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몸이 있는 한, 신일본에는 돈비가 내릴 것이다!"
オカダ・カズチカ.[1]
부시로드 체제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상징하는 선수
1 프로필
본명 | 오카다 카즈치카 ( 岡田 和睦 / オカダ・カズチカ ) |
생년월일 | 1987년 11월 8일 (28세) |
신장 | 191cm |
체중 | 107kg |
출생지 | 일본 아이치 현 안조 시 |
피니시 | 레인메이커 (숏레인지 래리어트) |
별명 | 레인메이커 (Rainmaker), 신세대의 에이스 |
테마 | Rain Maker |
2 약력
학창시절에 야구와 육상을 했고, 특히 육상에서 100m 아이치 현 대회 1위를 기록하기도 했던 오카다는 중학생 때 형이 친구에게 빌려온 프로레슬링 게임으로 프로레슬링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신일본 프로레슬링과 토류몬 JAPAN의 시합을 보며 프로레슬링 팬이 된 오카다는 부모님을 설득해 만 16살 어린 나이에 울티모 드래곤의 루차 리브레학교 '토류몬' 13기생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당시 토류몬은 입문자가 많아서 진정으로 데뷔하고자 하는 선수들만 거르기 위해 더욱 가혹한 연습을 가했다고 하는데, 여기서 살아남은 오카다는 2004년 8월 29일에 멕시코에서 데뷔전을 치루게 되었다. 같은 해 12월에 신인들의 대회 '영 드래곤배'에서 우승을 거둔 오카다는 2007년 7월 22일 '울티모 드래곤 20주년 기념 흥행'에서 시합 후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이적하게 되었다는 것을 밝혔다.
2007년 8월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단한 오카다는 이전까지 3년 선수 경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자세로 일반적인 영 라이온[2]으로서 실력을 갈고 닦았고, 8월 26일 나이토 테츠야와 신일본 링에서 첫 데뷔전을 치뤘다. 이후 2008년 4월 12일 이시카리 타이치(石狩 太一)[3]와 정식 데뷔전을 펼치며 본격적인 신일본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프로레슬링 NOAH와 대항전에서도 출전하는 등 기대를 받은 오카다는 2010년 2월부터 미국 TNA에 무기한 무사 수행을 떠나게 되었는데, 2010년 1월 31일에 가진 타나하시 히로시와의 '송별 시합' 후에는 "난 괴물이 되서 돌아오겠다."라고 코멘트를 남겼다. TNA에서는 슈퍼 히어로 만화이자 영화로도 만들어진 '그린 호넷'의 등장인물 '가토'를 패러디 한 '오케이토'라는 캐릭터로도 활동했으나 망조가 단단히 든 TNA는 그를 한낱 자버 이상으로 취급하지 않았고 그나마 사모아 죠의 부하역으로 나온게 전부일 정도였다. 2010년 12월에는 잠시 일본에 돌아와 2011년 1월 4일 신일본 도쿄돔 대회 '레슬킹덤 5'에서 시합을 가지기도 했다. 2011년 5월 신일본 미국 투어에도 참전해 초대 IWGP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쉽 결정 토너먼트에도 참가했던 오카다는 결국 12월에 TNA 수행을 마치고 신일본에 돌아오게 되었다.
오카다는 이전과는 다른 금발 머리와 황금색 & 붉은색 복장의 악역으로 돌아왔는데, 자신을 '돈의 비를 내리게 하는 존재'라는 뜻의 '레인 메이커'라고 칭하게 된다.[4]
2012년 1월 4일 도쿄돔에서 열린 PPV 레슬킹덤 VI에서 오카다와 마찬가지로 무사수행을 마치고 돌아온 요시하시(YOSHI-HASHI)와 싱글매치를 치루며 귀국을 알린 오카다였으나, 정작 그 시합의 평가가 좋지 않았다. 이날 메인 이벤트 후에는 당시 IWGP 헤비급 타이틀 연속 방어 신기록인 11차 방어 달성한 타나하시 히로시에게 도전을 선언했으나 관객들의 야유만을 들었다. 이때부터 그의 독특한 캐릭터 및 유행어를 선보이며 존재감을 드러내었다.
하지만 실력파 악역 레슬러 게도(外道)[5]가 곁에서 보좌하고, 전초전에서 점차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며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결국 2월에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쉽 매치에서 타나하시를 물리치는 대이변을 만들어내며 단숨에 주가를 끌어올리게 된다. 그후 신일본 프로레슬링은 부시로드 체제의 공격적인 마케팅과 오카다의 '레인 메이커 효과'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활약상과 존재감을 바탕으로 점차 큰 흑자를 기록하게 된다.
[1]
사진은 레인메이커 포즈. 입장 퇴장 뿐만 아니라 시합 도중 상대를 쓰러뜨려놓고 포즈를 취할 때도 있는데, 이 경우 TV카메라는 줌 아웃해서 경기장 전체를 넓게 비춰주는 암묵의 룰이 있다(...)
오카다는 나이토 테츠야, 고토 히로키를 상대로도 명승부를 남기며 타이틀 방어를 해나가다가 6월에 타나하시에게 다시 벨트를 빼았겼는데, '기세등등했던 신인도 결국 여기까지인가' 싶었던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8월에는 여름 리그전 G1 클라이맥스에서 우승을 거두었다. 이는 역대 최연소 우승기록이기도 한다. 그리고 우승의 대가로 자신이 제안하여 탄생한 도쿄돔 대회 IWGP 헤비급 타이틀 도전 권리증을 방어에 성공하고 2012년도 도쿄 스포츠 선정 프로레슬링 대상에서 MVP 베스트 바웃상을 차지한다.
2013년 1월 4일 PPV 레슬킹덤 VII의 메인 이벤트에서 타나하시에게 아쉽게 패배하며 벨트 탈환에 실패했으나, 3월에는 봄의 토너먼트 대회 뉴재팬컵(NEW JAPAN CUP)에서 우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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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4월 7일 인베이전 어택에서 가진 타나하시와의 재대결에서 대단한 경기를 펼친 끝에, 타나하시에게 레인 메이커를 성공시키고 생애 2번째 IWGP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는데 성공한다.. 이 경기는 2013년도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가 선정한 올해의 경기에 등극하였으며, 데이버 멜쳐로부터 별 5개를 부여받았다.
그 후 오카다는 이전보다 더욱 기세를 타며 승승장구하며 타이틀을 방어하고 10월15일 타나하시와 완전 결착을 걸고 타이틀전 결판을 내게 되었다.
반년 전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 경기를 선보이며, 공방전 끝에 레인 메이커를 성공시키고 타이틀을 방어했다.. 이 경기는 2013년도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가 선정한 올해의 경기 3위에 등극하였으며, 멜쳐로부터 또 별 5개를 부여받았다. 심지어 멜쳐는 플레어 대 스팀보트보다 대단하다!란 평가마저 하였다 한다.[6]
이 기세를 이어 받아 오카다는 1년 1개월동안 타이틀 방어를 이어가게 되었고 2년 연속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MVP에 오른다. 이는 텐류 겐이치로에 이어 20여년만의 기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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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14년 5월 3일 PPV 레슬링돈타쿠(レスリングどんたく)에서 카오스의 멤버 타카하시 유지로의 배신에 의해 AJ 스타일스에게 패해 타이틀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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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8월 10일 G1클라이맥스에서 같은 팀의 리더 나카무라 신스케를 꺾고 또 한번 우승하며 IWGP 헤비급 챔피언쉽 도전권을 획득했다. 이 경기는 2014년도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가 선정한 올해의 경기 2위에 등극하였으며, 데이버 멜쳐로부터 별 4.75개를 부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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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4일 PPV 레슬킹덤 Ⅸ의 메인 이벤트에서 IWGP 헤비급 챔피언 타나하시 히로시에게 도전했으나 패했다. 이날 타이틀전을 치루기 전까지 팽팽한 기싸움과 설전을 벌이던 두 사람이었으나, 결국 패배한 뒤 타나하시에게 'IWGP는 멀다' 는 굴욕적인 지적질승리선언을 들어야 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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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며 퇴장하는 오카다. 이 경기를 시청한 프갤러들은 대동단결해서 타나하시ㅆㅂㄹ을 외쳤다 이 경기는 2015년도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가 선정한 올해의 경기 4위에 등극하였으며, 데이버 멜쳐로부터 별 4.75개를 부여받았다.
이후 불렛 클럽의 멤버 배드 럭 파레에게 연패하며 슬럼프에 빠지는 듯 했으나 인베이전 어택에서 파레의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툼스톤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승리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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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5일 PPV DOMINION에서 IWGP 헤비급 챔피언 AJ 스타일스에게 도전해 승리하며 새로운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경기 초반 장외로 나갈 때마다 링 사이드를 장악한 불렛 클럽 멤버들에게 돌림빵을 당하면서 고전했으나 불릿 클럽 멤버들이 퇴장당하면서 간신히 대등한 국면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4전 1승 3패, 특히 타이틀전에서 3연패를 기록했을만큼 상대전적에서 압도적으로 앞서는 AJ 스타일스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였다. 경기 중반 위기의 순간을 잘 극복하면서 막판 피니쉬 공방전에서 오카다가 극적으로 레인메이커를 2방 터트리며 승리했다. 특히 끝나기 직전 5분가량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잡기풀기와 강제연결 공방이 압권. 프로레슬링 평론가 멜쳐로부터 평점 4.75점을 수여받았고, 올해의 경기 후보급(MOTYC)으로 꼽힐만한 경기였다.
이후 G1 클라이맥스 25에서는 B조 선두를 처음부터 유지하다가 마지막날 나카무라 신스케에게 패하며 아깝게 결승진출에 실패했다. G1 결승전에서는 일본 프로레슬링계의 레전드 텐류 겐이치로의 은퇴전 상대중 하나로 지목받았다.
10월 12일에는 료고쿠 국기관에서 다시 한 번 AJ 스타일스를 상대로 IWGP 헤비급 타이틀 첫번째 방어전을 치러 방어에 성공하였고, 그 직후 레슬킹덤에서 맞붙을 G1 우승자 타나하시 히로시와 신경전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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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1월 15일 예정되었던 대로 텐류 겐이치로의 최종 은퇴전 상대로서 시합을 벌였다. 사실 경기의 퀄리티는 농담으로라도 좋다고는 말하기 힘든 수준...[8]이었으나 경기가 갖는 상징성이 일본 프로레슬링 계의 시대변화를 의미하다보니[9] 많은 주목을 받은 시합이 되었다. 결국 오카다가 승리했고 악역이지만 경기를 혼자 이끈 점, 경기가 끝난 후 리스펙트를 담은 인사등 여러가지로 호평을 받았다. 이후 이 시합은 2015년도 도쿄 스포츠 선정 프로레슬링 대상에서 베스트 바웃으로 선정되었고 오카다 개인으로서도 2년만에 통산 3번째 MVP로 선정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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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4일 레슬킹덤 X, 타나하시와의 대망의 타이틀전에서 2번의 죽창하이 플라이 플로우를 버티고 레인 메이커를 3번이나 작렬하며, 타이틀을 방어함과 동시에 타나하시의 레슬킹덤 6연승을 저지했다. 타나하시에게 완벽하게 설욕을 한 셈.[10] 그리고 이 날은 프갤 국경일로 지정되었다 여덟 번에 걸친 둘의 경기 중에서도 내적 서사나 상징성 등으로 최고였다는 평이 많으며, 데이브 멜쳐로부터 또다시 별 5개를 부여받았다!
4월 인베이전 어택에서 뉴 저팬 컵 우승자인 나이토 테츠야의 도전을 받아 경기를 치루고 패배, 벨트를 뺏겼다.
그 후 6월 19일 오사카에서 열린 DOMINION에서 나이토 테츠야를 이기면서 벨트를 되찾아왔다.
이후 G1에서도 A조에 배정되어 선두로 앞서나갔다. 리그 도중 이시이 토모히로와 5성 경기도 만드는 등 좋은 모습들을 보여줬지만, A조 마지막 흥행날 타나하시 히로시와의 결승진출자를 가리는 경기에서 그만 무승부를 기록하는 바람에 승자승 원칙이 복잡하게 꼬여있던 고토에게 간발의 차로 결승진출권을 내주었다.
3 주요 기술
'레인메이커'란 기믹에 맞게 기술명이 돈과 비에 많이 연관되어 있다.
- 레인메이커
오카다의 피니쉬 기술. 굳이 분류한다면 숏레인지 래리어트다. 스턴 한센, 초슈 리키, JBL, 코바시 켄타 등 래리어트로 이름을 떨친 선수들에 비하면 임팩트는 약한 편이지만, 오카다 특유의 클래식한 경기 운영과 맞물려 확실한 마무리 기술로서 설득력을 부여한다. 즉 스티브 오스틴의 스터너처럼 절체절명의 순간에 일발역전을 이끌어낼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 헐크 호건의 레그드랍처럼 이 기술을 마지막으로 경기를 끝낸다는 시그니쳐 무브에 가깝다.
국내 프로레슬링팬들에게 멜처의 양아들, 타나쎄라는 비아냥마저 듣는 타나하시를 상대로 승리를 따낼 때도 딱히 역반응이 일지 않는 이유가 '제아무리 타나하시라도 이렇게 공략당하고 피니쉬까지 맞아버리면 못 일어나지' 설득력을 부여하기 때문. 반대로 타나쎄에게 패할 땐 어떻게 레인메이커를 써볼 틈도 없이 안드로메다 관광을 당한다는 의미(...)
오카다의 경기의 후반부는 '상대방의 배후에서 팔을 잡아 돌려 세우며 래리어트를 먹인다'라는 특성상 한방을 노리는 오카다와 어떻게든 안 맞아보려 발버둥치는 상대방의 피말리는 공방전이 일어나게 된다. 이 공방전의 퀄리티 덕분에 오카다의 경기의 질이 한층 업그레이드된다고 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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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 레인메이커를 암바로 반격하는 나카무라 신스케.
下 나이토 테츠야가 카운터를 노리자 툼스톤 파일드라이버로 기술을 바꾸는 오카다.
기본기이지만 오카다를 상징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프로레슬러 가운데 특히 드롭킵 잘차는 선수로 꼽힐 정도로 타점이 대단히 높고 깔끔한 자세가 일품. 가끔씩 상대를 탑 로프에 올려놓고 드롭킥으로 머리를 차서(!) 링 밖으로 떨구기도 한다. 레슬 킹덤 9를 미국 방송에다 중계할때 해설을 맡던 해설자 짐 로스는 자기가 본 최고의 드롭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헤비 레인
파이어맨즈 캐리 형태로 상대를 양어깨에 얹은 뒤 버티컬 수플렉스 형태로 떨어뜨린다.
- DID
오카다의 주력 서브미션 기술. 기술명은 Deep In Dept, 빚더미에 깔려서 목도 돌아가지 않는다는 뜻.(...)
- 레드 잉크.
상대의 다리를 얽어매고 거는 변형 카멜 클러치. 오카다의 주력 서브미션 기술. 뜻은 글자 그대로 망했어요적자.
- 다이빙 엘보드랍
드롭킥과 마찬가지로 긴 체공시간을 자랑한다.
그밖에 프로레슬링 입문을 토류몬에서 루차 리브레로 시작한만큼 190cm 장신이면서 센톤, 토페 콘 히로, 미사일 드롭킥 등 공중기를 능숙하게 사용한다. 이외에도 멕시코 특유의 재베를 간간히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피니쉬는 아니지만 툼스톤 파일드라이버도 사용.
4 인기
191cm의 장신, 엄청난 도약력, 미남 스타일의 얼굴, 특유의 카리스마성, 아직 20대 후반이라는 젊은 나이, 데뷔 후 10년 동안 갈고 닦은 실력, 레인 메이커라는 독특한 캐릭터 등으로 현재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때문인지 프로레슬링 활동 외에도 부시로드 관련 CF, 드라마, 영화, 버라이어티 방송 출연 등도 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에도 출연했다.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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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들고 있는 물건은 레인메이커달러. 레인메이커 기믹을 내세우며 '신일본 링에 돈비를 내리겠다' 선언했고, 여기에 맞춰서 입장신에 돈비를 뿌리고 있다. 레드 잉크 등 기술 이름을 돈과 연관해서 지은 것도 이런 기믹 때문이다.
5 여담
프로레슬링 스타일은 한창 성장기때가 일본 프로레슬링의 침체기였던 탓인지 오히려 미국 스타일에 가까운 무브셋을 장착하고 있다. 그러면서 일본 프로레슬링 특유의 공방전을 살릴 수 있는 필살기 레인메이커를 장착한 하이브리드형 레슬러.
링 위에서의 거만한 모습과는 달리, 개인 인터뷰나 방송, CF등에서 비춰지는 이미지는 나이에 걸맞게 꽤나 순진한 스타일이다. 정작 링 위에서도 석패 후 눈물을 흘리거나, 야노 토오루에게 코믹하게 농락당하는 등 알고보면 순수한 남자 캐릭터가 은연중에 이어지고 있다(...).
모기업 부시로드의 카드게임 CF에서도 "오카다!"라고 말을 놓는 어린이에게 자상하게 "오카다씨라고 불러야지!"라고 정정해주는(...) 모습이 유명.[11] 오카다의 필수요소 중 하나이다.
알았어, 오카다
오카다, 이거
- ↑ 공식 표기를 한자가 아닌 가타카나로 쓴다.
- ↑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신예 선수를 칭하는 용어
- ↑ 현재 링 네임은 타이치(タイチ).
- ↑ 미국에서 생활하다 레인 메이커라는 표현을 듣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 ↑ 자도(邪道)와 함께 90년대를 풍미한 명태그팀 선수로 경험 뿐만 아니라 쇼맨쉽과 언변도 뛰어나서 매니저로서 신인 오카다를 이끌어주는데 크게 공헌했다.
- ↑ 멜쳐와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는 89년도에 릭 플레어와 리키 스팀보트가 가진 WCW 챔피언쉽 경기 3개 모두 5점을 매기고 올해의 경기 1,2,3위를 부여한 바 있다. 리키 스팀보트 vs 릭 플레어의 경기는 프로레슬링 사상 최고의 명경기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니 옵저버 측에서는 자신들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이 경기에 준 셈이다.
- ↑ 이 말은 오카다가 처음 타나하시에게 들었던 말이기도 하다.
- ↑ 그도 그럴것이, 텐류 옹의 나이는 릭 플레어 옹과 동년배다. 거기에 치명적인 등부상을 입다보니 은퇴 경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인 셈.
- ↑ 일본에서 텐류의 상징성이나 격은 비슷한 시기에 은퇴한 스팅에 필적한다.
- ↑ 오카다가 타나하시를 꺾은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신일본 최고의 PPV인 레슬킹덤(WWE의 레슬매니아와 위상이 같다.)에서 타나하시를 꺾은건 이때가 처음이다.
- ↑ 원래는 관객들이 오카다 콜을 외칠때 씨를 붙이라며 오카다 씨다!!를 외친다.
- ↑ 그래서인지 모모이로클로버 멤버들이 레슬킹덤 X를 포함해 여러 프로레슬링 흥행에서 자도와 같이 출연하기도 했다.