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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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世應
1933년 4월 18일 ~

대한민국기자, 정치인, 관료이다. 호는 의남(意南)이다.

1933년 경기도 안성군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미국에서 기자로 활동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기도 광주군(성남시 분리 전)-이천군-여주군 선거구에 신민당 후보로 유기준과 복수공천을 받아 오세응 본인만 당선되었다. 1978년 이철승 대표 체제를 비판한다는 이유로 신민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신민당을 탈당하고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79년 6월 신민당 김영삼 총재 체제가 출범하자 한병채, 박찬, 김현규, 이상민, 예춘호, 손주항 등과 신민당에 복당하였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민주정의당에 입당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경기도 성남시-광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정당 이대엽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2년부터 1983년까지 정무제1장관을 역임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한국국민당 이대엽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경기도 성남시 을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분당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대한민국 국회 문화공보위원장에 선출되어 1994년까지 역임하였다. 1995년부터 1996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외무통일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국회부의장이 되었다. 1988년 국회의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박준규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0년 한나라당이회창 총재 노선에 반발하여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 그리고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을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임태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