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국가의 유로화 도입 이전 통화 | |||||
원년 멤버 | 프랑스 프랑 (모나코 프랑) | 벨기에 프랑 | 룩셈부르크 프랑 | ||
독일 마르크 | 네덜란드 길더 | 오스트리아 실링 | 핀란드 마르카 | ||
이탈리아 리라 (바티칸 리라, 산마리노 리라) | 에스파냐 페세타 | 포르투갈 에스쿠도 | |||
아일랜드 파운드 | 그리스 드라크마 | ||||
추가 멤버 | 슬로베니아 톨라르 | 몰타 리라 | 키프로스 파운드 | 슬로바키아 코루나 | |
에스토니아 크론 | 라트비아 라트 | 리투아니아 리타스 |
중부유럽의 통화 | ||
유로 | ||
헝가리 포린트 (헝가리 펭괴) | 폴란드 즈워티 | 체코 코루나 (체코슬로바키아 코루나) |
Österreichischer Schilling (독일어)
1 1기 실링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깨지고 난 후인 1924년 12월 20일 제정된 실링통화법안(Schillingrechnungsgesetz)에 의해 기존 오스트리아 헝가리 크로네를 대체하는 통화로서 등장했다. 교환비는 10,000크로네 = 1실링. 하지만 1938년 독일제국의 강제병합으로 인해 2제국마르크 = 3실링의 비율로 강제전환당하며 막을 내렸다.
2 2기 실링
1945년 독일제국 패망 이후부터 유로화 전환 직전인 2001년까지 오스트리아에서 사용된 통화. ISO 4217코드는 ATS, 기호는 S 혹은 Ös, 보조단위로 그로셴(Groschen)이 있었다. 최종 인플레이션은 2%. 유로화와의 교환비는 13.7603실링/EUR이고, 반대로 지난 통화였던 제국마르크와의 교환비는 1:1로 해주되 150실링을 한도로 두었다. 이는 제국마르크의 괴멸적인 폭락으로 인해 통화 자체가 바닷물처럼 넘쳐나다보니 정부측에서 아예 계산을 포기하고 한 사람당 150실링씩 뿌렸다고 표현하는 것이 현실적일 정도다.
이후 1947년 11월에 다시 한 번 신 실링화 법안이 공표되고, 그동안 뿌려준 150실링 가지고 얼마나 열심히 벌었나를 테스트하듯 150실링까지는 1/1로, 그 초과값은 1/3비율로 다시 신권으로 교환하며 통화를 재정비하였다. 이렇게 되자 1950년의 환율은 26실링/USD로 정립되었다. 하지만 미국이 브레튼우드 시스템을 포기하면서 흔들릴 조짐이 보이니 오스트리아 실링은 도로 독일 마르크에 의지하게 되었다. (1976년 7월)
앞면 | 뒷면 | ||
300px | S 20 | 모리츠 미카엘 다핑거 | 알베르티나 |
300px | S 50 | 지그문트 프로이트 | 조세피넘(의학교) |
300px | S 100 | 오이겐 폰 바베르크 | 국립과학대 아카데미 |
300px | S 500 | 오토 바그너 | 우체국 저축은행 |
300px | S 1,000 | 에르빈 슈뢰딩거 | 빈 대학교 |
300px | S 5,000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국립음악극장 |
앞면 | 뒷면 | ||
300px | S 20 | 구스타프 클림트 | |
300px | S 50 | 이다 파이퍼[1] | 자이로스코프, 범선 |
300px | S 100 | 프란츠 슈베르트 | 연주회를 갖는 슈베르트, 피아노, 미완성 교향곡 자필 악보 |
300px | S 500 | 로자 마이레더 | 오스트리아 부인협회 |
300px | S 1,000 | 칼 란트슈타이너 | 빈 대학교 병리해부학연구소에서 현미경 관찰중인 슈타이너 |
300px | S 5,000 | 마리 폰 에브너 에셴바흐[2] |
- 500, 1000실링을 제외한 나머지는 실물로 등장하지 못했다. 혹은 이미지만 그럴싸하게 만들어 훼이크를 쳤을 가능성도 있는데 중앙은행측에선 별도의 설명이 없다. 일단 20, 50, 100, 5000실링의 경우 이 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