국의 인수(印綬)를 거두어오시오.”

역이기의 계책은 장량의 말대로 실책 중의 실책이었다. 그는 지난날의 소진과 장의가 역설한 합종책과 연횡책의 성과에만 집착하여 역사의 발전과정과 시대상황의 분석에 미흡했다. 당연히 역이기의 계책은 성공할 수가 없었다.

훗날 「한기(漢紀)」를 쓴 순열(筍悅)은 역이기의 계책에 대해 이렇게 평하였다.
“처음에 장이(張耳)와 진여(陳余)가 진승에게 육국을 회복하고자 권하였을 때는 자기들의 동맹군을 튼튼하게 하기 위함이었고, 역이기가 한왕에게 건의한 계책도 이와 같은 목적이었다. 하지만 같은 계책이라도 시기와 정세에 따라 결과가 달리지는 법이다. 진승이 반진의 깃발을 들었을때는 천하의 영웅들이 모두 진나라가 멸망되기만을 바랐으며 이때에는 초한전쟁과 같은 국면은 발생하지 않았고 예상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의 백성들은 모두 항우의 멸망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육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은 진승에 대해서는 자신의 동맹군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하였고 진(秦)나라에는 많은 적군을 만들어 준 셈이었다. 하지만 진승은 당시에 천하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육국울 세우고도 그 결과는 자신의 세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것을 두고 허명(虛名)을 쫒아 실리(實利)를 놓쳤다고 하는 것이다. 한왕의 경우도 진승과 다를 바가 없다. 이는 자신의 세력을 떼주고 적에게 도움만 주는 계책이다. 따라서 장이, 진여, 역이기가 다함께 육국을 세워야 한다는 게책은 모두 잘못된 생각이다.”

…말이야 맞는 말이지만 장량은 설득한답시고 멀쩡한 젓가락을 8개나 분지르고 유방은 음식을 내팽개치고….(…) 초한전쟁 당시 유방 집단이 얼마나 거친 인간들이었는지 알 수 있다. 유방은 동네 양아치였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장자방은 귀족이었잖아?! 어차피 장량도 진시황 암살 음모 전후의 삶을 따져보면 꽤나 거칠게 살았다.[2]

석륵이 이 이야기의 처음 부분을 듣고 "역이기의 계략대로 하면 한고조는 반드시 패배한다."고 중얼거렸다가, 뒷 이야기에서 "장자방이 있었기에 한고조가 이길 수 있었구나."라고 감탄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2.2 형양, 성고의 재탈환을 간언하다

유방이 부하의 목숨을 희생하며 탈출하는 등 힘껏 똥줄을 빼내며 항우에게 버텨, 형양과 성고가 함락됐음에도 불구하고 팽월의 후방 유격전으로 인해 항우는 거의 다 차려져 가는 밥상 앞에서 말머리를 동으로 돌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에 유방은 한숨 돌린 후 저지선을 보다 서쪽으로 재설정하려 했으나 이에 역이기는 "하늘 위의 하늘(知天之天)을 아는 사람은 왕업을 이룰 수 있다. 왕자(王者)는 백성을 하늘로 생각하고(以民爲天),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생각한다(以食爲天)."며 유방에게 오창의 곡식은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형양과 성고를 재탈환해 저지선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방은 이를 받아들여 항우가 남겨놓은 수비군을 대파, 항우가 간신히 손에 넣은 형양과 성고 및 오창의 곡식을 다시 손아귀에 넣으며 동쪽으로 진군한 항우의 처지를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2.3 최후

이렇게 항우가 고생하는 사이 한신은 북부 전역을 아우르는 대활약을 펼쳤고, 남은 제후국으로는 제나라가 있었다. 유방은 한신에게 제나라도 함락시키라고 명령했지만 역이기는 유방의 앞에 나아가 자신이 제나라를 설득해 항복시키겠으니 사신으로 보내달라고 간언했고 이를 유방이 수락함에 사신으로서 제왕 전광 앞으로 나아가게 되었고, 항복을 받아냈다. 이것만으로 엄청난 공을 세우고 돌아갈 수 있었는데...

원래 제를 공격하기로 되어 있던 한신은 이 소식을 듣고 이대로면 자기 공을 빼앗길것이라는 괴철의 꼬드김에 넘어가서 제나라를 공격했다. 이미 유방에게 항복하여 마음을 놓고 있던 제나라 군대는 이 공격에 그대로 붕괴되어버렸고, 이렇게 되자 역이기는 항복을 권유하는 척해서 긴장을 풀게 한 틈을 타 기습을 가한 간교한 술수를 쓴 셈이 되었다. 제왕 전광은 역이기와 하하호호 술 잘 마시고 있다 한신의 습격 소식을 듣고 네가 이를 멈추게 하지 못하면 널 튀겨 죽이겠다고 했으나, 일이 돌아가는 걸 꿰뚫고 한신을 막을 수 없다는 걸 통찰한 역이기는 공을 세우고자 했으나 어그러졌고 이제 일은 어찌될 수 없다며 표홀한 태도를 취했고 분노한 전광은 역이기를 튀겨서 죽였다.

3 후대

다행히 그의 동생 역상은 개국공신의 반열에 오른다. 그것도 단순한 개국공신이 아니라 공신서열 6위[3]에 4800호를 식읍으로 받았다. 역상 역시 유방의 중요한 장수로 활약했으며 사기 <번역등관열전>의 '역'이 바로 역상이다. 번쾌, 하후영, 관영과 함께 실려 있는 걸 보면 그의 대접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형이 처참하게 죽은 것에 대한 보상도 어느 정도 담겨있던 듯 하다.

아들 역개도 고량후에 봉해져, 역이기의 공훈에 대한 보답을 받았다.

전광의 숙부이자 역이기를 같이 삶았던(...) 전횡은 훗날 유방의 명령으로 낙양으로 오던 중 '내가 직접 삶아 죽인 자의 동생을 부끄러워 어찌 본단 말인가' 라고 하고는 자결해버렸다.[4] 전씨 측에서도 나름 목숨으로 사죄를 한 셈이다.그리고 간접적으로 팀킬한 한신도 죽었다 그런데 만악의 근원인 괴철은 살아남았다

비록 육국의 후예를 봉하는 방안은 그의 단견이었음이 드러났지만, 거듭된 패배로 기가 죽은 유방을 독려해 다시 형양, 성고를 공략하게 한 것은 대단한 공훈이다.[5] 그리고 입 하나로 제나라라는 거대 봉국의 투항이라는 엄청난 공을 세웠다. 비록 한신의 욕심 때문에 망했지만, 언제든지 적(敵)으로 돌변할 수 있으며 도무지 신뢰하기 어려운 군벌들 사이를 오가면서 외교를 펼친 것은 어지간히 담대하고 언변에 자신 있는 인물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비범한 인물이었던 것은 틀림없다.

4 미디어의 역이기

고우영 초한지에선 일부러 한신이 역이기를 엿먹이려고 제를 공격한 것처럼 나온다. 그리고 역이기는 죽을때까지 한신이 자기를 엿먹인줄 모르고 얼굴에 두건이 씌워진 채 투덜대면서 끌려가다가 미끄럼틀에서 기름솥으로 다이빙(...) 대체로 거의 모든 초한지 판본에서는 조를 멸망시킨 한신의 공보다 제를 세치 혀로 회유한 역이기의 공이 높이 평가받는 것에 시기한 한신이 역이기도 없앨 겸 제도 멸해 공도 세울 겸 쳐들어간 걸로 해석한다.

고우영 초한지와는 달리 시바 료타로항우와 유방에서는 한신이 오히려 역이기를 좋아한다는 서술이 있다. 역이기의 말과 달리 한신이 제나라를 공격한 이유도 괴철에게 넘어갔기 때문인 것으로 묘사된다. 괴통이 한신에게 제나라를 공격할 것을 진언하면서 "변사에게는 가장 영광된 죽음이며, 변사의 혀는 때로 그 자신을 죽이는 법"이라고 말하자 거기에 위안을 얻고 제를 공격한다.

문정후가 그린 만화 '영웅 초한지' 4권 후반부(='제나라 정벌전')에서는 처음엔 한신이 역이기의 계책을 수용하려 했으나, 한신을 독립된 세력으로 옹립하고자 했던 괴통이 한신의 군사행동보다 역이기의 행동이 더 높이 평가받을 것이라고 충동질해 제로 쳐들어가게 했고, 이에 뒷통수를 맞은 역이기는 한신의 야심을 생각치 못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통감하며 죽는다. 이후 마지막 '영웅 초한지' 5권 초반에 유방은 한신의 공을 치하하면서도 한편으로 역이기의 식솔들에게 후한 은상을 내리는 방식으로 한신이 역이기를 죽게 만든 사실을 감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초한전기에서는 34화에서 호형호제하는 사이인 진류성 현령에게 유방에게 항복을 하라고 권하는 것으로 첫 등장. 현령이 거부하자 그를 죽이고는 진류성의 관리와 장수들을 설득하여 유방에게 항복한다. 유방은 역이기를 반갑게 맞이하고 참모로 영입한다. 그렇게 유방의 조언자 역할을 하다가 생애 최대의 찬스였던 제와의 동맹을 맺기 위해 임치로 향해 세치 혀로 제왕과 전횡을 설득해 동맹을 맺는데 성공하지만 역이기의 이런 공으로 한순간에 물먹을 위기에 놓인 한신은 괴철의 조언을 듣고 바로 나태해진 제나라를 급습, 분노한 제왕은 역이기를 튀김으로 만들어버린다.
  1. 참고로 유방은 당시 유생의 모자에 방뇨한 적이 있을 정도로 유생을 아주 박대했다. 전쟁시기인 만큼 입이나 놀리는 유생보다는 군사적인 인재가 필요했던것. 그래서 역이기는 시작부터 "나는 유생이 아니다. 고양의 술꾼일 뿐이다" 라고 소리쳤다.
  2. 여담으로, 이 기록은 중국인들이 이 때 이미 젓가락을 사용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굳이 이게 아니라도 한비자가 주왕의 상아 젓가락이라는 고사를 전했지만...
  3. 소하, 조참, 장오(유방의 사위), 주발, 번쾌의 바로 다음 서열이다. 하후영(8번째), 관영(9번째)보다도 높다.
  4. 여담으로 이 소식을 들은 유방은 전횡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왕의 예로서 장사를 지내주었는데 전횡과 함께 낙양으로 온 가신 두 명도 장례가 끝난 후 전횡의 무덤 곁에서 자결했다. 전횡은 제나라 멸망 후 오호도라는 섬에 숨어살고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듣자 섬에 있던 전횡 휘하의 식객 500명도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사자성어 "만가輓歌"의 유래이기도 하다.
  5. 형양, 성고를 항우가 차지한 채였다면 항우가 광무산을 끼고 형양, 성고의 기각지세를 이용해 오창의 곡식을 받아먹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