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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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烹刑. 고대의 형벌 중 한가지.

말 그대로 죄인을 가마솥에 넣어 삶아(烹) 죽이는 형벌로, 살아있는 인간이나 기름, 동물 지방이 있는 가마솥에 집어넣고 뚜껑을 닫아 끓이거나, 끓고 있는 상태에서 처넣어 죽여버리기 때문에 그 잔혹함이 능지형이나 십자가형, 화형 정도가 아니면 따라갈 형벌이 없다. 이론상으로는 피부를 구성하는 단백질이 열로 인해 파괴되면서 신경세포도 파괴되고 이로 인해 고통을 느끼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겠지만 뜨거운 물에 의한 고통은 꽤나 길다. 물 때문에 열이 피부심층까지 폭발적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순식간에 3도 화상을 입을 정도의 열이라면 고통이 적겠지만, 엄청난 온도를 자랑하는 화형을 당해도 고통에 울부짖는 비명이 나오는 상황에서 열이 상대적으로 천천히 전해지면서 고통받는 시간이 증가하는 팽형의 끔찍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보면 된다. 끓고 있는 상태에서 넣어 죽이는 방법과 그냥 보통의 상태에서 시작해 끓여 죽이는 방법 모두 공존했다. 당연히 후자가 더 고통스럽다. 서서히 올라가는 온도를 느끼면서 죽어야 하니...[1] 다른 말로 가마솥에 넣고 끓인다 하여 '정확(鼎鑊)의 형벌'이라고도 불렸다. 그 때문에 엄청난 중죄인, 가령 국가에 반역했다거나 역성혁명을 일으키려 했다거나 하는 등의 죄인들만이 이러한 형벌을 당했다.

춘추전국시대초의 혼란기 때까지만 해도 상당히 흔하게 사용되었는지, 전국시대 의 경우 즉묵이란 지방을 다스리던 영주와 뇌물 받아 먹은 관리들을 세트로 전부 끓는 가마솥에 던져버렸다든가 하는 것이 기록에 남아 있다. 금의야행의 고사에서 항우를 가리켜 "초나라 놈들은 원숭이 새끼가 갓 쓴 거나 똑같다더니 진짜인 듯(楚人 沐猴而冠)"이라고 비난한 한생이 경호원 비슷한 관직인 집극랑 한신에 의해서 기름에 튀겨져 죽은 일이 있고, 세객 역이기가 제왕을 설득시켜 무장해제시키고 항복 문서에 도장만 찍으면 되는 상황에서 공을 빼앗기게 됨을 시기한 한신이 제를 쳐들어가자 역이기는 정확히 이 형벌을 당하였다.

하지만 워낙 끔찍한 형벌인 데다가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크며 내부에 있는 사람이 반항해도 열리지 않는 거대한 가마솥을 준비하는 등 형벌을 위해 준비해야 할 특수도구가 필요하며, 가마솥에 기름이나 물을 넣고 끓이는 등 미리 준비해야 하는 작업도 많고[2], 삶아진(또는 튀겨진) 시체 처리도 곤란해지는 등의 문제점이 있는 데다가 다른 형벌과는 달리 처리 속도까지 늦어지므로 후대로 갈수록 기피되거나 다른 형벌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굳이 팽형을 가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죄인이 고통 속에 죽는 것을 꼭 보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다고 해석되므로 이런 형벌이 자주 가해지면 폭군 소리를 듣는 경우가 있었다.

2 사례

실제 중국에서는 팽형에 사용되었다는 솥이 발굴된 적이 있다.

이시카와 고에몽이 기름 끓는 가마솥에 던져져 최후를 맞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일본에서도 같은 형태로 존재했던 형벌인 듯하다. 사츠마류큐 왕국을 침공하여 복속시킬 때, 끝까지 무릎을 꿇지 않았던 류큐의 대신 쟈나 웨카타 리잔(謝名親方利山)을 팽형에 처했다.

현대에 들어서도 공식적인 처벌은 아니지만 사례가 있다(...) 2002년 우즈베키스탄의 무자파르 아바조프는 2002년 종교적인 이유로 체포된 후 끓는 물에 담겨지는 고문을 받다가 숨졌다. 그의 사체는 온 몸에 화상을 입은 건 기본이고 머리 뒤에는 피투성이의 거대한 상처가 있었으며 손발톱은 모두 빠져 있었고 이마와 목은 멍들어 있었다고 한다.

뉴욕에는 팽살과 관련된 도시전설이 있다. 이탈리아 마피아삼합회가 한창 세를 다투던 시절에 어느 아침 차이나타운과 리틀 이탈리아의 경계에 거대한 솥이 놓여져 있었다고 한다. 열어보니 행방불명되었던 이탈리아 행동대원이 잘 삶아진 채 들어있었고... 대륙의 포스에 데꿀멍한 이탈리아 마피아가 삼합회에게 세를 넘겨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3 조선의 팽형

그런데 이를 조선에서 수입(?)하면서 변형된 방식으로 변했는데, 주로 서울 종로 한복판에서 탐관오리들에게 이 형벌을 가했다고 한다. 팽형의 진행 과정과 연계하면 이것이 명예형임을 알 수 있다.

이는 KBS 스펀지 124회 방송분에서 다룬 적이 있으며, 이규태[3] 이야기에 따르면 조선의 팽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죄인을 앉혀놓고 "팽형을 하겠다"고 선고한 후 가마솥을 내오면 집행인들이 열심히 장작을 넣고 불을 피우는 을 하거나 딸랑 종이 한 장 넣고 태운 다음 죄인을 아무것도 없는 빈 가마솥에 넣은 후 뚜껑을 닫고 잠깐 기다린다. 이때 죄인의 유가족들은 정말 상을 당한 것처럼 막 통곡해야 하며, 죄인을 가마솥에서 꺼낸 후부터 그 죄인은 두 눈 뜨고 멀쩡히 살아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사망자가 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이 형벌이 집행된 시점에서 이미 그냥 걸어다니는 시체.

그래서 죄인의 유가족들은 죄인을 죽은 사람 취급하여 말도 붙일 수 없는 건 물론이며 장사도 치러야 하고 시묘살이도 해야 하며 매년 제사도 지내야 하고, 당연히 죄인도 고인으로 간주되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해 밖에 함부로 돌아다니지 못하며 식사도 몰래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게다가 낮에도 자기 집의 방 한칸에 갇히다시피 살면서 어떠한 편의 및 서비스도 받을 수가 없을 뿐더러 평생 그렇게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심지어 이러한 상황에서 부인과 정을 통하여 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는 사생아가 되며 조선 말기에는 몰래 돌아다니다가 놀림거리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누군가에게 원한을 산 경우라면 그 누군가에게 진짜로 살해당할 수도 있었는데 어차피 공식적으로 죽은 사람이기에 죽여도 살인죄가 되지 않기 때문이며 게다가 악질 탐관오리였다면 더더욱 그 확률이 올라간다.

결국 말 그대로 살아있되 살아있지 않는 것과 같은 존재의 부정, 게다가 자살한 사람은 나중에 무죄로 입증되면 신원이 회복되는 것과 달리 팽형을 택한 죄인은 죄가 없어져도 신원이 회복되지 않는 게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한마디로 목숨을 보존하는 대가로 명예가 영원히 죽어버린다.

중국 쪽에 비하면 꽤나 온건한 건 사실이지만 나름 고통스러운 형벌이다. 사회적으로는 이미 죽은 사람으로 간주되니 당연히 두 눈 똑바로 뜨고 살아있어도 고인 취급을 받는다. 자신이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는 이미 죽은 사람 취급하여 말도 붙이지 않는 데다가 본인도 본인의 가족들이 관심도 안 가져주고 사회에서도 사람 취급도 안해주니 살아있는 것 자체가 심리적 고문이나 다름없다.

원래 조선은 유교주의적 입장에 따른 교화에 의한 통치를 중시하고 과도한 형벌을 금기시했기 때문에 이러한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렇다고 인권이 확립되기 전의 전세계에서 다 그랬듯이 조선에서 잔인한 신체형이 행해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과도한 형벌 금지가 없던 해외의 고문, 처형 방식에 비하면 조선은 굉장히 온건한 쪽이긴 하다.

죽이진 않아도 사회적으로 매장시킨다는 점에서 파문하고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조선의 팽형은 그야말로 살아도 살아있는 게 아니게 되어버리니 보통 팽형을 하기 전 "자결과 팽형 중 어떤 걸 할 거냐?"고 물었는데, 그 질문을 던진다면 십중팔구 전자를 택했었다. 당시에는 체면을 중시하는 것도 있었고, 앞서 언급했듯이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닐 정도로 정신적인 고통을 길게 감내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 팽형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형벌이 고종대까지 진행되어 일본인과 선교사의 기록에 남겨지기도 했다.

고대 중국에서 행해졌던 궁형도 이와 비슷하다. 당시 이 형벌을 받은 죄인은 궁형과 대벽(참수) 중 어떤 형을 받을지 선택할 수 있었다. 전자는 고자가 되고 생은 포기하지 않는 대신 명예가 영원히 죽어버리는 형벌이었고 후자는 생을 포기하는 대신 명예를 지킬 수 있는 형벌이었다. 즉, 궁형과 마찬가지로 팽형도 죄인에게 "생명과 명예 중 무엇을 포기할 거냐?"고 선택권을 주는 셈이다. 팽형은 죄인이 삶에 대한 애착으로 모든 명예를 포기함을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종의 퍼포먼스인 것이다.

단, 조선에서 실제로 팽형이 정말 삶는 것이든 명예형이든 얼마나 행해졌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리 많이 시행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아니, 시행된 적이나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실록에서 팽형과 관련된 기사는 대부분 춘추전국시대 제위왕이 탐관오리를 팽형에 처했다는 고사를 들먹이며 부정한 관리를 처벌하라는 주청이 대부분이지, 실제 시행된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여기에 따르면 철종 때 어떤 탐관오리가 팽형을 당했다고 한다. 철종조 팽형 집행 사례. 하지만 역시 실록에는 해당 기록이 없다. '실제로' 팽형을 당했다면 이는 조선 왕조에서 찾아보기 드문 형벌로 이름이 남아있어야 하는데, 이름도 없이 '어떤' 탐관오리라 하니 신빙성에 의문에 갈 수밖에 없다.

위에는 연산군이 실제로 삶았다는 말이 있었지만, 연산군일기를 다 뒤져도 그런 기록은 없다.

여담으로 흔히 사용하는 '팽 당하다'라는 말의 어원이라는 설이 있다. 주로 약속이 어겨지거나, 이용가치가 떨어져 버림받은 경우에 쓰는 말인데, 후자의 경우엔 사자성어 토사구팽 또한 자주 쓰인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묘하다.

4 매체에서의 등장

서프라이즈에서도 위의 조선시대 팽형에 대해 방영한 적이 있었는데 고증 해석 잘하다가 하필 마지막 예시 풍속화로 이시카와 고에몽이 팽형당하는 그림을 넣는 병크를 터뜨린 적이 있었다. 조선시대 배경을 소재로 썼으면 차라리 지옥에서 가마솥 형벌 받는 이미지만 쓰지 그랬어

고전 해학극에서 김갑수가 이 형벌을 받는 이야기가 있다..

이대근이 나온 연산군 작품에서 충신 하나가 이러한 식으로 팽형을 받는다. 원래는 실제로 삶으려는데 그 의기가 가상하다고 해서 이러한 식의 팽형으로 감형했는데... 충신은 자결한다. 통곡하는 연산의 연기가 일품.

참고로 이 이야기는 삼국지연의에도 나오는 이야기며 창천항로를 보면 이 솥과 똑같은 양식의 대형 솥으로 동탁이 나체의 죄인들을 손발을 자른 뒤 삶아서 곰탕을 끓여먹는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보보경심에서도 윤사, 윤제의 끄나풀이었던 것이 걸려서 팽형을 당하는 궁녀가 나온다. 주인공이 어릴 때부터 동료 궁녀로 자매처럼 지냈기에 이 사건 이후 멘붕한다.

단막극 형식의 어떤 사극에서도 이를 다룬 적이 있는데 팽형을 당한 인간의 안습한 삶이 적나라하게 나온다. 참고로 이 사극에서 팽형당한 주인공은 상투도 못하게 한 건지 머릴 풀어헤치고 다니며 이마에는 죽을 사(死) 자가 찍혀 있었다. 다만 이건 허구일 가능성이 있는데 이건 자자형(刺字刑)이라는 처벌(이마에 문신을 새기는 벌이다)이기 때문이다.

영화 혈의 누에서 과거 강객주의 일가가 조선의 5가지 극형을 받아 처형된 방식과 똑같은 방법으로 연쇄살인이 벌어지는데 그중에 하나인 육장(=팽형)의 방법으로 살해당하는 피살자가 나온다.

아일랜드-캐나다 드라마 튜더스에서도 한 번 등장한다.

드라마 칭기즈 칸#8.2에서도 나온 적이 있으며 테무진과 사이가 틀어진 자무카가 사로잡은 포로들을 전부 팽형에 처한 장면으로 나왔었다.

원피스에서 포네그리프를 만든 코즈키 가문의 코즈키 오뎅이 와노쿠니의 쇼군에게 처형당했을 때 쓰였다. 삶아 버려라, 오뎅이니까 말이야

의외로 우리는 어린 시절에 동화책이나 TV로 팽형을 접한 바 있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이야기에서 하녀 모르지아나가 항아리 안에 끓는 기름을 부어 그 안에 숨은 도적들을 조용히 끔살(...)시켰다는 장면이나 헨젤과 그레텔 또는 아기 돼지 삼형제에서 빌런이 솥에 빠져 죽는 장면으로 머리통 굵어진 후에 생각해 보면 흠좀무한 이야기.
  1. 다만 둘의 방식이 엄격히 구분되어 시행되었다는 근거는 나타나지 않는다.
  2. 더불어 기름을 사용할 경우 비용이 만만치 않다. 현대에서야 잘 느껴지지 않겠지만 고대에 기름도 상당히 비싼 물건이었다.
  3. 단, 이 사람은 굉장히 고증을 어기는 경우가 많으니 주의할 것. 씨받이 항목 등을 비롯하여 실제와 다른 서술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